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세명이 말해도 그렇다
엊그제 조계사 앞에서 승려대회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총무원 호법부는 기자회견을 방해하려고 조계사 앞에 집회신고를 해놓았고 우리는 조계사 정문에서 옆으로 이동해야했다. 말을 하기 위해서 왔으므로 몸싸움을 하면서 정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한가한 곳에 현수막을 펼치고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나와 무념스님과 도정스님 순서로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마이크 없이 순수하게 육성으로 호소하려 했는데 시사타파TV에서 마이크를 빌려주었다. 무념스님이 회견문을 읽을 때 호법부스님 하나가 “이제 그만 하시죠”라며 현수막을 걷으려 했고 곁에 있던 관계자 분이 그를 제지했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장면은 기자회견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각 신문에 실렸다. 그냥 조용히 기자회견을 하게 놔두었으면 이런 장면은 안 실렸을 텐데,아쉽다.
기자회견이라는 방식으로 조용히 의견 표출하는 것을 호법부는 왜 막아야 했을까? 기자회견을 방해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장을 반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전에도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마다 호법부는 저렇게 강경 대응해 왔다. 다른 의견을 듣는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토론으로 의견을 조율하기 보다는 힘으로 입을 틀어 막는 것이 호법(護法)이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들에게는 선배도 도반도 없다. 말하는 놈은 다 적(狄)이다. 이러한 종단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의견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뜻을 접는다.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을 해종, 훼불세력이라 이름 붙이고 징계운운하니 엄두를 못낸다. 그래서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에 모든 스님들이 고개를 젖는다. 저는 생각이 달라요,라고 말하는 별거 아닌 일이 조계종에서는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일처럼 비장해 진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찰관람료 문제로 승려대회를 연다면 ’제 밥그릇 만 챙기는 이기주의 집단‘, ’일반인과 똑 같이 탐욕을 버리지 못한 종교인들!‘이라는 야유와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이번 승려대회는 국민건강에 위협을 가하고, 선거개입 시비(是非)를 일으키고, 승가분란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염려때문에 승려대회 걱정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우리종단 팔십일명의 중앙종회의원, 이십오명의 본사주지는 일사천리로 승려대회를 추진하였는가? 이십육명의 원로회의, 종정스님은 왜 말리지 않는가? 건전한 사유가 실종되고 대화와 토론이 사라진 들판에는 맹목적인 복종, 피해의식, 이기주의만 남았다.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제안이 아니라 대항이라고 생각하고 공격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편 아니면 반대편이라고 생각하니 호법부가 저리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리라.
상식이 사라졌다. 대화가 사라졌다. 웃음이 사라졌다.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을 반겨주는 친절이 사라졌다. 약자에 대한 공감이 사라졌다. 불평등을 보고 분노하는 정의가 사라졌다. 사라져간 것들을 생각하니 쓸쓸하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라고 말해야한다. 더 망해가도록 내버려 둬, 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말고. 말하는 것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경청이 시작되고 소통이 시작되고 우정이 시작되고 화합이 시작되고 변화가 시작된다. 겨우 세명이 말해도 그렇다. 두명이 말해도 그렇다. 한명이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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