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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태안 ‘청자발우전’을 보고

태안 청자발우전을 보고

 

며칠전 도반스님들과 함께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주최하는 해저만발전시회에 다녀왔다. 이 전시회는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저유물중에서 상태가 좋은 청자발우 138점을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고려시대 청자발우가 바닷속에 잠겨있다가 천년이 지나서 우리앞에 나타난 것이다. 청자발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님들이 저렇게 깨지기 쉽고 화려한 청자발우로 공양을 드셨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스님들이 저렇게 사용하기 불편하고 비싼 청자발우를 사용했다는 것이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스님들은 운수납자라는 말이 있듯이 스님들은 스승과 도량을 옮겨다니며 공부를 한다. 매번 옮겨 다닐 때마다 걸망속에 발우를 챙겨떠나야 하는데 저렇게 얇고 깨지기 쉬운 청자발우를 걸망에 넣고 만행을 떠난다면 필시 중간에 그릇이 깨졌을 것이다. 가격도 저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다에서 건져올린 청자발우의 용도를 추정할 수 있는 사례가 파주 혜음원지에서 발견되었다. 파주 혜음원지에서는 일반숙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혜음원과 사찰 이름인 혜음사라는 기와명문이 같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때 다량의 청자발우도 발견되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청자발우와 태안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청자발우는 다 같이 강진 가마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혜음사에서 사용되었던 청자발우의 발견으로 바다속에서 건져낸 청자발우도 사찰에서 사용하기 위해 운반하다가 침몰되었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한편 같은 시기에 스님들이 사용하였던 서울 영국사지 출토 청동발우와 청주 사뇌사지 청동발우도 같은 전시실에 전시되고 있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깨지기쉽고 비싼 청자발우보다는 깨지지않고 저렴한 청동발우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스님들은 대부분 옷칠한 목발우를 사용하고 있다. 나무발우는 가볍고 깨지지 않아 운반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무발우는 가격이 비싸서 가난한 스님들은 플라스틱 발우를 사용한다. 템플스테이등에서 일반인들이 체험용으로 사용하는 발우 또한 플라스틱이 많다. 생각컨대 청자발우는 나이가 많은 소위 큰스님들이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분들은 자신이 머무르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옮겨다니지 않는다. 사찰운영의 책임자이거나 지위가 높은 그런 분들에게는 청자발우 같은 고급스런 물품이 많이 보시되었을 것이다. 고려시대의 사찰의 재정이 넉넉하였다고 하니 그분들 스스로가 청자발우를 주문하여 사용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인지 전시회 주최측은 청자발우를 통해 고려시대 불교의 융성함과 그 당시 승려의 삶을 상상해 볼 수있다.’설명하고 있다.

 

해저에서 건져올린 만개의 발우(해저만발)라는 전시회를 기획하여 새로운 보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획의도는 좋았으나 전시회를 보면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전시회측은 발우의 재질을 경전에 나오는 발우의 재질은 금,,유리,구리,나무,돌등 다양합니다.”라고 설명하여 마치 부처님이 금발우, 은발우,유리발우등을 허락하였던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금발우, 은발우,유리발우등의 이름이 율장에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발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심지어 부처님은 구리발우, 청동발우, 목발우등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오직 쇠로만든 발우와 흙으로 만든 와발우(瓦鉢盂)만을 허락하셨다. 이렇게 두가지 발우만을 허락하신 것은 그 당시에 그 두 종류의 발우가 구하기 쉽고 일반서민들이 사용하는 흔한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려시대 스님들이 청동발우를 사용하고 현재 스님들이 목발우를 사용하는 것은 율장의 정신에 어긋 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발우와 은발우를 사용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전시측에서는 목발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탁발한 음식이 상하지 않게 그릇째 끓여야 해서 불에 타는 나무로는 발우를 만들지 않았다.”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표현은 부처님 당시에 스님들이 하루에 한 끼를 먹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고, 부처님이 왜 나무로 만든 목발우를 허락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고 하는 설명이다. “사람들은 불전에 발우를 공양하여 극락왕생을 빌거나 미래의 부처가 나타나길 기원했습니다.”라는 설명도 적절치 않다. 부처님 당시에는 극락왕생의 사상은 존재하지 않았고 불멸후 500년이 지나서야 대승불교에서 극락왕생의 사상이 나타난다. “발우는 나한이 부처님께 바치는 성스런 물건으로...”라는 문장도 어색하다. 부처님은 평생 하나의 발우를 사용하셨는데 아라한들이 부처님께 몇 번이나 몇 개나 발우를 바쳤다는 말인가?

 

음식을 먹기전에 다섯가지를 관하는 오관계의 설명도 어색하다. 일반적으로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다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計功多少量彼來處 忖己德行全缺應供 防心離過貪等爲宗 正思良藥爲療形枯 爲成道業應受此食)”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전시회측이 보여주는 오관계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찌든 욕심 내려놓고 몸을 받쳐주는 약으로 알아 참다움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는 새로운 번역이다.

 

기존의 번역 온갖 욕심’ ‘지탱하는’ ‘도업을 이루고자라는 문장을 찌든 욕심’ ‘받쳐주는’ ‘참다움을 이루고자라고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번역은 불자들에게도 생소할뿐더러 ‘도업(道業)'을 참다움’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뜻이 애매하다. '도업(道業)'을 이루고자'한다는 것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체 행위를 잘 닦아서 깨달음으로 가는 실천적인 단계인 계정혜(戒定慧)를 수행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지금 당장 실천 할 수있고, 점차적이고, 포괄적인 용어를 참다움이라고 번역한 것은 정확한 번역도 아니고 쉬운 번역도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오관계를 놔두고 특정인이 새롭게 번역한 오관계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주최측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의 자문을 거쳤다고 하며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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