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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21세기 약사경 유감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약사경)에 "오백년을 지나서 불법이 없어지려고 할 무렵에, 그대들은 마땅히 이 경전을 잘 옹호하고 지녀." "바른 법을 비방하고 성현들을 헐뜯는 박복한 중생에게 이 경전을 함부로 전수하여 정법(正法)이 쉽게 멸하지 않도록 하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약사보살의 12가지 서원에서도 "만약 중생이 비열한 것을 좋아하여 이승(二乘)의 법만을 수행하고 위없이 수승한 진리를 버리다가도, 능히 진실한 마음으로 나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승의 소견을 버리고 위없는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게 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으로 대승을 찬탄하고 성문연각 이승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아 경전의 성립시기와 성격을 알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21세기 약사경이란걸 만들어 내셨더군요. 먼저 실상사 식구들 몇몇이 만든 기도문 형태의 글을 '경'()이라 부르는 용기와 무모함에 놀랍니다. 스님이 몇 년전에 붓다 중도로살다를 펴냈을 때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보여드렸었지요. "도법스님은 이책에서 '첫번째 화살의 고통인 사고팔고(四苦八苦)다'라고 말하는데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의 고통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오류이다."라고 적었지요. 스님은 저의 지적에 사소한 부분이 틀린 것이라 별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시길레 역시 알려주어도 받아들이시지 않는구나!하는 것 다시 한번 느꼈지요. 저는 그동안  '종교평화선언'  '붓다로 살자'  ‘붓다 중도로살다’등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번에 연관스님 3재에 참석하러 실상사에 들리게 되었을때 선물을 받았고, 그 종이박스에 신심명 강의‘21세기 약사경이 들어있었습니다. 백장암에서 말로만 듣던  '21세시 약사경'을 읽게 되었구요.  저는 21세기 약사경이 2011년에 도법스님이 주도한 21세기 아쇼카 선언'과  '붓다로 살자'의 연장선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평화선언에서 도법스님은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입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문 경(A4:239)에서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라.”라는 말합니다. 단지 언어와 문법이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알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외에도 사자후의 짧은 경 (M11)에서도 다른 교설과 불교가 왜 다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견해가 있나니, 존재에 대한 견해(상견)와 비존재에 대한 견해(단견)이다. ... 이 두 가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탐욕을 가진 자요, 성냄을 가진 자요, 어리석음을 가진 자요, 갈애를 가진 자요, 취착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이처럼 부처님은 불교와 다른교설이 분명히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으므로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그당시에  종교평화선언을 비판하는 글을 불교신문에 기고하며 도법스님이 위와같이 말하게 된 이유를 3가지로 찾아 보았습니다.

첫째는 종교간의 교류를 자주하는 도법스님은 나의 종교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의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돼 있다는 연기법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때문입니다. 연기공식 "A가 있으므로 B가 있고 A가 사라지므로 B가 사라진다"라는 것을 모방하여 "기독교가 있으므로 불교가 있고 불교가 있으므로 기독교가 있다"는데까지 확장하여 연기법을 왜곡한 결과입니다. 셋째는 모든 종교인은 평화와 행복이라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견해 때문입니다. 이것도 사실이라기 보다는 희망과 추측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과 추측을 말하는 것은 21세기 약사경에서도 나타납니다. "가난으로 고생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외로움에 눈물짓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억울함에 가슴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약사여래가 계신다면 왜 이웃의 청년들이 취업하지 못해서 가난으로 고생하고, 외로움에 눈물짓으며 우리나라가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는 것입니까? 약사여래가 갖가지 활동을 보지도 못하고 경험도 못했다면 약사여래가 가난한 자를 돌 본 것처럼, 멸시당해 눈물짓는 사람들을 돌본 것처럼 말하는 것은 허망한 말잔치 아닐까요? 

'협력도 빛나고 경쟁도 빛나라'고 하다가 뒤에서는 '성장이윤 집착하고 인위조작 하는 미혹문명 내려 놓으라' 합니다. 기업은 다른 기업들과 경쟁을 하고 성장하고 이윤추구를 해야 합니다. 경쟁은 빛나라 격려해놓고 성장이윤은 내려 놓으라는 건 모순이지 않습니까?  '상대편도 빛나고 우리편도 빛나라'는 이야기도 상대편이 누구냐에 따라 엉청나게 다른 내용이 됩니다. 상대방이 삿된견해를 가진 자들이고 비윤리적인 사람들이라면 빛나라고 말하는게 타당하겠습니까? "번뇌도 빛나고 깨달음도 빛나라" "선법도 빛나고 불선법도 빛나라" "바른견해도 빛나고 삿된 견해도 빛나라" ...이렇게 빛나는 대상이 무한정 퍼져나 갈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상의상관 관계요 연기법이라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되면 선악과 시비의 기준이 사라져 세상은  얼마나 혼란스런 무법천지가 될까요? 그 때가 되면 스님은 또 이렇게 말하겠지요. "혼돈도 빛나고 질서도 빛나라"  "갈등도 빛나고 화합도 빛나라" 

 

 '붓다로 살자'는 운동이 가진 모순성, 허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업보중생 문명에서 본래붓다 문명으로 하루속히 전환되게 하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고성제,고집성제,고멸성제,고멸도성제라는 가르침은 업보중생의 현실과 그 현실에서 어떻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성제의 가르침이 죄의식에 시달리는 미혹문명입니까?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프랑스인들은 예술을 좋아하고 자유롭게 산다"는 말을 듣고 '프랑스인처럼 살자'가 아닌 "당장 프랑스인으로 살자"라고 말한다면 프랑스인으로 살아지겠습니까? 그는 프랑스에 가보지 않아서 지리를 모르고 프랑스 역사를 모르고 프랑스 친구도 없고 프랑스 예술도 모르고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프랑스인으로 사는게 가능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붓다의 지혜, 붓다의 체험, 붓다의 깨어있음, 붓다의 신통, 붓다의 설법도 할수 없는 사람이 "당장 붓다로 살자"라고 말한다고 붓다로 살아지겠습니까? "도둑질하면 당장 도둑놈이라 불리듯이 누구라도 '부처의 행동'을 하면 당장 붓다로 살게된다"는 비유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붓다의 행동이 무엇이고 붓다의 말은 어떤 것입니까? 붓다의 행위 붓다의 말은 착한 범부의 행동과 범부의 말과 어떻게 다릅니까? 도법스님은 일반 범부가 착한 행위를 착한 말을 하는 것을 바로 붓다의 행위, 붓다의 말이라고 비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법스님의 '붓다로 살자'는 '착하게 살자'는 말일 뿐입니다.

 정말 자신이 붓다라면 “붓다로 살자”는 권유, 캠패인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붓다로 살자”라고 말할 때 이미 붓다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납니다. “붓다로 살자”고 다짐해 놓고 때때로 자신이 정말 붓다인가 의심하고, 자신의 행위가 붓다의 생각과 말에서 벗어났음을 번민하는 것도 이미 자신이 붓다가 아닌 것을 드러납니다. 거듭거듭 “붓다로 살자”라고 다짐해야 하고 심지어 ‘죽을 힘을 다해서’ “붓다로 살자”라고 말해야 한다면 이미 붓다가 아니라는 말이됩니다.  처음부터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 또는 초기의 대승운동가들 처럼 “보살로 살자”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대승불교의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은 누구나 붓다가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도법스님에 의해 '붓다로 살자'라는 운동으로 변질됨으로서 불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붓다로 살자'는 운동은 도법스님이 자승 총무원장 밑에서  ‘자성과 쇄신결사 추진본부장'을 맡아 일 할때 만들어 낸 것입니다. 자승 총무원장시절에 8년간 ‘자성과 쇄신'을 한다고 했지만 지금 결과가 어떻습니까?  자성과 쇄신의 흔적은 없고 종단역사이래로 가장 흉악한 자승이라는 권승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지 않았습니까? 스님은 '백인 대중공사'를 통해 종도들 81%가 '총무원장직선제'를 지지한다는 결과를 보았으면서도 애써 무시하였고, 직선제 1인 시위를 하던 스님들이 탄압받고 징계받을 때도 침묵만 지켰습니다. 올해 아흔이 넘은 설조스님과 효림스님, 석안스님등이 부당하게 제적당하였을때도 여전히 침묵으로 외면하였습니다. 8년동안 '붓다로 살자'는 운동을 주도한 도법스님은 스스로 붓다로 살지 못하였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붓다로 살자'를 포교원의 캠페인으로 가져가서 '붓다로 살자'고 외치던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공금을 횡령하여 유죄를 받아 징계절차를 밟고있습니다.' 붓다로 살자'는 캠패인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고 있습니다.  

 주의주장 사로잡힌 자기견해 집착않고 참된변화 가져오는 중도실천 원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누구의 주장은 주의주장이고 누구의 주장이 중도실천일까요? 설마 나의 이야기는 중도실천이고 상대방의 이야기는 주의주장이 되는 건가요스님은 종교평화선언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인연의 차이일 뿐입니다. 각자의 다른 인연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세계의 실상이며 아름다움입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입장이 21세기 약사경에서 이어져 상대편도 빛나고 우리편도 빛나라라는 빛나라시리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도법스님이 연기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모든 종교의 목적은 같다'는 막연한 추측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도법스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2022년 7월 10일  ()

 
 

종교평화 선언은 '전법포기 선언'이 아니다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109

“붓다로 살자”는 모순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160

붓다 중도로살다를 읽고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447

 
 

 
[참조]

21세기 약사경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 구업을 맑게 하는 진언 

 

〔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3번)

 

 

 땅을 편안하게 하는 진언

 

〔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3번)

 

 

 법의 창고 여는 진언

 

세상에서 가장높고 매우깊어 미묘한법

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뵙기 어려워라.

내가이제 보고듣고 받아지녀 외우오니

부처님의 진실한뜻 알아지길 원합니다. 

 

〔 옴 아라남 아라다 〕(3번)

 

 

《 찬탄과 귀의 》

 

길을잃어 방황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질병으로 신음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가난으로 고생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외로움에 눈물짓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억울함에 가슴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증오심에 시달리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분노심에 몸을떠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복수심에 불이타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멸시당해 눈물짓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억압당해 절규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 업장을 참회하는 진언

 

예로부터 지금까지 내가지은 모든허물

그모두가 뿌리없는 탐진치로 인함이라

내가이제 정성모아 몸과마음 다바쳐서

쌓인허물 거듭거듭 지심참회 하옵니다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3번)

 

 약사여래 치유광명 대다라니

 

가는이여 가는이여 광명의길 가는이여

어두움을 떨쳐내고 광명의길 가는이여

 

보는이여 보는이여 이 세상  모든존재 그물코로 보는이여

시방세계 부처님을 뵈옵듯이 뭇생명을 부처로 보는이여

오고가며 인사하는 우리이웃 우리친구 부처로 보는이여

 

아는이여 아는이여 그대가 나임을 아는이여

너와내가 둘이아닌 한몸임을 아는이여

하나속에 여럿있고 여럿속에 하나있음 아는이여

순간이 영원이요 영원이 순간임을 아는이여

순간순간 하나하나 저마다가 소중함을 아는이여

 

〔 옴 비살서 비살서 비살사 삼몰아제 사바하 〕(3번)

 

 

《 약사여래 21세기 큰 서원 》

 

21세기 큰 서원의 주인공인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하옵니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 혐오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죽음도 빛나고 삶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젊음만을 좋아하고 늙어감을 싫어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늙음도 빛나고 젊음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남성만 존중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여성도 빛나고 남성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인간만을 사랑하고 자연생태 괴롭히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자연도 빛나고 인간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자기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내려보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상대도 빛나고 자기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개인만 앞세우고 공동체를 뒤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공동체도 빛나고 개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침묵은 금이고 대화는 흙이라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대화도 빛나고 침묵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 하옵니다

 

소유만을 추구하고 존재가치 외면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존재도 빛나고 소유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부자만 떠받들고 가난한이 무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소박함도 빛나고 풍족함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특별함만 좋아하고 평범함을 멸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평범함도 빛나고 특별함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경쟁만을 좋아하고 협력상생 거부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협력도 빛나고 경쟁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내편만 좋아하고 상대편을 배척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상대편도 빛나고 우리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서울에만 집착하여 지역사회 홀대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지역도 빛나고 서울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도시만을 좋아하고 농촌마을 방치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농촌도 빛나고 도시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출가불자 우대하고 재가불자 경시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재가도 빛나고 출가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절집안만 중시하고 이웃마을 방관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마을도 빛나고 절집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나무 대자대비 약사여래불 

나무 일광변조 보살마하살

나무 월광변조 보살마하살 (3번)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 하옵니다

 

전쟁테러 생명파괴 어리석은 재앙이니 

무기없고 폭력없는 세계평화 원합니다.

 

국가민족 인종계급 이모두가 망념이니 

지구촌의 가족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인간만이 이세상의 주인이란 생각놓고 

인간자연 뭇생명들 화목하길 원합니다.

 

기후위기 불러오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산하대지 조화로운 밝은문명 원합니다.

 

성장이윤 집착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나누면서 서로돕는 밝은문명 원합니다.

 

기업노동 반목하면 모두에게 해로우니 

함께가는 노사문화 가꿔가길 원합니다

 

성현들은 한결같이 사랑평화 원했으니 

이웃종교 존중하는 종교평화 원합니다.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하옵니다

 

소외박탈 커져가는 차별사회 넘어서서 

평등하게 주인되는 세상살이 원합니다.

 

앞만보고 달려가는 일등주의 멈추고서 

함께사는 협동문화 가꿔가길 원합니다.

 

윤리없고 사랑없는 지식정보 위험하니 

존재실상 바로보는 참된지혜 원합니다.

 

주의주장 사로잡힌 자기견해 집착않고 

참된변화 가져오는 중도실천 원합니다.

 

나와세상 둘로보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중도연기 밝은문명 가꿔가길 원합니다.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하옵니다

 

획일성만 강요하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다양성을 꽃피우는 깨달음의 문명으로

 

인위조작 지배하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자연모습 닮아가는 깨달음의 문명으로

 

최고만을 고집하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단순하고 소박한삶 깨달음의 문명으로

 

죄의식에 시달리는 미혹문명 넘어서서

본래붓다 동체대비 깨달음의 문명으로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차별의 문명에서 평등의 문명으로

분열의 문명에서 공존의 문명으로

업보중생 문명에서 본래붓다 문명으로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 

하루속히 전환되게 하옵소서

                                 

나무 대자대비 약사여래불

나무 일광변조 보살마하살

나무 월광변조 보살마하살 (3번)

                                 

 

 원성취진언

 

〔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 훔 〕(3번)

                                 

 

 광명진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르타야 훔〕(3번)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처님의 열반유훈 가슴깊이 새깁니다

여래의뜻 삼학수행 원만하게 이루어서

한량없는 공덕으로 온세상을 장엄하니 

너도나도 모두함께 해탈열반 누리소서

 

〔 마하반야바라밀 〕(3번)

 

 

 네 가지의 큰서원을 세웁니다

 

가이없는 모든중생 제도하길 원합니다

다함없는 삼독번뇌 모두끊기 원합니다

한량없는 가르침을 다배우길 원합니다

위가없는 부처님도 이루기를 원합니다

 

 

 모든발원 마치옵고 삼보전에 귀의하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부처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가르침에 지성귀의 하옵니다

시방세계 항상 계신 보배로운 승가앞에 지성귀의 하옵니다 (3번)

 

 

종교평화 선언은 '전법포기 선언'이 아니다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109

“붓다로 살자”는 모순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160

붓다 중도로살다를 읽고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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