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다솔사
칠불사를 나와서 사천 다솔사에 들렸다. 다솔사로 향하는 하늘에 헬리콥터가 부지런히 날아고 있었다. 산청 쪽에서 산불이 났기 때문에 헬기가 불을 끄려고 물을 터다 나르고 있는 것이다. 다솔사는 차밭이 유명하고 차를 만드는 스님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사찰이었다. 도솔사는 다솔사(多率寺)는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연기(緣起)조사가 창건하였는데 처음 이름은 영악사(靈岳寺)였다. 타솔사(陀率寺)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선덕여왕 5년(636년)이다. 자장스님은 타솔사(陀率寺)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도솔천(兜率天)을 본따서 지은 이름일텐데 다솔사(多率寺)로 이름이 바뀌면서 한자까지 많을다(多)자로 바뀐 것이다. 다솔사에는 효당 최범술,만해 한용운, 동양철학자 김범부, 소설가 김동리등이 거쳐간 곳으로 유명하다. 다솔사 경내에 들어서면 이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연등이 걸려있는 마당을 지나 대웅전에 들어서니 부처님이 없었다. 영축산 통도사처럼 부처님의 진신신사리 탑이 있어 일부러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이다. 부처님을 참배를 하고나서 정멸보궁을 바라보며 않아있으니 사리탑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사리탑을 참배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진신사리가 부처님이다라는 생각을 넘어서 사람이 부처님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사리탑 주변에는 파란 녹차 밭이 펼쳐져있다. 얼리서 보면 파란 녹차밭이 사리탑과 법당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산불이 난다면 녹차밭이 안전지대 역할을 할 것이기에 산불이 나도 대운전은 안전할 것 같았다. 저 녹차밭은 산불 저지용으로도 안성맞춤일것이니 다른 사찰에서도 시도해보면 좋을것같다.
점심공양때가 되었으므로 종무소로 향했다. 객스님이라고 말하고 전심공양과 하룻밤 숙박하기를 청했다. 종무소에는 아무도 없어서 후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종무소 보살님은 점심공양도 할 수 없고 하룻밤 묵는 것도 불가하다고 말한다. 나는 주지스님께 물어봐 달라고 말했고 종무소직원은 주지스님께 전화를 하더니 주지스님이 이곳에 부임한지 얼마안되고 방이 없어서 묵을 수 없디고 말했다. 하필이면 오늘 공양간도 문을 닫아서 공양을 할 수 없고 빵이라도 드시라고 하면서 몇 개의 빵을 건네주었다. 다솔사는 범어사 말사라도 하는데 이렇게 객스님을 문전박대하나니,이해하기 힘들었다. 대웅전 옆에는 명상을 가르치는 건물이 있는데 그 곳에 숙박할수 있는 방들이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방이 없다고 말하고, 최고의 명상지도자인 스님들을 천대하면서 명상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처신이다. 너구나 도량곳곳에 차를 팔고 빵을 파는 홍부문구에 “모든 수익금은 수행하는 스님들의 복지를 위해서 쓰여집니다”라고 되어있는데 이때 스님들은 범어사 스님들만을 뜻하고 객스님은 제외하고 있는건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빵을 가지고 나오다가 주차장 구석에서 나물을 캐어서 팔고 있는 노보살님을 발견하였다. 그 보살님에게 빵을 주면서 하룻밤 자길 원했는데 공양간도 문닫고 재워줄 수도 없다고 합디다라고 푸념하였다. 노보살님은 공연히 미안해 하면서 스님이 절에서 잠을 못 잔다면 어디서 잔대요? 라고 되물었다.노보살님의 말로는 부임한지는 1년임 넘었다고 했다. 방이없다는 말도 주지스님이 이곳에 부임한지 얼마 안되었다는 말도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거짓말도 객스님을 물리친 종무소 직원이 괘씸했지만 이것이 다 스님들의 잘못이지 누구를 탓하랴하고 생각하면서 다솔사를 떠났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명상을 가르치고 차를 만들고 훌륭한 인물들을 기념하는 홍보물을 만들어도 스님들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서 무엇을 기대할수 있는가라는 한탄이 흘러나온다. 무엇이 중한디...라고 묻게된다.
신해사
경상도 쪽으로 만행을 하려고 하였으나 봄날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 눈이 따갑고 콧물이 흘렀가. 이 상태로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고 다시 구례쪽으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아는 스님의 절에서 며칠 쉬면서 몸조리를 해야 할 것같다. 구례쪽으로 향하는데 도로 옆에 신해사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한두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간판을 지나치다보니 그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신해사 안내판을 따라가면서 이상하게 느낀 것은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절 이름만 쓰여있는 것이다. 신해사 도량이 도착하니 산신각이 황금색으로 지어져 있었다. 산신님을 저렇게 화려하게 모시는 걸 보니 조계종이 아닌 것이 틀림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량의 벽면에 여러종류의 시가 붙어있었다. 그 중에서 하나를 소개한다.
사랑는 아프다
서러움 견딜수 없는 날엔
출가를 결심하던 그남처럼
나를 부르는 지리산
산마루에선다.
그리움은 그리운대로 날려보내고
마지막 남은 그대 향한 미련은
망각의 시간속으로 흘려보내
산마루에 서면 또 다시
솟아나는 그리움
외로움
그대 마음도
퍽, 아팠으리라...
내 사랑 아픈 뒤에야 그대를본다
그대외로움을 본다.
도저히 봐주기 힘든 이런 사랑시들이 도량 곳곳에 붙어있다. 불제자라면 부처님의 말씀을 성별해서 적어 놓아야 할것인데 부처님의 말씀보다 자기사 창작한 시를 도량에 붙여 놓으니 이런 절에도 신자들은 많이 오는가보다. 공양간에 들어서니 한쪽에 성철스님 사진과 월하스님 사진이 걸려있다. 사무장인듯한 거사님이 구석에 앉아있길래 이곳이 조계종이냐고 물으니 ‘대한불교 영산조계종’이라고 답한다. ‘영산’이라는 글자를 첨가해서 조계종을 사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공양을 하고 싶다는 말도 없이 나왔다. 지금 윤석열의 계엄령을 옹호하는 몇몇 스님들이 있는데 그들의 종단이 ‘대한민국 호국종’이다. 이렇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종단이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 대다수 불자들과는 다른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집권하면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고 공언한 김영삼 장로 대통령이 불교 종단설립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꾼것에서 비롯한다. 종단설립이 허가제가 되니 우후죽순처럼 승려자격 자격미달의 이상한 종단들이 등장하여 대한민국 승려들의 자질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신고제로 인해서 현재 불교종단은 400~500개가 된다고 한다. 김영삼 장로가 불교가 망하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이 종단설립 신고제는 다시 허가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불교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자들이 승려도 되고 종단도 만들어야 한다.
연곡사
지리산 연곡사에 도착한 것은 저녁무렵이었다. 늦게 도착해서 마음이 급했다. 연곡사는 피아골 계곡에 있어서 그런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천년고찰이다. 다른 사찰처럼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주로 일주일, 한달, 장기간 템플스테이를 하는 듯 했다. 저녁 시간이 늦어서 법당을 참배하지도 않고 곧장 종무소로가서 사무장에게 물었다. 며칠 전에 이곳을 참배한 석궁 스님으로부터 연곡사에서는 스님을 재워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않고 물었다. “객스님입니다. 오늘 밤 묵어 갈 수 있습니까?” 사무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곧장 거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약간의 희망이 생겨서 “그럼 주지스님께 물어보시지요”라고 말했다. 주지스님은 병원에 진찰받으러 서울 가셨고요. 총무보살님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사무장님은 전화를 걸더니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총무보살이 방이 없어서 안된답니다. 스님 지금 저녁공양시간이니 저녁공양이라고 하고 가시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공양간에서 저녁 공양을 하면서 고양주보살에게 물었다. 보살님 제가 오늘 여기서 하룻밤 자려고 그러는데 방이 없어서 안됩답니다. 스님이 절에 잘수 없다는 걸 보살님은 어떻게 생각하셔요? 공양주보살님은 내일 템플스테이하러 30명이 온다네요.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나는 그것은 내일이고 오늘은 방이 있을 것 아닙니까? 라고 물으로 그는 스님 저는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저녁공양을 하는데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는 보살님 셋이서 공양을 하고 있었다. 템플스테이 하는데 하루에 얼마를 내시고 있나요? 원래는 6만원인데 3월달은 반값에 지내고 있습니다.아마 나라에서 지원해 주나봐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3만원내고 잔다고 사무장에게 이야기 해볼까라고 생각하는데 사무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공양을 마치고 뒷문으로 나갔는가보다. 법당을 참배하고 나오는데 법당옆에서 호미로 풀을 뽑고있는 노스님을 만났다. 그 노스님에게 다가가 하소연을 했다. 저는 지리산너머 백장암에서 왔는데 여기서 오늘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는데 방이 없다고 안 재워주네요. 그 스님은 “요즘 절 집 인심이 그래요. 저도 어딜 가면 천대를 받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객으로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그 스님에게 “천대 받는 것이 무서워서 스님들이 다니지 않으니 나처럼 객으로 온 스님이 더 이상해 보이게됩니다. 그럴수록 스님들이 만행을 하면서 당당하게 절에서 숙박을 해야합니다.” 선량에게 보이는 스님은 안타까워 하면서도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것같았다. 스님은 “제가 죄송합니다. 저도 이곳에 얹혀 사는 처지이다보니 주지스님에게 말을 할 수도 없고 제 방에서 같이 주무시자고 말하고 싶어도 눈치가 보입니다.” “스님께서 같이 자자고 하는 마음을 내어 주신 것만으로도 참 고맙습니다. 오늘 연곡사의 사정을 알았으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스님은 이곳에서 월보시를 받고계십니까?라고 물으로 받지 않습니다. 보시를 받지 않고 생활이 어떻게 가능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화엄사스님들은 비구계를 받은지 10년이 넘으면 월 50만원씩 지원해준답니다. 라고 말했다. 그 스님은 제가 사실 그것 때문에 삽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스님도 화엄사 스님이신가요라고 하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며칠전에 화엄사를 들려니 깨끗한 객실에서 하룻밤을 잔 이야기를 말했다. 본사에서는 그렇게 객스님들을 잘 대접하는데 말사인 연곡사에서 객스님들을 재워주지 않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스님은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차비라도 좀 받아가십시오라고 말했다. 저는 월보시도 받지 않는 스님께 제가 어떻게 차비를 받습니까? 라고 말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차지를 좀 받아 가십시오라고 말했고 나는 두 번 세 번 거절하며 스님에게는 제발 여비를 받을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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