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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생각mano과 감정citta의 차이

마노(생각,mano)와 찌따(감정,citta)의 차이

 

청정도론에서는 "알음알이(viññāṇa, )와 마음(citta, )과 마노(mano, )는 뜻에서는 하나이다.(viññāṇaṁ, cittaṁ mano ti atthato ekaṁ.)"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경전을 살펴보면 마노와 찌따는 맥락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감정(citta)은 일어나는 것이고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mano)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생각한다는 맞는 말이지만 나는 (나를)화나게 한다는 맞지 않는 말이다. “나에게 화가 일어났다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감정은 문법적으로 중성(中性)이다. 생각하는 방법을 바꿈으로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이 수행이다. -반테 뿐나지-

 

탐진치(貪瞋痴)에서 탐진(貪瞋)은 마음이고 치()는 생각이다. 탐진(貪瞋)이 모두 소멸되면 아나함, ()가 소멸되면 아라한, 그러나 처음 탐진(貪瞋)에도 치()의 일부가 있는데 그일부를 소멸하면 예류과, 그 치()의 일부를 10가지 족쇄에서는 유신견(sakkāya diṭṭhi) 의심(vicikicchā) 계금취견(sīlabbata-parāmāsa)라고 한다. 탐진(貪瞋)이 드러난 문제이기는 하나 사람이 바뀌려면 치()의 문제가 바뀌어야 하므로 치()의문제가 예류과의 관문이 되고 아라한의 관문이 되며 그래서 정견(正見)이 팡정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치()의 문제를 가장 중요시 하는데 탐진(貪瞋)의 문제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탐진(貪瞋)과 치()의 문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탐진(貪瞋)의 문제가 풀린 사람은 견해가 날카롭고 견해가 바른 사람은 탐진(貪瞋)의 문제도 엺어진다.

이러한 단계를 잘 알아 탐진(貪瞋,마음)의 문제와 치(,생각)의 문제를 나누어서 보고 순서대로 보고 합하여 보면은 깊고 예리한 상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이 디가니까야에서 가장 먼저 말했던 법망경(Brahmajālasutta)이나 맛지마니까야 에서 가장 먼저 말한 뿌리에 대한 법문(Mūla­pariyā­ya­sutta)이 모두 인식과 견해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영지(靈知)의 일부 경(A2:3:10)에서는 이 탐진(貪瞋,마음)과 치(痴,생각)를 각각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탐욕에 오염된 마음(rāgupakkiliṭṭhaṃ cittaṃ)과 무명에 오염된 통찰지( avijjupakkiliṭṭhā paññā)라는 용어도 눈여겨 봐야한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영지(靈知)의 일부이다. 무엇이 둘인가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마음이 개발된다.

마음이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욕망이 제거된다.

“dve 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samatho, bhikkhave, bhāvito kamattha manubhoti? 

cittaṃ  bhāvīyati.  cittaṃ bhāvitaṃ kamatthamanubhoti? yo rāgo so pahīyati.

 

비구들이여, 위빳사나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통찰지가 개발된다.

통찰지가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무명이 제거된다.”

vipassanā, bhikkhave, bhāvitā kamatthamanubhoti? paññā bhāvīyati. 

paññā bhāvitā kamatthamanubhoti?  avijjā  pahīyati. 

탐욕에 오염된 마음(rāgupakkiliṭṭhaṃ cittaṃ)은 해탈하지 못하고 무명에 오염된 통찰지( avijjupakkiliṭṭhā paññā)는 개발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탐욕이 제거되어 마음의 해탈[心解脫cetovimutti]이 있고,

무명이 제거되어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paññāvimuttī]이 있다.”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paññā bhāvīyati. 
iti kho, bhikkhave, rāgavirāgā cetovimutti,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ī””ti.

 

그들은 몸으로 짓는 선행과 말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들을 피하고 몸으로 짓는 악행(kāyaduccaritaṃ,)과 말로 짓는 악행(vacīduccaritaṃ)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manoduccaritaṃ)의 세 가지 해로운 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yamidaṃ  kāyasucaritaṃ, vacīsucaritaṃ, manosucaritaṃ—ime tayo kusale dhamme abhinivajjetvā  yamidaṃ kāyaduccaritaṃ, vacīduccaritaṃ, manoduccaritaṃ—ime tayo akusale 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확실한 가르침 경 (M60)

 

 

도반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이 몸의 작용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말의 작용이고, 인식과 느낌이 마음의 작용(cittasaṅkhāro)입니다. 도반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은 몸에 속하며 이 법들은 몸에 계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들숨과 날숨은 몸의 작용입니다. 도반 위사카여, 먼저 생각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나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말의 작용입니다. 인식과 느낌은 마음부수입니다. 이 법들은 마음에 계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식과 느낌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Assāsapassāsā kho, āvuso visākha, kāyasaṅkhāro,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saññā ca vedanā ca cittasaṅkhāro”ti. “Kasmā panāyye, assāsapassāsā kāyasaṅkhāro, kasmā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kasmā saññā ca vedanā ca cittasaṅkhāro”ti?

 

 

도반이여, 욕망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진 사람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욕망을 제거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Mūḷho kho, āvuso, mo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kāyena duccaritaṃ carati, vācāya duccaritaṃ carati, manasā duccaritaṃ carati; mohe pahīne neva kāyena duccaritaṃ carati, na vācāya duccaritaṃ carati, na manasā duccaritaṃ carati.찬나 경(A3:71)

 

 

 

󰡒따빳시여, 이렇게 분류하고 이렇게 구별한 세 가지 업 가운데서 마음의 업(manokammaṃ) 악업을 짓고 악업을 행함에 있어 가장 비난받아야 할 것이라고 나는 설한다. 몸의 업도 그 정도는 아니고, 말의 업도 그 정도는 아니다.󰡓 “Imesaṃ kho ahaṃ, tapassi, tiṇṇaṃ kammānaṃ evaṃ paṭi­vibhat­tā­naṃ evaṃ paṭi­visiṭ­ṭhā­naṃ manokammaṃ mahā­sā­vajja­ta­raṃ paññapemi pāpassa kammassa kiriyāya pāpassa kammassa pavattiyā, no tathā kāyakammaṃ, no tathā vacīkamman”ti.우빨리 경 (M56)

 

 
 
 

마음에 의해 세상은 인도되고 마음에 의해 끌려 다니노라.

마음이라는 하나의 법에 의해 모든 것은 지배되노라.”

Cittena nīyati loko, cittena parikassati,

Cittassa ekadhammassa sabbe va vasam-anvagū.

마음 경(S1:62)

 

 

 배우지 못한 자 경1(S12:61)Assutavā-sutta
1. <사왓티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서> [94]
3.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도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벗어나려 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은 활기찰 때도 있고 의기소침할 때도 있고 받을때도 있고 내려놓을 때도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지 못한 범부도 여기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벗어나려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배우지 못한 범부는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에 대해서 염오(厭惡)할 수 없고 이탐(離貪)할 수 없고 해탈할 수 없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오랫동안 이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움켜쥐고 내 것으로 삼고 집착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여기에 대해서 염오할 수 없고 탐욕이 빛바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 …

Yañcakhoetaṁ,bhikkhave,vuccaticittaṁitipi,manoitipi,viññāṇaṁitipi, tatrāssutavā puthujjano nālaṁ nibbindituṁ 

nālaṁ virajjituṁ nālaṁ vimuccituṁ. Taṁ kissa hetu? Dīgharattañhetaṁ, bhikkhave, assutavato puthujjanassa 

ajjhositaṁ mamāyitaṁ parāmaṭṭhaṁ: ‘etaṁ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Tasmā tatrāssutavā puthujjano nālaṁ 

nibbindituṁ nālaṁ virajjituṁ nālaṁ vimuccituṁ.

 

그러나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낮이건 밤이건 생길 때 다르고 소멸할 때 다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원숭이가 숲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돌아다니면서 이 나뭇가지를 잡았다가는 놓아버리고 다른 나뭇가지를 잡고 그 나뭇가지를 놓아버리고 다른 나뭇가지를 잡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낮이건 밤이건 생길 때 다르고 소멸할 때 다르다."
Varaṁ,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imaṁ cātumahābhūtikaṁ kāyaṁ attato upagaccheyya, na tveva cittaṁ. 

Taṁ kissa hetu? Dissatāyaṁ, bhikkhave, cātumahābhūtiko kāyo ekampi vassaṁ tiṭṭhamāno dvepi vassāni tiṭṭhamāno

 tīṇipi vassāni tiṭṭhamāno cattāripi vassāni tiṭṭhamāno pañcapi vassāni tiṭṭhamāno dasapi vassāni tiṭṭhamāno vīsatipi 

vassāni tiṭṭhamāno tiṁsampi vassāni tiṭṭhamāno cattārīsampi vassāni tiṭṭhamāno paññāsampi vassāni tiṭṭhamāno 

vassasatampi tiṭṭhamāno, bhiyyopi tiṭṭhamāno. Yañca kho etaṁ, bhikkhave, vuccati cittaṁ itipi, mano itipi, viññāṇaṁ itipi, 

taṁ rattiyā ca divasassa ca aññadeva uppajjati aññaṁ nirujjhati.

 

 

5장 바르게 놓이지 않음 품(A1:5:1~10)

 

8.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9.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에 의해 오염되었다.”

10.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다.”

 

 

 

 

https://youtu.be/Y5ljJTehdo8

 

 

 

 

 

https://youtu.be/WVyVLFe5974

 

 

 

 

 

Citta2(‹citSkcittaorigppof cinteticit),the heart psychologically)),想法NomcittaṁGen.(Dat.cetaso 44& cittassa 9); Instrcetasā 42& cittena 3); Loccitte 2& cittamhi 2).-- NomcittaṁGencittassa only of older passagesin c° upakkileso S III.232V.92A I.207c° damatho & c° vasenaInstrcittena cittena nīyati loko).Loccittesamāhite citte); cittamhi only S I.129 & cittasmiṁ-- Plural only in Nomcittāni āsavehi cittāni vimucciṁsuthey purified their hearts from intoxications”cittakkhepa,【發狂思想擾亂cittajaṭṭhamakarūpa﹐【心生八法聚cittapassaddhi,【心輕安心平靜cittamudutā,【心柔軟性心的可塑性cittavikkhepa,【瘋狂cittasantāpa,【悲傷cittasamatha,【心鎮定cittanupassanā,【心評論cittābhoga,【考慮cittujjukatā,【citta的正直性cittuttrāsa,【恐怖恐懼cittuppāda,【心生起cittakāgatacittaikāgrata心一境性SA.4.25.Suvimuttacittoti arahattaphalavimuttiyā suṭṭhu vimuttacitto.心得善解脫阿羅漢果解脫是善心解脫)。DhsA.CSp.92Cintanaṭṭhena cittāvicittaṭṭhena vā cittā.以思想之義以考慮之義。)

 

 

Mano,(mana 的詞形manokamma意業manojava,【如心意一般地迅速manoduccarita,【惡意manodvāra,【意門manodhātu,【】(十八界的意界manopadosa,【惡意manopasāda,【信仰的心意manopubbaṅgama,【心意所領導的manomaya,【心造的((AA114.):manomayanti manena nibbattitaṁ.(心意所生已於心產生。))。manoratha,【心願manorama,【令人愉快的manoviññāṇa,【意識manoviññeyya,【由心意去了解的manovitakka,【心思manohara,【迷人的manomayaṁ kāyaṁ意生天“kaṁ pana tvaṁUdāyimanomayaṁ kāyaṁ paccesī”ti? “Ye tebhantedevā arūpino saññāmayā”ti.(世尊向烏陀夷說:)「烏陀夷你以為意生天是什麼?」(烏陀夷答:)「大德他們是想所成就之無色諸天。」

 

 

 

Viññāṇa(‹vi+ ñājñācpVedic vijñāna cognition),精神意識)。viññāṇaka,【有意識的生命viññāṇakkhandha,【識蘊精神的組合)。viññāṇaṭṭhiti,【有意識的生物的階段或時期viññāṇadhātu,【識界識元素)。apeta-viññāṇo,【已離開意識識MA9/I209.︰Viññāṇanti yaṁkiñci cittaṁ.(意識)︰任何的。) SA1211/II24.︰Viññāṇanti cittaṁ.(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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