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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3월 만행기 -천은사- 선암사

3월 만행기 -천은사- 선암사

 

지리산 천은사에 도착한 것은 오후 430분경이었다. 지난번에 도반스님이 천은사에서 하룻밤 잤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하룻밤 잘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왔다. 천은사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문화재 관람료를 사찰에서 멀리 떨어진 도로 입구에서 받으면서 부터다. 등산만 하려는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받자 시민들은 소송을 냈고 사찰은 소송에서 패소하면 소송을 낸 사람에게는 관람료를 안 받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시 받았다. 그래서 사찰과 시민 간의 갈등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2023년 5월에 문화재관람료를 일괄적으로 국가에서 부담하기로 하자 각 사찰의 매표소가 없어지게되었다.천은사도 관람료를 걷는 문제를 가지고 시민들과의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천은사는 사찰 아래 저수지를 문화공간으로 꾸며서 상생의 길이라는 걷는 코스가 생겨났다. 저수지 주변에는 카페도 생겨나서 탐방객들은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가질수 있게 되었다. 나도 지리산에 올때면 홀로 걷고 사색을 즐기기 위해서 천은사를 찾는다. 그러나 오늘은 하룻밤을 묵어가기를 청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사뭇 다른 마음가짐이다.

 

천은사 종무소를 찾아가서 종무소 직원에게 나는 선방에 다니는 스님인데 오늘 하루 묵어가고 십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종무소 직원은 오늘은 토요일이라 템플스테이 방이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템플스테이 방 말고 객스님을 위한 객실이 없느냐고 물었다. 객스님을 위한 객실은 없다고 대답했다. 스님들이 오면 템플스테이 방에 주무시는데 템플스테이 손님이 있을 경우에는 잘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잘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고 방장선원을 둘러보러갔다. 방장선원은 예전에 비구스님들에게 유명한 선원이었는데 이제는 통째로 템플스테이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선원을 템플스테이 용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사찰은 천은사가 유일할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스님들의 수행처가 재가자들의 쉼터가 된것이다. 방장선원을 둘러보던 중 스님의 것으로 보이는 털신이 보여 그 방문을 두드렸다. 한참 후에 날씬한 스님이 나왔다. 나는 헛수고인줄 알지만 그래도 같은 승려이기에 다시 한번 오늘밤 이곳에서 묵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님은 종무소 직원의 대답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이윽고 나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원래 이곳은 스님들이 참선하는 방장선원이었다. 만약에 선원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제가 오늘 선원에서 하룻밤 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원이 템플스테이로 바뀌는 바람에 이제는 스님들은 잘 수 없게 되었다. 오늘 내가 그 피해자다. 대충이런 내용이었는데 그 스님은 다음과 같이 반격하였다. 미리 예약이라도 하고 와야지 이렇게 갑자기 와서 방을 달라고하면 방이 없습니다. 나는 서로 모르는 처지에 어떻게 며칠날 내가 가니까 방하나 준비해 놓으라고 예약을 어떻게 합니까? 만약에 내가 그렇게 했다면 오히려 무례하다고 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그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저도 사실 바깥에 외출하면 여관이나 모텔에서 잡니다. 요즘 절에서는 잘 재워주지 않더라고요.라고 한발 빼는듯 한 말을 했다.

 

 

 

 

내가 말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이 사찰에 들어가서 당당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자꾸 시도를 해서 스님들이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스님은 그렇게 되면 좋겠지요. 스님이 주지스님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알려주셔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실은 제가 사찰을 다니면서 머물기를 요청하고나서 허락하면 허락하는 사실을 기록하고, 거절하면 거절한 내용을 기록해서 자료를 남기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같은 곳에 기고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저녁 공양을 하려고 공양간으로 향했다. 저녁공양에는 스님 네분이 와서 공양을 들었다. 나도 한쪽에서 공양을 하고 있는데 방장선원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스님이 내게 다가와서 나를 밖으로 나오라고 말했. 그를 따라 공양간 밖으로 나가니 그 스님은 공양간 옆의 방을 가르키며 이 방은 신도님 방인데 오늘 신도님이 절에 안온다고하니 오늘밤 스님이 이 방에서 주무셔요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습니다. 잘 되었네요라고 인사를 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밤을 먹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공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방이 없다고 말했는데, 이제와서 나에게 방을 주는 이유는? 분명히 내가 사찰에 객실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고 사실대로 기록한다고 하니까 나에게 방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낮은 슬픔이 밀려왔던 것이다화장실이 딸려 있는 객실은 깨끗했고 방바닥은 따뜻했다. 화엄사의 객실과 견줄만 했다.

 

 

천은사를 떠나 순천 선암사로 향했다. 순천 선암사는 태고종 스님들이 살고 있는 태고종이 본산(本山)이다. 얼마 전 조계종과의 소송에서 태고종이 승소하여 이제 영구적으로 태고종이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선암사에서 만난 칠전선원 선원장 현오스님은 말투에서부터 자신감을 보였다. 칠전선원 앞에서 도량을 구경하고 있는데 방문을 열고 노스님이 나타나 나를 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저는 본사는 충청도 수덕사라고 대답했다. 그는 수덕사 스님들을 언급하며 수덕사를 잘 아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는 나를 칠전선원 다실로 이끌고 녹차와 황차를 대접하였다. 그 스님은 태고종스님이지만 조계종선원이 인천의 용화사,문경 봉암사등 의 조계종 선원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고했다. 특히 봉암사의 적명스님은 외국인도 받아주는데 같은 한국 스님을 받아주는 것이 뭐 어렵겠느냐면서 태고종인 자신의 봉암사 선원에 받아줬다고했다. 내 생각에도 적명스님이라면 능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스님은 이제 법적으로 완전히 태고종 소유가 되었으니 칠전선원을 다시 짓는 불사를 할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어 불사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예 절터를 복원하고 그곳에 선원을 짓는 일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칠전선원 선원장스님에게 선암사에서 하룻밤 잘려고 했으나 몇 년전에 거절 당했다고 말했다. 예전에 소송중이었으니까 서로 믿지 못해서 그런일이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공양을 같이 했다. 저녁 공양은 부페식이었는데 한쪽은 스님들이 앉았고, 한쪽은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들이 앉아서 저녁공양을 하였다. 공양하는 중에는 절대 묵언을 지켜야 하는 것이 특이했다. 너무 시끄럽게 이야기하지 않는 선에서 공양 시간에도 대화를 허락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공양을 하고 나서 종무소에 들려서 오늘 밤 하루 묵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총무스님은 선암사가 허우대만 컸지 방이 없다고 대답하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선암사에서 하룻밤 잘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총무 스님은 다시 방이 없다고 말했다. 선원장스님의 이름을 팔까도 생각했지만 나의 숙박투쟁 기록은 최대한 객관적이어야하고 일반스님들의 입장에서 묻고 답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아쉬움을 뒤로 한체 종무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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