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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탄생게의 올바른 이해

탄생게의 올바른 이해
 
“모든 생명 구할자는 바로 나다”
 
지금으로부터 2천5백여 년 전 인도 아대륙의 동북부 룸비니 동산, 4월 어느 날 천지가 숨죽이며 누군가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탄생하자, 온 우주가 진동하고 갑자기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나면서 천지가 꽃잎으로 너울거리며 꽃향기가 그윽하고, 온갖 새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어디선가 은은한 음악도 흘러 나왔다. 아이는 어머니가 나무의 꽃가지를 잡는 순간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면서 사방을 둘러보더니 한 손으로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일곱 걸음을 걷더니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 다음과 같이 우렁차게 외쳤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모든 세상이 다 고통 속에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이 외침은 온 세계 구석구석까지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현재 우리 불교계에 유통되고 있는 ‘부처님 탄생게’이다.
 
탄생게를 전하는 불교 전적의 수는 많다. 이 가운데는 한역뿐만이 아니라 산스끄리뜨나 빠알리 그리고 티벳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산스끄리뜨와 빠알리는 각각 4개, 모두 8개의 경전과 불전(佛傳)에서 탄생게를 전하고 있으며, 한역 또한 8개 이상이 현존한다. 여기에 중국의 구법승들의 인도 여행기에 나타난 것까지 합하면 적어도 10개 이상이 될 것이다. 한역은 주로 ‘불교도의 혼종 산스끄리뜨’이나 ‘순수 산스끄리뜨’에서 옮겨온 것으로 초기경전에서 대승경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탄생게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현재의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이다. 전반부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몇 개의 한역경전이나 구법 여행기 등과 일치하는데 반해 후반부의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정확히 일치하는 경전이나 불전은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탄생게와 가장 비슷한 것은 〈수행본기경〉의 ‘天上天下 唯我爲尊 三界皆苦 吾當安之’이다. 단지 유아독존의 ‘독’이 ‘위’로 아당안지의 ‘아’가 ‘오’로 바뀌어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태자서응본기경〉의 ‘天上天下 唯我爲尊 三界皆苦 何何樂者’가 이를 뒤따르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는〈보요경〉이 또한 현재의 탄생게와 〈수행본기경〉과 거의 일치해 있다. 하지만 〈수행본기경〉의 산스끄리뜨 불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원문과의 비교·검토는 불가능하다. 대신 한역〈보요경〉이나 〈방광대장엄경〉의 산스끄리뜨 원전에 해당하는 〈Lalitavistara〉와 초기불교의 빠알리 경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Lalitavistara〉에서는 “나는 세상에서 최고로 존귀한 자(최존:最尊)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최승:最勝)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삶이다. 나는 태어남·늙음·죽음을 다할 것이다.”가 그것이고, 이는 장아함의 〈대나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제도하리라.”(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로 비슷하게 나타난다. 다시 같은 초기경전의 빠알리 대응경전의 탄생게를 살펴보면, “나는 세상의 최상인 자다. 나는 세상의 최존인 자다. 나는 세상의 최승인 자다. 이것이 마지막 삶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로 나타난다. 산스끄리뜨나 빠알리의 세상을 뜻하는 loka에 대해 ‘세상에서’(처소격)와 ‘세상의’(소유격)로 차이가 있지만 의미하는 바는 같다. 그리고 빠알리에 있어 최상·최존·최승은 비슷한 말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탄생게를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후대 불교에서는 동의어로 간주되어 처음의 최상이나 또는 최존이라는 말로만 탄생게를 나타내고 있다.이러한 점으로 보아 한역의 ‘천상천하’에 해당하는 원문은 loka로서 모든 세계를 의미하는 천인(天人:devamanussana)의 뜻으로 받아들였으며, 나아가 오직[唯]과 홀로[獨]를 더하여 탄생게의 의미를 더 강조하고 있다.
 
 
현재 우리불교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탄생게 이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간단하게 ‘허무맹랑한 꾸며낸 신화로서 신격화’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공상적 전설’이라고 치부해 버리거나 아니면 ‘바라문교의 신본주의에서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만천하에 천명한 상징’을 나타낸다고 하거나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붓다 최초의 인간 선언’이라는 등의 자유로운 해석이 행해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가운데 아(我)를 중심으로 하는 유(唯)와 독존(獨尊)이 독선적이고 오만불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해석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모색으로 부처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아’가 아니라 ‘모든 중생들을 의미한 아’라고 승격시키거나 또는 같은 맥락에서 우파니샤드의 실재론적 대아에 접근시키는 사변적인 해석까지 보인다. 나아가서는 아예 바라문교의 형이상학적 원인(原人)인 뿌르샤를 탄생게의 유아(唯我)에 대응시켜 인간의 아는 우주 창조의 제일원인이기에 스스로 존귀하다고 하는 매우 비불교적인 풀이도 불교계 신문이나 책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개체적인 나가 아니라 나와 우주가 하나인 그런 대아의 본래 모습을 일깨우기 위한,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 인간 선언이자 새 생명 선언’으로 ‘모든 인간의 존귀함을 선언한 것’이라고 하여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선진적이고 탁월한 해석처럼 여겨지게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탄생게의 설명은 서구에 있어 중세 천년의 신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인간을 강조하는 인문주의의 강조가 근대 일본의 불교학교계에,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의 탄생게 설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이 같은 기존의 탄생게 해석은 오히려 ‘부처님 오신 날’의 참된 의의나 의미를 희석시키거나 축소시킬 수 있다.
 
 
그것은 최소한 탄생게를 전하는 경이나 불전의 앞 뒤 문맥도 고려하지 않은 채 탄생게만을, 심하게는 ‘천상천하 유아독존’만을 뚝 떼어서 자의적인 풀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탄생게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실증하려드는 것도 그리 현명한 이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탄생게는 고대인도 불교인들의 지극한 신앙심의 결정이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그러한 표현의 이면을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실 그러한 이면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만이야말로 온 세계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 최대의 중대사(일대사인연)였음을 확신하는 불교도의 신심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출현이야말로 우주적인 대 사건이라고 보았기에 탄생과 함께 온 우주 구석구석까지 찬란한 광명으로 뒤덮고, 천지가 진동하고, 허공으로부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꽃들이 갑자기 만발하여 꽃잎으로 온 세상이 너울거렸다는 감격스러운 찬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세계사적 의의 이상의 전 우주의 공조와 화음 속에 극적으로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무상의 진리라고 하는 온 몸으로의 큰 감동과 법열, 그 자체가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전하는 경전의 이름까지 〈대본경〉(위대한 역사의 경)이나 〈방광대장엄경〉(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우주의 경:Lalitavistara) 그리고 〈미증유법경〉(놀랍고 환희에 찬 사건의 경:Acchariyabbhutadhamma Sutta) 또는 〈마하와스투〉(대 사건의 경)이라 하였다. 그만큼 부처님 출현의 의미가 온 인류 역사에 있어 최대의 사건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결론적으로 탄생게의 주인공은 일차적으로 역사적인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의미하는 것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왜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인가하는 것은 이미 탄생게를 전하는 경전의 앞 뒤 문맥에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인간 가운데 최초로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났기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고, 그리고 온 세계의 모든 생명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는 것이기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것이다. 이는 삼귀의를 통해 부처님이야말로 두발 가진 존재 가운데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뜻의 ‘귀의불 양족존’이나 예불문에서는 ‘삼계도사 사생자부’로 달리 표현되어 있고, 그리고 또한 부처님의 ‘일대사인연’이 강조되는 것으로 탄생게의 의미와 의의를 반복하여 되새기고 있다.마찬가지로 가이없는 중생이라도 모두 건지고,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굳은 다짐의 사홍서원은 바로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탄생게이다. 사홍서원을 통해 모든 고통받는 생명을 남김없이 다 건지겠다고 하는 대단한 결의를 다지고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어 탄생게는 항상 현재형으로 모두에게 살아있다. 다만 ‘중생을 다 건지고 불도를 이루겠다고 진실로 서원할 때만이 바로 탄생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그때에 이르러서만이 우리 또한 스스로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이상을 가진 유아독존이 될 것이다. 따라서 탄생게의 현재적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다.
 
“고통받는 모든 생명들을 구할 자는 바로 나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 나는 가장 존귀하다”
 
조준호(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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