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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영축산 정상에서 바위를 굴린 사건- 90번 게송

<영축산 정상에서 바위를 굴린 사건>

 

법구경 90번 게송

 

이미 이 세상의 여행을 마치고 근심과 걱정을 떠나 모든 속박을 끊고 자유를 얻은 사람, 그에게는 털끝만한 고뇌도 없다.

 

가야 할 여정을 끝내고 슬픔 없이 일체의 관점에서 해탈하고

일체의 속박을 버린 님에게 고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去離憂患 脫於一切 縛結已解 冷而無暖

거리우환 탈어일체 박결이해 냉이무난

 

路行盡無憂於一切解脫斷一切繫縛 無有苦惱者

 

gataddhino visokassa, vippamuttassa sabbadhi

sabbaganthappahīnassa, pariḷāho na vijjati

 

There is no suffering for him who has completed his journey, who is from sorrow, who has freed himself on all sides, who has shaken off all fetters.* [Note: Arhat is the perfected who has reached the highest degree of the four orders of the aryas, from which nirvana is perceived.]

 

[인연담]

부처님께서 지와까의 망고 동산 승원에 계시던 어느 때, 지와까의 질문과 관련하여 게송 90번을 설법하였다.

 

데와닷따는 어느 때 부처님을 해치려고 영축산 정상에서 부처님을 향하여 큰 바위를 굴려 내린 일이 있었다. 그때 바위가 구르면서 산에 박혀 있던 바위와 서로 부딪치면서 깨어진 바위조각이 튀어 그중 하나가 맨발로 걸어오시던 부처님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상처를 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지와까의 망고 동산 승원으로 가시었다. 거기서 부처님은 부처님의 주치의였던 지와까로부터 치료를 받으시었는데, 그는 약을 조금 바른 뒤 부처님의 발가락을 붕대로 조심스럽게 감았다. 그런 다음 다른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떠나면서 저녁 때 다시 돌아와서 붕대를 풀어드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지와까가 볼일을 다 보고 부처님께로 돌아오려고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성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밤 부처님을 뵙지 못하게 되어 매우 걱정했다. 만약 붕대를 제 시간에 풀어 드리지 않으면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와까가 와야 할 시간에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붕대를 풀어 버리도록 지시하였고, 상처가 완전히 치료된 것을 아시었다. 이튿날 지와까가 아침 일찍 도착하여 부처님에게 간밤에 큰 고통을 당하여 불편하시지는 않으셨는지 여쭈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와까여, 여래가 부처를 이룬 이래 고통으로 인하여 불편을 느껴 본 적은 없느니라."

 

 

[해설]

 

"지와까여, 여래가 부처를 이룬 이래 고통으로 인하여 불편을 느껴 본 적은 없느니라."라는 말씀은 고통의 소멸을 이룬자라는 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이 고통은 화살 경(S36:6)에서 밝히는 것과 같이 두 번째 화살을 안 맞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느낌, 즉 육체적 느낌만을 경험할 뿐이며 결코 정신적인 느낌은 겪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지만 그 첫 번째 화살에 연이은 두 번째 화살에는 맞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나의 화살로 인한 괴로움만을 겪을 것이다.”

 

지와까 망고농장은 영축산을 오르기 전에 있다. 망고라도 심어져 있으면 그곳을 참배하면서 부처님과 지와까의 대화라도 떠올려 보련만 인도 비하르정부에서는 성지를 가꾸는 일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래도 언젠가 영축산을 오르는 순례자들이 있다면 지와까 망고동산에 내여서 "지와까여, 여래가 부처를 이룬 이래 고통으로 인하여 불편을 느껴 본 적은 없느니라."는 말씀을 음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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