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묵 | pali | 전재성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 나는 그대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법의 상속자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못하고 재물의 상속자가 된다면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못하고 재물의 상속자가 된다면 그대들은 그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가 아니라 재물의 상속자로 머문다.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가 아니라 재물의 상속자로 머문다.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내 법의 상속자가 된다면 그 때문에 그대들은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로 머물지 않는다.라고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로 머물지 않는다.라고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 나는 그대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법의 상속자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Dhammadāyādā me, bhikkhave, bhavatha, mā āmisadāyādā. Atthi me tumhesu anukampā: ‘kinti me sāvakā dhammadāyādā bhaveyyuṃ, no āmisadāyādā’ti. Tumhe ca me, bhikkhave, āmisadāyādā bhaveyyātha no dhammadāyādā, tumhepi tena ādiyā bhaveyyātha: ‘āmisadāyādā satthusāvakā viharanti, no dhammadāyādā’ti; ahampi tena ādiyo bhaveyyaṃ: ‘āmisadāyādā satthusāvakā viharanti, no dhammadāyādā’ti. Tumhe ca me, bhikkhave, dhammadāyādā bhaveyyātha, no āmisadāyādā, tumhepi tena na ādiyā bhaveyyātha: ‘dhammadāyādā satthusāvakā viharanti, no āmisadāyādā’ti; ahampi tena na ādiyo bhaveyyaṃ: ‘dhammadāyādā satthusāvakā viharanti, no āmisadāyādā’ti. Tasmātiha me, bhikkhave, dhammadāyādā bhavatha, mā āmisadāyādā. Atthi me tumhesu anukampā: ‘kinti me sāvakā dhammadāyādā bhaveyyuṃ, no āmisadāyādā’ti.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왓티 시의 제따와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에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부르셨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3.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며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대들에 대해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가르침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불쌍히 여긴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되고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재물의 상속자이지 가르침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고 나도 역시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재물의 상속자이지 가르침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나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고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가르침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고, 나도 역시 그것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가르침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다.’라고 평가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며,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대들에 대해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가르침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불쌍히 여긴다. |
3. 비구들이여, 만약 내가 공양하여 먹을 만큼 충분히 먹고 끝내어서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었는데 음식이 남아서 버리려고 할 때, 그때 배고프고 기운 없는 두 비구가 왔다 하자. 그들에게 나는 말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공양하여 먹을 만큼 충분히 먹고 끝내어서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었는데 음식이 남아서 버리려고 했다. 만일 그대들이 원한다면 먹도록 하라. 만일 먹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자라는 풀이 없는 곳에 버리거나 생물이 없는 물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자 한 비구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 공양하여 드실 만큼 충분히 드시고 끝내시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드셨다. 그런데 세존의 음식이 남아서 버리게 되었다. 만일 내가 먹지 않는다면 세존께서는 지금 자라는 풀이 없는 곳에 버리시거나 생물이 없는 물에 던져버리실 것이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 법의 상속자가 되어라.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라고. 그러나 이 음식은 일종의 재물이다. 나는 지금 이 음식을 먹지 않고 굶주리고 허기진 몸으로 이 하루를 지내면 어떨까?’ 그러므로 나는 이 음식을 먹는 대신 배고프고 기운 없는 상태로 이 밤과 낮을 보내었다. 두 번째 비구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께서 공양하여 드실 만큼 충분히 드시고 끝내시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드셨다. 그런데 세존의 음식이 남아서 버리게 되었다. 만일 내가 먹지 않는다면 세존께서는 지금 자라는 풀이 없는 곳에 버리시거나 생물이 없는 물에 던져버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음식을 먹고 배고픔과 기운 없음을 떨쳐버리고 그 밤과 낮을 보내리라. 그는 그 음식을 먹고 배고픔과 기운 없음을 떨쳐버리고 그 밤과 낮을 보내었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 비구가 그 음식을 먹고 배고픔과 기운 없음을 떨쳐버리고 그 밤과 낮을 잘 보냈다 하더라도 나는 처음 치구를 더 존중하고 칭송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오랜 세월 소욕하고 지족하고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고 공양하기 쉽고 열심히 정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 나는 그대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법의 상속자가 되고,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
Idhāhaṃ, bhikkhave, bhuttāvī assaṃ pavārito paripuṇṇo pariyosito suhito yāvadattho; siyā ca me piṇḍapāto atirekadhammo chaḍḍanīyadhammo. Atha dve bhikkhū āgaccheyyuṃ jighacchādubbalyaparetā. Tyāhaṃ evaṃ vadeyyaṃ: ‘ahaṃ khomhi, bhikkhave, bhuttāvī pavārito paripuṇṇo pariyosito suhito yāvadattho; atthi ca me ayaṃ piṇḍapāto atirekadhammo chaḍḍanīyadhammo. Sace ākaṅkhatha, bhuñjatha, no ce tumhe bhuñjissatha, idānāhaṃ appaharite vā chaḍḍessāmi, appāṇake vā udake opilāpessāmī’ti. Tatrekassa bhikkhuno evamassa: ‘bhagavā kho bhuttāvī pavārito paripuṇṇo pariyosito suhito yāvadattho; atthi cāyaṃ bhagavato piṇḍapāto atirekadhammo chaḍḍanīyadhammo. Sace mayaṃ na bhuñjissāma, idāni bhagavā appaharite vā chaḍḍessati, appāṇake vā udake opilāpessati. Vuttaṃ kho panetaṃ bhagavatā: “dhammadāyādā me, bhikkhave, bhavatha, mā āmisadāyādā”ti. Āmisaññataraṃ kho panetaṃ, yadidaṃ piṇḍapāto. Yannūnāhaṃ imaṃ piṇḍapātaṃ abhuñjitvā imināva jighacchādubbalyena evaṃ imaṃ rattindivaṃ vītināmeyyan’ti. So taṃ piṇḍapātaṃ abhuñjitvā teneva jighacchādubbalyena evaṃ taṃ rattindivaṃ vītināmeyya. Atha dutiyassa bhikkhuno evamassa: ‘bhagavā kho bhuttāvī pavārito paripuṇṇo pariyosito suhito yāvadattho; atthi cāyaṃ bhagavato piṇḍapāto atirekadhammo chaḍḍanīyadhammo. Sace mayaṃ na bhuñjissāma, idāni bhagavā appaharite vā chaḍḍessati, appāṇake vā udake opilāpessati. Yannūnāhaṃ imaṃ piṇḍapātaṃ bhuñjitvā jighacchādubbalyaṃ paṭivinodetvā evaṃ imaṃ rattindivaṃ vītināmeyyan’ti. So taṃ piṇḍapātaṃ bhuñjitvā jighacchādubbalyaṃ paṭivinodetvā evaṃ taṃ rattindivaṃ vītināmeyya. Kiñcāpi so, bhikkhave, bhikkhu taṃ piṇḍapātaṃ bhuñjitvā jighacchādubbalyaṃ paṭivinodetvā evaṃ taṃ rattindivaṃ vītināmeyya, atha kho asuyeva me purimo bhikkhu pujjataro ca pāsaṃsataro ca. Taṃ kissa hetu? Tañhi tassa, bhikkhave, bhikkhuno dīgharattaṃ appicchatāya santuṭṭhiyā sallekhāya subharatāya vīriyārambhāya saṃvattissati. Tasmātiha me, bhikkhave, dhammadāyādā bhavatha, mā āmisadāyādā. Atthi me tumhesu anukampā: ‘kinti me sāvakā dhammadāyādā bhaveyyuṃ, no āmisadāyādā’”ti. |
4. 수행승들이여, 여기 내가 지금 발우에 음식을 얻어 포식하고 만끽하고 포만하여 물릴 만큼 충분히 먹었는데, 내 발우에 얻은 음식이 남아서 버려야할 때에 굶주려 허기가 진 두 명의 수행승이 왔다고 하자. 나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지금 발우에 음식을 얻어 포식하고 만끽하고 포만하여 물릴만큼 충분히 먹었는데, 내 발우에 얻은 음식이 남아서 버리려 한다. 만약 그대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먹어도 좋다. 만약 그대들이 그것을 먹지 않으면 나는 지금 그것을 풀이 없는 곳에 버리고 벌레가 없는 물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 때 한 수행승이 이와 같이 생각했다.고 하자. ‘세존께서는 지금 발우에 음식을 얻어 포식하고 만끽하고 포만하여 물릴 만큼 충분히 먹었는데, 세존께서는 발우에 얻은 음식의 여분이 있어 버리려 한다. 만약 우리들이 그것을 먹지 않으면 세존께서는 지금 그것을 풀이 없는 곳에 버리고 벌레가 없는 물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그대들은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는 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발우의 음식은 하나의 재물이다. 나는 지금 이 음식을 먹지 않고 굶주리고 허기진 몸으로 이 하루를 지내면 어떨까?’ 그는 그 음식을 먹지 않고 굶주리고 허기진 몸으로 하루를 지냈다고 하자. 그런데 두 번째의 수행승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고 하자. ‘세존께서는 지금 발우에 음식을 얻어 포식하고 만끽하고 포만하여 물릴 만큼 충분히 먹었는데 세존께서는 발우에 얻은 음식의 여분이 있어 버리려 한다. 만약 우리들이 그것을 먹지 않으면 세존께서는 지금 그것을 풀이 없는 곳에 버리고 벌레가 없는 물에 던져 넣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지금 이 발우의 음식을 먹어서 굶주리고 허기진 것을 채우고 하루를 지내면 어떨까?’ 그래서 그는 그 음식을 먹고 굶주리고 허기진 것을 채우고 하루를 지낸다고 하자. 수행승들이여, 비록 그가 발우의 음식을 먹어 굶주리고 허기진 것을 채우더라도 여기서 나에게는 그 첫 번째 수행승이 더욱 존경받을 만하고 칭찬 받을 만하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는 실로 그 두 번째 수행승보다도 오랜 세월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검약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쉬워 정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말라. 나는 그대들에 대해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가르침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불쌍히 여긴다.” |
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선서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원림으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리뿟따 존자가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5. 도반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것입니까? 도반이시여, 우리는 이런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라면 멀리서라도 사리뿟따 존자가 직접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로부터 듣고 잘 호지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듣고 마음에 잘 잡도리하십시오. 설할 것입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uṭṭhāyāsanā vihāraṃ pāvisi. Tatra kho āyasmā sāriputto acirapakkantassa bhagavato bhikkhū āmantesi: “āvuso bhikkhave”ti. “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ṃ.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Kittāvatā nu kho, āvuso,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ṃ nānusikkhanti, kittāvatā ca pana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manusikkhantī”ti? “Dūratopi kho mayaṃ, āvuso, āgacchāma āyasmato sāriputtassa santike etassa bhāsitassa atthamaññātuṃ. Sādhu vatāyasmantaṃyeva sāriputtaṃ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 āyasmato sāriputtassa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Tena hāvuso,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Evam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ṃ.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
5. 세상에 존경받는 분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분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승원으로 들어가셨다. 6. 그 때에 존자 사리뿟따가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벗들이여,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불렀다. ‘벗이여’라고 그들 수행승들은 존자 사리뿟따에게 대답했다. 7. 존자 사리뿟따는 이와 같이 대답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 홀로 계실 때에 제자들이 ‘홀로 있음’을 배우지 않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리고 벗들이여, 세존께서 홀로 계실 때에 제자들이 ‘홀로 있음’을 배우는 길은 어떠한 것입니까?” 8. 수행승들이 대답했다. “존자여, 우리들은 존자 사리뿟따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 멀리서 온 것입니다. 존자께서 지금 말씀하신 의의를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존자 사리뿟따로부터 듣고 모든 수행승들이 기억하여 지니겠습니다.” 9. 사리뿟따는 말했다. “벗들이여, 그렇다면 들으십시오. 제가 설하리니 잘 들으십시오. 제가 곧 설하겠습니다.” “벗이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들 수행승들은 사리뿟따에게 대답했다. 존자 사리뿟따는 이와 같이 설했다. |
6. 도반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지 않는 것입니까? 여기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습니다.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를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립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장로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장로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지 않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장로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린 이 세 번째 이유로 장로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중진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중진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지 안흔 이 두 번째 이유로 중진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린 이 세 번째 이유로 중진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
“Kittāvatā nu kho, āvuso,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ṃ nānusikkhanti? Idhāvuso,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ṃ nānusikkhanti, yesañca dhammānaṃ satthā pahānamāha, te ca dhamme nappajahanti, bāhulikā ca honti, sāthalikā, okkamane pubbaṅgamā, paviveke nikkhittadhurā. Tatrāvuso, therā bhikkhū tīhi ṭhānehi gārayhā bhavanti.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ṃ nānusikkhantī’ti—iminā paṭhamena ṭhānena therā bhikkhū gārayhā bhavanti. ‘Yesañca dhammānaṃ satthā pahānamāha te ca dhamme nappajahantī’ti—iminā dutiyena ṭhānena therā bhikkhū gārayhā bhavanti. ‘Bāhulikā ca, sāthalikā, okkamane pubbaṅgamā, paviveke nikkhittadhurā’ti— iminā tatiyena ṭhānena therā bhikkhū gārayhā bhavanti. Therā, āvuso, bhikkhū imehi tīhi ṭhānehi gārayhā bhavanti. Tatrāvuso, majjhimā bhikkhū … pe … |
10. “벗들이여, 세존께서 홀로 떨어져 계실 때에 제자들이 ‘홀로 있음’을 배우지 않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벗들이여, 지금 스승께서 홀로 떨어져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우지 않고,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들을 버리지 않고, 사치스럽고 태만하고 타락에 앞장서고 홀로 있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합니다. 11. 벗들이여, 이 세상에 장로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1) 곧 스승께서 홀로 떨어져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우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로 장로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2) 다음으로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두 번째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3) 또한 사치스럽고 태만하고 타락에 앞장서고 홀로 있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합니다. 이 세 번째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12. 벗들이여, 이 세상에 중년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1) 곧 스승께서 홀로 떨어져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우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로 중년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2) 다음으로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두 번째 일로 중년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3) 또한 사치스럽고 태만하고 타락에 앞장서고 홀로 있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합니다. 이 세 번째 일로 중년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중년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신참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이 첫 번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지 않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린 이 세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지 않는 것입니다. 7. 도반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는 것입니까? 여기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습니다.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립니다. 그들은 사치스럽지 않고 부주의하지 않으며 퇴보를 멀리하고 한거에 솔선수범합니다. |
navā bhikkhū tīhi ṭhānehi gārayhā bhavanti.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ṃ nānusikkhantī’ti—iminā paṭhamena ṭhānena navā bhikkhū gārayhā bhavanti. ‘Yesañca dhammānaṃ satthā pahānamāha te ca dhamme nappajahantī’ti—iminā dutiyena ṭhānena navā bhikkhū gārayhā bhavanti. ‘Bāhulikā ca honti, sāthalikā, okkamane pubbaṅgamā, paviveke nikkhittadhurā’ti—iminā tatiyena ṭhānena navā bhikkhū gārayhā bhavanti. Navā, āvuso, bhikkhū imehi tīhi ṭhānehi gārayhā bhavanti. Ettāvatā kho, āvuso,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ṃ nānusikkhanti. Kittāvatā ca panāvuso,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manusikkhanti? Idhāvuso,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manusikkhanti—yesañca dhammānaṃ satthā pahānamāha te ca dhamme pajahanti; na ca bāhulikā honti, na sāthalikā okkamane nikkhittadhurā paviveke pubbaṅgamā. |
13. 벗들이여, 이 세상에 새내기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1) 곧 스승께서 홀로 떨어져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우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2) 다음으로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두 번째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3) 또한 사치스럽고 태만하고 타락에 앞장서고 홀로 있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합니다. 이 세 번째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지 않는 것입니다. 14. 벗들이여, 이 세상에 스승께서 홀로 떨어져 계실 때에 제자들이 홀로 있음을 배운다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벗들이여, 지금 스승께서 홀로 떨어져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웁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는 것들을 버리고, 사치스럽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타락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홀로 있음에 앞장섭니다. |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장로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장로 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장로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지 않고 부주의하지 않으며 퇴보를 멀리하고 한거에 솔선수범하는 이 세 번째 이유로 장로 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중진 비구들은 …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신참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지 않고 부주의하지 않으며 퇴보를 멀리하고 한거에 솔선수범하는 이 세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찬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는 것입니다. |
Tatrāvuso, therā bhikkhū tīhi ṭhānehi pāsaṃsā bhavanti.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manusikkhantī’ti—iminā paṭhamena ṭhānena therā bhikkhū pāsaṃsā bhavanti. ‘Yesañca dhammānaṃ satthā pahānamāha te ca dhamme pajahantī’ti—iminā dutiyena ṭhānena therā bhikkhū pāsaṃsā bhavanti. ‘Na ca bāhulikā, na sāthalikā okkamane nikkhittadhurā paviveke pubbaṅgamā’ti—iminā tatiyena ṭhānena therā bhikkhū pāsaṃsā bhavanti. Therā, āvuso, bhikkhū imehi tīhi ṭhānehi pāsaṃsā bhavanti. Tatrāvuso, majjhimā bhikkhū … pe … navā bhikkhū tīhi ṭhānehi pāsaṃsā bhavanti.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manusikkhantī’ti—iminā paṭhamena ṭhānena navā bhikkhū pāsaṃsā bhavanti. ‘Yesañca dhammānaṃ satthā pahānamāha te ca dhamme pajahantī’ti—iminā dutiyena ṭhānena navā bhikkhū pāsaṃsā bhavanti. ‘Na ca bāhulikā, na sāthalikā okkamane nikkhittadhurā paviveke pubbaṅgamā’ti—iminā tatiyena ṭhānena navā bhikkhū pāsaṃsā bhavanti. Navā, āvuso, bhikkhū imehi tīhi ṭhānehi pāsaṃsā bhavanti. Ettāvatā kho, āvuso, satthu pavivittassa viharato sāvakā vivekamanusikkhanti. |
15. 벗들이여, 여기 장로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찬 받아야 합니다. 1) 곧 스승께서 홀로 멀리 떠나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웁니다. 이 한 가지로 장로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2) 다음으로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들을 버립니다. 이 두 번째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3) 또한 사치스럽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타락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홀로 있음에 앞장섭니다. 이 세 번째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장로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16. 벗들이여, 여기 중년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찬 받아야 합니다. 1) 곧 스승께서 홀로 멀리 떠나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웁니다. 이 한 가지로 중년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2) 다음으로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들을 버립니다. 이 두 번째 일로 중년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3) 또한 사치스럽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타락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홀로 있음에 앞장섭니다. 이 세 번째 일로 중년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중년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찬 받아야 합니다. 17. 벗들이여, 여기 새내기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찬 받아야 합니다. 1) 곧 스승께서 홀로 멀리 떠나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웁니다. 이 한 가지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2) 다음으로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것들을 버립니다. 이 두 번째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3) 또한 사치스럽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타락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홀로 있음에 앞장섭니다. 이 세 번째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 세 가지 일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찬 받아야 합니다. 벗들이여, 지금 스승께서 홀로 멀리 떠나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이와 같습니다. |
8. 도반들이여, 여기 탐욕도 나쁘고, 성냄도 나쁩니다. 탐욕도 버리고 성냄도 버리기 위해 중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팔정도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중도이니,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
Tatrāvuso, lobho ca pāpako doso ca pāpako. Lobhassa ca pahānāya dosassa ca pahānāya atthi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Katamā ca sā, āvuso,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Ayaṃ kho sā, āvuso,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 lobho(탐) 와 doso(진)만 언급하지 moha(치)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
18. 벗들이여, 이 세상에서 탐욕도 악이고 성냄도 악입니다. 탐욕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기 위하여 중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에는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니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마음챙김, 올바른 집중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이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입니다. |
9. ~ 15. 도반들이여, 여기 분노도 나쁘고 적의도 나쁩니다. … 모욕도 나쁘고 얕봄도 나쁩니다. … 질투도 나쁘고 인색도 나쁩니다. … 속임수도 나쁘고 사기도 나쁩니다. … 완고함도 나쁘고 뻔뻔스러움도 나쁩니다. … 자만도 나쁘고 거만도 나쁩니다. … 허영도 나쁘고 방일도 나쁩니다. 허영도 버리고 방일도 버리기 위해 중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팔정도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중도이니,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설했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사리뿟따 존자를 설법으로 크게 기뻐했다. |
Tatrāvuso, kodho ca pāpako upanāho ca pāpako … pe … makkho ca pāpako paḷāso ca pāpako, issā ca pāpikā maccherañca pāpakaṃ, māyā ca pāpikā sāṭheyyañca pāpakaṃ, thambho ca pāpako sārambho ca pāpako, māno ca pāpako atimāno ca pāpako, mado ca pāpako pamādo ca pāpako. Madassa ca pahānāya pamādassa ca pahānāya atthi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Katamā ca sā, āvuso,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Ayaṃ kho sā, āvuso,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ī”ti. Idamavocāyasmā sāriputto. Attamanā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ṃ abhinandunti. |
19.~25. 벗들이여, 이 세상에서 분노도 악이고 원한도…, 저주도 악이고 횡포도…, 질투도 악이고 인색도…, 환상도 악이고 광기도…, 고집도 악이고 격정도…, 자만도 악이고 오만도…, 허영도 악이고 태만도 악입니다. 허영을 버리고 태만을 버리기 위하여 중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에는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니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마음챙김, 올바른 집중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이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입니다.” 26. 이와 같이 존자 사리뿟따가 말하자, 그들 수행승들은 만족하여 존자 사리뿟따가 말한 것을 기쁘게 받아 지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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