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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권정생 선생이 이오덕 선생에게 보낸 편지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 있다면

몸이 성치 않아도 좋아요.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할거에요.

그저께 쑥을 뜯어와서 밀가루를 반죽해 혼자

쑥나물 부침개를 해 먹었습니다. 

앞으로는 산나물도 뜯어와야겠습니다.

 

깨끗한 산나물을 먹으면

참거리가 없기도 하지만

한결 봄기운이 납니다.



어머니가 무쳐주시던 무생채 생각이 납니다.

고사리 무침도, 산나물도, 그리고 어느 핸가 살찐 암닭을 잡아 찹쌀을 넣고 끓여주신 닭고움국을

꼭  한 주발이라도 먹었음 싶어요.

꼭 16일 동안 밤낮을 고통스럽게 보냈습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심했는지 정말 삶이 두려워집니다. 

누워있지도 앉아있지도 서 있지도 못하고 16일을 지냈는데도 또 살아났습니다.

밤에도 낮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요. 

세상이 온통 흔들려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헤이 할 일은 거의 다 했습니다. 

새벽좀 치는 걸 딱 하루 놓쳤을 뿐입니다.

외딴집에 혼자 있으니까

 

울고 싶을 때 실컷 울 수 있고, 또 많이 아플 때도 마음대로 아플 수 있어서 참 편합니다.

자유롭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행복한지도 모릅니다. 

창문만 열면 산과 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내 집이 있다는 것 너무 과분하지요.

얼마 전엔 정말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한 번도 놓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저께 장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또 사왔습니다. 

뺑덕이 혼자 날이면 날마다 멍하니 혼자 있는 게 안 되어 

한 마리 사다 놓았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둘이 딱 붙어서 멀어질 줄 모릅니다.

저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올해도 보리밥 먹고 고무신 신으면 너끈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가난해야 착하게 살 수 있지요.

선생님은, 찾아오시지 않아도 늘 제 곁에 계신답니다. 

선생님 때문에 이젠 외롭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만약 안 계셨더라면 내가 여지껏 살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권정생 선생이 이오덕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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