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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범어

불교 경전번역과 훈민정음의 탄생

 

불교 경전번역과 훈민정음의 탄생

 

1. 들어가는 말

2. 음차법

3. 반절법

4. 훈민정음의 반절법

5. 훈민정음의 초성,중성,종성의 구조

6. 나가는 말


 

 

불교 경전번역과 훈민정음의 탄생

1. 들어가는 말

 

세종은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다음 해인 1444년, 최만리(崔萬理) 등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 세종은 그들에게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라고 힐난한다. 세종이 물은 운서(韻書)는『절운(切韻, 601)』,『광운(廣韻, 1008)』, 『홍무정운(洪武正韻, 1375, 劉三吾)』 등을 말하는데 이들 운서들에는 『운경 』 36자모(자음), 『칠음략』 36자모, 『운회』 35자모, 『홍무정운』31자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운서(韻書)에 나오는 사성칠음(四聲七音)과 36자모는 모두 범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라는 세종대왕의 말은 훈민정음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이다. 세종은 기존 중국의 소리사전들이 조선의 실제 말소리와 맞지 않아 바르지 않다고 보았고,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 본 글에서는 세종이 기존 소리사전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어떻게 훈민정음 창제로 이어졌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북인도 작은나라에서 태어난 고따마 싯타르타는 35세에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 그의 가르침은 암송되다가 문자로 기록되었고 그것이 불교경전이다. 기원전후에 불교경전이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경전번역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표음문자(表音文字)인 브라흐미(Brāhmī)문자와 ‘싯담(Siddhaṃ)문자를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漢子)로 번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번역 과정에서 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소리 빌려 적기(음차법)'와 '소리 쪼개어 적기(반절법)'가 발명되어 사용되었다. 음차법이란 한자의 소리를 빌려서 표기하는 방법이다. 즉,브라흐미 자음 ka,kha,ga,gha,nga를 표기하기 위해서 같은 발음을 가진 迦(ka) 佉(kha) 伽(ga) 口+恒(gha) 俄(nga)라는 한자로 적었다. 같은 발음을 가진 한자가 없는 경우에는 인위적으로 새로운 한자(口+恒,gha)를 만들기도 하였다.

 

음차법은 불완전하였다. 범어의 유성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자 발음이 변화기도 하였다. 이 불완전한 음차법을 보완하기 위해서 한자를 초성(初聲)과 운모(韻母)로 나누고 그 초성(자음)을 표기하는 반절법이 발견되었다.범어 자음 ka,kha,ga,gha,nga를 한자 見(ka) 溪(kha) 群(ga) 疑(ṅa)로 표기하였다. 발음하기 어려운 유성유기음(gha,jha,dha,bha)이 생략되어 見(ka) 溪(kha) 群(ga) 疑(ṅa)라는 사성(四聲)이 되었다. 그 사성(四聲)의 見(ka) 溪(kha) 群(ga) 疑(ṅa)라는 한자가  훈민정음에서 君(ka) 快(kha) 虯(kka) 業(ṅa)이라는 한자로 대체되었다.이것은 무성무기음,무성유기음,유성음,비음이라는 순서가 훈민정음에서는 예사소리,거센소리,된소리,비음의 순서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ga kha,ka,ṅa라는 발음이 ㄱ, ㅋ, ㄲ,ㆁ 라는 발음기호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불교경전이 번역되면서 운서의 조음위치가 칠음(七音)으로 정리되고, 조음방법이 오성(五聲: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유성유기음, 비음)에서 사성(四聲:무성무기음,무성유기음,유성음,비음)으로 정리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불교경전을 번역하면서 발생한 음차법과 반절법이 어떻게 훈민정음 창제에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 범어처럼 훈민정음도 초성,중성,종성이라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펴볼 것이다.  

 

 

2.음차법(音借法)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경전언어를 한자로 번역해야 했다. 중국은 본래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뜻과 소리를 동시에 가지는 한자를 사용했다. 한자는 뜻을 전달하는 데는 매우 좋았지만, 중국 바깥에서 들어온 새로운 소리,사람 이름, 장소를 있는 그대로 적을 때는 문제가 생겼다. 중국인들에게는 소리만 따로 떼어서 적을 수 있는 알파벳 같은 기호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뜻은 버리고 소리만 빌려오는 ‘소리 빌려 적기(음차)’를 하게되었다. 범어의 자음 ka, kha, ga, gha, ṅa는 각각 (迦, ka), (呿, kha), (伽, ga), (重音伽, gha), (我, ṅa)로 음차되었고, ca, cha, ja, jha, ña는 (遮, ca), (車, cha), (闍, ja), (重音闍, jha), (若, ña)로 음차되었다. 무성음 가(迦,ka)와 유성음 가(伽,ga)는 소리의 질감이 완전히 다르기에 한자 표기만으로는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경음가(輕音迦)’ 또는 ‘중음가(重音伽)’과 같이 설명을 덧붙여 번역하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붓다(Buddha)', '상가(Saṅgha)', '룸비니(Lumbinī)' 같은 단어들을 ‘佛陀(불타)’, ‘僧伽(승가)’, ‘藍毗尼(람비니)’로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는 중국식 발음 구조에 억지로 짜 맞추어야 하는 불완전한 방식이었다. 다른 어려움은 모음의 장단(長短) 구별이었다. 범어의 기본 모음군 a, ā, i, ī, u, ū를 한문으로 옮기기 위해 번역가들은 아(阿, a), 아(阿, ā), 이(伊, i), 이(伊, ī), 우(憂, u), 우(憂, ū) 라고 번역하였지만, 한자 표기만으로는 장음(長音)과 단음(短音)을 구별할 수 없었다.이와 같은 이유로, 범어의 음가를 한자 하나로 1:1 대응하여 표기하는 단순 음차법은 점차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고, 보다 정밀한 발음 표기법이 고안되었다. 그것이 바로 ‘반절법(反切法)’이다.

 

번호 무성 무기음 무성 유기음 유성 무기음 유성 유기음 비음
1 (아음) 迦 (ka) 佉 (kha) 伽 (ga) 口+恒(gha) 俄 (nga)
2 (치음) 遮 (ca) 車 (cha) 闍 (ja) 膳 (jha) 喏 (ña)
3 (권설음) 咤 (ṭa) 侘 (ṭha) 荼 (ḍa) 祖 (ḍha) 挐 (ṇa)
4 (설음) 多 (ta) 他 (tha) 陁 (da) 彈 (dha) 那 (na)
5 (순음) 波 (pa) 頗 (pha) 婆 (ba) 滼 (bha) 摩 (ma)
6 (유음) 蛇 (ya) 囉 (ra) 羅 (la) 和 (va) -
7 (후음) 奢 (śa) 沙 (ṣa) 娑 (sa) 呵 (ha) [口+茶] (ḷam)
도표1:범어 자음을 한자로 음차한 모습

.

 

 

3.반절법(反切法)

 

반절법은 한자의 발음을 초성(聲)과 운모(韻)로 나누어 표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東(동)의 반절 표기는 “德紅切”이라 한다. 德(덕)의 초성 ‘ㄷ’과 紅(홍)의 운모 ‘옹’을 합쳐 ‘동’으로 읽으라는 뜻이다. 반절법 역시 한자의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또 다른 한자를 빌려 써야 하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두개의 한자로 다른 한자의 음가를 표현하기 위하여 한자를 반복하여 사용할수 밖에 없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한자 발음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화하여 혼란을 초래 하였다. 시간이 지나도 발음이 변화되지 않는 기호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반절법이 중국인들에게는 한자를 '초성'과 '중·종성'으로 분리하여 인식한 시작점이고, 조선인들에게는 발음기호  ㄱㅋㄲㆁ 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음위치 전청 (全淸) 차청 (次淸) 전탁 (全濁) 불청불탁 (不淸不濁)
아음 (ka) (kha) (ga) (ṅa)
설두음

설상음
(ta)

(ṭa)
(tha)

(ṭha)
(da)

(ḍa)
(na)

(ṇa)
순음  (pa) (pha) (ba) (ma)
치두음

정치음
(tsa)

(tʃa)
(tsha)

穿 (tʃha)
(dza)

(dʒa)


후음 (ʔa) (ha) (ɣa)
반설음

반치음






(la)

(nza)
도표2: 운경(韻鏡) 에서 반절법으로 정리한 36자모. 발음하기 어려운 유성유기음(gha,jha,dha,bha)은 이미 생략되었다. 

 

 

 

4.훈민정음의 반절법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라고 말했던 세종은 스스로 반절법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중국의 見·溪·群·疑라는 한자 순서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한자 君·快·虯·業를 만들었다.새로운 발음  君·快·虯·業 은 더 이상 범어와 중국운서의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유성유기음, 비음의 순서를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조선어의 전통인 예사소리,거센소리,된소리,비음의 순서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에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라고 한 구절이 이것을 말한다. 君(ka)·快(kha)·虯(kka)·業(ṅa)라는 새로운 발음을 기호로 적으면 ㄱㅋㄲㆁ 라는 기호가 된다. 훈민정음은 기존의 반절법을 계승하면서도 조선어 만이 가지고있는 독특한 발음을 살려내어 기호화한 것이다. 훈몽자회(1527)에서도 언문 27자를 반절이"(言文字母俗所謂反切二十七字)이라고 설명하고있듯이 훈민정음 혜례본에서 君·快·虯·業 으로 반절법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어금니소리(아음) 중에서 ‘君(군)’ 자의 첫소리는 ‘ㄱ’이니, ‘ㄱ’이 ‘ㅜㄴ(운모)’과 합쳐져서 ‘군’이 된다. ‘快(쾌)’ 자의 첫소리는 ‘ㅋ’이니, ‘ㅋ’이 ‘ㅙ’와 합쳐져서 ‘쾌’가 된다. ‘虯(뀨)’ 자의 첫소리는 ‘ㄲ’이니, ‘ㄲ’이 ‘ㅠ’와 합쳐져서 ‘뀨’가 된다. ‘業(업)’ 자의 첫소리는 ‘ㆁ(옛이응)’이니, ‘ㆁ’이 ‘ㅓㅂ’과 합쳐져서 ‘ᅌᅥᆸ’이 되는 것과 같은 부류이다."

(正音初聲, 卽韻書之字母也. 聲音由此而生, 故曰母. 如牙音君字初聲是ㄱ, ㄱ與ᅟᅮᆫ而爲군. 快字初聲是ㅋ, ㅋ與ㅙ而爲:쾌. 虯字初聲是ㄲ, ㄲ與ㅠ而爲뀨. 業字初聲是ㆁ, ㆁ與ᅟᅥᆸ而爲ᅌᅥᆸ之類.)

 

동국정운(1448)』 서문에서 신숙주는 “옛 운서의 반절법에 맞추고, 자모의 칠음과 청탁,사성에 이르기까지, 그 처음과 끝을 탐구하여 바르게 회복하였다(協之古韻之切, 字母七音淸濁四聲, 靡不究其源委以復乎正)”라고 밝히고있다. 세종은 君(ka)·快(kha)·虯(kka)·業(ṅa) 라는 반절법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발음기호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한자 ‘군(君)’은 ka라고 읽고, 발음기호 ㄱ 으로 표기한다. 

 

조음 위치 (칠음) 전청 (예사소리) 차청 (거센소리) 전탁 (된소리) 불청불탁 (비음)
아음 (어금니소리)  (ㄱ, ka)  (ㅋ, kha)  (ㄲ, kka)  (ㆁ, ṅa)
설음 (혓소리)  (ㄷ, ta)  (ㅌ, tha)  (ㄸ, tta)  (ㄴ, na)
순음 (입술소리)  (ㅂ, pa)  (ㅍ, pha)  (ㅃ, ppa)  (ㅁ, ma)
치음 (잇소리)  (ㅈ, tsa)

 (ㅅ, sa)
 (ㅊ, tsha)  (ㅉ, ttsa)

 (ㅆ, ssa)
--
후음 (목구멍소리)  (ㆆ, ʔa)  (ㅎ, ha)  (ㆅ, hha)  (ㅇ, )
반설음 (반혓소리) - - -  (ㄹ, la)
반치음 (반잇소리) - - -  (ㅿ, za)
도표3: 君(ka)·快(kha)·虯(kka)·業(ṅa) 를  사용한 훈민정음만의 새로운 반절법은 ㄱㅋㄲㆁ 라는 소리를 표기하기 위함이다.

 

 

 

5. 훈민정음의 초성,중성,종성의 구조
 

한국어와 한글처럼 언어(소리)와 문자(기호)는 다르다. 범어(산스크리트어)라는 언어를 기록한 최초의 문자는 브라흐미문자이다. 범어를 적은 브라흐미문자,싯담문자 그리고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을 단순히 풀어쓰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음절로 묶어서 표기하는 공통된 원리를 가지고 있다. 브라흐미문자와 훈민정음의 초성, 중성, 종성 결합 방식을 비교해보자.두 문자의 초성(자음)은 공통적으로 자음에 내재된 모음을 붙여 '가, 카,까'로 읽는다.브라흐미문자의 중성(모음)은 자음의 형태에 따라 위, 아래, 왼쪽, 오른쪽에 붙인다. 훈민정음의 중성(모음)은 자음의 형태에 따라 'ㅗ, ㅜ'는 아래에, 'ㅏ, ㅓ' 오른쪽에 붙인다. 브라흐미와 훈민정음은 모두  '자음병서'방식과 '자음혼용' 방식을 쓴다.

 

범어는 음절 맨 끝에서 소리를 끊는 '비사르가(ḥ)'와 코를 울리는 '아누스바라(ṃ)'라는 독특한 종성 부호가 있다. 예를들어 브라흐미문자로 Saṃgha(상가)는 초성(𑀲sa)의 상단에 아누스바라(ṃ)를 찍어 𑀲𑀁(Saṃ)을 만들고, 자음 𑀖(gha)를 결합하여 상가(𑀲𑀁𑀖)가 된다. 이때 아누스바라(ṃ) 는 이응'ㅇ' 받침(종성)이 된다. sṃbodhi(삼보디)처럼 순음(pa,pha,ba,bha) 계열이 뒤에 올 때는 받침 'ㅁ'으로 변하여 '삼보디'가 된다. Saṃtāna(산따-나)처럼 뒤에 치음(ta,tha,da,dha)이 올때는 'ㄴ' 받침이 되어 산따-나()가 된다. 싯담문자도 마찬가지다. 싯담문자 초성 𑖪(sa)의 상단에 아누스바라(ṃ)를 찍고 뒤에 𑖑(gha)가 붙으면 상가(𑖪𑖯𑖽𑖑)로 발음한다. Saṃtāna(산따-나)도 초성 사(𑖭)+ 아누스바라(ṃ) +따(𑖝+ ā)+나(𑖡)가되어 산따-나(𑖭𑖽𑖝𑖯𑖪)라고 읽는다. 비사르가(ḥ)' 는 여린히읗 'ㆆ'이나 'ㅎ' 받침으로 변한다. 훈민정음은 한자 문화권의 사각형 격자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범어가 가진 복잡한 합자 체계의 한계를 '종성부용초성'이라는 규칙을 만들어 보다 쉽고 효과적인 모아쓰기 체계를 완성하였다.

 

 단어 문자  원어 자형 초성 (자음) 중성 (모음 배치 법칙) 종성 결합과 혼용
붓다

(Buddha)
브라흐미 𑀩𑀼𑀤𑁆𑀥 𑀩(b)와 𑀤(d) 첫 자음 하단에 u 부호를 수직으로 붙임 (𑀩𑀼). 자음 𑀤의 최하단에 후속 유기음 𑀥를 내리눌러 결합하는 자음병서.
  싯담 बुद्ध (b)와 (d) 자음 하단에 u 부호를 수직으로 붙임 (बु). 앞 자음 밑에 뒷 자음 를 붙임(द्ध).
상가

(Saṅgha)
브라흐미 𑀲𑀗𑁆𑀖 𑀲(s)와 𑀗(ṅ) 내재 모음 a를 그대로 활용. 모음 없이 자음이 연속되므로, 자음 𑀗 아래에 후속 자음 𑀖자음병서.
  싯담 सङ्घ (s)와 (ṅ) 내재 모음 a를 활용. 어금니 비음 밑바닥 공간에 유성 대기음 를 압착하여 붙임(ङ्घ).
도표4: 브라흐미,싯담자로 붓다(Buddha),상가(Saṅgha)를 초성,중성,종성으로 결합하는 모습

 

 

6.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훈민정음이 범어(브라흐미문자,실담문자)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훈민정음 해례본은 소리가 나는 위치를 어금니소리(아음), 혀소리(설음), 입술소리(순음), 이소리(치음), 목구멍소리(후음)의 다섯 가지인 '오음(五音)'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범어가 조음 위치에 따라 자음을 분류하는 방식이었다.

2) 훈민정음 자음이  ㄱㅋㄲㆁ,ㄷㅌㄸㄴ,ㅂㅍㅃㅁ의 순서로 되어있다. 범어도 ka kha ga gha ṅa, ta tha da dha na, pa pha ba bha ma 의 순서로 되어있다. 둘다 무성음으로 시작해서 비음으로 끝나고 있다.(훈민정음에 나타난 이런 자음 순서를 후대에 한글 학자가 '가나다라마바사'의 순서로 한글을 배우도록 만들어 놓아서, 세종이 그토록 강조한 칠음과 사성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범어와 훈민정음의 관계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3) 훈민정음은 초성(자음), 중성(모음), 종성(자음)이라는 삼분법으로 하나의 음절을 만들고 있고, 범어도 초성,중성,종성의 구조로 되어있다.

4) 브라흐미문자는 사각형 격자 공간에 자음과 모음을 위아래, 좌우로 붙여서 하나의 음절을 만든다. 훈민정음은 아래와 오른쪽에 모음을 붙여 음절을 만든다.

5) 브라흐미는 자음에 모음이 내재된 까(ka) 카(kha) 가(ga) 라고 읽었다.훈민정음도 ㄱ을 기역,ㄴㅋ을 키역이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는 ㄱㅋㄲ 를 가카까라고 내재된 모음을 붙여 읽었다. 

 

불교의 전파는 단순히 종교적 교리나 철학 사상의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되어 거대한 대륙과 시간을 거쳐 동아시아로 흘러온 ‘소리의 이동’이자 ‘문자의 이동’이었다. 마침내 조선의 훈민정음속에서도 바로 그 오래된 범어의 가사와 리듬이 고스란히 확인된다.브라흐미는 소리가 나는 위치인 어금니, 혀, 입술, 이, 목구멍에 따라 칠음을 만들었고, 세종은 칠음의 소리를 따르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기본 글자(ㄱ, ㄴ, ㅁ, ㅅ, ㅇ)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리의 세기가 강해짐에 따라 선을 더하는 가획의 원리(ㄴ → ㄷ → ㅌ)와 소리를 단단하게 겹쳐 쓰는 병서의 원리(ㄱ → ㄲ)를 정립했다. 이로 인해 훈민정음은 글자의 모양을 보면 발음하는 방법을 알고, 발음을 들으면 글자의 모양을 머릿속에 직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소리 글자가 되었다. 인도의 고대 학자들이 소리를 쪼개어 분류하는 기초를 닦는 데 그쳤고, 중국의 학자들이 이를 한자라는 불완전한 도구로 어렵게 받아쓰고 정리하는 반절법에 머물렀다면, 세종은 그 흐르는 소리의 실체를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가장 단순하고 완벽한 기호로 그려냈다.훈민정음은 중국 반절법의 두 조각짜리 이분법적 한계를 뛰어넘어 첫소리(초성), 가운뎃소리(중성), 끝소리(종성)라는 명확한 세 조각으로 완성했다. 훈민정음은 불교 경전을 번역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자랑스런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유산이었다.

 

 

 자음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유성유기음 비음
① 목구멍 ka 까 kha 카 ga 가 gha 가하 ṅa 나
② 입천장 ca 짜 cha 차 ja 자 jha 자하 ña 냐
③ 권설음 ṭa 따 ṭha 타 ḍa 다 ḍha 다하 ṇa 나
④ 치음 ta 따 tha 타 da 다 dha 다하 na 나
⑤ 입술음 pa 빠 pha 파 ba 바 bha 바하 ma 마
⑥ 반모음 ya 야   va 와 / 바    
⑦ 유활음 ra 라 la ㄹ 라 ḷa ㄹ 라(rl)    
⑧ 마찰음 sa 싸 / 사        
⑨ 기식음 ha 하        
⑩ 억제음 ṃ : ㅇ / ㅁ |        
도표5: 현재도 사용하는 빠알리어(pali) 34개 자음이다. 발음하기 어려운 '유성대기음'을 빼고, 무성무기음과 유성무기음의 위치를 바꾸면 ㄱㅋㄲㆁ,ㄷㅌㄸㄴ,ㅂㅍㅃㅁ 라는 훈민정음 구조와 똑 같다.

 

-끝-

 

『광운(廣韻, 1008, 陳彭年·邱雍)』32자모 인데 36자모라하니 이해가 안간다.

 

 

 

『운회(韻會, 1297)』여린이응과 ㄴ이 중복되는것 같다. 중복되는 것을 빼면 33자모이다.

 

 

 

『홍무정운(洪武正韻, 1375, 劉三吾)』27자모인데 31자모라하니 이해가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