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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부처님 오신 날에 왜 연등을 달까?

부처님 오신 날에 왜 연등을 달까?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사찰마다, 종단적으로 연등(燃燈) 행사가 한창이다. 부처님 오신 날과 연등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부처님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으므로 법회를 하려면 사찰의 곳곳에 등을 밝혀야 했다. 사찰이나 가정에 기름 등을 밝히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등을 밝히려면 기름을 사서 태워야 하는데 난타라는 여인은 가난하여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다행히 거리에 나가 구걸 하여 아주 작은 양의 기름을 살 수 있었다. 아래는 가난한 여인이 기름을 사서 등을 밝힌 빈자일등(貧者一燈)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기름집 주인은 난타 여인을 가엾이 여겨 기름(油)을 갑절로 주었다. 여인은 매우 기뻐하여 등불을 만들어 가지고 사원에 가서 부처님 앞에 있는 여러 등불 가운데 두었다. 그리고 서원을 세웠다. 저는 지금 빈궁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이 공덕으로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겠나이다.(以此功德,令我來世得智慧照,滅除一切衆生垢闇)”

난타라는 여인이 사원에 호롱불을 켜고 서원을 세운 공덕으로 밤 늦도록 오직 여인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빈자일등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서원(誓願)을 발하라'는 것이다. 이 날 만큼은 ‘나’라는 개인적인 소원을 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공적(公的)인 마음으로 살자는 메시지이다. 이것이 부처님 오신 날에 불자들이 연등을 다는 의미이고,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불자의 자세일 것이다. 얼마전에 연등회(燃燈會)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 되었다. 연등회(燃燈會)를 영어로는 Buddhist Lantern Festival이라고 한다. 영어에도 한문에도 연꽃(蓮)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연등회의 연은 연꽃 연(蓮)이 아니고 태울 연(燃)이기 때문이다. 빈자일등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부처님 당시에는 기름을 태워서 불을 밝히는 연등(燃燈)이었다. 우리나라의 연등은 삼국사기에  “신라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년(890) 정월 보름에 임금이 경주 황룡사로 행차해 연등을 간등(看燈)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등을 켜는 행사가 이미 국가적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름 대신에 양초와 전기를 사용하게 되었고 등의 모양도 연등, 주름등, 수박등, 팔모등, 장구등등 갖가지 모양으로 변화되었다. 요즈음 연등 행렬에는 사천왕상 모형의 장엄등, 석탑 모형, 동자승 모형, 심지어 마장가제트 모형의 장엄등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연등회 행렬을 보기위한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많다고 한다.
최근에 들린 사찰에서 등 값을 책정하여 홍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등의 크기에 따라, 등을 다는 장소에 따라,등을 거는 시간에 따라 등값이 매겨지고 있었다. 노동의 가치가 모두 가격으로 매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찰에서 행해지는 스님들의 노동에도 가격이 매겨지는 것을 나무라기 어렵다. 부처님 오신날에 등을 팔아 생기는 수입이 사찰의 일년 재정이라고 말하는 스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재가자들에게 보시에 대한 이야기(dānakathaṁ), 계행에 대한 이야기(sīlakathaṁ),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saggakathaṁ)를 말씀 하시며 인간의 욕망이 점차로 성취되는 행복을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자일등(貧者一燈)을 이야기하는 부처님 오신날에는 소원(所願)이 아닌 서원(誓願)을 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스님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불자라면 부처님 오신날 만큼은 건강회복, 가정화목, 사업번창등 소소한 개인적인 소망을 내려놓고 부처님이 오신 뜻을 기억하고 찬탄하고 서원을 세워 보았으면 좋겠다. 그런면에서 부처님 오신날 나오는 봉축사의 내용도 달라져야 할것이다. 젊은이들이 읽지 못하는 한문투의 구태의연한 표현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남북분단의 문제, 불평등 문제, 소수자 차별 문제, 지역 갈등 문제등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봉축사를 발표하였으면 좋겠다. 이런 걸 잘 하는게 불교중흥이 아닌가? 종정스님, 총무원장, 포교원장, 교육원장, 종회의장등 너도나도 따로 봉축사를 발표할 것이 아니라 존단의 역량을 모아서 조계종의 이름을 걸고, 조계종의 자존심을 걸고, 내보내는 봉축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며 국민들의 가슴에 올해의 봉축사는 어떤 내용이었더라고 감동하고 기억하는 봉축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

(어제 오후 <온라인불자회> 영상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참조하여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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