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보성 봉갑사를 나와서 장흥 보림사로 출발했다. 도중에 쌍봉사 안내판이 보였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찰을 둘러보는 것이 이번에 나의 만행의 목적이었으므로 지체없이 쌍봉사로 향했다. 주지스님은 법당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있었다. 지난번에 와서 내가 반했던, 내가 사랑하던 극락전 앞 돌계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저렇게 낮게 돌 계단을 만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계단이다. 그렇치. 극락에 가는 길이라면 편안해야지...라는 생각을 하였다.
종무실로 가서 종무소보살에게 오늘 하룻밤을 잘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지스님께 여쭈어 보아야 하는데 주지스님이 법당에 계시니 기다려 줄수 있으냐고 되물었다.나는 템플스테이용 방말고 스님들의 위한 객실이 따로 있으냐고 물었다. 보살님은 객실은 따로 없고 손님들이 없으면 스님들이 테플스테이 방에서 주무시고 간다고 말했다. 몇년전에 나는 주지스님의 배려로 템플스테이 방에서 하룻밤 숙박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주지스님과 이야기도 많아 나누어 나름대로 안면이 있는 셈이다. 이번에도 1시간쯤 기다리면 점심공양도하고 주지스님이 잘 방을 얻을 수 있었을 테지만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찰을 둘러 보는게 이번 만행의 계획이기때문이다.
보림사
보림사는 도량이 크고 넓어서 황량한 기분마저 들었다. 스님 세분이 머룰고 있는데 마침 공양시간이라서 같이 점심공양을 했다. 콩나물 밥에 각종 나물,달래 비빔장,총각김치, 고추장이 반찬이었다. 큰방에서 공양을 하는데 불이 안 들어와서 차디찬 방에서 공양을 해야했다.온풍기라도 틀었으면 좋았을텐데... 절약하느라 그런 기기도 사용하지 않는 듯 했다. 젊은 주지스님이야 그런 찬바닥을 견딘다지만 대중 가운데는 나이많은 분들도 있을터인데 대중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지스님이 새로 부임해서 쓰레기를 백오십대정도 트럭에 실어서 버렸다고 했다. 절에서 무슨 쓰레기가 그렇게 많이 나왔을까?
보림사 대적광전에는 국보로 지정된 철불이 있었다. 예전에 원만스님이 살았을때 같이 온적이 있는데 그때는 사람을 찾다가 아무도 없어서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새소리만 듣다가 간 기억이 있다. 도량 한쪽에서 보물로지정된 보조국사 부도탑과 탑비도 친견할 수 있었다. 혼자서 여유있게 다니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종무소를 찾아가서 주지스님께 오늘 하루 머무를 수 있냐고 물었다. 부임한지 1년이 되었다는 스님은 아직 사찰이 정리 정돈이 되지 않아서 방이 없다했다. 이 커다란 절집에 객스님이 잘 방이 하나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주지스님의 말을 믿는 수밖에... 주지스님이 이곳에 와서 초하루법회와 일요법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일요법회에는 7명이 참석했고, 초하루 법회는 1명이 참석했다고한다. 보림사라는 사세에 비하면 불자들의 숫자가 너무 조촐하다.공양간과 법당 기둥에는 시주를 받습니다라는 제목 아래에 필요한 품목이 쓰여져 있었다. 미니포크레인, 1톤트럭,저온창고,에어콘,목탁요령,향로촛대,법당샤시,온풍기등 필요한 것이 많은가보다.
보림사에서 장흥의 구석에 있는 평화다원에 왔다. 사실 장흥이 온 것은 보림사를 들릴 목적도 있지만 나의 도반스님이 장흥 부용사에 살다가 몇년전에 죽었다. 그가 혈액암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결제기간이어서 오지 못했다. 나의 도반스님 소식을 전해주던 비구니 스님이 있었는데 오늘 그 스님을 만나서 도반스님의 마지막 보습을 듣고 싶어서 찻집에 온 것이다. 도반 스님은 나와 동갑이었다. 5살때 절에 들어와서 개구장이 짓을 많이 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모친과 큰스님이 다음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절에 보내기로 약속을 하였단다. 그는 한참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할 어린 나이에 절에 보내졌고 애정결핍이 생겼다.그는 5분후에 들통날 거짓말을 잘했는데 그런 행동으로 많은 불자들이 실망하여 그를 떠나기도했다. 엄마의 사랑도 못받고 스님들의 사랑도 받지 못하였으니 어린 마음에 순간을 모면하기위해 거짓말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수덕사 위에 정혜사에서도 벽초스님이 많은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웠다. 그 아이들 중에서 스님이 되거나 불자로 남아있는 아이들은 극소수다. 구름과 바람처럼 옮겨 다니는 스님들(운수납자)이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나는 어린아이를 절에서 키우거나 동자승을 만드는 것을 좋치 않게 생각한다. 어른들의 눈에 좋으라고 아이들의 머리를 깍여놓고 아무개스님! 이라고 부르며 TV에 내보내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종교는 그 아이들이 자라서 독립적인 사유가 가능해졌을때 그가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택하게 해야한다. 우리 종단에서 아침에 축원하는 다음과 같은 축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른 신심 굳게 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 안들고 청정범행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어떻게 아이가 바른 신심 굳게 세울 수 있을까? 상식적이지 않는 말을 축원이랍시고 스님들은 날마다 외우고 있다. 밀린다왕문경에서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에게 출가한 목적을 묻는다. 나가세나 존자는 대개의 출가자들은 '이 괴로움이 소멸되고 다른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기를( kinti, idaṁ dukkhaṁ nirujjheyya, aññañca dukkhaṁ na uppajjeyyāti )'이라는 목적으로 출가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밀린다왕은 7세의 어린나이에 출가한 나가세나 존자도 이러한 목적으로 출가했으냐고 묻는다. 나가세나는 "대왕이여, 나는 어려서 출가했습니다. 나는 그 목표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출가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상식일 것이다. 아이가 바른 신심 굳게 세운뒤 출가한다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 실현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려운 일을 마치 목표로 세우고 아침마다 외우는 것이 과연 상식적일까? 어른들의 욕심때문에 5세 혹은 10세가된 어린아이가 절에 일찍 들어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체 평생 애정결핍으로 살게한다면 이 처럼 큰죄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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