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남자가 우는 것은 멋있다.
자신을 소개하는 말을 하다가 울고 있는 주유소 사장님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년 아내와 살다가 이혼하고 혼자 아들 딸을 키웠는데 몇달사이에 시집장가를 보내게 되었고, 이제 훌쩍 제주도로 올레길을 걸으러 갈 것이란다. 백장암 아래에 주유소를 하는 그에게 쪽제비똥 커피를 얻어먹었다고 주지스님이 자랑했다.쪽제비똥 커피를 얻어마시려고 염치도 없이 나와 선덕스님은 주유소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지금 이 커피를 마시기전에는 실상사대중스님들과 점심공양을 같이 했고, 공양하기 전에는 2시간 동안 실상사대중들과 반야당에서 '승려도 노동자다'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토론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몸과 마음은 피곤하고 시들해져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지금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주유소 사장님은 오전에 커피를 홀로 커피를 타마시고 가끔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한다.
걷다가 걷다가 입에서 신물이 나오고 발에 통증이 격해지는 고통의 극한에 이르면 그때 찾아오는 평안과 행복이 있어서 걷고 또 걷는다고. 두발로 걷는 행위야 말로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에 차서 한마디 거들었다.걷다가 차한잔 얻어 마실수 있는게 또 얼마나 찬란한 행복인지 익히 알기에. 동시에 제주도가면 차한잔 얻어 마시라고 얼른 전화기를 꺼내어 제주도 남선사 도정스님과 통화하게했다.
인간은 그렇게 홀로 걷는게 행복이고 운명이고 최선이고 행운이고 ...그럴것이라고 내게 생각이 마구마구 들이댔다. 걷는 것은 그 많은 그렇고, 그렇게...를 포함한다. 직립보행을 하다가 사라지는게 인간,인데 애닳고 가여운 일들에 치이면 그냥 걷자. 사는게 별거없고 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통하나가지고 낙동강하청를 걷고 걸었다는 보살의 말이 생각난다. 어제 찻자리에서 만난 사람인데 그 보살은 말하는 스토리마다 유쾌하였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문득 걷고 싶다. 어디든 한없이 걷고, 걷는 목적지 따위랑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걷는 행위에만 몰두하는 그런 행복을 누리고 싶다. 그런 쓸쓸함을 인간다움을 호적함을 안아보고싶은데 그러한 기쁨을 안고 사는 사내가 커피를 따라주고 있으니 오늘도 복있다.
선원에 돌아오니 날씨가 흐리다.
대중은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퇴임 대통령의 죄를 묻다-박황희 (1) | 2023.01.28 |
---|---|
‘온라인불자회(OPEN)' 토론공부 모임 안내 (0) | 2023.01.04 |
윤회 외 자작시 모음 (2) | 2022.11.19 |
단오맞이 소금 묻기 (0) | 2022.06.04 |
백제의 미소, 그 천년의 여운 (0) | 2022.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