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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한국불교라는 사설을 읽고

 

 2021년 11월 1일 법보신문에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한국불교"이라는 사설이 실렸다. 2010년대에 노태우가 감옥에 있을때 성경을 2번 독파하였고 목사의 안내로 개신교로 개종했다는 것이다. 사설의 마지막에는 "출퇴근 때 테이프로 듣고, 수감 중에도 108배하며 읽은 ‘금강경’을 관통하는 ‘무상·무아’를 제대로 알았다면 광주와 불교계에 용서를 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다."라는 말로 맺고 있다.  그런데 그의 유해를 교회로 모시지 않고 사찰에 모신걸 보면 개신교로 개종한 건만도 아닌것 같다. 10월 30일 노태우 전대통령 유해를 파주 검단사에 안치했다는 기사와 사진이 여러매체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기자의 마지막 말인 "금강경을 관통하는 ‘무상·무아’를 제대로 알았다면"이라는 문장때문이다. 금강경을 읽으면 무상무아를 알게되는가? 라고 나는 기자에게 묻고싶다.

금강경의 어느 부분을 읽으면 무상 무아를 알게되는가? 

수보리가 금강경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찬탄하듯 금강경을 읽고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이들은 오히려  다른 종교로 개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나는 본다. 내가 보기에는 금강경은 노태우처럼 감옥에 갖히거나 좌절을 겪은 이들에게 위안과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

이름하여(是名)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이름하여(是名) 중생...., 이름하여(是名) 설법...., 이름하여(是名) 세계..., 이름하여(是名) 장엄....등등 이름하여(是名)라는 문법이 26번이나 반복되는 금강경에서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 육조 혜능 같은 소수만이 위로를 받을 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금강경은 암호이거나 주문 같은 것이다. 

49재 지낼 때 금강경을 읽고, 금강경을 가지고 법회를 여는 금강경 살림을 여기저기에서 열지만 실제로 불자들이 금강경을 읽으며 신심을 다지고 불교를 이해하는 경우는 극히 소수라고본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니까 우리가 독송 해온 것이니까 "우리것은 좋은 것이여!" 라고 말하기전에 금강경으로 불교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금강경’을 관통하는 ‘무상·무아’를 제대로 알았다면"이라고 쓴 기자가 과연 불교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심이든다. 이런 식의 게으른 사설을 쓰는 기자라면 얼마든지 개종 할 수 있다고본다. 불멸후 500년이 지나서 그 당시의 응병여약으로 나온 금강경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고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 게으른 관점이다. 나의 견해로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금강경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 적이다.

 

 

 

검단사에 안치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참고 법보사설]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한국불교

 

금강경 품었던 신심 깊은 불자 대통령
전법 새 지평 연 불교방송 개국 ‘선물’
18만장 분량 서명인 첨부 사면 청원
무상·무아 알았다면 ‘용서 구했을 것’

 

 

  • ‘12·12 쿠데타·6·29 선언’의 주역이자 ‘보통사람’을 내건 첫 직선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이하 노태우)이 10월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유족 측은 이날 “아버지께서 평소에 남기신 말씀”이라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 내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저의 과오들’에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강제진압이 함축됐음은 알겠다. 그러나 직접 용서를 구할 기회가 생전에 충분했음에도 이를 외면했으니 적어도 광주시민은 ‘사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진보단체들이 일제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과할 수 없는 건 ‘저의 과오들’에 10·27법난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군홧발로 불전을 짓밟았던 1980년의 10·27 법난 7년 후인 1987년 대선은 불자 노태우·장로 김영삼·가톨릭 신자 김대중 3파전으로 전개됐다. 어머니가 파계사 신도회장을 지낸 불자 집안의 노태우 역시 “출퇴근 할 때마다 차 안에서 금강경 독송 테이프를 듣는” 신심 있는 불자였다. 그래서일까?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와 달리 그는 불교방송국 개국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김영삼·김대중 단일화가 결렬되며 노태우가 당선됐고, 노태우 재임 때인 1990년 5월1일 불자들의 숙원불사였던 BBS불교방송이 개국했다. 이와 함께 중앙승가대 정규대학 인가도 노태우가 불교계에 안긴 ‘선물’이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선물’을 넘어 ‘업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파를 통한 전법의 새 지평을 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가 수감(1995.11)된 2년 후인 1997년 2월 조계종 중앙종회 수뇌부 5명의 스님이 안양교도소(전두환)와 서울구치소(노태우)를 찾았다. 노태우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108배와 금강경을 보면서 지낸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에 대한 ‘미안하다’는 것인지 구체적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면목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불교서적을 전달한 5명의 스님들은 “순수포교 차원에서 면회한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7월 불교계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 청원서’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했다. 279만6558명의 서명인 명부를 첨부했는데 18만장 분량으로 45상자 한 트럭분이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혜암·법전 스님을 비롯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54명, 태고·천태·진각종 등의 각 종단 원로 스님들이 서명했다. 5개월 후인 1997년 12월 두 전직 대통령은 사면됐다.

    노소영씨가 밝혔듯이 노태우는 2010년 기독교로 개종했다. 2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성경을 2번 독파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옥중에서 ‘금강경’과 ‘성경’을 읽었던 노태우는 부처님이 아닌 하나님 품에 안겼다. 개종 1년 후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10·27법난은 “자신이 지시했다”면서도 끝내 참회만은 하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에 대한 날선 비판의 목소리가 불교계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세 소식과 함께 불교방송 개국의 감동이 새삼 밀려와서일까? 아니면 ‘저의 과오들’에 10·27법난도 함축돼 있다고 믿거나 믿고 싶은 것일까?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 스님의 회고록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에 그 실마리가 있을 듯싶다.  

    ‘요즘 노 전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고, 자녀들의 영향으로 개신교에 가까워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무엇을 믿든지 그것을 탓할 이유도, 생각도 없다. 그러나 최근 법난 31년 만에 비로소 자서전을 통해 “내가 불교정화를 지시했다” “불교를 너무 아껴 그랬다”는 얘기를 들으니 불교인의 한 사람으로 어이가 없다. 독실했던 불교신자의 입장에 현대 불교사 최대의 수난을 저지른 것을 오랜 시간 마음에 담고 있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측은지심도 생긴다.’

    출퇴근 때 테이프로 듣고, 수감 중에도 108배하며 읽은 ‘금강경’을 관통하는 ‘무상·무아’를 제대로 알았다면 광주와 불교계에 용서를 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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