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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윤회 외 자작시 모음

 


윤회

 

여기 내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거울 쪽으로 걸어간다

 

낯선 얼굴

거기에 있다 

내가 웃으면 그도 따라 웃지만

평생을 쳐다 보아도

정들지 않는다

 

그와 함께 걸어온 길

부정할 수 없는데

왜 나는

그가 아닌가

 

이것이 윤회리라

함께 걷지만

함께 울지는 못 하는

너와 나

 

 

 

답하지 마라

 

행복한가

답하지 마라

그렇게 물으면 불행해져

행복은 느낌일 뿐

느낌을 떠난 그 자리를 뭐라 할래

 

왜 사는가

답하지 마라

그런걸 답하면 불행해져

구름은 방향없이 흐르고

강물은 바다를 향하고 있지 않다

 

행복이 무엇이든

사는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이 정의 하는 것

자신이 한계 짓는 것

 

잘못된 물음은

질문하는 이를

가시덤불로 이끌고

 

잘못된 대답은

미류나무에 펄럭이는 비닐처럼

이유도 모르게 울게 하나니

 

다만 이렇게 물어라

오늘 차 한잔 어때

 

 

 

 

 

 

사 랑

 

너를

잊혀진 너를

떠올리면

가슴에

탑하나 들어온다

 

나는

탑을 스치는

바람이었다가

탑을 울리는

풍경이 이었다가

찰주(刹柱)

내려앉은

한마리 새

였다가

 

 

윤회의 길을 돌아

뒷 걸음치던 서름

바람속으로 사라진

무성한 소문

다짐처럼 붉은

홍시 한점

 

너를

떠올리면

가슴에 탑하나

둥 둥

떠다닌다

 

 

* 익산 왕궁리 석탑에서 쓰다

 

 

 

 

 

 

 

작별

 

따듯한 차를

마셨네

오랜벗들과 인사동에서

 

기억할만한 시간

세월이 지나서

예정되지 않아서

그리움이 깊어서

더 따듯했지

 

놀라워라

세월의 오솔길을

저마다 걸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다다랐네

 

환한 웃음

박수와 환호에

우리가 잊어버린건

임종게만은 아니었네

 

종각역에서

그대들에게 손을 흔들고

기차에서 다시

안부를 묻네

 

차향은 아직

입안에 남았는데

하나 둘 셋

안녕

 

 

 

 

 

 

 

 

마천 목욕탕

 

지리산 사내들이

발가벗고 물속에 모였다

눈으로 나누는 정겨운 인사

 

마천 흙돼지식당

추성리 이장

도마마을 털보 김씨

금대암 시님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정겹다

 

입석에서 토종꿀도 따고 고사리도 키우는 박씨가

원형의 때밀이 판에 때를 밀고있다

아까워 어떡한댜

막국수 말아 먹어도 되겄네

한바탕 웃음이 출렁인다

 

빼빼마른 매동마을 김노인은

구석에서 혼자 때를 민다

평생을 닦아온 몸뚱아리

죽어서도

때가 나올 모양이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

흐린 눈앞에서

사내들의 말소리도 느려진다

뿌연 거울 아래

몸뚱아리들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마천 마을의 오후는

느릿하게 흘러 간다

 

 

 

 

 

 

 

 

 

 

 

안경

 

밥 알속에 섞여나온 이빨조각

작년에 임플란트 세개 했는데

이번에는 윗니가 깨졌네

 

시린 마음까지 덮어줄

무릎 덮개가 필요한 시절

초롱하던 두 눈은 침침해져

안경 너머로 예고도 없이

내것 아닌 눈물이 흐른다

 

이럴 때 생각나는 건

아흔이 가까운 고향의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시간을 살아낼 뿐

내 삶으로 들어와 위안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우리는 서로

태양과 달처럼 끌어다니지만

여전히 태양과 달만치 떨어져 있지 않은가

 

나는 차라리 나보다 늙은 노인을

걱정하는 노인이 되는게 옳다

 

삼년후에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어머니와 집을 떠나던 열여덟 소년의 새벽

그 소년은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보람없이 무너지는 몸뚱아리를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서든

울 준비는 되어있다

누구의 울음으로도

잊혀지거나 반납 할 수 없으니

날마다 눈물로

내가 내 얼굴을 닦을 수 밖에

 

 

 

 

 

 

시인이 되지 못한 이유

 

시인을 만났어 멋져보였지

나는 그만

등단하겠다고 말했어

실수였지

내가 왜 시를 쓸 수 없었는지를

잠시 망각 했어

 

시어(詩語)의 신비감과 황홀함을

나는 그저 감정의 사치

혹은 찌꺼기라고 생각하였는데

이성의 날카로운 칼날 앞에서

한발 더 나아가라

늘 나에게 말해왔는데

 

이제와서

울고웃는 감정의 도가니에

스스로 빠지겠다니

 

왜 시인을 멋있다고 생각했을까

없는 꿈을꾸지 않겠다는 말에 잠깐

혼미해졌나봐

그게 의미없는 말이라는 걸

 

말은 그렇게 늘어 놓아도 된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시는 평지의 파도

인적없는 호숫가의 파문

이유 없는 한숨

 

등단을 포기해야 겠어

인사말도 생각해 놓았는데

이것 말고도 포기한 것이 많으니

이까짓거 포기하는게 뭐 어때

대충 여기까지

시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들이대는 것으로

시를 썼네

 

 

 

 

 

 

 

 

안부

 

모든 종교는 영원을 약속하고

모든 사랑은 영원을 맹세하고

우리의 인사는 건강하시라

 

살아있기에 살아있는 거라서

눈 뜨고 있기에

눈 뜨고 있는 거라서

한번도 영원을 경험하지 못하여

가야할 길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의 약속은 간절하고

맹세는 애닯다

 

찬양하는 기쁨속에서 눈물이 솟고

웃음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나니

불꽃속으로 달려가는 나비처럼

달려서 뛰어서 날아서

 

나뭇가지 꺽이듯 툭

그대 떠난 날

낮잠에서 깨어나 묻는다

여기가 어디

나는 누구

 

어떤 종교는 영원을 약속하고

어떤 사랑은 영원을 맹세하나니

그대 건강 하시라

 

 

 

 

 

단풍

 

어딘가에 지금도

제목이 없는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

소리칠수록 잦아드는 말

소리는 말이 되고서도

떨림으로 낙하한다

 

어딘가에 지금도

길가는 사람을 향해 팔 벌리는

사람이 있다

가슴에 안기는 그대도

눈으로 품는 세상도

서리처럼 차갑다

 

어딘가에 지금도

아릅답다 단풍을 찬양하는

시인이 있다

단풍을 우러르는 것은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며

연약함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

 

 

누구 앞에서 맘껏 울어 본적이 없기에

시인은 단풍

그 후를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잎새가 되고서도

어떤 자세여야 할까

낙하를 고민한다

 

목놓아 울어야 할 때를 놓치지 말 것

차라리 어차피 어쨌든 아무튼

그렇게 떨겠거니

미리 울음을 준비하라

 

 

 

 

 

 

 

()

 

저요 저요

초등학교 2학년 4반 아이들처럼

손을 번쩍 들어 소리치는

시끄럽고 즐거운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아침 출근길

콩나물 지하철 밖으로 우수수 쏱아져

사람도 자유롭고

지하철도 텅 비워지는

그런 시를

 

태풍이 지나고

찰랑 찰랑 흙탕물이 넘쳐흘러

온 잡동사니가 떠내려 가듯

착각과 근심 죄다 떠내려가게 하는

그런 시를

 

획 획 던진 칼날이 탁 탁 과녁에 박히듯

사람들 마음에 꽂히는

누구도 빼어 낼 수 없는

그런 시를

 

도끼로 통나무를 쫙쫙 쪼개서

갈라진 상큼한 참나무의 속살같은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자화상

 

그는 낯선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시를 썼다

 

그냥 왔다간다 라는

묘비명 대신에 환하게

웃는 사진이 걸렸다

 

젊은 날에 일찌감치

치매에 걸려

꼭 불행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쁨의 숲에서

 

공양이 끝나면

둥지를 찾아가는 새처럼

스님네가 다각실에 모여드네

 

작설차 보이차 작두콩차

팽주가 우려낸 찻잔을 들고

참나무 서어나무를 닮은 그들은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지

 

웅숭하니 차맛이 깊네요

차에서 가을 냄새가 납니다

 

팽주에게 한마디씩

차맛을 칭찬하는 말을 건네면

한 바탕 피어나는 웃음꽃

 

입안에 남아있는 차향을 품고

방으로 산으로 흩어지네

 

암자의 백호능선을 따라

소나무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

우리만 아는 기쁨의 숲

 

감각적욕망을 내려놓은 그들의 모습은

향기로운 굴참나무를 닮았고

가난을 즐기는 맑은 얼굴은

구절초 꽃을 닮았네

 

가을 날의 오솔길

울긋불긋 눈앞이 환하고

구부러진 고요한 길

하늘 하늘 기쁨이 솟아나네

 

만족을 아는 저 스님네

향기로운 나무처럼 당당하고

수줍은 꽃처럼 흔들리네

 

 

 

 

 

 

 

시는

 

시는

기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보여주며

 

시는

문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여주며

 

시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결심을 보여주며

 

시는

결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보여준다

 

시는

무심(無心)을 보여준다

숨을 수 없다

 

 

 

 

 

 

 

 

나는

 

나는 나를 떠날 수 없다
산 꼭대기에 올라도 바닷속에 숨어도
어디를 가든 

게다가 
나는 나에게 돌아갈 수 없다
오랫세월 이 만큼 

몸뚱이를 불리고 
팔다리를 키워 왔으나
그 눈 코 귀가 달린 얼굴이 
나는 아니었다


거울속에 나타나는 그를
한번도 

나라고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나는 촛불처럼 빛났고
앵무새처럼 명랑했으나
거기에 나는 없었으므로


이상하지
묻는자는 되어도
대답하는 자는 되지 못한다

 

 

 

 

가을

 

환한 단풍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하나둘 떨어지는 그 잎새들을 보거나

바람에 흩날릴때는 감정이 없지 않으리

 

단풍을 아릅답다 찬양하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

받아들이지 않으면 추해지므로

선수끼리 왜그래

하는 훈수 혹은 농담 아니겠나

품위를 지키라는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도

체면 차리기는

마찬가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날

나는 정녕 무엇을 해야하나

목놓아 울음 우는게 솔직하다 할 것이나

이 때 솔직은 또 뭐람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새처럼

그렇게 떨겠거니

죽음이여 오라

울음은 준비되었다

 

  

 

 

 

비폭력 대화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면

한결 가벼워져

 

고통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나

온 생동안 따라다니니

입으로 짓는 업에서 풀려나는 것만도

살 만한데 

 

말은 마음에서 나와

눈빛으로 나가고

침묵으로 나가고

입으로 나가네

 

따사로운 시선에서

피워올린 언어가

나와 너를 살리거니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래야지

 

 

 
 

좌선

 

여기다

내가 죽을 곳

들숨 날숨 바라보는 곳

 

여기다

바라는 바 없고

무엇이 되고자 함이 없어

눈처럼 쌓이는 고요

 

여기다

사랑도 버리고 미련도 버리고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언제나 돌아갈 고향

 

여기다

나를 살아 내어

끝내 나를 버릴 곳

후박나무 잎새처럼 툭

그렇게 떨어질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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