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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어머니를 뵙다

 

 

9월 13일에서 16일까지 3박4일 휴가를 다녀왔다

 

서산 개심사에 산지 칠 개월만에 처음으로 따나보는 휴가, 첫째날에는 조치원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 뵙고 둘째날에는 서울 미아동 수안사에서 빵 만드는 체험을 하였고 셋째날에는 불교포커스에서 인도성지순례에 관한 동영상을 찍었고 넷째날에는 다시 어머님을 찾아 뵙고 절에 돌아왔다. 어머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밥을 같이 먹고 지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올해 84세이신 어머님은 고향집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데 요즘은 허리가 불편하시다. 며칠 전에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밥조차 먹기 어려웠다고 한다. 며칠 병원에 다녀오셔서 다행스럽게 일상생활을 하신다. 복숭아를 왜 사왔냐고 하시면서도 자두를 집어 깨무시는 것을 보니 그동안 자두를 드실 기회가 없었나보다. 포도도 씻어 먹어보자 하신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에 어머니께 들렸을 때는 사경노트를 사다드리며 사경을 하시라고 부탁드렸다. 읽지도 못하고 뜻을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사경이야며 거부하셨지만 무조건 하루 10분이라도 쓰시라고 부탁했다. 작년부터 한글을 배우고 계셔서 조금은 읽고쓰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는 내가 조금 드린 용돈을 농협에 넣어야 한다며 농협에 가자하신다. 일생동안 카드를 사용해 본적이 없어서 카드 만들겠다는 것을 반대하셨지만 농협에 간 김에 체크카드를 만들어 드렸다. 약국에서 변비약 살 때, 칼국수 집에서 계산할 때, 다이소에서 거울을 살 때에도 카드를 사용해 보시고는 카드의 편리성을 깨달으셨다. 동전을 받지 않아도 되고 돈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나이가 84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카드의 편리성을 아신 것이다. 카드를 만들다가 재난지원금이 수령도 하게 되었고 면사무소 복지과에 들려 전화돌봄 서비스도 신청하였다. 어머니는 반찬을 가져다 주는 서비스 받기를 원하셨지만 복지과 직원이 대상이 아니라며 거부하였다.

 

이번 휴가에서 어머님을 두번 방문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다. 올해초에 나는 충치때문에 임플란트를 세 개나 하고 눈이 침침해져서 안경을 맞추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나도 이제 다 살았구나!"라는 생각이다. 어머니가 겪고있는 노병사의 고통을 보니 나의 고통은 사라져간다. "평생고생만 한 어머니!"였는데 지금은 세월앞에 스러지고 계신다. 작년 가을 백장암에서 해제하고 동생이 사는 광양에 들려 어머니를 모시고나와 여행을 하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쌍계사와 화엄사, 서울 외삼촌네 집을 차로 모시고 다녔는데 이제 가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차를 타고 함께 여행을 할 수 없다. 존경하는 적명스님과 고우스님이 열반하셔서 다시 뵐 수 없는 것처럼 어머님도 뵐 날이 많치 않으리라. 절에 돌아와서 전화를 드리니 카드를 만들어 주고 여러 가지 선물을 주고가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하신다. 허락도 없이 야반도주하듯이 출가하여 오십이 넘도록 자식노릇 한번 해보지 못했는데 이토록 작은 일에 이리 고마워 하시다니...

 

개심사에서 부전생활을 하느라 시간을 자주 낼 수는 없지만 이제 한달에 한 번은 찾아 뵈어야겠다. 어머님이 사는 날까지 잘 사시다가 평온하게 돌아가시게 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출가를 했어도 득도를 하지 못했으니 어머니를 인도해 줄수도 없고 재산도 없으니 어머니를 편히 모실수도 없다. 생로병사가 고통이다라는 부처님 말씀이 가슴에 박힌다. 눈물로 치유될 수 없는 윤회의 고통,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의 시련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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