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我世宗,文宗慨念於此. 旣作訓民正音. 天下之聲. 始無不可盡矣.
우리 세종과 문종께서 이점을 염려하시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니, 천하의 모든 소리를 비로소 다 표기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다.
성삼문 직해동자습 번역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 서문(성삼문)의 의미 단위 대조 번역_김슬옹
*출처: 成謹甫先生集卷之三(한국고전번역원)
[1] 我東邦在海外. 言語與中國異. 因譯乃通.
우리나라가 중국 바다 바깥에 있으므로 말이 중국말과는 달라서 역관이 있어야 통했다.
[2] 自我祖宗. 事大至誠. 置承文院掌吏文. 司譯院掌譯語. 專其業而久其任. 其爲慮也蓋無不周.
우리 조상 때부터 중국을 지성으로 섬기었고 승문원을 두어 한문 외교 문서를 맡게 하고, 사역원을 두어 통역을 맡게 하는 한편, 맡은 일에 온힘을 쏟게 하시어 그 자리에 오래 있도록 하였으니, 그 생각하는 바가 두루 미치지 않은 바가 없었다.
[3] 第以學漢音者. 得於轉傳之餘. 承授旣久. 訛謬滋多.
그러나 중국말을 배우는 이들이 여러 번 거쳐서 전하다 보니 벗어난 것을 배우고, 이어받은 지도 이미 오래되고 보니 맞지 않는 것이 꽤 많았다
[4] 縱亂四聲之疾舒. 衡失七音之淸濁.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사성의 빠르고 느림이 혼란스러워지고 또 한편으로는 칠음의 맑고 흐림을 잃어버렸다.
[5] 又無中原學士從旁正之. 故號爲宿儒老譯. 終身由之. 而卒於孤陋.
게다가 중국 학자가 옆에 있어 정정해 주는 일도 없기에 실력 있는 선비나 노련한 역관으로 한평생 몸담았다 하더라도 고루한 채로 세상을 떴다.
[6] 我世宗,文宗慨念於此. 旣作訓民正音. 天下之聲. 始無不可盡矣.
우리 세종과 문종께서 이점을 염려하시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니, 천하의 모든 소리를 비로소 다 표기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다.
[7] 於是譯洪武正韻. 以正華音. 又以直解童子習,訓世評話乃學華語之門戶.
이에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여 중국음을 바로잡고 또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과 ≪훈세평화(訓世評話)≫로 중국 말을 배우는 통로로 삼았다.
[8] 命今右副承旨臣申叔舟兼承文院校理臣曺變安,行禮曹佐郞臣金曾. 行司正臣孫壽山. 以正音譯漢訓. 細書逐字之下. 又用方言. 以解其義.
그리하여 지금의 우부승지 신 신숙주, 겸 승문원 교리 신 조변안, 행 예조 좌랑 신 김증, 행 사정 신 손수산에게 명하여, 정음으로 한자 뜻을 번역하여 가는 글씨로 글자 밑에 쓰고 또 우리말로 그 뜻을 풀이하도록 하였다.
[9] 仍命和義君臣瓔. 桂陽君臣璔監其事. 同知中樞府事臣金何. 慶昌府尹臣李邊. 證其疑而二書之. 音義昭晢. 若指諸掌.
그리고 화의군 신 이영과 계양군 신 이증에게 명하여 그 일을 감독하게 하고, 동지중추부사 신 김하와 경창부윤 신 이변으로 하여금 의심난 곳을 고증해서 두 가지로 쓰도록 명하시니, 음과 뜻이 명쾌하여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듯하였다.
[10] 所痛恨者. 書僅成編. 弓劍繼遺.
다만 한탄스러운 것은 책이 겨우 완성될 즈음에 세종께서 돌아가시고 문종께서도 이어 돌아가신 점이었다.
[11] 恭惟主上嗣位之初. 遹追先志. 亟令刊行. 又以臣三問亦嘗參校. 命爲之序.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단종)께서 왕위를 이으시자마자 초기에 선왕의 뜻을 좇아서 빨리 간행하도록 하라 하시고, 또 신 성삼문이 일찍이 교정에 참여하였다 하여 서문을 짓도록 명하셨다.
[12] 臣竊惟四方之言. 雖有南北之殊. 聲音之生於牙,舌,唇,齒. 則無南北也. 明乎此. 則於聲韻乎何有.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사방의 말씨가 비록 남북으로 다름이 있으나, 소리가 어금니, 혀, 입술, 이를 통해서 나오는 것은 남북의 차이가 없으니, 이것을 분명히 안다면 성운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13] 東方有國. 經幾千百載之久. 人日用而不知七音之在我.
우리나라가 생긴 지 몇 천백 년이나 지났으나, 사람들이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칠음이 우리말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14] 七音且不知. 況其淸濁輕重乎.
칠음도 모르는 마당에 소리의 맑고 흐림과 가볍고 무거움에 대하여서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지 않겠는가.
[15] 無惑乎漢語之難學也.
이런 상황에서 중국 말을 배우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6] 此書一譯. 而七音四聲. 隨口自分. 經緯交正. 毫釐不差. 又何患從旁正之之無其人乎.
이 책이 일단 번역됨으로써 칠음과 사성이 입 모양을 따라 저절로 구분되고, 운서 음분류의 세로와 가로가 서로 정확하여 조금도 차질이 없게 되었으니, 또한 곁에서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다고 어찌 근심할 일이 있겠는가.
[17] 學者苟能先學正音若干字. 次及於斯. 則浹旬之間. 漢語可通. 韻學可明. 而事大之能事畢矣.
배우는 자가 먼저 정음 몇 글자만 배우고 나서 이 책을 보면, 열흘 정도면 중국말도 터득할 수 있고 중국 성운학도 훤히 알 수 있어 중국을 섬기는 일이 이 정도면 웬만하다 할 것이다.
[18] 有以見二聖制作之妙. 高出百代.
두 임금님의 신묘하신 제작이 백 대의 제왕들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 此書之譯. 無非畏天保國之至計. 而我聖上善繼善述之美. 亦可謂至矣
이 책 번역이 하늘을 경외하고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지극한 계획이 아닌 것이 없으며, 우리 성상께서 선왕(단종)의 뜻을 잘 계승 발전시킨 아름다우심도 역시 극진하시다고 말 할 수 있다.
[참고] '방홍무지제, 작동국지의, 오체함비(倣洪武之制, 作東國之宜, 五體咸備)'
풀이하면 명나라 태조 홍무년간의 운서인 홍무정운이 당시 세종의 조선에 전해져 음운학적 영향을 줘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http://news.imaeil.com/page/view/201912041649035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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