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법구경

법구경 21번 22번 23번 게송

법구경 212223번 게송

 

1법정역 - 2전재성역 3支謙(224) 4了參(1953) - 5빠알리본 6Fronsdal영어본 7인연담 8해설

 

 

부지런함은 생명의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죽지 않지만 게으른 사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방일하지 않음이 불사의 길이고

방일하는 것은 죽음의 길 이니

일하지 않은 사람은 죽않으

방일한 람은 죽은 자같다.

 

 

 

 

戒爲甘露道 放逸爲死徑 不貪則不死 失道爲自喪

계위감로도 방일위사경 불탐즉불사 실도위자상

 

無逸不死道放逸趣死路無逸者不死放逸者如尸

 

appamādo amatapadaṃ pamādo maccuno padaṃ

appamattā na mīyanti ye pamattā yathā matā

(DhP 21)

 

 

Conscientiousness is the state of deathlessness. Negligence is the state of death.

The conscientious ones do not die. Those, who are negligent, are as if dead.

 

 

법구경 22번 게송

 

이 이치를 똑똑히 알아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게으르지 않음을 기뻐하고 성인의 경지를 즐기리라

 

이러한 치 상히 알아서

로운 님은 방일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음하고

고귀한 님의 행경을 즐긴다.

 

 

 

慧知守道勝 從不爲放逸 不貪致歡喜 從是得道樂

혜지수도승 종불위방일 불탐치환희 종시득도락

 

智者深知此所行不放逸不放逸得樂喜悅於聖境

 

evaṃ visesato ñatvā appamādamhi paṇḍitā

appamāde pamodanti ariyānaṃ gocare ratā

(DhP 22)

 

Translation:

Having thus distinctively understood about conscientiousness, the wise ones rejoice in conscientiousness, delighting in the sphere of the Noble Ones.

 

 

법구경 23번 게송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는 생각을 깊이 하고 참을성 있고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음의 대자유에 이르리라.

 

선정들고 인하고

나 확고하노력하

현명한 님은 열반

위없는 안온을 경험한다.

 

常當惟念道 自强守正行 健者得度世 吉祥無有上

상당유념도 자강수정행 건자득도세 길상무유상

 

智者常堅忍勇猛修禪定解脫得安隱證無上涅槃

 

te jhāyino sātatikā niccaṃ daḷhaparakkamā

phusanti dhīrā nibbānaṃ yogakkhemaṃ anuttaraṃ

(DhP 23)

 

Translation:

Those meditating perseveringly, constantly with strong effort,

those clever ones touch the Nirvana, the highest peace from bondage.

 

 

[인연담]

사마와띠 왕비 이야기

 

부처님께 꼬삼비 근처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때, 사마와띠는 꼬삼비국 우데나 왕의 왕비로서 오백명의 궁녀를 거느리며 호화스러운 궁전에 살고 있었다. 왕비에게는 궁전의 꽃을 돌보아 주는 쿠줏따라라는 여자 시종이 있었는데 이 시종은 꽃가게에서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녀는 설법을 듣자마자 예류과(소따빳띠 팔라)를 성취하였고, 왕궁에 돌아와 왕비와 궁녀들에게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가르침을 전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같은 경지를 얻게 되었다. 그런 공덕으로 그날부터 쿠줏따라는 힘든 노동은 하지 않게 되었으며, 왕비와 궁녀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쿠주따라는 그 이후부터 부처님의 설법회가 있을 때마다 그곳에 가서 설법을 듣고 와서는 왕비와 궁녀들에게 전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 쿠주따라는 마침내 경율론 심장에 통달하게 되었다.

 

꼬삼비 국왕 우데나에게는 마간디야라는 다른 왕비가 이었다. 예전에 마간디야 아버지는 부처님의 준수한 모습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자기의 딸 마간디야를 부처님께 바치겠노라고 제의했는데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마간디야는 자기의 용모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에 대해 큰 수치심을 느꼈다. 그후 마간디야는 꼬삼비 국왕 우데나와 결혼 하여 왕비가 되었다. 왕비가 된 마간디야는 사마와띠 왕비가 부처님을 존경하여 벽에 구멍을 내고 부처님께 존경의 예를 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이 부처님을 곤경에 빠뜨릴 기회라고 생각하여 왕에게 이 사실을 왜곡하여 보고했다. , 사마와띠 왕비는 부처님과 매우 불결한 내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데나 왕은 그 말을 대수롭게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그 구멍을 보았으나 별다른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간디야의 농간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왕이 언제나 삼현금(三絃琴)에 독사를 넣어두고는 사마와띠 왕비가 왕을 독살하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왕은 분노하여 사마와띠 왕비를 왕궁 뜰에 세우고 그 뒤에 오백 명의 궁녀들을 세웠다. 그런 다음 독을 묻힌 화살을 시위에 먹여 직접 사마와띠를 겨냥하여 쏘았다. 이때 사마와띠 왕비와 오백 명의 궁녀들은 이에 조금의 증오심과 원한심도 갖지 않고, 도리어 왕과 마간디야에게 자비의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우데나 왕의 활 솜씨는 아주 유명했다. 전하는 말로는 그가 쏜 화살은 바위도 꿰뚫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의 경우에는 그가 쏜 화살이 왕비를 맞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었는데, 그 화살 끝에는 연꽃이 매달려 있었다. 왕은 이 신비한 결과를 보고는 마침내 왕비에게 아무런 허물이 없다는 것을 알아 사마와띠 왕비와 궁녀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부처님을 궁으로 초청하여 그녀들이 직접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렇지만 마간디아의 음모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의 숙부에게 사람을 보내어 사마와띠 왕비의 궁에 불을 지르라고 사주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비 궁이 불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때 궁 안에 있던 왕비와 궁녀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좌선 수행에 마음을 집중했고,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일래과(사까다가미), 어떤 사람은 불환과(아나가미)를 성취하였다. 사마와띠 왕비의 궁에 불이 났다는 소식은 곧 우데나 왕에게도 전해졌다. 왕은 급히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어서 궁 안의 사람들을 구해 낼 도리가 없었다. 우데나 왕은 이것이 마간디야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눈치를 보이면 마간디야가 자기 소행이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 뻔했으므로 교묘하게 증거를 잡아내리라 마음먹었다. 왕은 마간디야를 의심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 이제야 안심이다 ! 사마와따가 살아 있을 때 나는 내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서 늘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이제는 안심이다 ! 누가 이런 좋을 일을 해준 것일까 ? 아마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한 일일 테지.

왕이 이런 말을 하며 다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 있던 마간디야는

대왕이시여, 이 일은 제가 한 것입니다. 제가 제 숙부에게 부탁하여 사마와띠와 궁녀들이 모두 궁 안에 있을 때 밖에서 문을 잠그고 불을 지른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왕은 마간디야를 비롯하여 이번 일에 관계된 사람들의 하체를 하나씩 하나씩 구덩이에 묻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머리 위에 볏집을 깔고 불을 붙여서 그들의 머리와 피부가 타 들어가는 고통을 맛보게 하였다. 그런 잔혹한 형벌로 그들을 꾸짖고 나서, 우데나 왕은 커다란 쟁기로 땅을 갈아 그 들을 흙과 범벅이 된 상태로 죽여 버렸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 끝에 다음의 세 편 게송을 읊었다.

 

 

 

[해설]

야무나강 강가에 있는 꼬삼비왕궁터에 가면 사마와띠와 마간디야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마와띠의 아름다운 마음씨와 마간디야의 질투심을 떠올리며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쿠줏따라 궁녀가 부처님에게 들은 가르침을 다른 궁녀들에게 설명해주는 장면이 떠오르고 야무나강에서 아이를 목욕시키다가 놓쳐서 물고기가 아기를 삼켰는데 그 고기가 바라나시에서 잡혀서 물고기의 배를 갈라보니 아이가 살아 있었다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이곳에서는 꼬삼비 분쟁이라고 부르는 승려들의 싸움도 있어서 부처님은 육화경(六和敬)을 설하셨다. 몇 년전에 야무나강 근처에 스리랑카스님 절에서 보름동안 밥을 얻어먹으며 야무나 강가를 배회하였다. 나보고 여기에 절을 지으라고 땅까지 소개해 주었는데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곳에 가지 못하고 있다.

 

2122번 게송은 방일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이 마지막 유언도 방일하지 말라는 것이다. 방일하지 않도록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728x90

'법구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구경 25번 게송  (0) 2020.12.02
법구경 24번 게송  (0) 2020.12.02
법구경 19번 20번 게송  (0) 2020.12.01
법구경 18번 게송  (0) 2020.12.01
법구경 17번 게송  (0) 2020.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