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癸卯年) 하안거 자자(自恣) 풍경
자자(自恣)는 안거(安居)의 마지막 날에 삼 개월 동안 같이 지낸 스님들이 자기의 허물을 고백하고 다른 스님들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간청하는 일인데 세 가지 측면을 묻는다. 즉, “저의 행위 중에서 보았거나 들었거나 아니면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허물을 지적해 주십시오. 저의 잘못을 알면 고치겠습니다.”라고 세 번 묻는 것이다. 제일 법랍(출가한 햇수)이 많은 사람부터 자자를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부처님이 그렇게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세 번 물어도 대답이 없으면 다음 차례로 넘어가서 모든 대중이 자신의 허물을 지적받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요즘 대부분 선원에서는 “저의 허물을 지적해 주십시오”라는 요청을 받고도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 지적이 자자 시간이 끝나고도 앙금으로 남아 일상생활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자가 솔직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형식적인 의식이 되어버렸다. 대중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엷어진 까닭이다. 백장암에서도 지난 안거까지는 서로에 대한 지적도 없이 자자가 일찍 끝났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주지 스님이 제안을 했다. 이번 자자 시간에는 잘못을 뉘우치는 자자만 할 것이 아니라 스님들 각자가 삼 개월간의 소회를 말하고 나서 자자를 진행하하고.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대중 스님들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번 자자시간에는 안거를 지낸 소감, 자신이 맡은 소임에 대한 소회 등을 이야기하고 나서 자자를 진행하였다. 토굴에 사는 스님이 어두운 시각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자 시간을 1시간 앞당겨 저녁 6시에 시작하였다. 죽비 예불이 끝나고 공양주 보살님, 사무장 거사님, 법당 보살님, 휴양차 머무르는 거사님, 보살님등 다섯 명의 재가자가 큰방에 들어와 각각 해제 소감을 말했다. 재가자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스님들이 재가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였다. 재가자들이 맡은 소임에 대해 그리고 재가자들이 생활하는 모습에 대해 스님들이 느낌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재가자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는 스님도 있었고, 짧게 이야기하는 스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스님이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발언을 해 주셨던 점이다. 백장암에서는 안거가 시작할 때 큰방에서 재가자들과 인사를 하고, 해제 시에도 함께 모여 재가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함께 수행하는 불자이기에 안거의 시작과 해제를 같이 해야 한다는 조항이 백장암 청규에 있기 때문이다. 백장암에서는 공양 초청을 받으면 대부분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함께 가서 공양한다. 공양주 보살님과 후원식구들이 한끼 준비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백장암 전통이 된 오후불식도 공양주보살님을 저녁에는 쉬게 해주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재가자들과의 소감 나누기는 삼십 분 정도 걸렸다. 재가자들이 퇴장하자 스님들의 자자가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입승 소임을 맡은 내가 발언하였다. 나는 이번 대중 스님들이 어느 때보다 화합하여 살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보통 안거때 한 번 초청하는 초청 법사를 두 번 초청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회를 얻었고, 지난 철에 자애경 하나를 윤문하고 다른 경을 윤문하지 못했는데, 이번 하안거 동안에 행복경과 보배경을 윤문하였고 작년에 윤문 했던 자애경을 다시 윤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중 가운데서 선발된 윤문팀 3명은 백장암 독송집을 만들려고 선별해 놓은 초전법륜경, 보시의 분석경, 웰라마경, 깔라마경등을 윤문하였다. 이렇게 대중이 참여하여 윤문을 끝낸 것만으로도 백장암 대중의 화합된 분위기는 증명된다. 거기다가 다각실에서 때때로 열렸던 소모임 ‘주제가 있는 차담’이 진행되었던 것도 예전에 없었던 일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단절된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토요일 정기법회도 재개되었다. 일운스님이 나서서 '재미있는 사후의 세계'라는 주제로 첫 법회를 진행하였는데 첫시간에 사십명이 넘는 불자들이 참여하였다.해제때에도 법회를 쉬지않고 선원스님들이 번갈아 가며 정기법회를 진행하기 하였는데 아래와 같이 '2023년 후반기 백장암 정기법회 일정'이 확정되었다.
2023년 후반기 백장암 정기법회 일정
9월 법회 주제: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서(대반열반경(D16))
법사:일안스님
9월 9일 토요일 오후2시- 5시
9월 16일 토요일 오후2시- 5시
9월 23일 토요일 오후2시- 5시
10월 법회주제: 자애경, 행복경, 보배경에 대한 독송과 토론
법사:본각스님
10월 14일(2째주 토요일)오후2시-4시
10월 28일(4째주 토요일)오후2시-4시
11월 법회주제: 내가 아는 불교, 모르는 불교
법사:일안스님
11월 11일(2째주 토요일)오후2시-4시
11월 18일(3째주 토요일)오후2시-4시
12월 법회 주제: 행복한 삶과 죽음
법사:해월스님
12월 9일(2째주 토요일)오후2시-4시
12월 23일(4째주 토요일)오후2시-4시
이렇게 선원 스님들이 전부 나서서 재가자를 위한 정기법회를 진행하는 것은 백장암 선원이 처음 시도하는 일 일것이다. 2024년 1월부터 진행되는 정기법회는 동안거 대중스님들이 결정하게 된다. 그 밖에 법당 앞 부도 옮기는 문제, 진입로 도로 포장할 때 안내표지판을 설치하는데 그 표지판을 디자인 하는 문제, 신중탱화를 다시 조성하는데 시대를 반영하는 신중탱화에 대한 논의도 진행하였다. 신중탱화 속에 스님이 들고 있는 책 위에는 대부분 한문이 쓰여 있는데 이번 탱화에는 부처님 당시 사용되었던 브라흐미문자로 쓰여진 가르침을 넣자고 결정되었다. 탱화속에 부처님의 법륜을 넣기로 했는데 여러 후보중에서 2300년전 아소까 석주에 새겨진 법륜을 넣는 것으로 결정되었다.이러한 일들은 대중화합이 바탕이 되었기에 추진할수 있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어서 안거기간에 “저의 허물을 지적해 주십시오”라고 세 번 간청하는 자자를 행하였다.
다음으로 주지 스님이 안거소감을 말하였다. 주지스님은 한 사람 한사람 호명을 하며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12명의 스님이 이야기가 끝나니 저녁 8시가 되었다. 2시간 동안 자자를 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자자가 끝나고 서기 스님은 해제비를 각자 통장에 입금했다는 발표를 하였고, 내일 실상사에서 있는 해제 법회에 내려가는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였다. 서기 스님이 발표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해제비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몰랐다. 백장암 청규에는 공양금에 대해서 그리고 해제비에 대해서 일절 관심을 갖지도 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공양금과 해제비에 대한 부담감을 해소하고 사는 것만해도 다른 선원에서 부러워 하는 일이다. 올해도 자신의 해제비를 대중에게 익명으로 보시한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매철 이렇게 해제비를 보시하기에 대중 스님들은 대충 누구인지 알고 있다. 참으로 해제비를 매안거 때마다 전액 보시한다는 것은 누구나 따라하기 힘든 일이다. 이로서 2시간 동안 훈훈하게 자자가 마무리 되었다. 함께 사는 대중이 늘 소통하고 화합하면 승가는 얼마든지 의미있고 진취적인 일을 해낼수 있다는 것을 이번 철에 배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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