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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어떤 선원청규

 

 어떤 선원에가서 선원청규를 보게 되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一. 결제 대중은 어떠한 경우라도 육화합을 원칙으로 한다.

一. 결제 대중은 어떠한 경우라도 입승 말씀을 따른다.

一. 소임자는 부지런하고, 방일함이 없이 대중 편하게 정진하도록 한다.

一.결제 대중은 화합을 깨는 어떤 언행도 하지 않는다.

一. 결제 대중은 대중 간에 화합하지 못할 시 경고 후 이행치 않을 경우 둘 다 하산한다.

一.결제 대중은 사중에서는 물건을 포함한 일체의 모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一.결제 대중은 어떠한 경우라도 단체 행동한다. (목욕,등산,운력) ·.

一.결제 대중은 다과를 포함한 일체의 죽,반을 논하지 않는다.

一.결제 대중은 제방 선원에 비교하지 않는다.

一.결제 대중은 대중이 공동으로 원하는 것 외에 개별적 요구는 수용하지 않는다.

一.결제 대중은 보현선원의 청규를 반드시 지키고 따른다.

 

                                               20 년     월        일               안거

                                             입방자                      스님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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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결제 대중은 어떠한 경우라도 육화합을 원칙으로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라는 강압적이고 완강한 이런 표현을 보니 숨이 막힌다. 부처님 제자들이 저렇게 정없이 경직되게 살아야 할까?

육화경(六和敬)에 따라 화합하라고 했지만 신화공주(身和共住)가 한방에 모여 같이 살라는 말이 아님을 알고 있을까? 각자가 자신의 개인 처소에서 정진하다가 포살일에 모여 포살하고 다시 개인처소로 돌라아가라는 말이다. 이런 것을 안다면 저렇게 억압적인 청규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화동균(利和同均)이 단순히 해제비를 같이 나누라는 말이 아니다. 승가의 공적재산을 사적재산이 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고 스님이 스님을 존중하고 대접하라는 말이다. 객실을 없애고 스님을 재워주지 않으면서 자기들끼리 해제비를 나누어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 해제비를 받아가기 위해서 이러한 답답한 청규에 이의를 제지하지 못하고 살라는 말은 더욱 아니다. 여기서 육화합을 원칙으로 한다는 말은 무조건 주지, 입승말 잘들어라는 의미로만 들린다. 

 

一.결제 대중은 어떠한 경우라도 입승 말씀을 따른다.

입승은 대중과 의논하고 보살피고 대중의 의견을 받드는 자리이다. 입승의 말을 어떠한 경우라도 따르라는 것은 독재가 아닌가? 가난한 마음이 보인다. 저렇게  사는 것이 수행자의 삶일까?

 

一.결제 대중은 화합을 깨는 어떤 언행도 하지 않는다.

대중이라 함은 입승도, 주지도 들어가는데 어떠한 경우라도 입승의 말을 따르라고 해놓고 이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독재하는 입승이 나타나면 그것이 대중의 화합을 깨는것일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결하려는가? 수행자도 사람인이상 실수도 하고 갈등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완벽하기만한 대중을 바라는가? 아래의 조문처럼 화합하지 못하는 대중은 쫓아내려는 근거로 사용하려고 하는게 아닐까? 

 

 

一. 결제 대중은 대중 간에 화합하지 못할 시 경고 후 이행치 않을 경우 둘 다 하산한다.

두 사람이 싸우면 둘다 하산하라는 이야기인데, 이때 입승은 무슨 역활을 하고 도반은 무슨 열활을 하는가?  결제 대중 간에 화합하지 못할시 소임자는 최선을 다해 화합시킨다.라고만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一.결제 대중은 사중에서는 물건을 포함한 일체의 모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결제 대중은 사중에서는 물건을 포함한"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다른 조항에 "결제 대중은 대중이 공동으로 원하는 것 외에"라는 표현이 있으므로 "결제 대중은 사중에서 필요한 물건을 제외한"이라고 수정해야 될것 같다. 이 말이 맞다면 동어반복의 문장이 된다. 그리고   "일체의 모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돌보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우리가 사판이라고 부르는 사중 소임자가 안거에 들어온 선원대중을 시봉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참으로 야박하고 매정한 선언이다.  

 

一.결제 대중은 어떠한 경우라도 단체 행동한다. (목욕,등산,운력)

대중은 목욕,등산,운력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이렇게 어떠한 경우라도 단체 행동한다.고표현하면 개인 사정이 생겨서 같이 못하게 되는 대중은 얼마나 미안하겠는가? 

 

 

一.결제 대중은 다과를 포함한 일체의 죽,반을 논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반찬을 이야기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밥이 되다, 질다라고 말 할 자유는 있지 않나? 이렇게 아무소리하지 말고 살라는 것은 참으로 비민주적이다. 부처님이 대중은 동의하면 침묵하고 이의가 있으면 말하십시요.라고 세번이나 물어서 결정하는 민주적인 전통은 어디로 갔는가? 

 

 

一.결제 대중은 제방 선원에 비교하지 않는다.

비교하면 어때서, 타선방의 좋은 청규와 전통은 배우고 받아들여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탁마상성은 어디다 쓰는 물건인가?

 

一.결제 대중은 대중이 공동으로 원하는 것 외에 개별적 요구는 수용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결제 대중은 사중에서는 물건을 포함한 일체의 모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와 겹치는 표현이다. 어쩌면 모순되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겹치거나 모순되는 것도 모르고 청규를 만든 것은 이해불가다. 이렇게 모순되는 것을 문제제기하지 않고 따르는 대중들도 문제다. 

 

一.결제 대중은 보현선원의 청규를 반드시 지키고 따른다.

이것도 필요없는 내용이다. 위 내용이 청규인데 다시 청규를 반드시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이 없는 동어반복일 뿐이다. 

이러한 강압적인 선원의 분위기에서 어떻게 활발한 수행자가 나타나고 당당한 수행자가 나타날까? 답답하고 답답하다. 죽어있는 선원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쓸쓸하다.

 

 

 

 

기운을 내기 위해서 지리산 백장선원 [백장암 청규및 설명서]를  소개해 본다.

https://blog.daum.net/whoami555/1374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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