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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교토 남선사 영관당 정원

교토 남선사 방장 정원

 

남선사(난젠지)를 관람하고 나서 나는 sns에 이와 같은 물음을 던졌다. “한국사찰은 활동하는 공간(마당)으로 사용하고 일본사찰은 관조하는 공간(정원)으로 사용한다.이렇게 다르게 사용하는 이유는?”

 

좋은 걸 보고 그냥 좋아라 감탄하지 않고 이렇게 이유를 묻는 것이 나의 스타일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남선사는 840분에 개방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일찍 8시쯤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도 절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걷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이번 나의 여행은 먼저 숙소를 잡아 놓고 숙소를 중심으로 가까운 곳을 방문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니까 걸어서 간다. 어디가는지를 모르고 가는 셈이다. 도착해서 방문한 곳을 검색해서 차차 알아간다.

 

이번 여행은 정해진 계획이 없다. 남선사라는 절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남선사 정원에 앉아서 있다가 정원에 대한 여행 후기들을 검색해 보았다. 가이드북이 없이 다니니 이렇게 현장에서 검색하는데 현장에서 검색하는 것이니 만큼 현장감이 있어서 좋다. 앉아 있느데 노스님이 지나갔다.  “good moring!”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노스님은 고개만 끄떡이고 가던 길을 갔다

 

남선사는 임제종(臨済宗) 소속으로 1291년에 창건되었다. 높이 22m의 산문(三門)이 유명하고 산문에 올라 전망이 아름답다고한다. 전각을 올라가서 전망을 보려면 오백엔정도 돈을 내야한다기에 포기하고 곧장 정원으로 향했다. 매표소에 다가가서 서 있으니 직원은 표를 사라고했다. 어제 동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한국에서 온 승려다'라고 말하니 그때서야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건물에 꾸며진 정원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첫 번째 만나는 정원의 설명이 새끼 호랑이가 물을 건너가는 모습이라하는데 나는 그런 걸 못느끼겠다. 그들이 너무 상징적으로 표현한 탓이리라. 정갈한 정원이 주는 고요한 분위기는 나그네를 한 동안 앉아 있게 한다. 이렇게 정원을 가꾸고 관리하는 것이 수행의 한 종류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원에 앉아 있으니 편안하다. 한 곳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몇몇은 나처럼 자리에 앉아 있다. 홀로온 사람은 침묵속에서 앉아있고 둘이 온 사람은 앉아있는 사람에데 방해되지 않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을 사찰마당에 끌어들여 놓으니 인간에게 휴식을 주고 무언(無言)의 법문(法問)을 한. 한국 사찰중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놓은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왜? 라는 의문이들었다. 그래서 위와같이 일본 사찰은 왜 마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원을 만들어 놓는가?라는 질문을 했던 것이다.

 

임제종 승려 무소 소세키(夢窓疎石)는 자신의 저서 《몽중문답집(夢中問答集)》에서 “정원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주거를 꾸미고, 진기한 것을 가지고 놀기 위함이 아니다. 선(禪)수행자는 산하대지(山河大地), 초목와석(草木瓦石)을 자신의 본분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산수(山水)에는 득실(得失)이 없고, 득실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라고 하였다. 그에게는 정원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김춘호의 일본불교문화 강좌)

 

질문을 하고 검색을 해보니  도쿄에는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니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생활해야 한다. 마당에 나갈수 없으니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생활해야 하기에 길게 이어지는 복도를 만들도 마당에는 정원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자연에 적응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인 것이다. 복도를 만들 때 삐걱삐걱 소리나게 만든 이유는 자객이 오는 것을 눈치채기 쉽게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마당에 자갈을 깔아 놓은 것도 자갈을 밟을 때 소리가 나게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마당에 자갈을 깔아 놓으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갈도 정원을 만드는데 이용하게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해본다. 순전히 나만의 추측이다. 어쨋든 사찰의 아름다운 정원이 이제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에도 전통사찰이 국립공원에 지정되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었듯이. 일본의 웅장한 사찰과 불상도 문화재가 되어 관광객을 오게하고 있지만 일본은 정원을 만들어 절에오는 이유를 더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남선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토종 사찰 영관당(에이칸도)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걸어서 가보았다. 이번에도 스님이라고 하니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스님들과 승복이 달라서 그런지 매표소직원들이 스스로 승려인줄 알아보고 자발적으로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영관당은 남선사보다는 더 많은 자연을 끌어들여 저원을 만들었다. 다다미 방안에 앉아있으면 눈앞에 단풍나무 이파리가 하늘 거릴 정도다. 영관당에는 단풍나무가 특히 많아서 가을에는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될것 같다. 연못에는 피래미, 우렁이, 금붕어등도 살고 있다. 햇살에 비취는 나뭇잎이 창호지가 반쯤 열린 다다미 바닥에 그림자로 움직인다. 영관당에는 정원말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유명하다. 아미타 부처님이 돌아 보신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나무 조각으로 형상해 놓은 일본인들의 마음이 독창적이다. 이런 동작때문에 이 부처님은 전 세계에 하나 뿐인 불상이 되었다. 전체 불상의 크기는 70cm라고한다. 아미타 부처님은 철망으로 막아 놓아서 자세히볼 수 없어서 인터넷에서 검색으로 보아야했다.

 

남선사와 영관당같은 사찰정원은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정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것만으로도 사유하게 만든다. 거기다가 스님과 차한잔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람이 많이 오는 남선사나 영관당은 불가능 할 것이다. 요즈음에 한국의 사찰은 신도가 줄어들고 출가자가 줄어든다고 아우성인데 이렇게 정원을 개발하면 젊은이들이 많이 방문할 것이다. 마침 사찰리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그와 더불어 정원을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앉아서 좌선하거나 쉬는 모습이 좋다

 


아래는 영관당 정원 사진

 

 

 

 

 

 

 

사찰에 불이 났지만 이 부처님은 타지 않은 기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미타 부처님이 사람들을 극락으로 인도하며 잘 따라오나 하고 염려하여 뒤를 돌아 보는 모습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의 창작성이 돋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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