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온라인불자회

3월 16일 목요일 오후 9시 토론정리- 사리뿟따의 사자후

2013년 3월 16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

 

 

 

1.13. 그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암발랏티까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암발랏티까에 도착하셨다.세존께서는 거기 암발랏티까에서 왕의 객사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rājagah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ambalaṭṭhik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ambalaṭṭhikā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viharati rājāgārake. 

 

 

1.14. . 세존께서는 암발랏티까에서 왕의 객사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amba­laṭṭhi­kā­yaṃ viharanto rājāgārak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1.15. 그때 세존께서는 암발랏티까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날란다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날란다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nāḷand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nāḷandā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nāḷandāyaṃ viharati ­pāvāri­kam­ba­vane.

 

 

 

 

사리뿟따의 사자후  4. Sāri­puttasī­hanāda

 

1.16.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pasanno)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

“evaṃ 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사리뿟따여,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구나.

 “Uḷārā kho te ayaṃ, sāriputta,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셨다.’라고 과거의 모든 아라한ㆍ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te, sāriputta, ye 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ṃsīl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실 것이다.’라고 미래의 모든 아라한ㆍ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pana te, sāriputta, ye 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ṃsīl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나는 지금 시대에 아라한ㆍ정등각이다. 그러면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이다.’라고 [나에 대해서]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pana te, sāriputta, ahaṃ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cetasā ceto paricca vidito: ‘evaṃsīlo bhagavā itipi, evaṃdhammo evaṃpañño evaṃvihārī evaṃvimutto bhagavā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참으로 그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ㆍ정등각들에 대해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ceto­pariya­ñāṇaṃ]가 없다. 사리뿟따여, 그런데 어떻게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가?”

“Ettha ca hi te, sāriputta,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natthi. Atha kiñcarahi te ayaṃ, sāriputta, uḷārā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1.17. “세존이시여, 제게는 분명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ㆍ정등각들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다운 추론(dhammanvayo, by inference from the teaching)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튼튼한 기초와 튼튼한 성벽과 망루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지혜롭고 입지가 굳고 현명한 문지기가 모르는 자들은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합니다. 

“Na kho me, bhante,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atthi, api ca me dhammanvayo vidito. Seyyathāpi, bhante, rañño paccantimaṃ nagaraṃ daḷhuddhāpaṃ daḷ­ha­pākā­ra­toraṇaṃ ekadvāraṃ, tatrassa dovārik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aññātānaṃ nivāretā ñātānaṃ pavesetā. 

 

그러나 그는 그 도시의 모든 통로를 다 순찰하면서 성벽의 이음매와 갈라진 틈으로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것 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도시를 들어오고 나가는 큰 생명체는 누구든 모두 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나간다.’라고. 세존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So tassa nagarassa samantā anu­pariyā­ya­pathaṃ anukkamamāno na passeyya pākārasandhiṃ vā pākāravivaraṃ vā, antamaso biḷāra­nikkha­ma­na­mattampi. Tassa evamassa: ‘ye kho keci oḷārikā pāṇā imaṃ nagaraṃ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 sabbe te imināva dvārena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ti.

 

 

 

 

세존이시여, 과거의 모든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들께서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pañca nīvaraṇe]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upakkilese)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処]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覚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dhammanvayo vidito: ‘ye te, bhan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bojjhaṅge yathābhūtaṃ bhāvetv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iṃsu.

 

세존이시여, 미래의 모든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들께서도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시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시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시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실 것입니다.

Yepi te, bhan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issanti.

 

세존이시여, 현재의 세존께서도 아라한ㆍ정등각이시니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Bhagavāpi, bhante, etarahi arahaṁ sammāsambuddh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o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1.18.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논점: 

 

1.부처님의80세 마지막 유행길에 '많은 비구 승가(mahatā ­bhik­khu­saṅ­ghena)'와 함께 하는 이유는 ?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하는데는 별 의견이 없었습니다. 

 

 

 

 

 

2.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사리뿟따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청정한 믿음(pasanno)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을 통해서 타심통(他心通,ceto­pariya­ñāṇaṃ)은 없지만 과거와 미래의 부처님들(sammāsambuddhā)도 그럴 것이라고 법다운 추론(dhammanvayo)을 하고 있다.  마치 똑똑한 문지기가 드나드는 사람들을 모두 관찰하는 것처럼.

여기에서 '청정한 믿음'과 '법다운 추론'과 '다불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pasanna:① a.[pasīdati<sad の pp.] 明浄の,澄浄の,浄信ある,已信の,喜べる.buddhe ~,buddhassa ~ 仏を信ぜる人.-citta 明浄心,浄心.-mukhavaṇṇa 顔色光沢.② [pa-syad の pp.] 流出せる.

*anvaya:n. [〃cf. anveti] 隨行,類句,類比. anvaye ñāṇaṃ 類智. course; conformity; tradition.

---청정한 믿음이라 번역한 '빠산나'는 마음이 깨끗해짐, 청정해짐, 이라고 번역되어도 무방하기에 굳이 믿음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믿음(saddhā)와 다른 점 일 것입니다.

---법다운 추론은 현재 고따마 부처님을 보고 과거와 현재의 부처님들의 성격을 추론하는 것이고, 그렇게 과거와 부처님들을 추론 할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수천명의 부처님이 존재를 말하는 다불사상이 출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3.  무명(avijja)과 번뇌(āsavā)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런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나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했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다."  상가라와 경(M100)

---무명은 나누어서 설명을 하지 않는데 번뇌는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번뇌에 무명도 포함 되므로 무명이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경에서는 무명과 번뇌는 서로서로 존건이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사성에서 꾸시나라까지 열반의 행로를 보여주는 지도

 

대반열반경 (D16) 전문 https://whoami555.tistory.com/13743199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