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투쟁에 들어가며'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지 1700년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에따라 물질적인 성장을 하더니 어느덧 사찰도 물질화되어 사찰인심이 예전같지 않다. 사찰의 공적인 역활을 잃어버렸다. 템플스테이를 하여 일반인들은 재워주는데 정작 사찰의 주인인 객스님들은 재워주지 않는다. 공공의 사찰이 사유화되고, 승려간의 빈부의 차이가 생겨나고, 평등하게 존중하는 것을 사리진 결과이다. 승가 공동체가 무너진 대표적인 상징을 찾자면 스님이 사찰을 방문해서 숙박을 하고자해도 절에서 재워주지 않는 것이다. 사찰은 개인이 소유할수 없는 공공의 재산이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지 승려는 평등하며, 승려간의 빈부의 차이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려한다. 제가 직접 사찰을 찾아 하룻밤을 묵고자할때 문전박대를 당하고 천대와 멸시를 받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서 이러한 폐단을 알리려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시 사찰의 주인이 승려임을 천명하고 승려의 권리찾기를 하고자한다. 사찰이 공공의 재산이되고 승가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될때 우리나라의 불교와 사찰은 국민은 안식처가 될 수있을 것이다.
백장암
만행(萬行)은 스님들이 삼개월 안거(安居)를 마친 후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다니며 공부한 것을 점검하는 행위이다. 만행을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도 한다. 구름과 물처럼 걸림 없이 자유롭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인연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안거가 정적(靜的)인 수행이라면 만행은 동적(動的)인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언어로 말하면 견학(見學)정도의 의미이다. 그러나 요즈음엔 만행이나 견학 심지어 여행을 다니는 스님들이 드물다. 이미 스님들 사이에서는 사찰을 찾아가면 문전박대를 당한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그래서 사찰에서 숙박을 하기보다는 돈만주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모텔이나 호텔에 숙박하길 선호한다. 이번에 내가 사찰을 찾아 만행하는 이유는 당돌하게도 거절 당하는 일을 당해보고 싶기때문이다. 숙박을 거절 당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남기려고한다. 스님이 스님을 문전박대하고 천대받는 실황을 알려서 경각심을 갖게하고자한다. 이와같은 이유로 시작하는 이번 만행은 '천대받기 여행' 혹은 '숙박투쟁'이라 부를 수 있겠다.
만행이든 여행이든 여기가 아닌 거기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동일하다. 누구든 지금 여행을 한다는 하고 있다면 그는 건강, 시간, 돈, 여유,호기심,기대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마음에 여유가 없기에 여유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마음이 너무 슬프거나 빚쟁이에게 쫒기어 괴롭다면 여행을 하겠다는 여유와 호기심을 갖기 힘들다. 여행하는 순간은 아마도 그의 인생의 전성기를 살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오늘은 선산 죽림사에서 상무주암 현기스님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백장선원에 방부를 들여 살던 스님들은 상무주암 현기스님과 친하게 지냈다. 스님도 백장암 대중들을 좋아하셨다. 매년 오월 단오날이면 현기스님이 사시는 산에 소금을 묻으러 가서 상무주암에서 점심공양을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10년 넘게 백장암에서 살림을 맡고 있는 주지 행선스님을 매우 좋아하셨다.
단오날 산 정상에 소금을 묻고 상무주암에 내려와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 그때부터 찻 자리가 시작되었다. 스님은 방문객들에게 말차를 타주셨는데, 각기 다른 크기의 그릇에 스님의 방식으로 말차를 타는 모습은 우리에게 무언(無言)의 법문이었다. 스님과 차를 마시고 있다보면 야외 평상에 점심공양이 차렸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우리 대중은 평상에서 스님과 점심 공양을 했다. 스님이 밭에서 직접 기른 곰취나물, 머위나물, 두릅나물, 상추, 된장국 등으로 점심 만찬은 풍성하였다. 스님은 백장암 대중들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리 보살님을 올라오게 하여 공양에 특별히 신경을 쓰셨다. 스님은 백장암 대중에게는 여러가지 잔심부름도 시키셨다. 송알상회에 복수박이 몇 박스 있으니 가지고 올라오라. 김장을 담을려고 배추를 사놨으니 배추를 지게에 지고오라. 뽕잎차를 만들려고하니 산뽕나무 잎을 따오라는 등의 심부름을 시키셨다.
단오날이면 상무주암에서 노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점심공양을 함께하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현기노스님이 입적하시기 삼일전에 나는 도정스님과 상무주암을 올라서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스님의 양손은 뚱뚱 부어 있었고 앉아있지도 못하고 누워계셨다. 스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그 진리속에 당신도있고 우리도 있다는 말씀이시다. 도정스님이 "한국의 미래 불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은 즉각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이라고 하셨다. 금강경에 '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은 가히 얻지 못한다(過去心不可得現在心不可得未來心不可得)'는 말이 나온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님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스님은 우리를 보고 양손바닥을 흔드셨다. 작별 인사인지,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것인지... 누워계시면서도 두 손을 들어 흔들어 주시던 스님의 모습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연기암
마침 현기노스님 영결식에 참석하기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지산 거사님의 차를 타고 아침 6시 30분에 백장암을 출발했다. 그런데 인월 교차로부근에서 차 바퀴에 펑크가 났다. 거사님은 차가 '벤츠'라서 펑크를 수리하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결국 나는 영결식장에 참석을 못하였다. 그런데 어디론가 한번 떠나기로 했던 마음이라서 며칠동안 만행을 하다가 오기로했다. 남원을 거쳐 구례 화엄사에 도착하였다. 되도록 많이 걷고 싶었기에 화엄사 주차장에서 연기암(緣起庵)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르니 계엄령이 선포된 그날부터 쌓였던 울화가 진정되어가는 느낌이다. 연기암까지 올라가는 길은 잘 정돈되어있어 산책하기에 좋았다. 연기암은 화엄사를 세운 연기(緣起)조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암자이다. 연기암에서 바라다 보이는 장엄한 산 자락과 섬진강은 나그네의 가슴을 뻥뚤리게 해준다. 법당에서 한 시간 정도 좌선(坐禪)을 하였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앉아있으니 극락이 여기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좌선을 하고 법당을 나오니 저녁 공양시간이 되었다. 보살님에게 공양을 대접받으면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이곳에 온지 4개월 밖에 되지 않는 공양주 보살님은 난처해하면서 출타중인 주지스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 결과 주지스님은 방에 보일러가 돌어가지 않아서 잘 수 없다고한다. 보일러가 돌어가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돌리면 될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이 없다고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만행을 떠날 때 예상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숙박을 거절 당했다. 마음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아직 화엄사가 있기 때문이다.
화엄사
연기암에서 화엄사로 산길을 내려오니 저녁 6시가 되었다. 화엄사에서도 거절을 당한다면 오늘은 꼼짝없이 여관신세다. 마침 목에 갈색천으로 띠(사미의제)를 두른 스님이 보여서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는 객실이 있는지 물었다. 그때 나는 그 사미스님(예비스님)인데 그를 행자(사미스님이 되기위해 수련하는 단계)로 오해했다. 그 행자님은 자신은 모르겠다. 종무소 직원에게 물어 보아야 하는데 그들도 퇴근하였다. 자신은 예불준비로 바쁘다고 하면서 나를 피하려고 했다. 행자때는 갖 출가해서 신심(信心)이 가장 높을 때인데 객스님을 저렇게 대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어 평정심을 잃고 높은 소리로 말했다.
"행자님도 스님이 되면 나와 같은 처지가 됩니다. 스님이 절에 찾아오면 마땅히 잘 대접해야 하는데 행자님은 모른다. 바쁘다고만 말하니, 행자님도 스님이 되어 사찰을 찾았을 때 숙박을 거부당하고 천대받으면 좋겠습니까? 스님이 절에 잘 수 없다면 사찰은 왜 필요합니까?"
그 스님은 '왜 나한테 이러나'하는 표정으로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불하러 가야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피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종무소를 찾아 가기로 했다. 종무소를 찾아 마당에 올라서니 노스님이 종각(鐘閣)앞에 서있었다. 다짜고짜 "지금 산에서 내려왔는데 절에서 하룻밤 묵고 가길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노스님은 그렇게 하라고 말하면서 '저녁 공양은 하셨나요?'라고 되물었다. 저녁 공양까지 챙기시는 스님의 반응이 너무 고마워서 방금 행자(사미스님)에게 가졌던 원망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역시 노스님들은 객스님을 접대할 줄 아는 구나!'라고 흐뭇해하며 객실(客室)에 들어가 노스님께 절을 올렸다. 원주스님은 나의 방으로 과일과 생수를 방에 가져다 주며 며칠 동안 머물건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며칠 머물고 싶었지만 되도록 여러 사찰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했었기에 하루만 묵겠다고 대답했다. 객실은 화장실이 딸려 있는 매우 깨끗한 방이었다. 작은 책상, 커피포트, 컵, 휴지, 휴지통이 준비되어있었고, 벽에는 '하루 일과표'와 '사찰 예절'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화장실에는 인도등 동남아에서 쓰는 간이 비데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 객실을 만들 때 해외에 다녀온 분이 설계했을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화엄사에서 유명한 홍매화를 찍기 위해서 법당 앞으로 갔다. 마침 마당에는 덕문 주지 스님이 인부들과 나무 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서로가 얼굴을 아는 처지라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두 만기(8년) 주지를 마치고 다른 이에게 주지소임을 물려준다고 했다. 그동안 덕문 스님은 10년이상의 스님들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승려복지를 시행해왔다. 나의 본사인 수덕사는 아직도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기에 수덕사 스님들은 화엄사스님들을 매우 부러워 하였다. 화엄사에서 나와서 구례 도서관을 찾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었다.만행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하는 마음에서 그 책을 선택한 것이다. 점심은 도서관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분식집 주인과는 4개월만에 만나는데 여전히 품위있고 편안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그 사장님도 동남아, 남미등 여행을 많이 하시는 분이다. 이번 10월에는 따님과함께 호주를 2주정도 다녀올 계획이라고한다.
문수사
도서관에서 나와 오늘의 숙박을 해결하기위해 쌍계사로 향했다. 중간에 반달곰을 키우고 있는 문수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이 근처를 지나면서 몇 번이나 문수사 표지판을 보았지만 그때마다 웬지 들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문수사를 들렸다. 예상 외로 큰길에서 8km를 더가서 골짜기에 절이 있었다. 목탑형식의 법당을 참배하고 나오니 바로 옆에 반달 곰이 두 마리가 철창에 갇혀 있었다. 돼지 우리안에서 맡았던 냄새가 반달곰 우리안에서도 났다. 법당 바로 옆에 동물을 키우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스친다. 도량을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에서 땔나무를 주워담고 있는 주지 스님을 발견하였다. 스님께 ‘오늘 하루 자고 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그 스님은 1초의 망설임 없이 ‘안돼’라고 대답했다. 그의 빠르고 단호한 대답에 놀라서 다음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나는 정신을 차려서 저는 산너머 백장암 선원에서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잘 수 없구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려오는데 공양간 앞에서 스님과 공양주 보살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저녁 공양은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스님은 이번에도 고개를 돌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공양주 보살은 공양이라도 하시라고 부엌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마침 스님과 공양주보살님은 외출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나 때문에 스님의 외출이 늦어지게 되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스님은 밖에서 경적을 울렸다. 공양주 보살에게 빨리 나오라는 소리였다. 나와 공양주 보살의 마음이 급해졌다. 공양주 보살님이 나가서 뭐라고 말했는지 결국 스님은 혼자서 외출을 하였다. 나는 조금 느긋하게 공양을 하며 보살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살님은 이곳에 온 지 4년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문수사를 지나치다가 이번에 처음 왔는데 법당 옆에 냄새나는 반달곰을 키우고있고 냄새가 도량에 퍼져있어 실망스럽다. 더구나 쇠창살은 너무 좁아서 곰들이 마음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고, 한 번 방문한 사람은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법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만들어 반달곰을 더 깨끗하고 자유스럽게 키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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