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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아함념처경-한글번역-대념처경-pali-영어

염처경(念處經) 
    
 신수장경 : 1-582b
    한글장경 : 중-2-83
    남전장경 : M.10/D.22

我聞如是。一時。佛遊拘樓瘦。在劒磨瑟曇拘樓都邑。 爾時。世尊告諸比丘。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수에 노닐으시면서 쿠루수의 도읍인 캄마싯담마에 계시었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有一道淨眾生。度憂畏。滅苦惱。斷啼哭。得正法。謂四念處。若有過去諸如來.無所著.等正覺悉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

 "한 도가 있어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걱정과 두려움을 건지며, 고뇌를 없애고 슬픔을 끊고 바른 법을 얻게 하나니, 곧 4념처이니라. 과거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은 다 오개(五蓋)의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파리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바로 사념처에 머무르고, 칠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얻었다.

 

得覺無上正盡之覺。若有未來諸如來.無所著.等正覺悉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我今現在如來.無所著.等正覺。我亦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또 미래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도 다 오개의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파리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바로 사념처에 머무르고, 칠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여래·무소착·등정각이다. 나도 또한 오개의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파리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바로 사념처에 머무르고, 칠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깨닫게 되었다.  

 

 

 

云何為四。觀身如身念處。如是觀覺心法如法念處。

 어떤 것이 4인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염처니, 이와 같이 각을 관찰하기를 각과 같이 하며, 마음을 관찰하기를 마음과 같이 하고,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는 염처이니라.

 

 

云何觀身如身念處。比丘者。行則知行。住則知住。坐則知坐。臥則知臥。眠則知眠。寤則知寤。眠寤則知眠寤。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어떤 것을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다니면 다니는 줄 알고, 머무르면 머무는 줄 알며, 앉으면 앉는 줄 알고, 누우면 눕는 줄 알며, 자면 자는 줄 알고, 깨면 깨는 줄 알며, 자다 깨면 자다 깨는 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正知出入。善觀分別。屈伸低昂。儀容庠序。善著僧伽梨及諸衣鉢。行住坐臥。眠寤語默皆正知之。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그리고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바르게 드나듦을 알아 잘 관찰하고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나 낮추고 높이는 몸가지는 거동과 질서가 있으며, 승가리와 모든 옷 입기와 바루 가지는 것, 다니고 머무르기나 앉고 눕기나 자고 깨기나, 말하고 잠잠하는 것을 다 바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生惡不善念。以善法念治斷滅止。猶木工師.木工弟子。彼持墨繩。用拼於木。則以利斧斫治令直。如是比丘生惡不善念。以善法念治斷滅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그리고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한 생각이 나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멸하여 그치게 하나니, 마치 목수나 목수의 제자가 먹줄을 가지고 나무에 퉁기면 곧 날카로운 도끼로 쪼아 곧게 다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나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멸하여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齒齒相著。舌逼上齶。以心治心。治斷滅止。猶二力士捉一羸人。處處捉旋。自在打鍛。如是比丘齒齒相著。舌逼上齶。以心治心。治斷滅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또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윗잇몸 천장에 붙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 다스려 끊고 멸하여 그치게 하나니, 마치 두 역사가 한 약한 사람을 붙잡고 여러 곳으로 끌고 다니며 마음대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윗잇몸 천장에 붙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 다스려 끊고 멸하여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고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 觀身如身。比丘者。念入息即知念入息。念出息即知念出息。入息長即知入息長。出息長即知出息長。入息短即知入息短。出息短即知出息短。學一切身息入。學一切身息出。學止身行息入。學止口行息出。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들숨을 생각하여 곧 들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고, 날숨을 생각하여 곧 날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며, 들숨이 길면 곧 들숨이 긴 줄을 알고, 날숨이 길면 곧 날숨이 긴 줄을 알며, 들숨이 짧으면 곧 들숨이 짧은 줄을 알고, 날숨이 짧으면 곧 날숨이 짧은 줄을 알며, 온 몸에 숨이 드는 것을 깨닫고, 온 몸에 숨이 나는 것을 깨달으며, 몸의 행을 그치어 숨을 들이쉬기를 배우고, 입의 행을 그치어 숨을 내쉬기를 배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離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離生喜樂無處不遍。猶工浴人器盛澡豆。水和成摶。水漬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離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離生喜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見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욕을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몸을 적시고 불리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욕을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 마치 어떤 목욕하는 사람이 그릇에 콩가루를 담고 물을 타서 덩이를 만들어 물에 적시고 불리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욕을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은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定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定生喜樂無處不遍。猶如山泉。清淨不濁。
充滿流溢。四方水來。無緣得入。即彼泉底。水自涌出。流溢於外。漬山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定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定生喜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몸을 적시고 불리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은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 마치 산의 샘물이 청정하여 흐리지 않고 충만하고 흘러 넘쳐 사방에서 물이 와도 들어갈 길이 없나니, 곧 그 샘 밑의 물이 스스로 솟아나 밖으로 흘러 넘쳐 산을 적시고 불리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몸을 적시고 불리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은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無喜生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無喜生樂無處不遍。猶青蓮華。紅.赤.白蓮。水生水長。在於水底。彼根莖華葉悉漬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無喜生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無喜生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기쁨이 없는 데서 생기는 즐거움이 몸을 적시고 불리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이 몸 가운데 있어서 기쁨이 없는 데서 생기는 즐거움은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 마치 푸른 하늘 연꽃이나 붉고 빨갛고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 밑에 있으면, 그 뿌리와 줄기와 꽃과 잎이 모두 젖고 붇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기쁨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즐거움은 몸을 적시고 불리되 두루 하고 충만하여 이 몸 가운데 있어서 기쁨이 없는데서 생기는 즐거움은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於此身中。以清淨心意解遍滿成就遊。於此身中。以清淨心無處不遍。猶有一人。被七肘衣或八肘衣。從頭至足。於其身體無處不覆。如是比丘於此身中。以清淨心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해득하기를 두루 하고 충만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마치 어떤 사람이 8주 되는 옷이나 8주 되는 옷을 입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그 몸을 싸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청정한 마음으로써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念光明想。善受善持。善憶所念。如前後亦然。如後前亦然。如晝夜亦然。如夜晝亦然。如下上亦然。如上下亦然。如是不顛倒。心無有纏。修光明心。心終不為闇之所覆。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광명상을 생각하여 잘 받아 가지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여, 앞에와 같이 뒤에도 또한 그러하고 뒤에와 같이 앞에도 또한 그러하며, 낮에와 같이 밤에도 또한 그러하고 밤에와 같이 낮에도 또한 그러하며, 아래와 같이 위에도 또한 그러하고 위에와 같이 아래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뒤바뀌지 않고, 다음에는 얽매임이 없이 광명심을 닦아 마음은 마침내 어두움에 덮이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워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善受觀相。善憶所念。猶如有人。坐觀臥人。臥觀坐人。如是比丘善受觀相。善憶所念。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관찰하는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앉아서 누운 사람을 관찰하고, 누워서 앉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此身隨住。隨其好惡。從頭至足。觀見種種不淨充滿。我此身中有髮.髦.爪.齒.麁細薄膚.皮.肉.筋.骨.心.腎.肝.肺.大腸.小腸.脾.胃.摶糞.腦及腦根.淚.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猶如器盛若干種子。有目之士。悉見分明。謂稻.粟種.蔓菁.芥子。如是比丘此身隨住。隨其好惡。從頭至足。觀見種種不淨充滿。我此身中有髮.髦.爪.齒.麤細薄膚.皮.肉.筋.骨.心.腎.肝.肺.大腸.小腸.脾.胃.摶糞.腦及腦根.淚.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다시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거나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더러운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한다. 곧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터럭·손톱·이·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가죽·살·힘줄·뼈·심장·콩팥·간·허파·큰 창자·작은 창자·지라·밥통·똥·뇌수·눈꼽·땀·눈물·가래침·고름·피·기름·골수·침·쓸개·오줌이 있다고. 마치 그릇에 몇 가지 종자를 담은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은 다 분명히 보나니, 곧 벼나 조 종자나 갓이나 무우나 겨자 종자와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고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더러운 것이 충만하다고 관찰한다. 곧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터럭·손톱·이·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가죽·살·힘줄·뼈·심장·콩팥·간·허파·큰 창자·작은 창자·지라·밥통·똥·골·뇌수·눈꼽·땀·눈물·가래침·고름·피·기름·골수·침·쓸개·오줌이 있다고.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觀身諸界。我此身中有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猶如屠兒殺牛。剝皮布地於上。分作六段。如是比丘觀身諸界。我此身中。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하나니, 곧 내 몸 가운데에는 땅의 요소·물의 요소·불의 요소·바람의 요소·허공의 요소·의식의 요소가 있다고. 마치 백정이 소를 잡아 껍질을 벗겨 땅에 펴고 그것을 여섯 동강으로 가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있는 모든 요소를 관찰하나니, 곧 내 몸 가운데에는 땅의 요소·물의 요소·불의 요소·바람의 요소·허공의 요소·의식의 요소가 있다고.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觀彼死屍。或一.二日。至六.七日。烏鵄所啄。犲狼所食。火燒埋地。悉腐爛壞。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한다. 비구는 저 송장이 1·2일, 혹은 6·7일이 되어 까마귀나 소리개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살리고 땅에 묻히어 다 썩어 문들어지는 것을 관찰한다. 관찰한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 있어서 마침내 떠날 수 없다'고.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骸骨青色。爛腐食半。骨璅在地。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해골은 푸른 빛으로 썩어 문들어지고, 남은 반의 뼈사슬은 땅에 딩구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하여 그것을 본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 있어서, 마침내 떠날 수가 없다'고.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몸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離皮肉血。唯筋相連。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이 가죽과 살과 피를 떠나 오직 힘줄만이 서로 이어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이 하여 그것을 본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 있어서 마침내 떠날 수가 없다'고.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骨節解散。散在諸方。足骨.膞骨.髀骨.髖骨.脊骨.肩骨.頸骨.髑髏骨。各在異處。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한다.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마디가 풀리어 여러 곳에 흩어져 발뼈·장단지뼈·넓적다리뼈·허리뼈·등뼈·어깨뼈·목뼈·머리뼈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이 하여 그것을 본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함께 있어서 마침내 떠날 수 없다'고.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骨白如螺。青猶鴿色。赤若血塗。腐壞碎粖。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若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身如身者。是謂觀身如身念處。 

비구는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한다.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는 희기는 마치 소라와같고 푸르기는 집비둘기 같으며, 붉기는 피를 칠한 것 같고 썩어 문들어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는것을 보는 것 같이 하여 그것을 본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 있어서 마침내 떠날 수 없다'고.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바깥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면, 이것을 몸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느낌관찰-

 

云何觀覺如覺念處。比丘者。覺樂覺時。便知覺樂覺。覺苦覺時。便知覺苦覺。覺不苦不樂覺時。便知覺不苦不樂覺。覺樂身.苦身.不苦不樂身。樂心.苦心.不苦不樂心。樂食.苦食.不苦不樂食。樂無食.苦無食.不苦不樂無食。樂欲.苦欲.不苦不樂欲。樂無欲.苦無欲覺.不苦不樂無欲覺時。便知覺不苦不樂無欲覺。如是比丘觀內覺如覺。觀外覺如覺。立念在覺。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覺如覺。若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覺如覺者。是謂觀覺如覺念處。 

어떤 것을 <각(覺)>을 관찰하기를 각과 같이 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곧 즐거운 감각을 깨닫는 줄을 알고, 괴로운 감각을 깨달을 때에는 곧 괴로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달을 때에는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즐거운 몸, 괴로운 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과 즐거운 마음, 괴로운 마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마음과 즐거운 거리(食), 괴로운 거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거리와 즐거운 거리도 없고 괴로운 거리도 없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거리도 없고, 즐거운 욕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욕심과 즐거운 무욕각, 괴로운 무욕각도 또한 그러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달을 때에는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각을 관찰하기를 각과 같이 하고, 바깥 각을 관찰하기를 각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각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각을 관찰하기를 각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각을 관찰하기를 각과 같이 하면, 이것을 각을 관찰하기를 각과 같이 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中阿含林品達梵行經第五 第二小土城誦

무엇을 각(覺)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3각(覺)이 있으니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다. 이것을 각을 아는 것이라 고 한다. 무엇을 각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갱락(更樂)이니 갱락을 인하여 곧 각(覺)이 있다. 이것을 각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애(愛)이니 애는 각의 과보가 된다. 이것을 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각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비구는 낙각(樂覺)을 깨달을 때에는 낙각을 깨닫는 줄을 알고 고각(苦覺)을 깨달을 때에는 곧 고각을 깨닫는 줄을 알며 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을 깨달을 때에는 곧 불고불락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낙신(樂身)ㆍ고신(苦身)ㆍ불고불락신(不苦不樂身)과 낙심(樂心)ㆍ고심(苦心)ㆍ불고불락심(不苦不樂心)과 낙식(樂食)ㆍ고식(苦食)ㆍ불고불락식(不苦不樂食)과 낙무식(樂無食)ㆍ고무식(苦無食)ㆍ불고불락무식(不苦不樂無食)과 낙욕(樂欲)ㆍ고욕(苦欲)ㆍ불고불락욕(不苦不樂欲)과 낙무욕(樂無欲)ㆍ고무욕(苦無欲)도 마찬가지며, 불고불락무욕각(不苦不樂無欲覺)을 깨달을 때에는 곧 불고불락무욕각(不苦不樂無欲覺)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것을 각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云何觀心如心念處。比丘者.有欲心知有欲心如真。無欲心知無欲心如真。有恚無恚.有癡無癡.有穢污無穢污.有合有散.有下有高.有小有大.修不修.定不定。有不解脫心知不解脫心如真。有解脫心知解脫心如真。如是比丘觀內心如心。觀外心如心。立念在心。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心如心。若有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心如心者。是謂觀心如心念處。어떤 것을 마음을 관찰하기를 마음다이 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다는 참뜻을 알고,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다는 참뜻을 알며, 성냄이 있고 성냄이 없는 것과 어리석음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더러움이 있고 더러움이 없는 것과 모임이 있고 흩어짐이 있는 것과 낮춤이 있고 높임이 있는 것과 작음이 있고 큼이 있는 것과 닦고 닦지 않음과 정하고 정하지 않은 것도 또한 그러하며,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 해탈하지 않은 마음의 참뜻을 알고 해탈한 마음이 있으면 해탈한 마음의 참뜻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마음을 관찰하기를 마음과 같이 하고, 바깥 마음을 관찰하기를 마음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마음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마음을 관찰하기를 마음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관찰하기를 마음과 같이 하면, 이것을 마음을 관찰하기를 마음과 같이 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云何觀法如法念處眼緣色生內結。比丘者。內實有結知內有結如真。內實無結知內無結如真。若未生內結而生者知如真。若已生內結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耳.鼻.舌.身。意緣法生內結。比丘者。內實有結知內有結如真。內實無結知內無結如真。若未生內結而生者知如真。若已生內結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內六處。

어떤 것을 법을 관찰하기를 법다이 하는 염처라 하는가. 눈은 빛깔을 반연하여 안의 번뇌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다는 참뜻을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가 생기면 그 참뜻을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 참뜻을 안다. 이와 같이 귀·코·혀·몸도 또한 그러하며, 뜻은 법을 반연하여 안의 번뇌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다는 참뜻을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다는 참뜻을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 참뜻을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 참뜻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고, 바깥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안의 육처(六處)이니라.

 

 

 復次。比丘觀法如法。比丘者。內實有欲知有欲如真。內實無欲知無欲如真。若未生欲而生者知如真。若已生欲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瞋恚.睡眠.調悔。內實有疑知有疑如真。內實無疑知無疑如真。若未生疑而生者知如真。若已生疑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 觀法如法。謂五蓋也。

비구는 법을 관찰하기를 법다이 한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다는 참뜻을 알고, 안에 진실로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다는 참뜻을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이 생기면 그 참뜻을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욕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 참뜻을 안다. 이와 같이 성냄·잠·들뜸도 또한 그러하며, 안에 진실로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있다는 참뜻을 알고, 안에 진실로 의심이 없으면 의심이 없다는 참뜻을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의심이 생기면 그 참뜻을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의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 참뜻을 안다. 이와 같이 비구가 안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고, 바깥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오개 이니라.

 

 

 

 復次。比丘觀法如法。比丘者。內實有念覺支知有念覺支如真。內實無念覺支知無念覺支如真。若未生念覺支而生者知如真。若已生念覺支便住不忘而不衰退。轉修增廣者知如真。如是法.精進.喜.息.定。比丘者。內實有捨覺支知有
捨覺支如真。內實無捨覺支知無捨覺支如真。若未生捨覺支而生者知如真。若已生捨覺支便住不忘而不衰退。轉修增廣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七覺支。

비구는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한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염각지가 있으면 염각지가 있다는 참 모양을 알고, 안에 진실로 염각지가 없으면 염각지가 없다는 참 모양을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염각지가 생기면 그 참 모양을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염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또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 참 모양을 안다. 이와 같이 택법·정진·기쁨·쉼·정(定)도 또한 그러하며, 비구는 안에 진실로 사각지(捨覺支)가 있으면 사각지가 있다는 참 모양을 알고, 안에 진실로 사각지가 없으면 사각지가 없다는 참 모양을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사각지가 생기면 그 참 모양을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사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 참 모양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고, 바깥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여, 생각을 세워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칠각지이니라. 

 

 

 

若有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法如法者。是謂觀法如法念處。若有比丘.比丘尼七年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置七年。六五四三二一年。若有比丘.比丘尼七月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置七月。六五四三二一月。若有比丘.比丘尼七日七夜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
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

만일 어떤 비구·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면, 이것을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비구니가 7년 동안 마음을 세워 바르게 사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요, 혹은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고, 혹은 남음이 있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7년·6·5·4·3·2·1년은 그만 두고, 만일 어떤 비구·비구니가 7개월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사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를 얻을 것이요, 혹은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고, 혹은 남음이 있어서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置七日七夜。六五四三二。置一日一夜。若有比丘.比丘尼少少須臾頃立心正住四念處者。彼朝行如是。暮必得昇進。暮行如是。朝必得昇進。 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7개월·6·5·4·3·2·1개월은 그만 두고, 어떤 비구·비구니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사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이과을 얻을 것이요, 혹은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고, 혹은 남음이 있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이레 낮·이레 밤·6·5·4·3·2 는 그만 두고 하루 낮·하룻밤도 그만 두고, 만일 어떤 비구·비구니가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사념처에 머물러, 그는 아침에 이렇게 행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승진하게 될 것이요, 저녁에 이렇게 행하면 아침에는 반드시 승진하게 될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念處經第二竟(三千一百三十七字)。
中阿含經卷第二十四(八千六百九字)(第二小土城誦)

 

 

And how does a mendicant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It’s when a mendicant—gone to a wilderness, or to the root of a tree, or to an empty hut—sits down cross-legged, with their body straight, and focuses their mindfulness right there.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rukkhamūlagato  suññāgāragato  nisīdat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그는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Just mindful, they breathe in. Mindful, they breathe out.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When breathing in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in heavily.’ When breathing out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heavily.’Dīghaṁ vā assasanto ‘dīghaṁ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ṁ vā passasanto ‘dīgh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When breathing in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in lightly.’ When breathing out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lightly.’Rassaṁ vā assasanto ‘rassaṁ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passasanto ‘rass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They practice breathing in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ou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Sabbakāya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They practice breathing in stilling the body’s motion. They practice breathing out stilling the body’s motion.‘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passasissāmī’ti sikkhati.

如是比丘觀内身如身觀外身如身。 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 是謂比丘觀身如身。復次比丘。 

觀身如身 比丘者念入息即知念入息。 念出息。即知念出息。 入息長即入息長。 出息長即知出息長。 入息短即知入息短。 出息短即知出息短。 學一切身息入。學一切身息出。 學止身行息入。學止口行息出。

復次比丘。觀身如身。 比丘者離生喜樂漬身潤澤 普遍充滿於此身中 離生喜樂無處不遍。 猶工浴人器盛澡豆。水和成摶 水漬潤澤。普遍充滿 無處不周。 如是比丘離生喜樂漬身潤澤 普遍充滿於此身中 離生喜樂無處不遍。

 

 

 

 

대념처경(大念処経)  마음챙김의 확립

Mahāsatipaṭṭhāna Sutta(D22)

 

서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処]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 몸의 관찰[身随観]

-1.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2.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외진 처소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도공의 도제가 길게 돌리면서 길게 돌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돌리면서 짧게 돌린다.’고 꿰뚫어 아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2. 네 가지 자세[四威儀]

 

3.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 걷고 있다.’고 꿰뚫어 알고, 서있으면서 서있다.’고 꿰뚫어 알며,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꿰뚫어 알고,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꿰뚫어 안다.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3. 분명하게 알아차림

 

4.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ㆍ발우ㆍ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ㆍ서면서ㆍ앉으면서ㆍ잠들면서ㆍ잠을 깨면서ㆍ말하면서ㆍ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4.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

 

5.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浄)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이 몸에는 머리털ㆍ몸털ㆍ손발톱ㆍ이빨ㆍ살갗ㆍ살ㆍ힘줄ㆍ뼈ㆍ골수ㆍ콩팥ㆍ염통ㆍ간ㆍ근막ㆍ지라ㆍ허파ㆍ큰창자ㆍ작은창자ㆍ위ㆍ똥ㆍ쓸개즙ㆍ가래ㆍ고름ㆍ피ㆍ땀ㆍ굳기름ㆍ눈물ㆍ[피부의] 기름기ㆍ침ㆍ콧물ㆍ관절활액ㆍ오줌 등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주둥이가 있는 가마니에 여러 가지 곡물, 즉 밭벼ㆍ보리ㆍ녹두ㆍ완두ㆍ참깨ㆍ논벼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고 반조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밭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한(不浄)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이 몸에는 머리털ㆍ몸털ㆍ손발톱ㆍ이ㆍ살갗ㆍ살ㆍ힘줄ㆍ뼈ㆍ골수ㆍ콩팥ㆍ염통ㆍ간ㆍ근막ㆍ지라ㆍ허파ㆍ큰창자ㆍ작은창자ㆍ위ㆍ똥ㆍ쓸개즙ㆍ가래ㆍ고름ㆍ피ㆍ땀ㆍ굳기름ㆍ눈물ㆍ[피부의] 기름기ㆍ침ㆍ콧물ㆍ관절활액ㆍ오줌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조수가 소를 잡아서 각을 뜬 다음 큰 길 네거리에 이를 벌여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6. ~ -14.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7.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8.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9.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④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⑤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⑥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10.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⑧ 백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⑨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 느낌의 관찰[受随観]

 

1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随観]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비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비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비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随観] 머문다. 혹은 밖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느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 마음의 관찰[心随観]

 

12.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随観]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성냄을 여읜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미혹이 있는 마음을 미혹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미혹을 여읜 마음을 미혹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고귀한 마음을 고귀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아직도] 위가 남아 있는 마음을 [아직도] 위가 남아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더 이상] 위가 없는 마음[無上心][더 이상] 위가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随観] 머문다. 혹은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 법의 관찰[法随観]

-1. 다섯 가지 장애[五蓋]

 

13.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감각적 욕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악의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악의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악의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해태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해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해태와 혼침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회의적 의심이 있을 때 내게 의심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의심이 없을 때 내게 의심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의심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의심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2.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1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카라[]들이다. 이것이 상카라들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카라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관찰하며 머문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3.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処]

 

1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内外処]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을 꿰뚫어 안다. 형상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귀를 꿰뚫어 안다. 소리를 꿰뚫어 안다. 코를 꿰뚫어 안다. 냄새를 꿰뚫어 안다. 혀를 꿰뚫어 안다. 맛을 꿰뚫어 안다. 몸을 꿰뚫어 안다. 감촉을 꿰뚫어 안다. 마노를 꿰뚫어 안다. 법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覚支]

 

16.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覚支]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覚支]가 있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択法覚支]가 있을 때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覚支]가 있을 때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覚支]가 있을 때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軽安覚支]가 있을 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覚支]가 있을 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覚支]가 있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1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5-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18.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苦聖諦]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태어남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저런 중생들의 태어남, 출생, 도래함, 생김, 탄생, 오온의 나타남, 감각장소[]를 획득함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태어남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저런 중생들의 늙음, 노쇠함, 부서진 [이빨], 희어진 [머리털], 주름진 피부, 수명의 감소, 감각기능[]의 허약함 이를 일러 늙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저런 중생들의 종말, 제거됨, 부서짐, 사라짐, 사망, 죽음, 서거, 오온의 부서짐, 시체를 안치함, 생명기능[命根]의 끊어짐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근심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현상에 맞닿은 사람의 근심, 근심함, 근심스러움, 내면의 근심, 내면의 슬픔 이를 일러 근심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탄식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의 한탄, 비탄, 한탄함, 비탄함, 한탄스러움, 비탄스러움 이를 일러 탄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육체적 고통인가? 비구들이여, 몸의 고통, 몸의 불편함, 몸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 이를 일러 육체적 고통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신적 고통인가? 비구들이여, 정신적인 불편함, 마음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 이를 일러 정신적 고통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절망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의 실망, 절망, 실망함, 절망함 이를 일러 절망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 참으로 우리에게 태어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태어남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늙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병들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죽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을 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 참으로 우리에게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역시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五取蘊]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상카라들의 무더기[行取蘊], [나 등으로]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이다. 비구들이여, 요컨대 이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19.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을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코는 혀는 몸은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소리는 냄새는 맛은 감촉은 [마노의 대상인] ()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알음알이는 귀의 알음알이는 코의 알음알이는 혀의 알음알이는 몸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귀의 감각접촉은 코의 감각접촉은 혀의 감각접촉은 몸의 감각접촉은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인식은 귀의 인식은 코의 인식은 혀의 인식은 몸의 인식은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의도는 귀의 의도는 코의 의도는 혀의 의도는 몸의 의도는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갈애는 귀의 갈애는 코의 갈애는 혀의 갈애는 몸의 갈애는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일으킨 생각[]귀의 일으킨 생각은 코의 일으킨 생각은 혀의 일으킨 생각은 몸의 일으킨 생각은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20.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코는 혀는 몸은 마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형상은 소리는 냄새는 맛은 감촉은 [마노의 대상인] ()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알음알이는 귀의 알음알이는 코의 알음알이는 혀의 알음알이는 몸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감각접촉[]귀의 감각접촉은 코의 감각접촉은 혀의 감각접촉은 몸의 감각접촉은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인식은 귀의 인식은 코의 인식은 혀의 인식은 몸의 인식은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의도는 귀의 의도는 코의 의도는 혀의 의도는 몸의 의도는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갈애는 귀의 갈애는 코의 갈애는 혀의 갈애는 몸의 갈애는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일으킨 생각[]귀의 일으킨 생각은 코의 일으킨 생각은 혀의 일으킨 생각은 몸의 일으킨 생각은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4.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2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 이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正思惟]인가? 비구들이여,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不害]에 대한 사유 이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正語]인가? 비구들이여,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모략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는 것 이를 일러 바른 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비구들이여,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 이를 일러 바른 행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正命]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생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정진[正精進]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마음챙김[正念]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느낌들에서 마음에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마음챙김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禅)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二禅)에 들어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게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三禅)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清浄] 4(四禅)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라 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맺는 말

 

22.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処]을 이와 같이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 년까진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육 년을 닦는 사람은 오 년을 사 년을 삼 년을 이 년을 일 년까진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일곱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일곱 달까진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여섯 달을 다섯 달을 넉 달을 석 달을 두 달을 한 달을 보름을 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칠 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処]이다.’라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하였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Mahāsatipaṭṭhānasutta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kurūsu viharati kammāsadhammaṁ nāma kurūnaṁ nigamo.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Ekāyano ayaṁ, bhikkhave, maggo sattānaṁ visuddhiyā, sokaparidevānaṁ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ṁ cattāro satipaṭṭhānā.

Katame cattāro?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Uddeso niṭṭhito.

1. Kāyānupassanā

1.1. Kāyānupassanāānāpānapabba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rukkhamūlagato  suññāgāragato  nisīdat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So satova assasati, satova passasati.

Dīghaṁ  assasanto ‘dīghaṁ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ṁ  passasanto ‘dīgh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assasanto ‘rassaṁ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passasanto ‘rass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passasissāmī’ti sikkhati.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bhamakāro  bhamakārantevāsī  dīghaṁ  añchanto ‘dīghaṁ añchāmī’ti pajānāti, rassaṁ  añchanto ‘rassaṁ añchāmī’ti pajānāt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dīghaṁ  assasanto ‘dīghaṁ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ṁ  passasanto ‘dīgh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assasanto ‘rassaṁ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passasanto ‘rass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ṁ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passasissāmī’ti sikkhati.

Iti ajjhatta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Atthi kāyo’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nāpānapabbaṁ niṭṭhitaṁ.

1.2. Kāyānupassanāiriyāpath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gacchanto  ‘gacchāmī’ti pajānāti, ṭhito  ‘ṭhitomhī’ti pajānāti, nisinno  ‘nisinnomhī’ti pajānāti, sayāno  ‘sayānomhī’ti pajānāti, yathā yathā  panassa kāyo paṇihito hoti tathā tathā naṁ pajānāti.

Iti ajjhatta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Atthi kāyo’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Iriyāpathapabbaṁ niṭṭhitaṁ.

1.3. Kāyānupassanāsampajān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Iti ajjhattaṁ  …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Sampajānapabbaṁ niṭṭhitaṁ.

1.4. Kāyānupassanāpaṭikūlamanasikār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uddhaṁ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ṁ pūraṁ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ṁsaṁ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ṁ vakkaṁ, hadayaṁ yakanaṁ kilomakaṁ pihakaṁ papphāsaṁ, antaṁ antaguṇaṁ udariyaṁ karīsaṁ, pittaṁ semhaṁ pubbo lohitaṁ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Seyyathāpi, bhikkhave, ubhatomukhā putoḷi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ṁsālīnaṁ vīhīnaṁ muggānaṁ māsānaṁ tilānaṁ taṇḍulānaṁ. Tamenaṁ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t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uddhaṁ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ṁ pūraṁ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kesā lomā …pe… muttan’ti.

Iti ajjhattaṁ  …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Paṭikūlamanasikārapabbaṁ niṭṭhitaṁ.

1.5. Kāyānupassanādhātumanasikār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yathāṭhitaṁ yathāpaṇihitaṁ dhātus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goghātako  goghātakantevāsī  gāviṁ vadhitvā catumahāpathe bilaso vibhajitvā nisinno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yathāṭhitaṁ yathāpaṇihitaṁ dhātus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ṁ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Iti ajjhatta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Dhātumanasikārapabbaṁ niṭṭhitaṁ.

1.6. Kāyānupassanānavasivathik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ekāhamataṁ  dvīhamataṁ  tīhamataṁ  uddhumātakaṁ vinīlakaṁ vipubbakajāt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Iti ajjhattaṁ  …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kākehi  khajjamānaṁ kulalehi  khajjamānaṁ gijjhehi  khajjamānaṁ kaṅkehi  khajjamānaṁ sunakhehi  khajjamānaṁ byagghehi  khajjamānaṁ dīpīhi  khajjamānaṁ siṅgālehi  khajjamānaṁ vividhehi  pāṇakajātehi khajjamān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Iti ajjhattaṁ  …pe…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aṭṭhikasaṅkhalikaṁ samaṁsalo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asaṅkhalikaṁ nimaṁsalohitamakk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asaṅkhalikaṁ apagatamaṁsalohitaṁ nhārusambandhaṁ …pe…

Aṭṭhikāni apagatasambandhāni disā vidisā vikkhittāni, aññena hatthaṭṭhikaṁ aññena pādaṭṭhikaṁ aññena gopphakaṭṭhikaṁ aññena jaṅghaṭṭhikaṁ aññena ūruṭṭhikaṁ aññena kaṭiṭṭhikaṁ aññena phāsukaṭṭhikaṁ aññena piṭṭhiṭṭhikaṁ aññena khandhaṭṭhikaṁ aññena gīvaṭṭhikaṁ aññena hanukaṭṭhikaṁ aññena dantaṭṭhikaṁ aññena sīsakaṭāhaṁ.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Iti ajjhattaṁ  …pe… viharati.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eyyathāpi passeyya sarīraṁ sivathikāya chaḍḍitaṁ aṭṭhikāni setāni saṅkhavaṇṇapaṭibhāgāni …pe…

Aṭṭhikāni puñjakitāni terovassikāni …pe…

Aṭṭhikāni pūtīni cuṇṇakajātāni. So imameva kāyaṁ upasaṁharati: ‘ayampi kho kāyo evaṁdhammo evaṁbhāvī evaṁanatīto’ti. Iti ajjhatta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kāyasmiṁ viharati. ‘Atthi kāyo’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Navasivathikapabbaṁ niṭṭhitaṁ.

Cuddasa kāyānupassanā niṭṭhitā.

2. Vedanānupassanā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Idha, bhikkhave, bhikkhu 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Dukkhaṁ  vedanaṁ vedayamāno ‘duk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Sāmisaṁ  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sāmisaṁ 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Nirāmisaṁ  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nirāmisaṁ 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Sāmisaṁ  dukkhaṁ vedanaṁ vedayamāno ‘sāmisaṁ duk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Nirāmisaṁ  dukkhaṁ vedanaṁ vedayamāno ‘nirāmisaṁ duk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Sāmisaṁ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sāmisaṁ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Nirāmisaṁ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nirāmisaṁ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Iti ajjhatta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vedanā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edanā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edanāsu viharati. ‘Atthi vedanā’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Vedanānupassanā niṭṭhitā.

3. Cittānupassanā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Idha, bhikkhave, bhikkhu sarāga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ṁ  cittaṁ ‘vītarāgaṁ cittan’ti pajānāti. Sadosaṁ  cittaṁ ‘sados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ṁ  cittaṁ ‘vītadosaṁ cittan’ti pajānāti. Samohaṁ  cittaṁ ‘samohaṁ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ṁ  cittaṁ ‘vītamohaṁ cittan’ti pajānāti. Saṅkhittaṁ  cittaṁ ‘saṅkhittaṁ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ṁ  cittaṁ ‘vikkhittaṁ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ṁ  cittaṁ ‘mahaggataṁ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ṁ  cittaṁ ‘amahaggataṁ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ṁ  cittaṁ ‘sauttaraṁ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ṁ  cittaṁ ‘anuttaraṁ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ṁ  cittaṁ ‘samāhitaṁ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ṁ  cittaṁ ‘asamāhitaṁ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ṁ  cittaṁ ‘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āti.

Iti ajjhatta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cittasmiṁ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cittasmiṁ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cittasmiṁ viharati. ‘Atthi cittan’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Cittānupassanā niṭṭhitā.

4. Dhammānupassanā

4.1. Dhammānupassanānīvaraṇapabba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Idh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Idha, bhikkhave, bhikkhu santaṁ  ajjhattaṁ kāmacchandaṁ ‘atthi me ajjhattaṁ kāmacchand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kāmacchandaṁ ‘natthi me ajjhattaṁ kāmacchand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kāmacchand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kāmacchand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kāmacchand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byāpādaṁ ‘atthi me ajjhattaṁ byāpād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byāpādaṁ ‘natthi me ajjhattaṁ byāpād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byāpād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byāpād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byāpād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thinamiddhaṁ ‘atthi me ajjhattaṁ thinamiddhan’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thinamiddhaṁ ‘natthi me ajjhattaṁ thinamiddhan’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thinamiddh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thinamiddh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thinamiddh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uddhaccakukkuccaṁ ‘atthi me ajjhattaṁ uddhaccakukkuccan’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uddhaccakukkuccaṁ ‘natthi me ajjhattaṁ uddhaccakukkuccan’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uddhaccakukkucc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uddhaccakukkucc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uddhaccakukkucc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vicikicchaṁ ‘atthi me ajjhattaṁ vicikicchā’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vicikicchaṁ ‘natthi me ajjhattaṁ vicikicchā’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āya vicikicchāy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āya vicikicchāy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āya vicikicchāy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Iti ajjhatt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Nīvaraṇapabbaṁ niṭṭhitaṁ.

4.2. Dhammānupassanākhandh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Idha, bhikkhave, bhikkhu: ‘iti rūpaṁ,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iti vedanāya samudayo, iti vedanāya atthaṅgamo; iti saññā, iti saññāya samudayo, iti saññāya atthaṅgamo; iti saṅkhārā, iti saṅkhārānaṁ samudayo, iti saṅkhārānaṁ atthaṅgamo, iti viññāṇaṁ,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iti ajjhatt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Khandhapabbaṁ niṭṭhitaṁ.

4.3. Dhammānupassanāāyatan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Idha, bhikkhave, bhikkhu cakkhuñca pajānāti, rūp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ṁ paṭicca uppajjati saṁyojanaṁ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ṁ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ṁyojan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ṁyojan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Sotañca pajānāti, sadd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ṁ paṭicca uppajjati saṁyojanaṁ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ṁ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ṁyojan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ṁyojan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Ghānañca pajānāti, gandh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ṁ paṭicca uppajjati saṁyojanaṁ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ṁ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ṁyojan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ṁyojan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Jivhañca pajānāti, ras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ṁ paṭicca uppajjati saṁyojanaṁ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ṁ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ṁyojan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ṁyojan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Kāyañca pajānāti, phoṭṭhabb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ṁ paṭicca uppajjati saṁyojanaṁ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ṁ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ṁyojan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ṁyojan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Manañca pajānāti, dhamme ca pajānāti, yañca tadubhayaṁ paṭicca uppajjati saṁyojanaṁ tañca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ṁyojan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ṁyojanassa pahānaṁ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saṁyojanassa āyatiṁ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Iti ajjhatt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Āyatanapabbaṁ niṭṭhitaṁ.

4.4. Dhammānupassanābojjhaṅg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ttasu bojjhaṅgesu.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ttasu bojjhaṅgesu?

Idha, bhikkhave, bhikkhu santaṁ  ajjhattaṁ satisambojjhaṅgaṁ ‘atthi me ajjhattaṁ sa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satisambojjhaṅgaṁ ‘natthi me ajjhattaṁ sa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t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t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dhammavicayasambojjhaṅgaṁ ‘atthi me ajjhattaṁ dhammavica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dhammavicayasambojjhaṅgaṁ ‘natthi me ajjhattaṁ dhammavica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dhammavicaya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dhammavicaya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vīriyasambojjhaṅgaṁ ‘atthi me ajjhattaṁ vīri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vīriyasambojjhaṅgaṁ ‘natthi me ajjhattaṁ vīriya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vīriya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vīriya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pītisambojjhaṅgaṁ ‘atthi me ajjhattaṁ pī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pītisambojjhaṅgaṁ ‘natthi me ajjhattaṁ pīt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pīt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pīt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passaddhisambojjhaṅgaṁ ‘atthi me ajjhattaṁ passad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passaddhisambojjhaṅgaṁ ‘natthi me ajjhattaṁ passad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passaddh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passad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samādhisambojjhaṅgaṁ ‘atthi me ajjhattaṁ samā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samādhisambojjhaṅgaṁ ‘natthi me ajjhattaṁ samādhi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samādhi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samādhi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Santaṁ  ajjhattaṁ upekkhāsambojjhaṅgaṁ ‘atthi me ajjhattaṁ upekkhāsambojjhaṅgo’ti pajānāti, asantaṁ  ajjhattaṁ upekkhāsambojjhaṅgaṁ ‘natthi me ajjhattaṁ upekkhāsambojjhaṅgo’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upekkhāsambojjhaṅg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upekkhā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ī hoti tañca pajānāti.

Iti ajjhatt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ttasu bojjhaṅgesu.

Bojjhaṅgapabbaṁ niṭṭhitaṁ.

4.5. Dhammānupassanāsaccapabba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atūsu ariyasaccesu. 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atūsu ariyasaccesu?

Idha, bhikkhave, bhikkhu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Paṭhamabhāṇavāro niṭṭhito.

4.5.1. Dukkhasaccaniddesa

Katamañca, bhikkhave, dukkhaṁ ariyasaccaṁ?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maraṇampi dukkha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pi dukkhā, appiyehi sampayogopi dukkho, piyehi vippayogopi dukkho,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Katamā ca, bhikkhave, jāti?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i tamhi sattanikāye jāti sañjāti okkanti abhinibbatti khandhānaṁ pātubhāvo āyatanānaṁ paṭilābho, ayaṁ vuccati, bhikkhave, jāti.

Katamā ca, bhikkhave, jar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i tamhi sattanikāye jarā jīraṇatā khaṇḍiccaṁ pāliccaṁ valittacatā āyuno saṁhāni indriyānaṁ paripāko, ayaṁ vuccati, bhikkhave, jarā.

Katamañca, bhikkhave, maraṇaṁ? Ya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ā tamhā sattanikāyā cuti cavanatā bhedo antaradhānaṁ maccu maraṇaṁ kālakiriyā khandhānaṁ bhedo kaḷevarassa nikkhepo jīvitindriyassupacchedo, idaṁ vuccati, bhikkhave, maraṇaṁ.

Katamo ca, bhikkhave, soko? Yo kho, bhikkhave,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soko socanā socitattaṁ antosoko antoparisoko, ayaṁ vuccati, bhikkhave, soko.

Katamo ca, bhikkhave, paridevo? Yo kho, bhikkhave,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ādevo paridevo ādevanā paridevanā ādevitattaṁ paridevitattaṁ, ayaṁ vuccati, bhikkhave, paridevo.

Katamañca, bhikkhave, dukkhaṁ? Yaṁ kho, bhikkhave, kāyikaṁ dukkhaṁ kāyikaṁ asātaṁ kāyasamphassajaṁ dukkhaṁ asātaṁ vedayitaṁ, idaṁ vuccati, bhikkhave, dukkhaṁ.

Katamañca, bhikkhave, domanassaṁ? Yaṁ kho, bhikkhave, cetasikaṁ dukkhaṁ cetasikaṁ asātaṁ manosamphassajaṁ dukkhaṁ asātaṁ vedayitaṁ, idaṁ vuccati, bhikkhave, domanassaṁ.

Katamo ca, bhikkhave, upāyāso? Yo kho, bhikkhave, aññataraññatarena byasanena samannāgatassa aññataraññatarena dukkhadhammena phuṭṭhassa āyāso upāyāso āyāsitattaṁ upāyāsitattaṁ, ayaṁ vuccati, bhikkhave, upāyāso.

Katamo ca, bhikkhave, appiyehi sampayogo dukkho? Idha yassa te honti aniṭṭhā akantā amanāpā rūpā saddā gandhā rasā phoṭṭhabbā dhammā, ye  panassa te honti anatthakāmā ahitakāmā aphāsukakāmā ayogakkhemakāmā,  tehi saddhiṁ saṅgati samāgamo samodhānaṁ missībhāvo, ayaṁ vuccati, bhikkhave, appiyehi sampayogo dukkho.

Katamo ca, bhikkhave, piyehi vippayogo dukkho? Idha yassa te honti iṭṭhā kantā manāpā rūpā saddā gandhā rasā phoṭṭhabbā dhammā, ye  panassa te honti atthakāmā hitakāmā phāsukakāmā yogakkhemakāmā mātā  pitā  bhātā  bhaginī  mittā  amaccā  ñātisālohitā vā,  tehi saddhiṁ asaṅgati asamāgamo asamodhānaṁ amissībhāvo, ayaṁ vuccati, bhikkhave, piyehi vippayogo dukkho.

Katamañca, bhikkhave,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Jātidhammānaṁ, bhikkhave, sattānaṁ evaṁ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ṁ na jāti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jāti āgaccheyyā’ti. Na kho panetaṁ icchāya pattabbaṁ, idampi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Jarādhammānaṁ, bhikkhave, sattānaṁ evaṁ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ṁ na jarā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jarā āgaccheyyā’ti. Na kho panetaṁ icchāya pattabbaṁ, idampi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Byādhidhammānaṁ, bhikkhave, sattānaṁ evaṁ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ṁ na byādhi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byādhi āgaccheyyā’ti. Na kho panetaṁ icchāya pattabbaṁ, idampi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Maraṇadhammānaṁ, bhikkhave, sattānaṁ evaṁ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ṁ na maraṇa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maraṇaṁ āgaccheyyā’ti. Na kho panetaṁ icchāya pattabbaṁ, idampi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naṁ, bhikkhave, sattānaṁ evaṁ icchā uppajjati ‘aho vata mayaṁ na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 assāma, na ca vata no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ā āgaccheyyun’ti. Na kho panetaṁ icchāya pattabbaṁ, idampi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Katame ca, bhikkhave,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Seyyathidaṁ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Idaṁ vuccati, bhikkhave, dukkhaṁ ariyasaccaṁ.

4.5.2. Samudayasaccaniddesa

Katamañca, bhikkhave, dukkhasamudayaṁ ariyasaccaṁ?

Yāyaṁ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ṁ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kho panesā, bhikkhave, taṇhā kattha uppajjamānā uppajjati, kattha nivisamānā nivisati? Ya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Kiñca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Cakkhu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Sotaṁ loke …pe… ghānaṁ loke  jivhā loke  kāyo loke  man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Rūpā loke  saddā loke  gandhā loke  rasā loke  phoṭṭhabbā loke  dhamm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Cakkhuviññāṇaṁ loke  sotaviññāṇaṁ loke  ghānaviññāṇaṁ loke  jivhāviññāṇaṁ loke  kāyaviññāṇaṁ loke  manoviññāṇa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Cakkhusamphasso loke  sotasamphasso loke  ghānasamphasso loke  jivhāsamphasso loke  kāyasamphasso loke  manosamphass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Cakkhusamphassajā vedanā loke  sotasamphassajā vedanā loke  ghānasamphassajā vedanā loke  jivhāsamphassajā vedanā loke  kāyasamphassajā vedanā loke  manosamphassajā vedan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Rūpasaññā loke  saddasaññā loke  gandhasaññā loke  rasasaññā loke  phoṭṭhabbasaññā loke  dhammasaññ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Rūpasañcetanā loke  saddasañcetanā loke  gandhasañcetanā loke  rasasañcetanā loke  phoṭṭhabbasañcetanā loke  dhammasañcetan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Rūpataṇhā loke  saddataṇhā loke  gandhataṇhā loke  rasataṇhā loke  phoṭṭhabbataṇhā loke  dhammataṇh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Rūpavitakko loke  saddavitakko loke  gandhavitakko loke  rasavitakko loke  phoṭṭhabbavitakko loke  dhammavitakk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Rūpavicāro loke  saddavicāro loke  gandhavicāro loke  rasavicāro loke  phoṭṭhabbavicāro loke  dhammavicār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Idaṁ vuccati, bhikkhave, dukkhasamudayaṁ ariyasaccaṁ.

4.5.3. Nirodhasaccaniddesa

Katamañca, bhikkhave, dukkhanirodhaṁ ariyasaccaṁ?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kho panesā, bhikkhave, taṇhā kattha pahīyamānā pahīyati, ka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Ya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Kiñca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Cakkhu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Sotaṁ loke …pe… ghānaṁ loke  jivhā loke  kāyo loke  man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Rūpā loke  saddā loke  gandhā loke  rasā loke  phoṭṭhabbā loke  dhamm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Cakkhuviññāṇaṁ loke  sotaviññāṇaṁ loke  ghānaviññāṇaṁ loke  jivhāviññāṇaṁ loke  kāyaviññāṇaṁ loke  manoviññāṇa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Cakkhusamphasso loke  sotasamphasso loke  ghānasamphasso loke  jivhāsamphasso loke  kāyasamphasso loke  manosamphass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Cakkhusamphassajā vedanā loke  sotasamphassajā vedanā loke  ghānasamphassajā vedanā loke  jivhāsamphassajā vedanā loke  kāyasamphassajā vedanā loke  manosamphassajā vedan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Rūpasaññā loke  saddasaññā loke  gandhasaññā loke  rasasaññā loke  phoṭṭhabbasaññā loke  dhammasaññ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Rūpasañcetanā loke  saddasañcetanā loke  gandhasañcetanā loke  rasasañcetanā loke  phoṭṭhabbasañcetanā loke  dhammasañcetan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Rūpataṇhā loke  saddataṇhā loke  gandhataṇhā loke  rasataṇhā loke  phoṭṭhabbataṇhā loke  dhammataṇhā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Rūpavitakko loke  saddavitakko loke  gandhavitakko loke  rasavitakko loke  phoṭṭhabbavitakko loke  dhammavitakk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Rūpavicāro loke  saddavicāro loke  gandhavicāro loke  rasavicāro loke  phoṭṭhabbavicāro loke  dhammavicāro loke piyarūpaṁ sātarūpaṁ, etthesā taṇhā pahīyamānā pahīyati, ettha nirujjhamānā nirujjhati.

Idaṁ vuccati, bhikkhave, dukkhanirodhaṁ ariyasaccaṁ.

4.5.4. Maggasaccaniddesa

Katamañca, bhikkhave,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ṁ?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ṁ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Katamā ca, bhikkhave, sammādiṭṭhi? Yaṁ kho, bhikkhave, dukkhe ñāṇaṁ, dukkhasamudaye ñāṇaṁ, dukkhanirodhe ñāṇ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ñāṇaṁ.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diṭṭhi.

Katamo ca, bhikkhave, sammāsaṅkappo? Nekkhammasaṅkappo abyāpādasaṅkappo avihiṁsāsaṅkappo.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saṅkappo.

Katamā ca, bhikkhave, sammāvācā? Musāvādā veramaṇī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 samphappalāpā veramaṇī.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vācā.

Katamo ca, bhikkhave, sammākammanto?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adinnādānā veramaṇī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ī.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kammanto.

Katamo ca, bhikkhave, sammāājīvo? Idha, bhikkhave, ariyasāvako micchāājīvaṁ pahāya sammāājīvena jīvitaṁ kappeti.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ājīvo.

Katamo ca, bhikkhave, sammāvāyāmo? Idha, bhikkhave, bhikkhu anuppannān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anuppād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uppannān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anuppannān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uppād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uppannānaṁ kusalānaṁ dhammānaṁ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vāyāmo.

Katamā ca, bhikkhave, sammāsati?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sati.

Katamo ca, bhikkhave, sammāsamādhi?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vuccati, bhikkhave, sammāsamādhi.

Idaṁ vuccati, bhikkhave,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ṁ.

Iti ajjhatta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ti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catūsu ariyasaccesu.

Saccapabbaṁ niṭṭhitaṁ.

Dhammānupassanā niṭṭhitā.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sattavassāni, tassa dvinnaṁ phalānaṁ aññataraṁ phalaṁ pāṭikaṅkhaṁ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upādisese anāgāmitā.

Tiṭṭhantu, bhikkhave, sattavassāni.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cha vassāni …pe… pañca vassāni  cattāri vassāni  tīṇi vassāni  dve vassāni  ekaṁ vassaṁ  tiṭṭhatu, bhikkhave, ekaṁ vassaṁ.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sattamāsāni, tassa dvinnaṁ phalānaṁ aññataraṁ phalaṁ pāṭikaṅkhaṁ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upādisese anāgāmitā. Tiṭṭhantu, bhikkhave, satta māsāni.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cha māsāni …pe… pañca māsāni  cattāri māsāni  tīṇi māsāni  dve māsāni  ekaṁ māsaṁ  aḍḍhamāsaṁ  tiṭṭhatu, bhikkhave, aḍḍhamāso. Yo hi koci, bhikkhave,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e evaṁ bhāveyya sattāhaṁ, tassa dvinnaṁ phalānaṁ aññataraṁ phalaṁ pāṭikaṅkhaṁ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upādisese anāgāmitāti.

Ekāyano ayaṁ, bhikkhave, maggo sattānaṁ visuddhiyā sokaparidevānaṁ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ṁ cattāro satipaṭṭhānā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n”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Mahāsatipaṭṭhānasuttaṁ niṭṭhitaṁ navamaṁ.

 

 

 

22. The Long Discourse about the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Summary

Thus I heard: at one time the Gracious One was dwelling amongst the Kurus near a market town of the Kurus named Kammāssadamma.

There the Gracious One addressed the monks (saying): “Monks!” “Venerable Sir!” those monks replied to the Gracious One, and the Gracious One said this:

“This is a one-way path, monks, for the purification of beings, for the overcoming of grief and lamentation, for the extinction of pain and sorrow, for attaining the right way, for the direct realisation of Nibbāna, that is to say, th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Which four?

Here,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feelings in feelings,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mind in the mind,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The Summary is Finished

Contemplation of the Body

The Section about In-breathing and Out-breathing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Here, monks, a monk who has gone to the wilderness, or has gone to the root of a tree, or has gone to an empty place, sits down. After folding his legs crosswise, setting his body straight, and establishing mindfulness at the front, being very mindful he breathes in, mindful he breathes out.

While breathing in long, he knows “I am breathing in long”, or, while breathing out long, he knows “I am breathing out long”; or, while breathing in short, he knows “I am breathing in short”, or, while breathing out short, he knows “I am breathing out shor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will breathe in, like this he trains,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will breathe out, like this he trains; calming the bodily process I will breathe in, like this he trains, calming the bodily process I will breathe out, like this he trains.

Just as, monks, a clever turner or turner’s apprentice while making a long turn knows “I am making a long turn”, or, while making a short turn knows “I am making a short turn”, just so, monks, a monk while breathing in long, knows “I am breathing in long”, or, while breathing out long, he knows “I am breathing out long”; or, while breathing in short, he knows “I am breathing in short”, or, while breathing out short, he knows “I am breathing out shor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will breathe in, like this he trains,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will breathe out, like this he trains; calming the bodily process I will breathe in, like this he trains, calming the bodily process I will breathe out, like this he train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ection about In-breathing and Out-breathing is Finished

The Section about the Postures

Moreover, monks, a monk while going knows “I go”; or, standing he knows “I am standing”; or, sitting he knows “I am sitting”; or, while lying down he knows “I am lying down”; or, in whatever way his body is disposed, he knows it is (disposed) in that way.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ection about the Postures is Finished

The Section about Full Awareness

Moreover, monks, a monk in going forwards, in going back, is one who practises with full awareness; in looking ahead, or in looking around, he is one who practises with full awareness; in bending or in stretching, he is one who practises with full awareness; in bearing his double-robe, bowl, and (other) robes, he is one who practises with full awareness; in eating, in drinking, in chewing, in tasting, he is one who practises with full awareness; in passing stool and urine, he is one who practises with full awareness; in going, in standing, in sitting; in sleeping, in waking; in talking, and in maintaining silence, he is one who practises with full awarenes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ection about Full Awareness is Finished

The Section about Applying the Mind to Repulsiveness

Moreover, monks, a monk in regard to this very body—from the sole of the feet upwards, from the hair of the head down, bounded by the skin, and full of manifold impurities—reflects (thus):

“There are in this body:

hairs of the head, body hairs, nails, teeth, skin,

flesh, sinews, bones, bone-marrow, kidneys,

heart, liver, pleura, spleen, lungs,

intestines, mesentery, undigested food, excrement,

bile, phlegm, pus, blood, sweat, fat,

tears, grease, spit, mucus, synovial fluid, urine.”

Just as though, monks, there were a bag open at both ends, full of various kinds of grain, such as: hill rice, white rice, mung beans, kidney beans, sesame seeds, chickpeas; and a man with good vision having opened it were to reflect (thus): “This is hill rice, this is white rice, these are mung beans, these are sesame seeds, these are chickpeas”; even so, monks, a monk in regard to this very body—from the sole of the feet upwards, from the hair of the head down, bounded by the skin, and full of manifold impurities—reflects (thus):

“There are in this body,

hairs of the head, body hairs, nails, teeth, skin,

flesh, sinews, bones, bone-marrow, kidneys,

heart, liver, pleura, spleen, lungs,

intestines, mesentery, undigested food, excrement,

bile, phlegm, pus, blood, sweat, fat,

tears, grease, spit, mucus, synovial fluid, urine.”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ection about Applying the Mind to Repulsiveness is Finished

The Section about Applying the Mind to the Elements

Moreover, monks, a monk, in regard to this very body, however placed, however disposed, reflects by way of the elements:

“There are in this body, the earth element, the water element, the fire element, the wind element.”

Just as though, monks, a clever butcher, or a butcher’s apprentice, after slaughtering a cow, were sitting down at a crossroads after dividing it into portions; even so, monks, a monk in regard to this very body, however placed, however disposed, reflects by way of the elements:

“There are in this body, the earth element, the water element, the fire element, the wind element.”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ection about Applying the Mind to the Elements is Finished

The Section about the Nine Charnel Grounds

The First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dead for one day, or dead for two days, or dead for three days, bloated, discoloured, having become quite rotten.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First Charnel Ground)

The Second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being eaten by crows, or being eaten by hawks, or being eaten by vultures, or being eaten by dogs, or being eaten by jackals, or being eaten by various kinds of worms.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econd Charnel Ground)

The Third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a skeleton, with flesh and blood, bound together by tendons.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Third Charnel Ground)

The Fourth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a skeleton, without flesh, smeared with blood, bound together by tendons.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Fourth Charnel Ground)

The Fifth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a skeleton, no longer having flesh and blood, bound together by tendons.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Fifth Charnel Ground)

The Sixth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with bones no longer bound together, scattered in all directions, with a hand-bone here, with a foot-bone there, with a knee-bone here, with a thigh-bone there, with a hip-bone here, with a bone of the back there, with the skull here.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ixth Charnel Ground)

The Seventh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having white bones, like the colour of a conch.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Seventh Charnel Ground)

The Eighth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a heap of bones more than a year old.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Eighth Charnel Ground)

The Ninth Charnel Ground

Moreover, monks, it’s as if a monk might see a body thrown into a charnel ground, rotten bones that have become like powder. He then compares it with his very own body (thinking):

“This body also has such a nature, has such a constitution, has not gone beyond thi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body,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body,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body”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The Ninth Charnel Ground)

The Fourteen Contemplations of the Body are Finished

Contemplation of Feelings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feelings in feelings?

Here, monks, a monk when experiencing a pleasant feeling; knows “I experience a 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n un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n un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 neither-unpleasant-nor-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 neither-unpleasant-nor-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 sensual 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 sensual 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 spiritual 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 spiritual 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 sensual un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 sensual un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 spiritual un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 spiritual un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 sensual neither-unpleasant-nor-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 sensual neither-unpleasant-nor-pleasant feeling”; or, when experiencing a spiritual neither-unpleasant-nor-pleasant feeling he knows “I experience a spiritual neither-unpleasant-nor-pleasant feeling”.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feelings in feelings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feelings in feelings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feelings in feelings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feel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feel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feelings,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are feelings”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feelings in feelings.

Contemplation of Feelings is Finished

Contemplation of the Mind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mind in the mind?

Here, monks, a monk when a mind has passion knows “the mind has passion”, or when a mind is without passion he knows “the mind is without passion”; or when a mind has hate he knows “the mind has hate”, or when a mind is without hate he knows “the mind is without hate”; or when a mind has delusion he knows “the mind has delusion”, or when a mind is without delusion he knows “the mind is without delusion”; or when a mind is collected he knows “the mind is collected”, or when a mind is scattered he knows “the mind is scattered”; or when a mind has become very great he knows “the mind has become very great”, or when a mind has not become very great he knows “the mind has not become very great”; or when a mind is surpassable he knows “the mind is surpassable”, or when a mind is unsurpassable he knows “the mind is unsurpassable”; or when a mind is concentrated he knows “the mind is concentrated”, or when a mind is not concentrated he knows “the mind is not concentrated”; or when a mind is liberated he knows “the mind is liberated”, or when a mind is not liberated he knows “the mind is not liberated”.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mind in the mind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mind in the mi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mind in the mind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e mind,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e mind,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e mind,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is a mind”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the nature of) the mind in the mind.

Contemplation of the Mind is Finished

Contempl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The Section about the Hindrances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Here,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ive hindrances.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ive hindrances?

Here, monks, a monk having sensual desire in himself knows “there is sensual desire in myself”; or, not having sensual desire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sensual desire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sensual desire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sensual desire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bandoned sensual desire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aving ill-will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ill-will in myself”; or, not having ill-will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ill-will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ill-will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ill-will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bandoned ill-will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aving sloth and torpor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sloth and torpor in myself”; or, not having sloth and torpor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sloth and torpor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sloth and torpor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sloth and torpor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bandoned sloth and torpor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aving agitation and worry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agitation and worry in myself”; or, not having agitation and worry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agitation and worry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agitation and worry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agitation and worry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bandoned agitation and worry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aving doubt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doubt in myself”; or, not having doubt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doubt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doubt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doubt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bandoned doubt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ings,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are these (various) things”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ive hindrances.

The Section about the Hindrances is Finished

The Section on the Constituents (of Mind & Matter)

Moreover,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iv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at provide fuel for attachment.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iv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at provide fuel for attachment?

Here, monks, a monk (knows): “such is form, such is the origination of form, such is the passing away of form; such is feeling, such is the origination of feeling, such is the passing away of feeling; such is perception, such is the origination of perception, such is the passing away of perception; such are (mental) processes, such is the origination of (mental) processes, such is the passing away of (mental) processes; such is consciousness, such is the origination of consciousness, such is the passing away of consciousnes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ings,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are these (various) things”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iv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at provide fuel for attachment.

The Section on the Constituents is Finished

The Section on the Sense-Spheres

Moreover,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six internal and external sense-spheres.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six internal and external sense-spheres?

Here, monks, a monk knows the eye, and he knows forms; and the fetter that arises dependent on the pair of them—that also he knows. How there is an arising of a fetter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a fetter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n abandoned fetter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e knows the ear, and he knows sounds, and the fetter that arises dependent on the pair of them—that also he knows. How there is an arising of a fetter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a fetter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n abandoned fetter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e knows the nose, and he knows smells, and the fetter that arises dependent on the pair of them—that also he knows. How there is an arising of a fetter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a fetter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n abandoned fetter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e knows the tongue, and he knows tastes, and the fetter that arises dependent on the pair of them—that also he knows. How there is an arising of a fetter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a fetter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n abandoned fetter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e knows the body, and he knows tangibles, and the fetter that arises dependent on the pair of them—that also he knows. How there is an arising of a fetter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a fetter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n abandoned fetter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He knows the mind, and he knows thoughts, and the fetter that arises dependent on the pair of them—that also he knows. How there is an arising of a fetter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an abandonment of a fetter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and how there is a non-arising of an abandoned fetter again in the future—that also he know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ings,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are these (various) things”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six internal and external sense-spheres.

The Section on the Sense-Spheres is Finished

The Section about the Factors of Awakening

Moreover,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seven factors of Awakening.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seven factors of Awakening?

Here, monks, a monk having the Mindful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knows “there is the Mindful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or, not having the Mindful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Mindful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the Mindful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fulfilment of the development of the Mindful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arisen—; that also he knows.

Having the Investig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the Investig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or, not having the Investig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Investig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the Investig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fulfilment of the development of the Investig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arisen (until) it comes to fulfilment—that also he knows.

Having the Energ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the Energ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or, not having the Energ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Energ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the Energ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fulfilment of the development of the Energ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Having the Joyful-Interest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the Jo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or, not having the Joyful-Interest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Joyful-Interest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the Joyful-Interest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fulfilment of the development of the Joyful-Interest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arisen—; that also he knows.

Having the Calm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the Calm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or, not having the Calm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Calm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the Calm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fulfilment of the development of the Calmness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Having the Concentration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the Concentration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or, not having the Concentration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Concentration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the Concentration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fulfilment of the development of the Concentration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Having the Equanimit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the Equanimit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or, not having the Equanimit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himself he knows “there is no Equanimit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in myself”. How there is an arising of the Equanimit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not arisen—that he knows; and how there is fulfilment of the development of the Equanimity factor of Complete Awakening that has arisen—that also he knows.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ings,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are (various) things”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seven Factors of Awakening.

The Section about the Factors of Awakening is Finished

The Section about the Four Truths

Moreover,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our Noble Truths.

And how, monks, does a monk dwell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our Noble Truths?

Here, monks, a monk knows as it really is “this is Suffering”, he knows as it really is “this is the Origination of Suffering”, he knows as it really is “this is the Cessation of Suffering”, he knows as it really is “this is the Practice Leading to the Cessation of Suffering”.

The Truth of Suffering

Now what, monks, is the Noble Truth of Suffering?

Birth is suffering also old age is suffering also death is suffering also grief, lamentation, pain, sorrow, and despair, is suffering also being joined to what is not liked is suffering, also being parted from what is liked is suffering, also not to obtain that which one longs for is suffering in brief, the fiv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at provide fuel for attachment are suffering.

Now what, monks, is birth?

For the various beings in the various classes of beings (there is) birth, being born, appearing, turning up; the manifestation of th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e acquisition of the sense spheres: this, monks, is called birth.

Now what, monks, is old age?

For the various beings in the various classes of beings there is old age, agedness, broken teeth, greying hair, and wrinkled skin; the dwindling away of the life span, the decay of the sense faculties: this, monks, is called old age.

Now what, monks, is death?

For the various beings in the various classes of beings there is a fall, a falling away, a breaking up, a disappearance, a dying, a death, a making of time; the break up of th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e throwing off of the body; the cutting off of the life faculty: this, monks, is called death.

Now what, monks, is grief?

For he who has, monks, some sort of misfortune or other, who is touched by some sort of painful thing or another, there is grief, grieving, the state of grieving, inner grief, great inner grief: this, monks, is called grief.

Now what, monks, is lamentation?

For he who has, monks, some sort of misfortune or other, who is touched by some sort of painful thing or another, there are laments, great laments, lamenting, great lamenting, the state of lamenting, the state of great lamentation: this, monks, is called lamentation.

Now what, monks, is pain?

That, monks, which is bodily pain, bodily disagreeableness, pain born of contact with the body, disagreeable feeling: this, monks, is called pain.

Now what, monks, is sorrow?

That, monks, which is mental pain, mental disagreeableness, pain born of contact with the mind, disagreeable feeling: this, monks, is called sorrow.

Now what, monks, is despair?

For he who has, monks, some sort of misfortune or other, who is touched by some sort of painful thing or another, there is desponding, despairing, the state of despondency, the state of despair: this, monks, is called despair.

And what, monks, is the suffering from being joined to what is not liked?

Here, for that one who has unwanted, unlovely, unpleasant forms, sounds, smells, tastes, tangibles, and thoughts; or, for that one who has those who do not desire his welfare, benefit, comfort and security—(and then) having meetings, assembly, connection, and interaction with them: this, monks, is called the suffering from being joined to what is not liked.

And what, monks, is the suffering from being parted from what is liked?

Here, for that one who has wanted, lovely, pleasant forms, sounds, smells, tastes, tangibles, and thoughts; or, for that one who has those who do desire his welfare, benefit, comfort and security—mothers, or fathers, or brothers, or sisters, or friends, or companions, or blood relatives—(and then) not having meetings, assembly, connection, and interaction with them: this, monks, is called the suffering from being parted from what is liked.

Now what, monks, is the suffering from not obtaining what one longs for?

To those beings subject to birth, monks, a longing like this arises: “Oh, might we not be subject to birth, may birth not come to us!” But that cannot be attained merely by longing for it: this is the suffering from not obtaining what one longs for.

To those beings subject to old age, monks, a longing like this arises:

“Oh, might we not be subject to old age, may old age not come to us!” But that cannot be attained merely by longing for it: this is the suffering from not obtaining what one longs for.

To those beings subject to sickness, monks, a longing like this arises:

“Oh, might we not be subject to sickness, may sickness not come to us!” But that cannot be attained merely by longing for it: this is the suffering from not obtaining what one longs for. To those beings subject to death, monks, a longing like this arises: “Oh, might we not be subject to death, may death not come to us!” But that cannot be attained merely by longing for it: this is the suffering from not obtaining what one longs for.

To those beings subject to grief, lamentation, pain, sorrow, and despair, monks, a longing like this arises:

“Oh, might we not be subject to grief, lamentation, pain, sorrow, and despair, may grief, lamentation, pain, sorrow, and despair, not come to us!” But that cannot be attained merely by longing for it: this is the suffering from not obtaining what one longs for.

Now what, monks, in brief, are the fiv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at provide fuel for attachment which are suffering?

They are as follows:

the form constituent that is fuel for attachment

the feelings constituent that is fuel for attachment

the perceptions constituent that is fuel for attachment

the (mental) processes constituent that is fuel for attachment

the consciousness constituent that is fuel for attachment.

These, monks, are called, in brief, the five constituents (of mind and body) that provide fuel for attachment which are suffering.

This, monks, is called the Noble Truth of Suffering.

The Truth of Origination

And what, monks, is the Noble Truth of the Origination of Suffering?

It is that craving which leads to the continuation of existence, which is connected with enjoyment and passion, greatly enjoying this and that, as follows:

craving in regard to sense pleasures

craving in regard to the continuation of existence

craving in regard to the discontinuation of existence.

Now where, monks, does that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 When settling where does it settle?

In the world there is that which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And in the world what is likeable and pleasing?

In the world the eye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e ear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e nose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e tongue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e body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e mind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form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sound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smell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aste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angible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ought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eye-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ear-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nose-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ongue-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body-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mind-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ey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ear-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nos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ongu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body-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mind-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ey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ear-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nos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tongu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body-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mind-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craving for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craving for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craving for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craving for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craving for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craving for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arising arises, here when settling it settles.

This, monks, is called the Noble Truth of the Origination of Suffering.

The Truth of Cessation

And what, monks, is the Noble Truth of the Cessation of Suffering?

It is the complete fading away and cessation without remainder of that craving—liberation, letting go, release, and non-adherence.

Now where, monks, is that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actually) abandoned? When ceasing, where does it cease?

In the world there is that which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And in the world what is likeable and pleasing?

In the world the eye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e ear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e nose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e tongue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e body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is world the mind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is world form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is world sound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smell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aste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angible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oughts are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eye-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ear-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nose-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ongue-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body-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mind-consciousnes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ey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ear-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nos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ongu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body-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mind-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ey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ear-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nos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tongue-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body-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feeling born of mind-contact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perception of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intention in regard to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craving for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craving for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craving for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craving for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craving for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craving for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thinking about thought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form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sound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smell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tast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tangible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In the world an examination of thought s is likeable and pleasing—here this craving when it is being abandoned is abandoned, here when ceasing it ceases.

This, monks, is called the Noble Truth of the Cessation of Suffering.

The Truth of the Path

Now what, monks, is the Noble Truth of the Practice Leading to the Cessation of Suffering?

It is this noble path with eight factors, as follows: right view, right thought, right speech, right action, right livelihood right endeavour, right mindfulness, right concentration.

Now what, monks, is right view?

That, monks, which is knowledge about suffering knowledge about the origination of suffering knowledge about the cessation of suffering knowledge about the practice leading to the cessation of suffering.

This, monks, is called right view.

Now what, monks, is right thought?

The thought of renunciation, the thought of good-will, the thought of non-violence.

This, monks, is called right thought.

Now what, monks, is right speech?

Refraining from false speech refraining from malicious speech refraining from rough speech refraining from frivolous talk.

This, monks, is called right speech.

Now what, monks, is right action?

Refraining from killing living creatures refraining from taking what has not been given refraining from sexual misconduct.

This, monks, is called right action.

Now what, monks, is right livelihood?

Here, monks, a noble disciple, having abandoned a wrong way of livelihood, makes his living by a right way of livelihood.

This, monks, is called right livelihood.

Now what, monks, is right endeavour?

Here, monks, a monk regarding bad and unwholesome thoughts that have not yet arisen generates desire for their non-arising, (in this regard) he endeavours, instigates energy, exerts his mind, and makes an effort.

Regarding bad and unwholesome things that have already arisen he generates desire for their abandonment, (in this regard) he endeavours, instigates energy, exerts his mind, and makes an effort.

He generates desire for the arising of wholesome things that have not yet arisen, (in this regard) he endeavours, instigates energy, exerts his mind, and makes an effort.

Regarding wholesome things that have arisen he generates desire for their endurance, persistence, multiplication, extension, development, and fulfilment, (in this regard) he endeavours, instigates energy, exerts his mind, and makes an effort.

This, monks, is called right endeavour.

Now what, monks, is right mindfulness?

Here,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body in the body,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feelings in feelings,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e mind in the mind,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ardent, fully aware, and mindful, after removing avarice and sorrow regarding the world.

This, monks, is called right mindfulness.

Now what, monks, is right concentration?

Here, monks, a monk, quite secluded from sense desires, secluded from unwholesome things, having thinking, reflection, and the happiness and joy born of seclusion, dwells having attained the first absorption.

With the calming down of thinking and reflection, with internal clarity, and one-pointedness of mind, being without thinking, without reflection, having the happiness and joy born of concentration, he dwells having attained the second absorption.

With the fading away of joy he dwells equanimous, mindful, fully aware, experiencing happiness through the body, about which the Noble Ones declare: “He dwells pleasantly, mindful, and equanimous,” he dwells having attained the third absorption.

Having abandoned pleasure, abandoned pain, and with the previous passing away of mental happiness and sorrow, without pain, without pleasure, and with complete purity of mindfulness owing to equanimity, he dwells having attained the fourth absorption.

This, monks, is called right concentration.

This, monks, is called the Noble Truth of the Practice Leading to the Cessation of Suffering.


Thus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regard to himself and in regard to other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dissolution in things, or he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origination and dissolution in things, or else mindfulness that “there are these (various) things” is established in him just as far as (is necessary for) a full measure of knowledge and a full measure of mindfulness, and he dwells independent, and without being attached to anything in the world.

In this way, monks, a monk dwells contemplating (the nature of) things in (various) things, in the Four Noble Truths.

The Section about the Four Truths is Finished

Contempl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is Finished

The Advantages of Developing the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Whoever, monks,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seven year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seven year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six year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six year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five year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five year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four year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four year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three year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three year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two year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two year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one year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one year,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seven month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seven month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six month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six month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five month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five month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four month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four month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three month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three month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two month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two months,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one month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a month,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half a month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Let alone half a month, monks, whoever should develop thes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n this way for seven days for him, out of two results, a particular result is to be expected final knowledge in this very life; or, there being some attachment remaining, the state of non-returner.

This is a one-way path, monks, for the purification of beings, for the overcoming of grief and lamentation, for the extinction of pain and sorrow, for attaining the right way, for the direct realisation of Nibbāna, that is to say, the four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Thus, whatever was said, it is for this reason it was said.”

The Gracious One said this, and those monks were uplifted and greatly rejoiced in what was said by the Gracious One.

The Advantages of Developing the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s Finished

The Long Discourse about the Ways of Attending to Mindfulness is Finished

 

 

 

 

 

https://suttacentral.net/dn22/pli/ms?layout=linebyline&reference=none&notes=none&highlight=undefined&script=la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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