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아있는 '부처님 말씀'중에서 '니까야'가 가장 권위 있는 이유
석가모니 부처님(B,C.624-544년)의 가르침은 역사속에서 다양한 불교전통으로 전래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니까야와 아함경은 2600여년전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대승경전은 그 보다 500여년 늦은 약 2000년여전에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하여 혹은 인도에서 2세기~4세기경에 전해졌다. 불교역사를 안다면 니까야와 아함경에서부터 불교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니까야와 아함경을 비교해보면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을까? 두개의 전통을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가 드러난다.
1.니까야가 아함보다 덜 변형되었다.
가장 보수적으로 전승되었다는 율장(律藏)을 보더라도 빨리(pali) 비구율은 227개이고 한문 사분율은 비구율은 250개이다. 사분율에는 불멸후 오백년경에 나타난 불상(佛相)과 사람이 드나들수 있는 불탑(佛塔)에 대한 계율이 첨가되어있다. 그러나 빨리율은 불상(佛像)과 불탑(佛塔)에 대한 조항이 한개도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빨리율은 초기 원형을 지키는데 철저했다. 경(經)도 마찬가지다. 잡아함경에는 아소까왕의 일대기를 다룬 '아육왕 경'이 포함되어 있는데 역사적으로 아소까는 불멸후 200년 뒤의 사람이다. 당연히 니까야에는 아소까 왕의 이야기가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함경에서는 부처님은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셨다고 전하지만 니까야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부처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마야부인의 자궁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아함경에는 부처님 당시에 우전왕에 의해서 불상이 만들어졌다고 나오는데 니까야에는 불상(佛像) 이야기가 없다. 더구나 불멸후 200년 뒤 아소까왕이 만든 석주, 수투파등의 어떤 조형물에서도 부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없다. 아함경에는 대승(大乘) 소승(小乘)이라는 단어가 여러군데서 발견되는데 니까야에는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아함경에서는 마하까싸빠와 아난에게 불법을 부촉하였다고 나오는데 니까야에는 누구에게도 불법을 부촉하였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이같은 사실을 놓고 보면 같은 초기경전이더라도 아함경보다는 니까야가 더 원형에 가깝고 신뢰가 간다.
2. 아함경과 니까야의 내용 비교
무아상경(anattalakkhaṇasutta)경과 한문 비아경(非我經)을 비교하면 비아경이 매우 다르게 번역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니까야 '무아상경'등에서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netaṃ mama), 이것은 나가 아니고(nesohamasmi),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na meso attā’ti)라고 자아(自我,atta)를 부정한다. 아함 잡아함33 '비아경'에서는 '나도 아니요 (非我), 나와 다르지 않으며(不異我), 둘의 합한 것도 아니다(不相在)라고 되어 있다. 다른 한문 경전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번역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니까야의 표현방식과는 매우 다른 이러한 번역은 아함경의 내용을 어렵고 신비하게 만든다. 아함경에서는 비아(非我)와 무아(無我)가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사문과경(Sāmaññaphalasutta,D2)은 부처님을 만난 아자따삿뚜 왕은 눈에 보이는 출가자의 결실을 물었고, 부처님은 노예라도 출가 수행자가 되면, 귀족은 물론 왕에게도 존중을 받는다는 예를 들어 기초적인 출가자의 결실을 설명하고나서 오장애를 극복하고, 1선~4선을 얻고, 육신통을 얻고, 마침내 해탈하게 되는 출가자의 결실을 설명한다. 특이한 것은 pali본 사문과경(Sāmaññaphalasutta)에는 짧은, 중간의 그리고 긴 길이의 계, 감각기능의 단속방법, 오장애를 극복함, 1선, 2선, 3선, 4선에 드는 것을 설명하고, 육신통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데, 한문 사문과경(沙門果經)에는 이러한 중요한 내용들이 모두 빠져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아함경이 전해졌어도 초기불교의 수행법이 우리선배 스님들에게 수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행법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을 비교해보자. 이 경전들에서 에서 설명하는 16단계도 많은 차이가 난다.
한문 불설대안반수의경 : "1)호흡이 들어오는 모양을 아는 것(知息入) 2)호흡이 나가는 모양을 아는 것(知息出) 3)호흡의 길고 짧음을 아는 것(知息章短) 4)호흡이 몸에 두루 퍼짐을 아는 것(知息遍身) 5)모든 몸의 작용을 하지 않는 것(除諸身行) 6)기쁨을 느끼는 것(受喜) 7)즐거움을 느끼는 것(受樂) 8)여러 마음작용을 받아들이는 것(受諸心行) 9)기쁜 마음을 짓는 것(心作喜) 10)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心作攝) 11)마음이 해탈함(心作解脫) 12)무상을 관하는 것(觀無常) 13)나가서 흩어지는 것을 관하는 것(觀出散) 14)욕망을 관하는 것(觀欲) 15)멸함을 관하는 것(觀滅) 16)포기하고 버림을 관하는 것(觀棄捨)이다."(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의 16단계)
pali본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 :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⑤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⑥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⑦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⑧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해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⑨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⑩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⑬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의 16단계)
아함경에서 수행자가 가장 많이 닦아야하는 호흡관찰 수행에서 중요한 설명들이 이렇게 혼란스럽게 되어 있다.아마도 예전에 한문으로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정확하지 못한 한문경전 때문에 중국에서 화두선이 발달하였는지도 모르겠다.
3. 부처님 가르침을 개인이 재단하는 위험성
처음에 니까야를 연구한 사람들은 인도를 식민지화한 영국인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종교를 믿는 카톨릭 신부들이거나 학자들이었으므로 부처님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했다. 아소까석주가 발견되어 실존인물임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나 신통력등은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사람들 밑에서 유학하고 공부한 한국의 스님들과 학자들이 지금도 니까야의 마음에 안드는 부분을 임의대로 잘라내고 덧붙이면서 니까야의 권위를 흔들고 있다. 삼귀의를 하기전이라면 깔라마경에서처럼 부처님의 가르침도 의심하고 점검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삼귀의를 다짐한 불자가 그러한 태도로 경전을 대한다면 경망스럽고 불손한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니까야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경전의 문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지 않고있다. 예를들어 '대반열반경'에서 "아난다여, 고귀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머물고 상인들이 왕래를 계속하는 한, 이 곳은 '빠딸리뿟따'라 불리는 최고의 도시가 될 것이다. 아난다여, 빠딸리뿟따는 세 가지 재난을 가질 것이니 불로 인한 재난(火災)과 물로 인한 재난(水災)과 상호불신이다.”라는 문장이 후대에 편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부처님이 예언이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은 우다나와 율장에도 그대로 등장하고있다. 후대에 이 부분을 첨가되었다면 어떻게 여러 곳에 같은 표현이 등장할까?
마가다왕국이 샤이슈나가 왕조(기원전413년~기원전345년)에게 무너진 것을 기준으로 삼자면 마가다국의 수도 빠딸리뿟따는 약 100여년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00년 후면 스님들이 경전을 암송하는 시기이다. 누군가 이 부분을 첨가하여 암송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 스님들이 첨가된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을것이다. 경전은 승가의 결집으로 그 권위가 주어진다. 후대에 첨가되었다면 불멸후 100년이 지난 제2차결집 때 첨가되었다는 말인가? 후대에 첨가했다는 추측은 매우 억지스럽고 불손하고 위험하다. 니까야는 제 1차결집~ 제 6차결집까지 승가의 동의에 의해서 전승된 가르침이다. 대승경전처럼 개인이나 몇몇이 창작해낸 가르침이 아니다. 이 점을 잊고 몇몇 학자들은 자신이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경전을 잘라내려라고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단정한다.
4. 진리를 수호하는 자세
불자가 경전을 대할 때는 '쌀 장사꾼'의 자세가 아니라 농사를 짓는 '농부의 자세'가 필요하다. 농부에게 쌀을 사서 팔아야 하는 장사치는 '이 벼는 색깔이 안 좋다', '이 벼는 쭉정이가 많다', '이 벼는 가볍다'등등 벼의 흠집을 찾기에 바쁘다. 그래야 손해보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부는 현재 가지고 있는 벼로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하기에 벼의 흠집을 찾기보다는 자신이 갖고있는 벼를 최대한 아끼고 보호한다. 장사꾼처럼 니까야를 내 생각대로 누더기로 만들기에 앞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중에서 그래도 신뢰할수 있고 권위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니까야는 처음 500년동안은 스님들의 머릿속에서 암송되던 것들이고 4차결집에서 문자화되고 부터 2100년동안 승가의 동의하에 결집되어 전승되어왔다.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임의로 재단하려고 하는 니까야는 어떤 스님들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온 것이고, 수행을 포기 하면서까지 암송에 매진하여 전해준 유산이다. ‘불교는 이러이러 해야한다’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5부니까야를 읽어보라. 왜 먼저 '불교는 이러 이러한 것이다'라는 자기 기준을 세워서 자기 생각과 다른 경전을 비판 하려고 하는가? 왜 부처님은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말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니까야를 비판하든 윤회를 비판하든 니까야 전체를 읽어보고나서 판단과 비판을 해도 늦지 않다. 경에는 부처님이 육신통(六神通)을 설명하는 부분도 자주 나타난다.
"그는 그는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되기도 합니다.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습니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습니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습니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습니다. "신족통
"그는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천 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합니다. '어느 곳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고,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고 . 이러한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합니다."숙명통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부처님 말씀’중에서 무엇이 원형에 가까운가. 무엇이 그래도 믿을만 한가.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되,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나중에 다시 시간을 두고 읽어 보자"라고 미루거나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고 지금은 '판단중지'하고 지나가면 된다. 니까야와 한문 경전(산스끄리뜨경전)을 전부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욱 분명해질 것인데 아직 그런 작업을 한 사람이 없다. 앞으로 비교연구가 활발해지면 무엇이 더 권위가 있고 신뢰할만한가하는 것이 더욱 분명해 질 것이다.부처님은 나에게 "이러 이러한 믿음이 있다" "이러 이러한 이해가 있다" 라는 견해가 생기고 믿음이 있더라도, "이 믿음이 진리다" "이 이해가 진리다"라는 것까지 나아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절제하는 태도가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셨다.
* 학자들중에서 윤회를 믿는 것은 미신을 믿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윤회를 증거하는 경전들(https://whoami555.tistory.com/13742594)"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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