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능력을 보여줘
요즘 사찰에서는 공양주보살님과 사무장과 부전(사찰에서 기도하는 스님)은 구인광고로 모집한다. 사찰넷(https://www.sachal.net)이라는 사이트에 구인구직란에 들어가 보면 “공양주 모십니다” “사무장 구합니다” “부전 구합니다”라는 홍보물이 올라와 있다. 스님들도 면접을 보고 취업하는 상황이다. 최근에 올라온 게시글 하나를 보자.
대한불교조계종 10교구 은해사에서 법당에서 기도할 부전스님을 다음과 같이 모십니다. 업무: 부전스님 주요혜택: 개인방사제공 접수방법: 수행이력서를 이메일 또는 팩스로 보내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염불테스트 있습니다. |
‘월보시(월급)는 상담후 결정’이라는 글은 빠졌지만 위와 같이 염불테스트까지 끝나면 바로 월급 협상에 들어간다. 사찰에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부전스님은 백만원에서 이백만원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매월 4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사대보험혜택은 없다. 주요혜택이 개인방사 제공이라는 것이 눈여겨 볼 만하다. 수행자가 절을 방문하면 당연히 방을 제공받아야 하지만 개인방사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혜택이라니... 일반적으로 용무없이 사찰을 찾아오는 스님들에게는 방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요즘 절집의 현실이 그렇다. 템플스테이를 원하는 일반인이나 불자들은 환영을 받지만 사찰에 머물기를 원하는 스님들은 찬밥 신세다. 전국 사찰에 스님들이 머물 수 있는 객실을 갖춘 사찰이 없기 때문이다.
이십년전에 경험한 나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화두를 들고 선방에 다니다가 공부에 진척도 없고 몸도 않좋아서 쉴 수 있는 사찰을 찾게 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 주소록을 얻어 무조건 이름있는 사찰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선방에 다니는 조계종스님인데 몸이 안 좋아져서 목탁 두드리는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방하나 얻어 조용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열다섯 곳 정도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모두 목탁을 치며 기도를 하면 받아주겠는데 그냥 쉬는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한 곳이 지리산 실상사, 다행히 전화를 받으신 스님은 일단 와 보라는 대답을 하셨다. 실상사에 가서 몇 달을 밥만 먹고 들판을 걸으며 무지렁이처럼 지내다가 도법스님의 권유로 ‘실상사화엄학림’에 일년 동안 청강을 하게되었고 이년 뒤에는 ‘화엄학림’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그 당시 실상사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있을까? 절집에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부전스님을 구하는 광고에서 염불테스트에서 떨어진다면 그나마 취업을 할 수가 없다. 조계종에서는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스님을 최상승 근기라고 칭찬을 하지만 막상 그 스님들이 공부에 진척이 없어 방황하거나 몸이 안 좋아서 쉴 곳을 찾으면 어느 사찰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어느 사찰이든 “너의 능력을 보여줘, 내가 채용하마!”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방하착!’ ‘모든 걸 놓아버려라’고 가르치는 선종에서 염불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방을 얻어 살기가 힘들다. 탐진치를 놓아버리는 수행자는 현실에서는 다만 염불능력, 사무능력, 강의능력을 테스트 받아 '쓸모있음'을 평가 받아야만 절집에서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스님들에게 매달 보시를 지급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온전한 승려노후복지가 될 수 있을까? 그 돈으로 아파트를 얻어 살거나 (토굴이라고 불리는) 개인처소를 짓고 살아가게 된다면 독거노인들의 삶과 같아지는 건 아닐까? 현재 조계종에는 삼천여개의 사찰에 만명의 스님들이 있다. 삼천개의 사찰주지소임을 사는 스님을 제외하면 칠천명이 남는다. 재정이 탄탄한 천개의 사찰에서 스님 일곱명씩만 감당하면 만명의 스님들이 사찰에서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 재정이 탄탄한 천개의 사찰주지를 임명할 때 일곱스님들을 모시고 살겠다는 약속을 받고 임명장을 준다면 승려노후문제는 일시에 해결된다. 스님들이 노후를 사찰에 모여살면 좋은 점이 많다. 사찰에 많은 스님들이 머무르면 훈기가 돌고 스님들 개인도 외롭지 않다. 울력과 공양을 같이 하고 차담과 법담을 같이 나누며 살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주지스님도 소임을 마치고 대중의 일원으로 합류할 수 있으므로 튀임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 개의 사찰에 일곱승려를 책임지라고 말했지만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운문사 같은 총림에서는 이미 백여명의 스님들이 살고 있으니 실제로 한 개의 사찰에서 책임져야하는 스님들은 서너명이다. 각 사찰의 스님들 방의현황은 인터넷에 공개하여 스님들이 원하면 어디든 방을 옮겨서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 관심분야가 같은 스님들끼리, 취미가 같은 스님들 끼리, 친분이 있는 스님들 끼리 모여 살면 탁마상성의 묘(妙)가 생겨날것이다. 이런 모임들이 각각의 '승가결사체'가 될 수 있다. 스님들의 방은 나이별로 차별화 할 필요가 있다. 육십대가 넘는 노스님들은 병원에 드나들기 쉽도록 문턱이 없어야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장 시행하면 되는 일이다. 항상 돈이 없어서 승려복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허술한 핑게일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임야를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조계종에 돈이 없다고 말한다면 누가 믿겠나? 돈이 없다고 말하는 스님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을 보라. 그들이 머물고 있는 방을 보라.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심이 없는 것이고 그들만의 달콤한 기득권을 더 오래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어느 단체이건 어느 시대이건 구성원이 깨어나서 외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주지 임명때 스님들을 모시고 살겠다는 약속을 하게 하고 주지소임에서 물러난후 자신도 대중의 일원으로 살겠다는 약속만으로 승려노후복지가 단번에 해결된다. 이렇게 되면 승려들이 서로 주지가 되려고 싸우는 일도 없을 것이고 빈부격차도 갑질하는 문화도 사라질 것이다. 승가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 방법만이 진정한 승려노후복지다. 이렇게 쉽고 명확하고 효과적인 일을 왜 하려하지 않을까? 이러한 길을 모르기 때문이고 지금 이대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을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먼 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구조와 사람을 비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무릎쓰고 말하라. 출가정신을 되새기고 말하라.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기억하고 말하라. 지혜와 자비는 공심으로 정의감으로 나타나야한다. 인연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장암 석등 분실부분 -건봉사 치아사리 (0) | 2021.09.18 |
---|---|
어머니를 뵙다 (0) | 2021.09.17 |
외갓집에 온 듯 편안한 사찰 개심사 (0) | 2021.06.29 |
코로나시대의 불교의 역활 (0) | 2020.10.18 |
어머니와 여행 (0) | 2020.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