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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어떤 과보는 늦게 나타나기도 한다 -71번 게송

<어떤 과보는 늦게 나타나기도 한다>

 

법구경 71번 게송

 

못된 짓을 할지라도 새로 짜낸 우유처럼 그 업이 그 자리에서 곧 굳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업은 재에 덮인 불씨처럼 두고두고 타면서 그의 뒤를 따른다.

 

새로 찬 우유가 굳지 않듯악한 행위는 드러나지 않는다

재속에 숨어있는 불처럼작열하며 어리석은 자를 쫓는다.

 

惡不卽時 如穀牛乳 罪在陰伺 如灰覆火

악불즉시 여곡우유 죄재음사 여회복화

 

猶如搆牛乳醍醐非速成愚人造惡業不即感惡果業力隨其後如死灰覆火

 

na hi pāpaṃ kataṃ kammaṃ sajju khīraṃ va muccati

ḍahaṃ taṃ bālam anveti bhasmacchanno va pāvako

 

An evil deed, like newly drawn milk, does not turn (at once); smouldering, like fire covered by ashes, it follows the fool.

 

[인연담]

 

어느날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인 마하목갈라나 비구는 락카나 비구와 함께 라자가하에 나가 탁발을 했는데, 마하목갈라나 비구가 무엇인가를 보더니 잠잠히 미소를 지었다. 탁발을 끝내고 승원으로 돌아왔을 때 목갈라나 비구는 락카나 비구에게 자기가 탁발 도중에 혼자 웃은 것은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인 아히뻬따(귀신)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부처님은 당신도 깨달음을 성취하던 때 그 아히뻬따를 본 적이 있었다고 하시면서 그 귀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었다.

 

아주 오래전에 벽지불 한 분 계셨는데 이 벽지불을 존경하여 많은 사람들이 벽지불이 계시는 승원을 찾았다. 이때 신자들이 승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판에 있는 한 농부의 논을 지나가야 했는데, 농부는 자기 논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자연 자기 농작물에 피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벽지불을 다른 곳으로 쫓아 버리려고 승원 주위에 불을 질렀다. 벽지불은 그 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 벽지불의 제자들은 화가 나서 그 농부를 붙잡아다가 집단 폭행을 가했고, 그 때문에 농부는 죽어 버렸다.

 

죽은 논 주인은 벽지불에 대해 악한 마음을 먹은 과보로 아비지옥에 태어나 무섭고 괴로운 고통을 받다가 겨우 풀려나와서 이제는 나머지 악행에 대해 과보를 받느라고 아히뻬따가 되어 지내는 것이다.이와같이 아히뻬따에 대한 내력을 말씀해 주신 다음 이렇게 설법하였다.

 

"하나의 행동에 대한 과보는 시간이 차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 행한 자를 뒤따르니라. 어느 누구든지 자지가 저지른 선한 행위에는 좋은 과보를, 악한 행위에는 나쁜 과보를 받게 되는 법, 이 같은 과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느니라."

 

 

[해설]

 

인연담에서 절을 불태운 농부의 과보는 설명하고 있는데 농부를 죽인 재가신자들의 과보는 설명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사람을 죽인 과보가 더 크지 않을까? 이 이야기는 못된 짓을 할지라도 과보를 받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새로 짜낸 우유처럼 바로 굳어지지는 않듯이, 재에 덮인 불씨가 꺼진 듯 두고두고 숨어있으면서 다시 불씨가 살아나듯이 과보가 늦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업은 과보가 빨리 나타나고 어떤 업은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을 뿐이지 어떤 이유 어떤 원리에 의해서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치만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인 아히뻬따(귀신)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능력을 과하게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처님이 신격화되었다고 비판하겠지만 부처님의 제자가 이런 존재를 보고 웃었다는 것은 신격화와 관계가 없지 않은가? 뻬따(peta)는 한문으로 망자(亡者) 아귀(餓鬼) 사영(死霊)등으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는 hungry ghost라고 번역한다. 게송 72번에는 머리가 엄청나게 크고 몸은 작은 삿티꾸따뻬따, 136번에는 왕구렁이 뻬따, 307번에는 사람모양의 해골뻬따등이 나타나는데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부니까야에는 51개의 뻬따이야기만을 모아놓은 뻬따왓투(Petavatthu)가 있다. 성경에서도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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