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9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
비구들이 퇴보하지 않는 법
1.6. 세존께서는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물러간지 오래지 않아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가서 라자가하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이곳으로 집회 장소로 모이게 하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리고 라자가하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 장소로 모이게 하고서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 대중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집회 장소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셔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이는 한(그 모임에 많은 비구들이 모이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승가의 크고 작은 업무를 보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samaggā sannipatissanti, samaggā vuṭṭhahissanti, samaggā saṅghakaraṇīyāni kar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온 학습계목(법. 가르침)들을 준수하고 있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수행이 높고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나, 모임의 지도자인 비구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기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갈애가 생겼더라도 그것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uppannāya taṇhāya ponobbhavikāya na vasaṃ gacch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5)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숲속의 거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숲 속 생활을 희망하고 원하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개인적으로 각각 마음챙김을 확립해서 아직 오지 않은 좋은 동료 비구들은 오게 하고, 이미 온 좋은 동료 비구들은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1.7.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세간적인 행위를 좋아하지 않으며, 세간적인 행위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세간적인 행위의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말하기를 즐겨하지 않고(법담이 아닌 세간적 잡담), 말하기를 기뻐하지 않고, 말하는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잠자기를 즐겨하지 않고, 잠자기를 기뻐하지 않고, 잠자는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리지어 살기를 즐겨하지 않고, 무리지어 살기를 기뻐하지 않고, 무리지어 사는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saṅgaṇikārāmā bhavissanti na saṅgaṇikaratā na saṅgaṇik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4)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삿된 원들을 갖지 않고, 삿된 원들(pāpikānaṃ icchānaṃ)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삿된 친구가 되지 않고, 삿된 동료가 되지 않고, 삿된 벗(도반)이 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낮은 경지의 특별한 증득을 얻었다 하여 도중에 포기해 버리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8.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믿음(saddhā)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양심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수치심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많이 배우는(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열심히 정진하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통찰지(지혜)를 가지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9.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10.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상의 인식(anicc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아의 인식(anatt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부정의 인식(asubh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위험의 인식(ādīnav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버림의 인식(pahān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탐욕의 떠남의 인식(virāg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소멸의 인식(nirodh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11. “비구들이여, 또 다른 여섯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āvi ceva raho ca) 동료 비구들에게 대해서 몸의 행위로 자애(mettaṃ kāyakammaṃ)를 유지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꼬삼비 경 (M48):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āvi ceva raho ca) 그들에 대해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지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Idha, bhikkhave, bhikkhuno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에게 대해서 말의 행위로 자애를 유지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에게 대해서 마음의 행위로 자애를 유지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법답게 얻은 법다운 것들은 그것이 비록 발우안에 담긴 것일지라도 혼자 두고 사용하지 않고 계를 잘 지키는 동료 비구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훼손되지 않았고, 구멍이 나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찬탄하고 원만하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율)들을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과 함께 구족하여 머무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그대로 실현하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며, 성스럽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멸진으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에 대해서,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과 함께 그런 바른 견해를 구족하여 머무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ā viharissan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6)
1.12. 이렇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산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그 번뇌들은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 존재에 기인한 번뇌,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3월 9일 토론에는 16~18명이 참석하여 11시까지 진지하게 공부하였다. 제가 사용하는 인터넷이 품질이 좋지 않아서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해 죄송하다. 오늘 토론내용은 승가안에 있는 스님들과 종단 개혁을 원하는 불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다.
논점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승가의 크고 작은 업무를 보는 한(samaggā saṅghakaraṇīyāni karissanti)"...이러한 문장에서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승가의 업무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
....상가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참여와 절차의 적법성이 가추어져야 하는데 절차의 적법성은
담마(dhamma)라고 하고 구성원의 참여는 사막가(samagga)라고한다.
담마(dhamma)는 일처리의 적합성,원칙성, 여법성, 정당성,투명성의 뜻이 있고 반대는 비법, 무원칙,비투명의 뜻이다.
참여는 사막가(samagga)는 구성원의 전체참여, 모임의 완전성, 전체대중, 현전승가, 다함께, 화합, 만장일치등의 의미를 갖고 반대는 왁가(vagga)로서 불완전한 모임, 전체대중의 비참여, 부분참여, 비화합의 뜻이다..
dhaṃena: 정당하게, 적합하게(일처리의 절차 문제), samaggaṃ:전체가,다함께(구성원의 참석 문제)
* 그러므로 '화합(samagga)'은 만장일치가 아니라 전원참석이고, '여법(dhamma)'은 절차를 잘 따르는 것이다.
'비화합(asamagga)'은 전원참석이 아닌 모임(vagga)이고, '비법(adhamma)'은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갈마(대중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율장대품의 포살에서 아래와 같이 4가지 포살을 들고 마지막 절차와 모임의 완전성을 갖출때만 포살이 정당하다고 설명한다.
원칙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임이 불완전한 포살갈마
원칙을 따르지 않지만 모임이 완전 한 포살갈마
원칙을(dhammena) 따르지만 모임이 불완전한(vaggaṃ) 포살갈마
원칙을(dhammena) 따르고 모임도 완전한(samaggaṃ ) 포살갈마 298p
adhammena vaggaṃ uposathakammaṃ,
adhammena samaggaṃ uposathakammaṃ,
dhammena vaggaṃ uposathakammaṃ,
dhammena samaggaṃ uposathakammanti.
결계: 3요자(yojana)나 안에 있는 승가 전체가 모이는 것, 이것은 각 방향으로 1.5yojana=14km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 거나 삼각형지역일 경우에는 코너에서 코너가 요자나인 것도 허용된 것이다. Anujānāmi, bhikkhave, tiyojanaparamaṃ sīmaṃ sammannitun”ti. 하루동안에 걸어서 다녀올수 있는 거리라는 의미와 동의어다,
2."비구들이 믿음(saddhā)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다."에서 믿음은 다른 종교의 믿음과 어떻데 다른가?
.....불교에서의 믿음은 불법승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 지금여기서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이성(50%) 감성(50%)가 섞인 믿음으로 trust (신뢰)에 가깝다. 믿음에서 시작하여 지혜로 향하는 믿음이다,
부처님은 '믿음으로 해탈한 자'라는 표현을 할때도 내용은 지혜를 이야기 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해탈한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지만, 그는 반야로써 보아 일부 번뇌들을 제거하고 또 여래에 믿음을 심고 뿌리내려 확고하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믿음으로 해탈한 자라 한다. 이런 비구들에게도 방일하지 않고 해야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다만 대승불교에서는 불성, 관세음 보살등의 등장으로 관념적인 믿음으로 변화하였다.
유일신교의 믿음은 감성(100%)의 믿음으로 belief(신앙)에 가깝다. 지금여기에서 점검 가능하지 않아서 부처님은 이러한 관념적인 믿음을 세상에서 가장 이쁜 여인을 사랑하는 이야기의 비유(한번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남자)로 비판하셨다.
3. 퇴보하지 않는 여섯조항과 한문 육화경과의 차이는 ?
....한문육화경은 신구의 계정혜라는 순서가 어긋나있고 무엇을 위한 화합인지도 모르게 되어있다. 같이 살라(共住)고 되어있어 마치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것처럼 왜곡되어있다. 한문 육화경으로는 승가의 화합을 이루어 내기 어렵다. 전통을 잘못 계승하게 만든 번역은 이후 백장청규등 많은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백장암에서는 처음에 한문 육화경을 사용하다가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고아래 사진과 같이 니까야에서 번역한 육화경을 사용하고 있다.
끝-
① 몸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살라(身和共住)
② 입으로 화합함이니 다투지 말라(口和無諍)
③ 뜻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일하라(意和同事)
④ 계로 화합함이니 같이 수행하라(戒和同修)
⑤ 바른 견해로 화합함이니 함께 해탈하라(見和同解)
⑥ 이익으로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利和同均)
.....
(꼬삼비 경 (M48):다시 비구들 이여,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niyyānikā)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takkarassa)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있으니,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그 바른견해를 그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o viharati).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할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마치 이층 누각 집에 이층 누각이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처럼 그와 같이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o vihara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As long as the mendicants live according to the view shared with their spiritual companions, both in public and in private—the view that is noble and emancipating, and leads one who practices it to the complete end of suffering—they can expect growth, not dec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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