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의 아라한 띳사사미>
법구경 75번 게송
여기 두 길이 있으니 하나는 이익을 추구하는 길이요. 하나는 대자유에 이르는 길이다. 부처의 제자인 수행자들은 이 이치를 깨달아 남의 존경을 기뻐하지 말라. 한적하게 머무는 것을 닦아라.
하나는 이득을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
이와같이 곧바로 알아 수행승은 깨달은 님의 제자로서 명성을 즐기지 말고 멀리 여윔을 닦아야 하리.
異哉夫利養 泥洹趣不同 能第是知者 比丘眞佛子 不樂着利養 閑居却亂意
이재부리양 이원취부동 능제시지자 비구진불자 불락착리양 한거각란의
一道引世利,一道向涅槃。佛弟子比丘,當如是了知,莫貪著世利,專注於遠離。
aññā hi lābhūpanisā aññā nibbānagāminī
evam etaṃ abhiññāya bhikkhu buddhassa sāvako
sakkāraṃ nābhinandeyya vivekam anubrūhaye
One is the road that leads to gain; another is the road that leads to nirvana. Let the mendicant, the disciple of the Buddha, having learnt this, not seek the respect of men but strive after wisdom.
[인연담]
띳사는 사왓티에 사는 한 재산가의 아들이었다. 띳사의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리뿟따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고, 띳사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아들을 사리뿟따 비구에게 출가시켜 사미가 되게 했다. 띳사가 사미가 된 다음 띳사의 친구들과 친척들은 띳사를 찾아와 많은 선물을 주고 가곤 했다. 띳사사미는 이것을 매우 번거롭게 생각했다. 그는 부처님으로부터 정진하는 방법을 배운 다음 정진 수행에 관한 주제를 받아 제따와나 승원을 떠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 근처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는 그들에게 다만 "당신이 행복하시기를 ! 당신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시기를 !"이라고만 말해 주고는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띳사는 숲속에서 이렇게 열심히 수행에 열중한 끝에 우기 안거가 끝났을 때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
우기 안거가 끝났을 때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비구, 그 밖의 많은 비구들이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숲속에서 생활하는 띳사 사미 아라한을 찾아갔다. 이때 모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나와 사리뿟따 비구를 비롯한 여러 비구들을 환영했다. 마을 사람들은 사리뿟따 비구를 존경하고 있었으므로 비구에게 설법을 요청했는데, 비구는 그 요청에 매우 기뻐하면서 자기 대신 자기의 제자 띳사 사미에게 설법을 부탁해 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권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그분은 말씀이 적으시어 그동안 저희에게 "행복하세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세요"라고만 말씀해 주셨을 뿐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설법을 해주신 적이 한번도 없으니 사리뿟따 비구께서 설법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리뿟따 비구는 한사코 띳사 사미가 설법을 해야 한다고 하였고, 또 띳사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여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며 어떻게 살아가야만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일렀다.
그러자 스승을 존경하는 띳사사미는 마침내 법상에 올라앉아 많은 비구들과 마을 사람들 앞에서 설법했다. 띳사는 그 설법에서 오온과, 감각과,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은, 그리하여 수행자느 어떻게 아라한이 되며, 어떻게 열반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질서 있게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띳사는 말하기를 아라한은 모든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이들이요, 완전한 평화와 고요를 누리는 이들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윤회 속에 헤매는 것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을 성취하지 못한 때문이라 하였다.
띳사의 설법이 끝나자 사리뿟따 비구는 매우 질서 있고 정확한 설법이었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설법을 들은 대중 중에는 대체로 띳사사미의 담마에 대한 지식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이 많았지만, 더러는 불만족을 느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띳사 사미가 전에 자기들의 공양을 받으면서 단지 몇 마디밖에는 대꾸해 주지 않은 데서 느낀 불만의 감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때 부처님은 제따와나 승원에 계시면서 띳사의 법회 광경을 신통력으로 보시고 광명을 놓으시어 마을 사람들은 뜻밖에도 부처님을 공양할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공양이 끝났을 때 부처님은 말했다.
"재가 신자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복과 행운이 많은 사람들이니라. 왜냐하면 띳사 사미가 그대들과 함께 우기 안거를 잘 지냈고, 그대들이 띳사 사미를 잘 도와주었는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여래의 으뜸가는 두 제자와 다른 많은 비구들이 이 마을에 왔을 뿐 아니라 여래까지도 이 마을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사람들은 띳사 사미가 숲속에서 머물러 수행한 일이 얼마나 고마운 인연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이 법회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예류과를 성취하였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도시에서나 혹은 산속 깊은 곳에서 생활할 때 신자들로부터 풍부하게 공양을 받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약 어떤 비구가 세상의 명예와 세간적인 장래의 욕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고요한 숲속에서 부지런히 여래의 가르침을 수행하게 되면 그는 반드시 아라한이 될 수 있느니라."
[해설]
7살 아라한 띳사사미는 전생의 수행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띳사사미는 법문이 길지도 않고 재미있게도 안해서 인기가 없었는데 부처님은 그러한 띳사사미의 가치를 이해하게 설명한다. “비구가 도시에서나 혹은 산속 깊은 곳에서 생활할 때 신자들로부터 풍부하게 공양을 받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느니라.”는 이야기는 지금같은 물질만능의 시대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승가안에서 빈부의 차이가 벌어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요즈음은 선원에 안거를 하면서도 해제비에 신경을 쓰고 공양금을 부담스러워 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천장사에서 선원을 운영할 때 가난한 절이라 해제비를 줄 수 없다고 전국선원에 공지문을 보냈는데 다행히 일곱분이 방부를 들였다. 해제비에 연연하지 않는 분들이 모여사니 역시 마음씀이 다른분들과 달랐다. 없는 분들이 더 보시를 많이 하려고 했고 해제비에 신경을 쓰고 살지 않으니 공양금이 평소보다 더 많이 들어왔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자부심, 당당함이 있어야 적어도 수행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계종은 종헌종법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수행자가 사유재산을 모으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수행자는 스스로 평생 가난하게 살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요즘 주지스님들이나 노스님들이 종단이나 학교에 일생동안 모은 거금을 보시하는 것을 보게된다. 이렇게 일생동안 돈을 보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수행자가 일생동안 돈을 모았다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돈을 모으지 않아도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종단환경이 되어야한다. 환경이 좋다고 수행을 잘하는 것도 아니므로 수행자들이 자주모여 포살하고 토론하고 소통하는 전통이 생겨나야한다. 소통하지 않고 대중의 공의에 따라 운영되지 않는 승가는 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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