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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총무원장 단독후보 진우스님의 불교관

기고글

총무원장 단독후보 진우스님의 불교관

 

전 교육원장 진우스님이 2022년 1월부터 법보신문에 '금강경 강의'를 연재하고 있다. 금강경 연재 첫 줄은 이렇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49년간 설법(說法)을 하셨다." 부처님이 35세에 깨닫고 80세에 열반하셨으니 설법기간은 45년이건만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이라는 승려는 49년간 설법했다고 말한다. 이유는 있다. 자기가 이해하고 공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소천선사(韶天禪師)의 ‘금강경 강의'를 그대로 '복사붙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원장이라는 분이 이렇게 남의 글을 '복사붙임’하면서 '진우스님의 금강경 강설'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할 필요가 있을까?  남의 글을 그대로 옮겨왔기에 용어의 사용은 매우 혼란스럽다. 그는  사상(四相)과 법상(法相) 그리고 비법상(非法相)이라는 용어를 아주 독특하게 설명하고 있다. 


"비법상(非法相)과 법상(法相)이 분별되므로, 오히려 분별하는 사법(邪法)을 없애지 못하게 되니, 중생상(衆生相)인 것이다. 또 법상을 여읨으로 하여 피안에 도달한 느낌이 있을 것이니, 이는 수자상(壽者相)인 것이다."



"보시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머문다면, 보시하는 이와 보시를 받는 이의 두 분별이 생기는 것이므로, 그 즉시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나타나게 된다. 또 보시를 할 때 보시물에 마음이 머무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한다. 또 보시를 하는 것에 대해 복덕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이는 수자상(壽者相)이 된다."

 

 "피안에 도달한 느낌이 수자상?" "보시에 복덕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면 수자상?" 그는 같은 단어임에도 문장마다 다르게  설명 하고있다.  또 사상(四相)을 "상(相)이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잘난체 아는체 으스대는 소위 자존심의 행태"라고 설명한다. 자신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복사붙임'만 한 결과다. 이렇게 엉성한 글을 연재하는 사람이나 연재하도록 허락한 신문사나 딱하고 애초롭기는 매 한가지. 그는 학계에서는 이미 폐기된 '오시팔교(五時八敎)'의 교판을 믿으며 "부처님이 처음 ‘화엄경(華嚴經)’ 21일간 설법하시고, ‘아함경(阿含經)’ 12년, ‘방등경’을 8년, ‘금강경’등 반야경을 21년, ‘법화열반 8년동안 설법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그가 상월선원 천막안거에 참석했던 자승스님을 비롯한 9명의 승려를 공공연하게  '아홉 아라한'이라고 칭송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진우스님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상(相)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는 두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모두 상대방의 졸음운전이나 실수였다. 자신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사고를 당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연기(緣起) 작용과, 내 마음의 고락(苦樂) 인과(因果)가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게 차사고"란다. 이러한 차사고를 당한 당사자는 화가 나는 상(), 고통이라는 상(), 재수가 없다는 상(), 상대 탓을 하는 상() 을 모두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상을 떠났다는 상이 있어도 안되며 안된다는 상이 있어서도 안된단다. "제발 이유를 달지 말라, 물음도 갖지 말라,"고 주문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을 처리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쓴 당사자인 진우스님은 그렇게 되나?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런 것인가?  

 

그는 다른 예를든다.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투고 있을때 제3자가 끼어들어 다투게 되면 이것을  공업(共業)이란다. 싸우는 것은  모두가 연기의 모습으로, 절대로 가타부타 따지지 말라고 한다. 싸우는 내용과 발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단다.  왜냐하면 싸우는 연유는 무시(無始)이래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기 때문이란다. 이때는 옳다 그르다 라는 생각, 이기려는 생각등 모든 생각을 떠나고 버리고 아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진우스님 말대로라면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투고 있을때 제3자가 끼어들어 다툼을 화해시키고 오해를 풀게 하면 그것도 공업(共業)일 것이다.이런 경우에 화해하는 연유는 무시(無始)이래로부터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얼마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지금 여기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 불행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려는 연민심, 이런 것을 키워나가는 것이 불교수행이 아닌가? 자신은 남의 글을 '복사붙임’하면서  '진우스님의 금강경 강설'이라고 자기 이름을 내세우는 상(相)을 내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을 내지 말라고 가르치는게 타당한가? 

차사고를 당했다면 나와 상대방의 상태를 잘 확인하고 적절한 대응을 해야한다. 한 쪽의 잘못인지 쌍방 과실인지 잘 살펴서 평화롭고 명확하게 일을 처리해야한다.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투고 있을때도 중재자가 양쪽의 문제를 파악하여 오해라면 풀게하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이라면 그에게 사과하도록 하게할 수도 있다. 진우스님처럼 "아무 생각을 하지 말라" 그리고 "아무 생각을 하지 말라는 생각까지 하지말라"는 주문은 차사고가 난상황, 두 사람이 싸우는 상황에 적용해야할 해법이 아니다.  4상을 부정하고 재부정하는 금강경의 논리에 도취되어 일상생황에서 일어나는 일에 "제발 이유를 달지 말라, 물음도 갖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폭력이며 어리석음이다. 이렇게 무식하게 불교를 설명한다면 일반 사람들은 불교수행자를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는 조용하고 평화로운게 좋다며 몇몇 종단의 실세스님들은 하나의 후보를 내자고 일찌감치 결의 하였다. 그 결과 현 교육원장인 진우스님이 단독후보가 되었다. 적어도 총무원장 후보라면 후보의 공약, 불교관, 수행이력등을 판단하고 그를 밀어야 하건만 진우스님이 그러한 기준으로 단독후보가 된것 같지는 않다. 이제 며칠후면 그가 총무원장에 취임하게 된다. 금강경을 잘못이해하여  "제발 이유를 달지 말라, 물음도 갖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종단의 수장으로서 여러가지 종단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진우스님이 8월10일 출마의 변과 함께 종책 기조를 발표한 것을 보면 어느정도 짐작할수 있다. 그는 소통, 포교,교구발전이라는 3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총무원장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라기엔 너무도 엉성하고 초라하다. 그가 첫번째로 내건 공약은 '소통'이다. 과거와 소통하고 미래와 소통하고 현재와 소통하겠단다. 이 사람이 말하는 과거 미래 현재는 무엇이며 누구일까? 이렇게 애매한 표현을 하는 것은 자신의 공약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전략이 아닐까? 왜 조계종단은 종단 자체가 '현전승가'이므로 만삼천명 승가구성원의 공의(公議)를 모아 종단을 운영하겠다라고 구체적으로 공약하지 못하는가? 왜 종단 구성윈인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사부대중의 공의(公議)를 모아 종단을 운영하겠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혹시 자신을 총무원장으로 만들어준 그 분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법랍 10년이상 조계종스님들 81%가 지지하는 직선제를 무시하고, 지금처럼 총무원장선출이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 가는 동안에 대한민국에서 불교는, 승가는, 사부대중은 점점 왜소해지고 무기력해지고 시들어 간다.  

 

  

 

 

참고자료---

申韶天의 <금강경 강의>출처---- 법회가 열리게 된 이유(法會因由分)

http://www.jeolgutong.kr/bbs/index.php?mid=kumkang&listStyle=webzine&document_srl=39555 

 

 

진우 스님의 금강경 강설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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