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까빠나 경(Naḷakapānasutta, M68)
각묵 | pali | 전재성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고살라의 날라까빠나에 있는 빠라사 숲에 머무셨다. 2. 그 즈음에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많이 세존 아래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그들은 아누룻다 존자, 난디야 존자, 낌빌라 존자, 바구 존자, 꼰단냐꾼다다나 존자, 레와따 존자, 아난다 존자와 다른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었다. 3.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천에 앉아 계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kosalesu viharati naḷakapāne palāsavane.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abhiññātā abhiññātā kulaputtā bhagavant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honti—āyasmā ca anuruddho, āyasmā ca bhaddiyo, āyasmā ca kimilo, āyasmā ca bhagu, āyasmā ca koṇḍañño, āyasmā ca revato, āyasmā ca ānando, aññe ca abhiññātā abhiññātā kulaputtā. Tena kho pana samayena bhagavā bhikkhusaṃghaparivuto abbhokāse nisinno hoti. Atha kho bhagavā te kulaputte ārabbha bhikkhū āmantesi: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꼬쌀라 국의 날라까빠나 마을의 빨라싸 숲에 계셨다. 2. 그 때 아주 잘 알려진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 존자 아누룻다. 존자 난디야, 존자 낌빌라, 존자 바구, 존자 꼰단냐 꾼다다나, 존자 레바따, 존자 아난다와 다른 아주 잘 알려진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3. 그런데 그 때 세존께서는 수행승의 무리에 둘러싸여 노지에 앉아 계셨다. 세존께서는 이들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에 대하여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내 아래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비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두 번째로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내 아래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비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무의 아들들은 내 아래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비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ye te, bhikkhave,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acci te, bhikkhave, bhikkhū abhiratā brahmacariye”ti? Evaṃ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Dutiyampi kho bhagavā te kulaputte ārabbha bhikkhū āmantesi: “ye te, bhikkhave,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acci te, bhikkhave, bhikkhū abhiratā brahmacariye”ti? Dutiyampi kho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Tatiyampi kho bhagavā te kulaputte ārabbha bhikkhū āmantesi: “ye te, bhikkhave,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acci te, bhikkhave, bhikkhū abhiratā brahmacariye”ti? Tatiyampi kho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는데,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들이 청정한 삶에 대하여 기뻐하는가?” 이와 같이 말씀하셨으나 그 수행승들은 침묵했다. 4. 두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이들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에 대하여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는데,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들이 청정한 삶에 대하여 기뻐하는가?” 이와 같이 말씀하셨으나 두 번째에도 그 수행승들은 침묵했다. 5. 세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이들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에 대하여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는데,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들이 청정한 삶에 대하여 기뻐하는가?” 이와 같이 말씀하셨으나 세 번째에도 그 수행승들은 침묵했다. |
4.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물어보리라.’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청정한 삶에 청정범행에 기뻐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합니다.” 5. “장하구나, 장하구나, 아누룻다들이여. 아누룻다들이여, 청정범행에 기뻐하는 것은 그대들과 같이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는 참으로 어울리는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머리칼이 검고 축복받은 젊음을 두루 갖춘 인생의 초년에 감각적 욕망을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나 그런 검은 머리칼과 축복받은 젊음을 두루 갖춘 인생의 초년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 그대들이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은 왕의 명령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강도도둑의 협박 때문도아니고, 빚 때문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도 아니고, 생계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yannūnāhaṃ te kulaputte puccheyyan”ti.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anuruddhaṃ āmantesi: “kacci tumhe, anuruddhā, abhiratā brahmacariye”ti? “Taggha mayaṃ, bhante, abhiratā brahmacariye”ti. “Sādhu sādhu, anuruddhā. Etaṃ kho, anuruddhā, tumhākaṃ patirūpaṃ kulaputtānaṃ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naṃ yaṃ tumhe abhirameyyātha brahmacariye. Yena tumhe, anuruddhā,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ā paṭhamena vayasā susukāḷakesā kāme paribhuñjeyyātha tena tumhe, anuruddhā, bhadrenapi yobbanena samannāgatā paṭhamena vayasā susukāḷakes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Te ca kho pana tumhe, anuruddhā, neva rājābhinīt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a corābhinīt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a iṇaṭṭ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a bhayaṭṭ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ājīvikāpakat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Api ca khomhi otiṇṇo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nanu tumhe, anuruddhā, evaṃ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ti? “Evaṃ, bhante”. |
6. 그러자 세존께서는 ‘내가 그들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에게 직접 질문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존자 아누룻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모두 청정한 삶에 대하여 기뻐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분명히 청정한 삶에 대하여 기뻐합니다. “아누룻다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대들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청정한 삶을 기뻐하는 것은 그대들 모두에게 훌륭한 일이다. 아누룻다여, 그대들은 꽃다운 청춘을 갖추고 아주 검은 머리를 하고 있고 인생의 초년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빠질 수도 있으나, 아누룻다여, 그대들은 꽃다운 청춘을 갖추고 아주 검은 머리를 한 인생의 초년인데도 불구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빠지지 않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대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은 왕의 명령 때문도 아니고, 도둑에 쫓겨서도 아니고, 부채 때문도 아니고, 공포 때문도 아니고, 빈궁 때문도 아니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졌다. 나는 괴로움에 빠졌고 괴로움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러한 모든 괴로움의 다발을 종식시키는 것에 대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이 아닌가?”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
6.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이렇게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지 못하면, 못하면서 탐욕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제압하여 머문다. 악의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압도하고 제압하여 머문다. 해태와 혼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들뜸과 후회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의심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싫어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게으름이 그의 마음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제압하여 머문다.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지 못하면 [이와 같이 된다.]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머릴 여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으면, 탐욕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악의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해태와 혼침이 사로잡지 못하고, 들뜸과 후회가 사로잡지 못하고, 의심이 사로잡지 못하고, 싫어함이 사로잡지 못하고, 게으름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어 머물지 못한다.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으면 [이와 같이 된다.] |
“Evaṃ pabbajitena ca pana, anuruddhā, kulaputtena kimassa karaṇīyaṃ? Vivekaṃ, anuruddhā, kāmehi vivekaṃ akusalehi dhammehi pītisukhaṃ nādhigacchati aññaṃ vā tato santataraṃ, tassa abhijjhā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byāpādo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thinamiddham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uddhaccakukkuccam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vicikicchā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ratī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tandī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까마와 불선법을 떠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지 못하거나 2선 3선 4선을 얻지 못하면, Vivekaṃ, anuruddhā, kāmehi vivekaṃ akusalehi dhammehi pītisukhaṃ nādhigacchati aññaṃ vā tato santataraṃ. Vivekaṃ, anuruddhā, kāmehi vivekaṃ akusalehi dhammehi pītisukhaṃ adhigacchati aññaṃ vā tato santataraṃ, tassa abhijjhāpi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yāpādopi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thinamiddhampi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uddhaccakukkuccampi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vicikicchāpi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aratīpi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tandīpi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Vivekaṃ, anuruddhā, kāmehi vivekaṃ akusalehi dhammehi pītisukhaṃ adhigacchati aññaṃ vā tato santataraṃ. |
7. “아누룻다여, 이와 같이 출가한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떠난, 떠나더라도, 기쁨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또한 그보다 더욱 평화로운 것을 얻지 못하면, 탐욕이 마음을 사로잡고, 분노가 마음을 사로잡고, 해태와 혼침이 마음을 사로잡고, 흥분과 회한이 마음을 사로잡고, 의심이 마음을 사로잡고, 불쾌가 마음을 사로잡고, 권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누룻다여,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떠난, 떠나더라도, 기쁨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또한 그보다 더욱 평화로운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누룻다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떠난, 떠나더라도, 기쁨과 행복을 얻거나 또한 그보다 더욱 평화로운 것을 얻는다면, 탐욕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분노가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해태와 혼침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흥분과 회한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의심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불쾌가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권태가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 아누룻다여,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떠난, 떠나더라도, 기쁨과 행복을 얻거나 또한 더욱 평화로운 것을 얻기 때문이다. |
7.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가?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않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래께서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했다.버리셨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리신다.’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래께서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셨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리신다.’라고.” |
Kinti vo, anuruddhā, mayi hoti: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appahīnā te tathāgatassa;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ī’”ti? “Na kho no, bhante, bhagavati evaṃ hoti: ‘ye āsav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appahīnā te tathāgatassa;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ī’ti. Evaṃ kho no, bhante, bhagavati hoti: ‘ye āsav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te tathāgatassa;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ī’”ti. |
8. 아누룻다여, 그대들은 나에 관하여 이와 같이 ‘여래는 번뇌 saṃkilesikā 를 일으키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그러한 번뇌 āsavā 들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성찰한 뒤에 수용하고 어떤 것을 성찰한 뒤에 동의하고 어떤 것을 성찰한 뒤에 멀리하고 어떤 것을 성찰한 뒤에 제거한다.’라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세존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이와 같이 ‘여래는 번뇌를 일으키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그러한 번뇌들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버렸기 때문에, 여래는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동의하고,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멀리하고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제거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래께서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셨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리신다.’라고.” |
“장하구나, 장하구나, 아누룻다들이여.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아누룻다들이여, 예를 들면 야자수가 그 윗부분이 잘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라고.” |
“Sādhu sādhu, anuruddhā. Tathāgatassa, anuruddhā, ye āsav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te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Seyyathāpi, anuruddhā, tālo matthakacchinno abhabbo punavirūḷhiyā; evameva kho, anuruddhā, tathāgatassa ye āsav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te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i. |
9. “아누룻다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여래에게는 번뇌를 일으키고 거듭 태어남을 불러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괴로움을 유발하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그러한 번뇌들이 잘리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래는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동의하고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멀리하고 성찰한 뒤에 어떤 것을 제거한다.” 아누룻다들이여, 예를 들면 야자수가 그 윗부분이 잘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여래는 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 |
8. “아누룻다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어떤 목적을 보기에 제자가 죽어서 임종하면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재생upapattīsu 을 설명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친히 밝혀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세존으로부터 잘 듣고 마음에 새겨 지닐 것입니다.” |
Taṃ kiṃ maññasi, anuruddhā, kaṃ atthavasaṃ sampassamāno tathāgato sāvake abbhatīte kālaṅkate upapattīsu byākaroti: ‘asu amutra upapanno; asu amutra upapanno’”ti? “Bhagavaṃmūlakā no, bhante, dhammā bhagavaṃnettikā bhagavaṃpaṭisaraṇā. Sādhu vata, bhante, bhagavantaṃyeva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
10. “아누룻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어떤 이익을 바라고 제자가 죽었을 때에 ‘아무개는 여기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기에 태어났다.’라고 다시 태어남에 관하여 선언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스승으로 하고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그 말씀하신 바의 의미를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행승들은 세존께 듣고 새길 것입니다.” |
9. “아누룻다들이여, ‘여래가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임종한 제자의 재생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거나, 사람들에게 발림 말을 하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선남자들이 (재생의 이야기를) 믿고 큰 영감과 큰 기쁨이 있으면, 그들은 그 말을 듣고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믿음과 큰 기쁨과 큰 환희를 가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될것이다.되기 때문이다.” |
“Na kho, anuruddhā, tathāgato janakuhanatthaṃ na janalapanatthaṃ na lābhasakkārasilokānisaṃsatthaṃ na ‘iti maṃ jano jānātū’ti sāvake abbhatīte kālaṅkate upapattīsu byākaroti: ‘asu amutra upapanno, asu amutra upapanno’ti. Santi ca kho, anuruddhā, kulaputtā saddhā uḷāravedā uḷārapāmojjā. Te taṃ sutvā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nti. Tesaṃ taṃ, anuruddhā, ho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a. |
11. “아누룻다여, 여래가 제자가 죽었을 때에 ‘아무개는 여기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기에 태어났다.’라고 다시 태어남에 관하여 선언하는 것은 사람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거나 현혹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예와 칭찬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또는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아누룻다여, 고귀한 것에 고무되고 고귀한 것에 기뻐하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그것에 대하여 듣고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되면, 아누룻다여, 그것이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
10.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구경의 지혜에 확고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삼매는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11.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삼매는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12.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삼매는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aññāya saṇṭhahī’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paññ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vihārī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pe … evaṃpañño … evaṃvihārī …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ī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tī’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pe … evaṃpañño … evaṃvihārī …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
12.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승은 이와 같이 ‘이러한 이름의 수행승이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에 대하여 ‘그는 궁극적인 앎을 성취했다.’고 선언했다.’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승에게는 그에 대하여 ‘이 존자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는 그 수행승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승은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13.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승은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이름의 수행승이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에 대하여 ‘다섯 가지의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어서 홀연히 태어나 저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승에게는 그에 대하여 ‘이 존자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는 그 수행승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승은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14.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승은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이름의 수행승이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에 대하여 ‘세 가지 결박을 끊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줄여서 한 번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한 번 돌아오는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승에게는 그에 대하여 ‘이 존자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는 그 수행승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승은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
13.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삼매는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pe … evaṃpañño … evaṃvihārī …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
15.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승은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이름의 수행승이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에 대하여 ‘세 가지 결박을 끊어서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반드시 구경의 완전한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든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승에게는 그에 대하여 ‘이 존자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는 그 수행승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승은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
14.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녀는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구경의 지혜에 확고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비구니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삼매는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15.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 비구니는 ‘그 스님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법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스님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
Idhānuruddhā, bhikkhunī suṇāti: ‘itthannāmā bhikkhunī kālaṅkatā; sā bhagavatā byākatā—aññāya saṇṭhahī’ti. Sā kho panassā bhaginī sāmaṃ diṭṭhā vā hoti anussavassutā vā: ‘evaṃsīl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dhamm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paññ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vihārinī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vimuttā sā bhaginī ahosi itipī’ti. Sā tassā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ī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iyā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bhikkhunī suṇāti: ‘itthannāmā bhikkhunī kālaṅkatā; sā bhagavatā byākatā—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ī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ti. Sā kho panassā bhaginī sāmaṃ diṭṭhā vā hoti anussavassutā vā: ‘evaṃsīl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dhammā … pe … evaṃpaññā … evaṃvihārinī … evaṃvimuttā sā bhaginī ahosi itipī’ti. Sā tassā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ī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iyā phāsuvihāro hoti. |
16.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수행녀가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수행녀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녀에 대하여 ‘그녀는 궁극적인 앎을 성취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녀에게는 그녀에 대하여 ‘이 존귀한 여인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녀는 그 수행녀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녀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17.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수행녀가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수행녀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녀에 대하여 ‘다섯 가지의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어서 홀연히 태어나 저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녀에게는 그녀에 대하여 ‘이 존귀한 여인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녀는 그 수행녀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녀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
16.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 비구니는 ‘그 스님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법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스님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17.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467] 그 비구니는 ‘그 스님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법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스님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
Idhānuruddhā, bhikkhunī suṇāti: ‘itthannāmā bhikkhunī kālaṅkatā; sā bhagavatā byākatā—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inī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tī’ti. Sā kho panassā bhaginī sāmaṃ diṭṭhā vā hoti anussavassutā vā: ‘evaṃsīl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dhammā … pe … evaṃpaññā … evaṃvihārinī … evaṃvimuttā sā bhaginī ahosi itipī’ti. Sā tassā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ī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iyā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bhikkhunī suṇāti: ‘itthannāmā bhikkhunī kālaṅkatā; sā bhagavatā byākatā—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ti. Sā kho panassā bhaginī sāmaṃ diṭṭhā vā hoti anussavassutā vā: ‘evaṃsīl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dhammā … evaṃpaññā … evaṃvihārinī … evaṃvimuttā sā bhaginī ahosi itipī’ti. Sā tassā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ī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iyā phāsuvihāro hoti. |
18.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수행녀가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수행녀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녀에 대하여 ‘세 가지 결박을 끊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줄여서, 한 번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한 번 돌아오는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녀에게는 그녀에 대하여 ‘이 존귀한 여인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녀는 그 수행녀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녀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19.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수행녀가 이와 같이 ‘이러이러한 수행녀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녀에 대하여 ‘세가지 결박을 끊어서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반드시 구경의 완전한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든 님이 되었다.’라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수행녀에게는 그녀에 대하여 ‘이 존귀한 여인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녀는 그 수행녀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수행녀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
18.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19.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20.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
Idhānuruddhā, upāsako suṇāti: ‘itthannāmo upāsako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paññ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vihārī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upāsakassa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upāsako suṇāti: ‘itthannāmo upāsako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ī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tī’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evaṃpañño … evaṃvihārī …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upāsakassa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upāsako suṇāti: ‘itthannāmo upāsako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evaṃpañño … evaṃvihārī …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upāsakassa phāsuvihāro hoti. |
20.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재가의 남자신도가 이와 같이 ‘이러한 이름의 재가의 남자신도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에 대하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어서 홀연히 태어나 저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되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재가의 남자신도에게는 그에 대하여 ‘이 존자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재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는 그 재가의 남자신도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재가의 남자신도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21.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재가의 남자신도가 이와 같이 ‘이러한 이름의 재가의 남자신도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에 대하여 ‘세 가지 결박을 끊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줄여서, 한 번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한 번 돌아오는 님이 되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에 대하여 ‘이 존자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재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는 그 재가의 남자신도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재가의 남자신도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22.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재가의 남자신도가 이와 같이 ‘이러한 이름의 재가의 남자신도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에 대하여 ‘세 가지 결박을 끊어서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반드시 구경의 완전한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든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에 대하여 ‘이 존자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자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재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는 그 재가의 남자신도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재가의 남자신도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
21.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녀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녀에 대해 ‘그녀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녀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468]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22.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녀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녀에 대해 ‘그녀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녀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23.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녀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녀에 대해 ‘그녀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녀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
Idhānuruddhā, upāsikā suṇāti: ‘itthannāmā upāsikā kālaṅkatā; sā bhagavatā byākatā—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ī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ti. Sā kho panassā bhaginī sāmaṃ diṭṭhā vā hoti anussavassutā vā: ‘evaṃsīl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dhammā … evaṃpaññā … evaṃvihārinī … evaṃvimuttā sā bhaginī ahosi itipī’ti. Sā tassā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ī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upāsikāya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upāsikā suṇāti: ‘itthannāmā upāsikā kālaṅkatā; sā bhagavatā byākatā—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inī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tī’ti. Sā kho panassā bhaginī sāmaṃ diṭṭhā vā hoti anussavassutā vā: ‘evaṃsīl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dhammā … evaṃpaññā … evaṃvihārinī … evaṃvimuttā sā bhaginī ahosi itipī’ti. Sā tassā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ī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upāsikāya phāsuvihāro hoti. Idhānuruddhā, upāsikā suṇāti: ‘itthannāmā upāsikā kālaṅkatā; sā bhagavatā byākatā—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ti. Sā kho panassā bhaginī sāmaṃ diṭṭhā vā hoti anussavassutā vā: ‘evaṃsīl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dhamm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paññā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vihārinī sā bhaginī ahosi itipi, evaṃvimuttā sā bhaginī ahosi itipī’ti. Sā tassā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ī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upāsikāya phāsuvihāro hoti. |
23.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재가의 여자신도가 이와 같이 ‘이러한 이름의 재가의 여자신도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녀에 대하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어서 홀연히 태어나 저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되었다.’라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재가의 여자신도에게는 그녀에 대하여 ‘이 존귀한 여인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녀는 그 재가의 여자신도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재가의 여자신도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24.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재가의 여자신도가 이와 같이 ‘이러한 이름의 재가의 여자신도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녀에 대하여 ‘세 가지 결박을 끊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줄어서, 한 번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한 번 돌아오는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재가의 여자신도에게는 그녀에 대하여 ‘이 존귀한 여인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선정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녀는 그 재가의 여자신도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재가의 여자신도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25. 아누룻다여, 세상에서 재가의 여자신도가 이와 같이 ‘이러한 이름의 재가의 여자신도가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녀에 대하여 ‘세 가지 결박을 끊어서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반드시 구경의 완전한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든 님이 되었다.’고 선언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재가의 여자신도에게는 그녀에 대하여 ‘이 존귀한 여인의 계행은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삼매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지혜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성취는 이와 같고, 이 존귀한 여인의 해탈은 이와 같다.’라고 스스로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 있다. 그녀는 그 재가의 여자신도의 믿음, 계행, 배움, 베풂, 지혜를 새기며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한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재가의 여자신도는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
24. “아누룻다들이여, 여래가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임종한 제자의 재생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거나, 사람들에게 발림 말을 하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선남자들이 (재생의 이야기를) 믿고 큰 영감과 큰 기쁨이 있으면, 그들은 그 말을 듣고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믿음과 큰 기쁨과 큰 환희를 가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되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누룻다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
Iti kho, anuruddhā, tathāgato na janakuhanatthaṃ na janalapanatthaṃ na lābhasakkārasilokānisaṃsatthaṃ na ‘iti maṃ jano jānātū’ti sāvake abbhatīte kālaṅkate upapattīsu byākaroti: ‘asu amutra upapanno, asu amutra upapanno’ti. Santi ca kho, anuruddhā, kulaputtā saddhā uḷāravedā uḷārapāmojjā. Te taṃ sutvā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nti. Tesaṃ taṃ, anuruddhā, ho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
26. 아누룻다여, 이와 같이 여래가 제자가 죽었을 때에 ‘여기에 태어났다. 저기에 태어났다.’라고 다시 태어남에 관하여 선언하는 것은 사람은 기만하기 위한 것이거나 현혹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예와 칭찬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또는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아누룻다여, 고귀한 것에 고무되고, 고귀한 것에 기뻐하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그것에 대하여 듣고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되면, 아누룻다여, 그것이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27.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존자 아누룻다는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며 기뻐했다. |
*Lābhasakkārasilokānisaṃsattha = Tattha yvāyaṃ “Ākaṅkheyya ce, bhikkhave, bhikkhu ‘Lābhī assaṃ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accayabhesajjaparikkhārāna’nti, sīlesvevassa paripūrakārī”ti (ma· ni· 1.65) sīlānisaṃsabhāvena vutto catupaccayalābho ca. Catunnaṃ paccayānaṃ sakkaccadānasaṅkhāto ādarabahumānagarukaraṇasaṅkhāto ca sakkāro, yo ca “Sīlasampanno bahussuto sutadharo āraddhavīriyo”tiādinā nayena uggacchanakathutighosasaṅkhāto siloko brahmacariyaṃ vasantānaṃ diṭṭhadhammiko ānisaṃso, tadatthanti attho. Keci pana “Lābhasakkārasilokānisaṃsatthanti pāpicchasseva sato lābhādigarutāya lābhasakkārasilokasaṅkhātassa ānisaṃsassa udayassa nipphādanattha”nti evamatthaṃ vad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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