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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칠정례와 보배경에서 '승가'의 의미를 찾다

'승가'라는 단어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부처님 당시에 사용되었던 단어이다.부처님은 물론 뿌라나 깟사빠등 육사외도에게도 승가를 가졌고(saṅghī) 무리를 가졌고(gaṇī)라는 단어들이 사용되었다.

폐하, 뿌라나 깟사빠라는 분이 있는데, 그는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에 의해서 사두로 인정되며 노련하고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르렀습니다.“ayaṁ, deva, pūraṇo kassapo saṅghī ceva gaṇī ca gaṇācariyo ca ñāto yasassī titthakaro sādhusammato bahujanassa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사문과경(D2 )

그런데 부처님은 이 승가(saṅgha)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 그래서 saṅgha는 보다 복잡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상가의 어원을 분석해도 그 뜻이 시원스럽게 드러나지도 않는 단어가 되었다. 이것이 번역가들이  붓다(Buddha)  담마(Dhamma) 상가(Sangha)를 번역하지 않고 소리나는 대로 불타, 담마, 승가라고 음사한 이유다. (담마는 법(法)이라고 번역되었지만 담마에는 진리,이치,현상,규칙,가르침,심리현상,사건등의 뜻이 있기에 법(法)이라는 번역은 부족하다) 붓다(Buddha)  담마(Dhamma) 상가(Sangha)의 어원을 분석한다고 해서 붓다 담마 승가의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용어들은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으나 부처님이 새로 의미 규정하여 사용한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붓다라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 여래십호, 18불공법등의 설명이 필요하고 승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율장의 여러가지 설명이 필요하다. 자동차 부품이 모여놓았다고 자동차라고 부르지 않듯 '승가'를 '스님들'이라고 부를 수 없다. 승가라는 용어에는 부처님 제자들의 모임이라는 뜻 외에 의지처, 공유(무소유), 평등, 자율, 자발, 자율, 민주, 화합(육화),참회를 통한 청정등의 내용이 녹아있다. 그래서 승가야중,귀의불법승등 음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도들에게 승가는 너무 중요한 단어인데도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 심지어 니까야를 번역하는 이들에의해서 승가에 대한 오해들(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914)이 더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승가를 "스님들" "거룩한 스님들" "성인들"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재가자도 포함되는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승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종헌종법'을 만들었으므로 종헌종법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종단 운영'면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게 되었다. 승가라는 의미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스님들이나 학자들도 막상 승가의 의미를 물어보면 혼란스런 경우가 많다. 스스로가 승가에 대해서 이해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래 질문에 대답해보시라. 승가의 의미를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 조계종에서 아래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첫째 삼귀의 때 승가에 귀의하는 것인가 승보에 귀의하는 것인가?

둘째 승가 혹은 승보에 재가자도 포함되는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각각 설명한다면)

셋째 대한불교조계종은 현전승가인가? 사방승가인가?

넷째 경장에서 설명하는 승가와 율장에서 설명하는 승가는 같은가?

다섯째 현전승가에서는 어떤 일을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가?

여섯째 붓다, 승가, 백명의 아라한,백명의 아나함, 한명의 벽지불, 한명의 무심도인중에서 보시공덕이 큰 대상을 순서대로 적어 보셔요.

일곱째 승가의 화합을 위하여 필요한 핵심정신은 무엇인가?

 

지난번에는 승가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 여러 경전에서 가르침을 인용하였지만 지금은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예불할 때 사용하는 예불문과 남방불교의 보배경을 비교해 보도록하자. 칠정례와 보배경을 비교해 봄으로서 북방불교의 삼귀의와 남방불교의 삼귀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위에서 질문한 대답도 찾아 낼수가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한문 예불문과 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새벽예불 다게(茶偈))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봉헌삼보전 원수애납수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願垂哀納受(3번)

저희는 지금 청정한 물로 감로차를 다려서 삼보전에 올립니다.

원하옵건대 받아주옵소서. 원하옵건대 받아주옵소서. 원하옵건대 자비로 받아주옵소서.

 

 

(저녁예불 오분향례(五分香禮))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 光明雲臺 周遍法界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

계행의 향과 삼매의 향과 지혜의 향과 해탈의 향과 해탈지견의 향기가 광명구름 되어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의 무량한 부처님과 가르침과 상가에 공양합니다.

 

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 (3번) |

 

①지심귀명례 삼계대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至心歸命禮 三界大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

삼계의 스승이시며 사생의 자비로운 아버지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②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

시방삼세 온갖 곳에 항상 계신 모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③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磨耶衆 |

시방삼세 온갖 곳에 항상 계신 가르침에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④지심귀명례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

至心歸命禮 大智文殊師利菩薩 大行普賢菩薩 大悲觀世音菩薩 大願本尊 地藏菩薩摩訶薩 |

큰 지혜의 문수사리보살, 큰 행원의 보현보살, 큰 자비의 관세음보살, 큰 원력의 본존 지장보살마하살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⑤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 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 |

至心歸命禮 靈山當時 受佛付囑 十大弟子 十六聖 五百聖 獨修聖 乃至 千二百 諸大阿羅漢 無量慈悲聖衆 |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 성불의 수기를 받으신 십대제자, 열여섯 제자, 오백 제자, 천이백의 모든 아라한님들과 자비로운 무량한 성인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⑥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

至心歸命禮 西乾東震 及我海東 歷代傳燈 諸大祖師 天下宗師 一切微塵數 諸大善知識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법을 전해주신 모든 조사, 종사, 티끌과 같이 많은 선지식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⑦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僧伽耶衆 |

시방삼세 온갖 곳에 항상 계신 상가에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⑧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 원공법계 제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

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熏加被力 願共法界 諸衆生 自他一時 成佛道

오로지 바라옵나니 다함없는 삼보님이시여, 대자대비로 저희 절을 받으시고 그윽한 가피력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다 함께 성불 하여지이다.

 

 

 

[해설]

 

 위와 같은 예불문은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가 7번 나오기 때문에 칠정례하고도 한다. ①~⑦번 까지 칠정례의 내용을 요약하면 결국 붓다,담마,상가에 대한 귀의이다. ①②번은 붓다들에 귀의하는 것이고 ③번은 가르침(담마)에, ④~⑥은 대보살님들과 4쌍팔배의 성인들(승보)께 귀의 하는 것이고 ⑦번은 승가에 귀의 하는 것이다. 여기서 승보와 승가를 나눈 것에 유의하자. 보배경에는 "네 쌍으로 된 여덟이 있으니, 도과를 이룬 성자들로 칭송을 받습니다. 그들은 여래의 제자로서 공양 받을 만하며, 그들에게 보시하면 커다란 결실이 있다. 이 훌륭한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Idampi Saṅghe ratanaṁ paṇītaṁ)"라고 승가속에 있는 보물(승보)을 설명한다. 이 설명이 승가안에 있는 보물(승보)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승가안에 4쌍팔배의 성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승가 안에는 성인의 과위를 아직 얻지 못한 비구나 비구니가 있다. 그래서 성승가와 범부승가를 합해서 ⑦번처럼 '승가'에 귀의 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성승가(아리야상가)에 귀의한다는 표현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승가' 혹은 '비구상가'에 귀의한다고 나온다. 칠정례④~⑥은 사쌍팔배의 성인들뿐만이 아니라 관세음보살 문수보살과 같은 대보살과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법을 전해주신 모든 조사, 종사, 티끌과 같이 많은 선지식을 모두 승보로서 예경하고있다. 이것이 출가자만을 승가로 한정하고 있는 초기불교와 다른점이다. 

 

초기불교는 승보를 사쌍팔배로 설명하고 승가는 '4인승가,5인승가.10인승가,20인승가, 20인이상  승가'라는 5종류로 나눈다. '승보'가 과위를 얻은 사람들이라면 '승가'는 구족계를 받은 모든 수행자를 포함한다.  각 나라에 불교가 전파될 때 5인이상의 스님들이 함께가야지만 구족계를 줄 수 있으므로 아소까 대왕이 아홉 곳으로 포교사를 파견할때 하나의 지역에 5명이상의 스님들을 보냈다. '승가'에는 수계,갈마(단백갈마, 백이갈마, 백사갈마) 만장일치,다수결등 승가운영방식까지 포함되어있다. 이제 처음의 질문에 답해보자.

 

첫째 승가와 승보와 사부대중의 차이는 무엇인가?

답: 승보는 사쌍팔배를 얻은 비구비구니다. 승가는 공동체의 의미로 구성원에따라 5종류로 나뉘고 실질적인 승단을 말한다. 사부대중은 비구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가 포함되어 있고 현재종단의 구성원과 같다. 칠정례에 대보살과  제대선지식을 포함시켜서 승가와 승보에 재가자(보살)를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대승불교가 8정도 대신에 6바라밀(10바라밀)을 실천하는 생활불교로 바뀌면서 승가의 의미도 변화된 것이다.  

 

둘째 승가에 귀의하는것인가 승보에 귀의하는 것인가?

답: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다. 승보는 승수념(僧隨念)의 대상이지만 귀의 대상은 승가이다. 

 

셋째 부처님 당시의 현전승가와 지금의 현전승가는 같은가? 

승가의 현실적인 모습은 현전승가이다. 현전승가는 스님들이 정기적으로 모일수 있으려면 하루동안 걸어서 도달할수 있는 거리에 경계(결계)를 정함으로서 형성된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고 종단이라는 단일 체계로 규율되기 때문에 조계종 자체가 현전승가라고 할 수있다. 다만 교구본사별로 포살을 할때는 교구본사가 현전승가의 포살당이 되고, 사미 비구계를 받거나 징계와 포상을 할때는 조계사가 현전승가의 갈마장소가 된다.    

 

넷째 승가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자발성이다. 다른 말로 주인정신이다.

부처님 제자들은 자발적으로 입산출가하고 자발적으로 수계를 하고 자발적으로 소욕지족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자발적으로 독신 생활을 한다. 누가 시켜서 혹은 악당들에게 끌려와서 출가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자 포살도 모두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중요한 결정을 할때도 현전승가 대중에게 물어서 결정해야한다. 이렇게 대중공의를 모으는 과정이나 보시물의 분배에서 평등,균등,공유라는 정신이 바탕이지만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라는 주인정신이 생명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가 승가정신인 것이다.

 

이러한 자발성과 주인정신을 사라지게 하는 이유는 어떤 것들일까? 승려가 사찰을 방문해도 잠을 재워주지 않고, 가사와 장삼을 개인이 사야하고, 표현의 자유와 발언의 자유가 없어 비판적인 발언때문에 징계를 당한다면 승려들의 자발성과 주인정신은 사라질 것이다. 승가의 공유물이 사유화되고, 소통창구가 막히고, 몇몇 승려가 종단을 마음대로 이끌어 간다면 승가안에서 갈등은 깊어진다. 자발적인 행동은 주인이 하는 것이고 눈치보는 행동은 노예가 하는 행동이다. 승가가 고통받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고 승가가 오래 지속하고 되려면 승려들의 자발성과 주인정신이 회복되어야한다. 아래는 자발적인 삼귀의 모습이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듯, 방향을 잃어 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비춰주듯, 고따마 존자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비구상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귀의 합니다.”(A3:63)

 

 

 

우리는 아침저녁에 예불을 함으로서 삼귀의를 반복하고 있다. "고따마 존자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삼귀의는 설법의 내용을 이해하고 난 후에 행해져야한다. 즉, ‘귀의법’이 선행되고 나서 ‘귀의불’과 ‘귀의승’이 행해지는 것이다. 그냥 '부처님을 믿습니다'라는 자세로는 진정한 불자가 되지 못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보는 것이다. 이해하고 본 자는 “경이롭습니다.” 는 감탄을 하게 되고 부처님과 승가에 귀의하게 된다.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들은 오비구도 법을 이해하고 법의 눈(法眼)을 얻고 난 후에야 세존께 출가를 요청하였다.

 

 칠정례와 같이 '보배경'도 붓다, 담마,상가에 대한 귀의와 그 공덕을 말하고 있다. '붓다 담마 승가안에 이 훌륭한 보배가 있다.' 이러한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웨살리에 퍼져있던 질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졌다. 칠정례는 대보살을 포함한 성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보배경은 성인이 되는 순서와 예류자가되면 소멸하는 번뇌를 설명하는등 설명이 구체적이다. "통찰의 구족과 함께 세 가지 사견을 버렸으니,①자아가 있다는 견해, ②법에대한 의심, ③의식에대한 집착이다. 4악도에서 벗어났고 여섯 가지 큰 허물을 범할 수 없다."

 

 

 삼귀의를 하는 행위는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실의 힘으로 질병에서 벗어나고 행복해진다. 우리가 매일 칠정례와 보배경을 통해서 삼귀의를 반복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신심을 증장시키고 공덕을 쌓고 수행을 진전시키기 위함이다. 성인의 첫단계인 예류자의 특징을 '불법승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생긴 자'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더라도 삼귀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또 한가지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귀의 합니다"라는 고백을 눈여겨보자. 이러한 고백이 칠정례에서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로 전승된다. 그런데 대부분 스님들이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를 “목숨바쳐 귀의합니다.”라고 해석한다“오늘부터 목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귀의 합니다.”라는 고백과 “목숨바쳐 귀의합니다.”는 많은 차이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귀의하는 것은 목숨을 바치는 결연함 보다는 죽는 날까지 부처님을 의지하여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겠다는 유연한 다짐이다. “목숨바쳐 귀의합니다.”라는 표현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한 결단이 느껴진다. 악행을 멀리하고 선행을 실천하고  마음을 닦는 수행에 그토록 긴장하고 비장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귀의태도가 수행자들에게 수행도 경쟁하듯이 하는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보 배 경(ratana sutta, 라따나 숫따)

 

1. 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bhummāni vā yāniva antalikkhe,

여기 모인 모든 존재들은 땅(지신)에 있든 하늘(천신)에 있든,

sabbeva bhūtā sumanā bhavantu, athopi sakkacca suṇantu bhāsitaṃ.

모든 존재들은 행복하고 설법에 귀 기울이기를.

2. tasmā hi bhūtā nisāmetha sabbe, mettaṃ karotha mānusiyā pajāya,

그래서 모든 존재들이 귀 기울이고 인간에게 자애를 베풀기를.

디와-짜 랏또짜 하란띠 예발링,따스마- 히 네 락카타 압빠맛따-.

divā ca ratto ca haranti ye baliṃ, tasmā hi ne rakkhatha appamattā.

밤낮으로 헌공하는 그들을 방일하지 말고 수호하기를.

3. yaṃ kiñci vittaṃ idha vā huraṃ vā, saggesu vā yaṃ ratanaṃ paṇītaṃ,

온 세상의 어떤 보물도, 천상의 으뜸가는 보배도

na no samaṃ atthi tathāgatena, idampi buddhe ratanaṃ paṇītaṃ,

여래에 비할 수 없으니, 부처님은 으뜸가는 보배.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4. khayaṃ virāgaṃ amataṃ paṇītaṃ, yadajjhagā sakyamunī samāhito,

사꺄족의 성인이 증득한 멸진 ․ 이욕 ․ 불사 ․ 으뜸의 (법)

na tena dhammena samatthi kiñci, idampi dhamme ratanaṃ paṇītaṃ,

이 법(열반)은 비할 수 없으니, 담마(법)는 으뜸가는 보배.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5. yam buddhaseṭṭho parivaṇṇayī suciṃ, samādhimānantarikaññamāhu,

최상의 부처님께서 칭송하신 곧바로 결실을 맺는 청정한 삼매.

samādhinā tena samo na vijjati, idampi dhamme ratanaṃ paṇītaṃ,

이 삼매는 비할 수 없으니, 담마는 으뜸가는 보배.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6. ye puggalā aṭṭha sataṃ pasatthā, cattāri etāni yugāni honti,

선한 이들이 칭송하는 네 쌍의 여덟 성인들(팔배),

te dakkhiṇeyyā sugatassa sāvakā, etesu dinnāni mahapphalāni,

보시 받아 마땅하신 선서의 제자들에게 올린 공양은 큰 과보가 온다.

idampi saṃ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 으뜸가는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This excellent treasure is in the Saṅgha:
by virtue of this truth may there be safety!

 

 

7.ye suppayuttā manasā daḷhena, nikkāmino gotamasāsanamhi,

확고한 마음으로 매진하여 부처님 가르침에서 욕망을 떠나신 분들.

te pattipattā amataṃ vigayha, laddhā mudhā nibbutiṃ bhuñjamānā,

얻어야 할 것을 얻고 불사에 들고 자유로이 적멸에 들어 누리는 분들.

이담 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idampi saṃ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 으뜸가는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8.야틴다킬-로 빠타윗시또 시야-, 짜뚭비 와-떼히 아삼빠깜삐요,

yathindakhīlo paṭhavissito siyā, catubbhi vātehi asampakampiyo,

땅에 박은 기둥이 사방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듯이,

tathūpamaṃ sappurisaṃ vadāmi, yo ariyasaccāni avecca passati,

성스러운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참된 이는 이와 같다고 말한다.

idampi saṃ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 으뜸가는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9.ye ariyasaccāni vibhāvayanti, gambhīrapaññena sudesitāni,

심오한 통찰지로 잘 설하신 성스러운 진리를 분명히 깨달은 분들.

kiñcāpi te honti bhusaṃ pamattā, na te bhavaṃ aṭṭhamamādiyanti,

매우 방일하더라도 여덟 번째 존재는 받지 않는다.

idampi saṃ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 으뜸가는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10.sahāvassa dassanasampadāya, tayassu dhammā jahitā bhavanti,

통찰(봄)의 구족과 함께 세 가지 법(사견)을 버렸으니,

sakkāyadiṭṭhī vicikicchitañca, sīlabbataṃ vāpi yadatthi kiñci.

①자아가 있다는 견해(유신견), ②(법의) 의심, ③의식의 집착이다.

catūhapāyehi ca vippamutto, chaccābhiṭhānāni abhabba kātuṃ,

4악도에서 벗어났고 여섯 가지 큰 허물(육대역죄)을 범할 수 없다.

(부모나 아라한 살해, 부처님 몸에 피나게 함, 상가분열, 외도 믿음)

이담 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idampi saṃ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 으뜸가는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11.kiñcāpi so kamma karoti pāpakaṃ, kāyena vācā uda cetasā vā,

몸, 말, 마음으로 범한 어떤 악업도

abhabba so tassa paṭicchadāya, abhabbatā diṭṭhapadassa vuttā,

도(진리)를 보신 분들은 감출 수 없고 행할 수 없다고 설하셨다.

idampi saṃ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 으뜸가는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12.여름 첫 달에 큰 숲의 나무가 꽃으로 만개하듯이

tathūpamaṃ dhammavaraṃ adesayi, nibbānagāmiṃ paramaṃ hitāya,

이같이 성스러운 법을 설하시어 최상의 유익인 닙바나로 인도하신다.

idampi budd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부처님은 으뜸가는 보배.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13.varo varaññū varado varāharo, anuttaro dhammavaraṃ adesayi,

성스러운 분, 성스러운 법을 아는 분, 성스러운 법을 주는 분,

성스러운 법으로 인도하는 분께서 위없는 성스러운 법을 설하셨다.

idampi budd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부처님은 으뜸가는 보배.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14.khīṇaṃ purāṇaṃ nava natthi sambhavaṃ, virattacittāyatike bhavasmiṃ,

옛 업은 소진되고 새 업은 낳지 않으며 마음은 미래존재에 집착하지 않고

te khīṇabījā avirūḷhichandā, nibbanti dhīrā yathāyaṃ padīpo,

씨(삶)가 소진되고 욕망이 없어 현자들은 등불이 꺼지듯 닙바나에 이른다.

idampi saṃg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이 으뜸가는 보배는 상가안에 있다. 이러한 진리로 행복하기를!

 

 

15.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bhummāni vā yāniva antalikkhe,

여기 모인 모든 존재들은 땅에 있든 하늘에 있든,

tathāgataṃ devamanussapūjitaṃ, buddhaṃ namassāma suvatthi hotu.

신과 인간이 공경하는 여래이신 붓다께 예경하고 행복하기를!

 

16.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bhummāni vā yāniva antalikkhe,

여기 모인 모든 존재들은 땅에 있든 하늘에 있든,

tathāgataṃ devamanussapūjitaṃ, dhammaṃ namassāma suvatthi hotu.

신과 인간이 공경하는 여래의 담마(법)에 예경하고 행복하기를!

17.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bhummāni vā yāniva antalikkhe,

여기 모인 모든 존재들은 땅에 있든 하늘에 있든,

tathāgataṃ devamanussapūjitaṃ, saṅghaṃ namassāma suvatthi hotu.

신과 인간이 공경하는 여래의 상가에 예경하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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