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모든 존재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5. 하느님의 권청 이야기(5. Brahmayācanakathā)
1. 그리고 세존께서는 칠일을 경과한 뒤에 삼매에서 일어나 라자야따나 나무아래 에서 나와서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거기서 세존께서는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서 지냈다.
After seven days, the Buddha came out from that stillness and went from the ape-flower tree to a goatherd’s banyan tree,
Atha kho bhagavā sattāhassa accayena tamhā samādhimhā vuṭṭhahitvā rājāyatanamūlā yena ajapālanigrodho tenupasaṅkami.
and he stayed there.Tatra sudaṁ bhagavā ajapālanigrodhamūle viharati.
2 그때 세존께서 홀로 떨어져 명상할 때에 마음에 이와 같은 사념이 일어났다.
Then, while reflecting in private, the Buddha thought this:
Atha kho bhagavato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세존]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I have discovered this profound truth, so hard to see, so hard to comprehend. It’s peaceful and sublime, subtle, beyond the intellect, and knowable only to the wise.“ 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한다.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순관)
But human beings delight in holding on, find pleasure in holding on, rejoice in holding on,
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and because of that it’s hard for them to see causal relationships, dependent origination.
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역관)
This too is very hard for them to see: the stilling of all intentional activities, the giving up of all ownership, the stopping of craving, fading away, ending, extinguishment. idampi kho ṭhānaṁ sududdas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If I were to teach this truth, others would not understand, and that would be wearying and troublesome for me.” 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3. 마침 세존께 이와 같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시들이 떠올랐다.And spontaneously, these verses never heard before occurred to the Buddha:Apissu bhagavantaṁ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차라리 설하지 말아야지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들다.
흐름을 거슬러가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묘한 진리를
어둠에 뒤덮이고 탐욕에 불붙은 자들은 보지 못한다.
“What I’ve discovered with difficulty,“Kicchena me adhigataṁ,
There’s no point in making it known.halaṁ dāni pakāsituṁ;
For those overcome by sensual desire and ill will,Rāgadosaparetehi,
This truth is hard to understand.nāyaṁ dhammo susambudho.
Those who are excited by sensual desire,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
Obstructed by a mass of darkness,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
Won’t see what goes against the stream,Rāgarattā na dakkhanti,
What’s subtle and refined, profound and hard to see.”tamokhandhena āvuṭā”ti.
4.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성찰하셔서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When the Buddha reflected like this, he inclined to inactivity, not to teaching.Itiha bhagavato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a.
그 때 하느님 싸함빠띠가 세존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시는 바를 알아차리고 이와 같이 생각했다. ·
Just then the supreme being Sahampati read the mind of the Buddha. He thought, Atha kho brahmuno sahampatissa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etadahosi—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이와 같이 성찰하셔서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하신다면 참으로 세계는 멸망한다. 참으로 세계는 파멸한다.'
“The world is lost; it’s perished!—for the Buddha, perfected and fully awakened, inclines to inaction, not to teaching.”
“nassati vata bho loko, vinassati vata bho loko, yatra hi nāma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5. 그래서 하느님 싸함빠띠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 는 듯한 그 사이에, 하느님의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세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Then, just as a strong man might bend or stretch his arm, so Sahampati disappeared from the world of supreme beings and appeared in front of the Buddha.
Atha kho brahmā sahampati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brahmaloke antarahito bhagavato purato pāturahosi.
그리고 하느님 싸함빠띠는 왼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끓은 채 세존께서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He put his upper robe over one shoulder, placed his right knee on the ground, raised his joined palms, and said,
Atha kho brahmā sahampati ekaṁsaṁ uttarāsaṅgaṁ karitvā dakkhiṇajāṇumaṇḍalaṁ pathaviyaṁ nihantvā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bhagavantaṁ etadavoca—
[싸함빠띠]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뭇삶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Please teach, Venerable Sir, please teach!“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
There are beings with little dust in their eyes who are ruined because of not hearing the Teaching. There will be those who understand.”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이 읊었다.
This is what Sahampati said, and he added:
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na athāparaṁ etadavoca—
[싸함빠띠] "때묻은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윈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생사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Earlier, among the Magadhans, “Pāturahosi magadhesu pubbe,
An impure teaching appeared, conceived by defiled people. 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
Open this door to the deathless! 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
Let them hear the Teaching, discovered by the Pure One. 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Just as one standing on a rocky mountain top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Would see the people all around, 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
Just so, All-seeing Wise One, 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
Ascend the temple of the Truth.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Being rid of sorrow, look upon the people, 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
Sunk in grief, overcome by birth and old age.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Stand up, Victorious Hero!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
Leader of travelers, wander the world without obligation. 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
Sir, proclaim the Teaching; Desassu bhagavā dhammaṁ,
There will be those who understand.” Aññātāro bhavissantī”ti.
8. 이와 같이 설하자, 세존께서는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이르셨다.
[세존] "하느님이여, 내가 홀로 떨어져 명상할 때에 마음에 이와 같은 사념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한다.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여, 나에게 이와 같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시들이 떠올랐습니다. Evaṁ vutte, bhagavā brahmānaṁ sahampatiṁ etadavoca—“mayhampi kho, brahme, etadahosi—‘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idampi kho ṭhānaṁ sududdas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Apissu maṁ, brahme,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차라리 설하지 말아야지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들다. 흐름을 거슬러 가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묘한 진리를 어둠에 뒤덮이고 탐욕에 불붙은 자들은 보지 못한다.' 하느님이여. 나는 이와 같이 성찰하여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Kicchena me adhigataṁ,halaṁ dāni pakāsituṁ;Rāgadosaparetehi,nāyaṁ dhammo susambudho.
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Rāgarattā na dakkhanti,tamokhandhena āvuṭā’ti.Itiha me, brahme,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9. 하느님 싸함빠띠는 두 번째에도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Dutiyampi kho brahmā sahampati bhagavantaṁ etadavoca—
[싸함빠띠]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뭇삶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습 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na athāparaṁ etadavoca—
[싸함빠띠]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원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생사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Pāturahosi magadhesu pubbe,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Desassu bhagavā dhammaṁ,Aññātāro bhavissantī”ti.
[세존]이와 같이 설하자, 세존께서는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이르셨다.
"하느님이여, 내가 홀로 떨어져 명상할 때에 마음에 이와 같은 사념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한다.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 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여, 나에게 이와 같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시들이 떠올랐습니다.
Dutiyampi kho bhagavā brahmānaṁ sahampatiṁ etadavoca—“mayhampi kho, brahme, etadahosi—‘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idampi kho ṭhānaṁ sududdas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Apissu maṁ, brahme,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차라리 설하지 말아야지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들다. 흐름을 거슬러가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묘한 진리를 어둠에 뒤덮이고 탐욕에 불붙은 자들은 보지 못한다.' 하느님이여. 나는 이와 같이 성찰하여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Kicchena me adhigataṁ,halaṁ dāni pakāsituṁ; Rāgadosaparetehi,nāyaṁ dhammo susambudho. 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Rāgarattā na dakkhanti,tamokhandhena āvuṭā’ti. Itiha me, brahme,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하느님 싸함빠띠는 세 번째에도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Tatiyampi kho brahmā sahampati bhagavantaṁ etadavoca—
[싸함빠띠]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뭇삶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na athāparaṁ etadavoca—
[싸함빠띠]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원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생사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Pāturahosi magadhesu pubbe,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Desassu bhagavā dhammaṁ,Aññātāro bhavissantī”ti.
이와 같이 설하자, 세존께서는 하느님의 청원을 알고는 뭇삶에 대한 자비심 때문에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The Buddha understood the request of that supreme being. Then, with the eye of a Buddha, he surveyed the world out of compassion for sentient beings.
Atha kho bhagavā brahmuno ca ajjhesanaṁ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ṁ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si.
그 때 세존께서는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다.
He saw beings with little dust in their eyes and with much dust in their eyes, with sharp faculties and with dull faculties, with good qualities and with bad qualities, easy to teach and difficult to teach. He even saw some who regarded the next world as dangerous and to be avoided, while others did not.
Addasā kho bhagavā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11. 예를 들어, 청련화(uppala) , 홍련화(paduma), 백련화(puṇḍarīka)의 연못에서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수중에 잠겨 자라고,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에까지 나와 있으며,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을 벗어나 물에 젖지 않는 것이 있다.
It was just like blue, red, and white lotuses, sprouted and grown in a lotus pond: some remain submerged in the water without rising out of it, others reach the surface of the water, while others still rise out of the water without being touched by it.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ṁ vā paduminiyaṁ vā puṇḍarīkiniyaṁ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 nimuggaposī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samodakaṁ ṭhitā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aṁ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12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금밖에 오염되 지 않은 못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못삶, 둔한 감각능력 을 지닌 못삶, 아름다운 모습의 못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시로 대답하셨다.
evamevaṁ bhagavā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addasa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When he had seen this, the Buddha replied to Sahampati in verse:disvāna brahmānaṁ sahampatiṁ gāthāya paccabhās
[세존]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하느님이여,
곤란을 예견하고 나는 승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Open to them are the doors to the deathless!“ Apārutā tesaṁ amatassa dvārā,
May those who hear release their faith.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ṁ;
Seeing trouble, supreme being, Vihiṁsasaññī paguṇaṁ na bhāsiṁ,
I did not speak the sublime and subtle Truth.” Dhammaṁ paṇītaṁ manujesu brahme”ti.
* let them renounce their faith.(아이비 호너) Let those with ears to hear commit to faith(수자또비구)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들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 자신의 믿음을 보여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피로해질 뿐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성스러운 구함 경 (M26) 각묵번역
13. 그 때야 비로소 하느님 싸함빠띠는 '세존께서는 진리를 설하는 것을 내게 동의하셨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세존께 인사를 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그곳에서 사라졌다.
Sahampati thought,Atha kho brahmā sahampati—“The Buddha has consented to teach.” He bowed down, circumambulated the Buddha with his right side toward him, and disappeared right there.“katāvakāso khomhi bhagavatā dhammadesanāyā”ti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tatthevantaradhāyi.
하느님의 권청 이야기가 끝났다.
9월 15일 마하박가 MEET 영상토론에서는 '범천권청'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범천권청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고 그 사실성에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초로 나타나는 마하박가의 범천권청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불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알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오부 니까야와 율장에는 사함빠띠가 50번 등장하는데 부처님의 생각에 동조하거나 어떤 사실을 알려주려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번 처럼, 김영조거사님, 일봉스님, 박정규거사순으로 이어서 읽고나서 읽은 소감, 논점을 토론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부산에서 윤미순보살님,경주에 사는 일봉스님, 박재현거사님,황태종거사님,박정규거사님, 김영조거사님, 한병식거사님,허정, 이렇게 8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논점
1. 부처님이 깨닫고나서 설법을 망설인 것은 당신이 아승지겁동안 바라밀을 닦아온 것에 비교하면 모순일까?
모순되지 않는다. 자신이 깨달은 깨달음의 경지와 중생이 가진 욕망의 경향성을 비교하면, 중생들이 원하는 것과 깨달음의 경지가 너무 차이가 나서 잠시 망설일 수 있다. 범천의 권청을 받고 부처님 스스로 숙고하고 난뒤, 그래도 이 세상에는 극소수이지만 깨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들을 찾아 전도여행을 떠나신 것이다.
2. 제석천이 아닌 사함빠띠 범천이 간청하였을 때 설법을 결심한 이유는?
제석천은 욕계의 천신이고 범천은 욕계를 벗어난 천신이다. 범천은 스스로가 조물주, 창조자라고 생각하는 최고의 신이고 그 당시에 사람들이 세상의 창조자라고 믿고 있는 신이니 범천의 권청으로 부처님은 범천보다 더 높은 존재이고, 부처님의 깨달음은 위없는 깨달음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익이 있기에 범천이 등장하여 3번 권청을 한 것이다. 이러한 범천의 3번의 권청은 불자들에게 청법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3. 짧은 시간을 나타낼때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라고 표현하는데 경에서는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 는 듯한 그 사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을 하게 된 이유는?
추측하건데 천신들은 인간보다 몸집이 더 큰 존재이기에 존재의 크기로나, 시각으로 상대방을 파악하기로나 눈을 깜박이는 것보다는 팔을 접고 피는게 더 어울릴 것이다.
4."마가다에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은 어떤 가르침인가?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난 그 시기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상이 나타나 있고, 부처님의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그 모든 사상과 차별성을 가질 것이다. 육사외도가 뜻하는 여러사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64가지 견해(D1범망경)가 논파하는 효과가 있다.
5.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와 '귀를 가진자, 믿음을 보여라'중에 어떤 번역이 타당한가?
부처님은 설법하기도 전에 믿어라,혹은 믿음을 보여라 라고 말하는 분이 아니기에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라는 번역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틀이 지나서 토론의 내용을 정리하자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너무 간단히 적었습니다.토론 분위기는 적당히 긴장감이 있고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13. “비구들이여, 아무리 적은 양의 똥일지라도 그것은 악취를 풍긴다. 나는 아무리 짧은 기간일지라도 존재[有, bhava]로 태어나는 것을 칭송하지 않나니, 하다못해 손가락을 튀기는 기간만큼이라도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칭송하지 않는다.”
막칼리 품(A:1:18:13)
[참고자료1]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는 범천
처음에는 제석천이 법을 설해 줄 것을 청했지만 부처님은 거절했다. 다음으로 범천이 세 번에 걸쳐 간곡하게 설법해 줄 것을 청하자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왜 제석천의 권청은 물리치고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였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기원전 2세기 경 그리스계의 메난드로스(Menandros, 또는 Milinda) 왕과 나가세나(Nägasena) 스님과의 문답서인 '미린다팡하(Milindapañha)'와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잘 나타나 있다. '대지도론'에서는 "부처님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 대인(大人)의 법을 부리는 까닭에 비록 큰 자비가 있다 해도 청하지 않으면 말씀하지 않는다. 만일 청하지 않았는데도 말씀했다면 외도(外道)에게 조롱 받을 것이므로. 처음에는 반드시 청함을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외도들은 범천을 숭상하는데 범천이 스스로 부처님께 청하면 곧 외도의 마음도 굴복한다. "고 이야기하고 있다.
"간다라의 범천권청 장면은 중앙에 선정인(释定印)을 하 부처님이 있고, 양 옆에는 법을 청하는 범천과 제석천이 합장 하고 서 있다. 부처님의 오른편에는 범천이. 왼편에 는 제석천이 부처님을 향해 서 있다. 간다라 불전도 속의 범천은 수행자를, 제석천은 왕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그 용모에서 차이가 난다. 범천은 수행자처럼 긴 머리칼을 올려 묶고 장신구를 걸치지 않은 모습이다. 이와 달리 제석천은 머리칼 대신 터번을. 수수한 모습 대신 장신구를 하고 있어 왕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유근자교수-
[참고자료2]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들인데 네 가지 경우로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ㆍ바라문 존자들은 네 가지 경우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2.2.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수축한다.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산다.”
2.3.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다시] 팽창한다. 세상이 팽창할 때 텅 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도 역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2.4.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싫증과 초조함이 생겨,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갈망하였다.] 그러자 다른 중생들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의 궁전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2.5. “비구들이여, 그러자 그곳에 먼저 태어난 중생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전에 내게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일어났고 그러한 내 마음의 염원 때문에 이 중생들이 여기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뒤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야말로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이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 것을 보았고 우리는 후에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범망경(D1)
[참고자료3]사함빠띠가 등장하는 경전들
존중 경(S6:2)
“참으로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선서시여.
세존이시여, 과거의 아라한ㆍ정등각자이신 세존들께서도 역시 오직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렀습니다. 세존이시여, 미래의 아라한ㆍ정등각자이신 세존들께서도 역시 오직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를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의 아라한ㆍ정등각자이신 세존께서도 역시 오직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십시오.”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완전하게 깨달은 모든 분들도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완전하게 깨달은 현재의 부처님도
모두 많은 사람들의 근심을 없애주시네.
그분들은 모두 정법을 공경하며
사셨고 살고 계시며 또한 살아가실 것이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법다움이라네.존중 경(S6:2)
꼬깔리까 경2(S6:10)
그때 꼬깔리까 비구는 그 병으로 죽었다. 꼬깔리까 비구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다.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꼬깔리까 비구가 죽었습니다. 꼬깔리까 비구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떨어졌습니다.”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씀을 드린 뒤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거기서사라졌다.
짜뚜마 경 (M67)에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제자 오백명이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때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물러가라. 나는 그대들을 내쫒는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머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때도 사함빠띠가 다시 나타나 부처님께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달라지듯이 신참 비구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여 다시 신뢰를 회복하도록 도왔다.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책임져야할 당사자니까 사함빠띠가 다시 나타난것이 아닌가한다.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이 자기의 마음으로 세존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서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이 그렇게 재빨리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세존 앞에 나타났다. 그때 사함뻐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웃옷을 입고서 세존을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쁘게 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치 이전에 비구 승가를 섭수하셨듯이 지금의 비구 승가를 섭수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달라지고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온라인불자회> 초대
https://open.kakao.com/o/gYJgSx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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