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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도법스님의 '붓다, 중도로살다'를 읽고

붓다 중도로살다를 읽고

 

며칠전 실상사회주 도법스님이 법담탁마에 참관하기 위하여 백장암에 들리셨다. 토론이 끝날 무렵 70세가 넘으신 도법스님이 9번째 낸 책을 대중들에게 선물하셨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40여시간이 넘는 토론을 했다고 하고 현실에서 검증되지 않을 경우에는 즉각 불살라도 좋다라고 주장할 만치 자신감을 갖고 출판한 책이다. 그러나 붓다 중도로 살다를 읽어보니 실망이 크다. 불자라면 알고 있을 상식적인 사실들도 교정하지 못한 것은 출판사에게도 책임이 있다. 먼저 이 책에서 수정할 부분을 교정하고 이어서 역사적인 사실관계와 사상적인 것을 거론해보겠다.

 

붓다 중도로살다’ 42p

남방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사람 뿐이다. -과거칠불의 행적이 대전기경(D14)에 나오고 붓다왐사에서는 28불이 나온다.

 

비구들이여, 91겁 이전에 위빳시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비구들이여, 31겁 이전에는 시키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은 31겁 이전에 웻사부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비구들이여, 현재의 행운의 겁 동안에 까꾸산다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행운의 겁 동안에 꼬나가마나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행운의 겁 동안에 깟사빠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 동안에 지금의 아라한ㆍ정등각인 내가 세상에 출현하였다.”

 

66p 고통의 원인이 무지의 탐진치이므로-동어반복 3번지속적으로 나타난다.

 

78p 우루벨라(바라나시)-우루벨라(보드가야)

 

79p 바라나시에서 큰세력을 떨치고- 가야에서 큰 세력을 떨치고

자이나교도인 사리불과 목건련- 산자야의 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

 

84p 성도후 15년 되던해-성도후 3~4년 뒤에

숫도나다왕이 성도후 5년에 돌아가셨고 이때 과부가된 마하빠자빠띠 왕비는 500명의 과부들과 출가를 요청하게 된다. 500명의 과부는 몇 년전에 부처님이 물싸움을 중재했을 때 그 보답으로 석가족 청년 250명 꼴리야족 250명이 출가했기에 생겨난 과부들이다. 사까야족과 꼴리야족의 500명의 젊은이들이 출가하자 졸지에 과부가 된 500명의 아내들은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몰려가서 붓다에게 자신들의 출가를 허락받아달라고 간청했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이발사를 시켜 여인들의 머리를 모두 깎게 하고 옷을 염색하여 가사를 만들어 입고 비구니 모습을 갖춘 후에 붓다께서 계시는 웨살리로 향했다. 비구니승단이 생긴 것은 성도후 5년이고 물싸움은 이보다 빠른 성도후 3~4년후가 된다. (법구경이야기)

 

86p 초기에는 절이 없었습니다.-죽림정사는 성도후 1년만에 기증되었고 기원정사는 성도후 3~4년뒤에 기증되었다.

 

94p 마가다국에 돌아온 직후-말라국의 아누삐야라는 곳에서

우빨리와 석가족 청년 6명이 출가한 곳은 말라국의 아누삐야라는 곳이다. 아누삐야는 말라 국의 도시로 까빨라왓투의 동쪽 방향으로 있다. 부처님이 출가할 때 아노마 강을 건너 아누삐야 망고 숲에서 머리를 자르셨다. 부처님은 성도후 까빌라왓투를 방문하고 라자가하로 돌아가실 때 이곳에 들리셨는데 그때 석가족의 아누룻다,마하나마,아난다,데와닷따등 6명과 이발사 우빨리가 출가했다.

 

96p 성도한지 10년즈음입니다.-비구니 승단이 생긴 것은 성도한지 5년즈음입니다.

 

 

99p 그후 붓다가 설한 경전이 육화경입니다.-육화경(六和敬)은 경()이름이 아니고 꼬삼비경(M48) 안에 있는 여섯가지로 화합하라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부처님이 꼬삼비를 떠나기전에 고시따라마에서 분쟁하는 비구들에게 설하신 것이다.

 

99p 기녀 암바팔리가 기중한 망고나무 숲으로 갑니다.- 기녀 암바빨리는 꼬삼비에 살지 않았으므로 기녀 암바팔리가 기증한 숲으로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열반경(D16)에보면 암바빨리 기녀가 기증한 숲은 웨살리에 있었다.

 

그때 암바빨리 기녀는 세존께서 웨살리에 오셔서 나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신다.’고 들었다. 그러자 암바빨리 기녀는 아주 멋진 마차들을 준비하게 하고 아주 멋진 마차에 올라서 아주 멋진 마차들을 거느리고 웨살리를 나가서 자신의 망고 숲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세존께로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암바빨리 기녀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암바빨리 기녀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격려 받고 분발하고 기뻐하여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희들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

 

103p 신비한 체험이나 신통력을 배격하였던- 인용된 사자후 경(M12)에는 6신통에 대해서 나온다. 같은 경을 전반부는 인용하고 신통력이 나오는 후반부는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인간붓다를 찾는다고 6신통을 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니까야에서 6신통을 설하는 경은 52개나 된다.

 

103p 빔비사라왕이 살해된지 얼마되지 않아-빔비사라왕이 살해된지 8년쯤 지나서(사건이 일어난 년대를 알수 있는 건 표현해주는게 좋다고 봄)

부처님이 싸끼야 국의 싸끼야 족의 마을인 메다룸빠에 계실 때 빠세나디왕이 부처님을 친견하러 왔다. 빠세나디(Pasenadi) 왕이 부처님을 친견할 때 부처님은 법장엄경(法莊嚴經)이라고 불리는 담마쩨띠야 경(Dhammacetiya Sutta, M89)을 설했다. 동행한 사령관 디가까라야나는 왕이 맡겨놓은 왕의 상징물을 들고 코살라국으로 가서 왕자 위두다바가 왕위에 오르게 했다. 왕이된 위두다바는 군대를 일으켜 사끼야족을 멸망시켰다. 이 때가 빠세나디 왕이 80 세가 된 해이자 붓다께서 빠리닙바나에 드신 해이다.

 

또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왕족이고, 나도 왕족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꼬쌀라 인이고, 나도 꼬쌀라 인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여든 살이고, 나도 여든 살입니다.(M89)

 

106p 고국인 사키야를 향해 길을 나섭니다.- 고국인 카필라왓투를 향해 길을 나섭니다.(사키야는 종족이름이다)

 

107p 유골을 잘 모시라고- 탑을 세워 잘 모시라고 했다.

 

108p 악성비구 찬타카- 악성비구 찬나(찬타카는 말이름이다)

 

129p 말룽키야풋타-말룽끼야뿟따(빨리어나 산스끄리뜨어를 차이없이 발음하고 있는데 다른곳에서도 빈번히 나타난다.니까야를 인용한다면 당연히 빨리(pali) 발음을 사용해야한다.)

 

132p 법의 참모습을 보는 자는 곧 나의 참모습을 보고- “법의 참모습을 보는 자는 곧 나의 참모습을 보고”(큰따옴표가 빠졌다.)

 

 

 

 

 

문장교정을 마치고 이제 사상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부처님은 전도선언에서 의미와 문장을 갖춘 법을 설하라고 하셨고 도법스님은 이 전도선언을 2번이나 인용하는데 정작 이 책에서는 의미와 문장을 갖춘 표현을 발견하기 힘들다.

 

68p “온 우주가 그물코처럼 연기로 이루어진 일심동체(육근육경육식,본래붓다)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

정견(正見)을 설명하는 이 문장은 부처님이 설명하는 정견보다 쉬운가? 도법스님에게는 이런 표현들이 자연스럽겠지만 청소년들에게 일심동체,육근육경육식,본래붓다가 정견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암호를 전달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정견경(M9)에서 사리뿟따가 설명하는 정견(正見)을 보자.

 

존자 사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벗들이여, ‘올바른 견해, 올바른 견해라고 말하는데, 벗들이여, 고귀한 제자는 어떻게 하면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올바르게 되고,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올바른 가르침을 성취합니까?”

존자 사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벗들이여, 고귀한 제자가 불선법을 잘 알고 불선법의 뿌리를 잘 알고, 선법을 잘 알고 선법의 뿌리를 잘 알면, 그 만큼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그 만큼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올바르게 되고,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올바른 가르침을 성취합니다. 벗들이여, 어떠한 것이 불선법이고, 어떠한 것이 불선법의 뿌리이고, 어떠한 것이 선법이고, 어떠한 것이 선법의 뿌리입니까? 벗들이여,

1) 생명을 죽이는 것이 불선법이고,

2)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이 불선법이고,

3)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이 불선법이고,

4)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불선법이고,

5) 이간질하는 것이 불선법이고,

6) 욕지거리하는 것이 불선법이고,

7) 꾸며대는 것이 불선법이고,

8) 욕심이 불선법이고,

9) 분노가 불선법이고,

10) 삿된 견해가 불선법이라고 합니다.

벗들이여, 어떠한 것이 불선법의 뿌리입니까? 벗들이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불선법의 뿌리입니다.”

...........

벗이여, 그런데 고귀한 제자가 어떻게 하면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올바르게 되고,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올바른 가르침을 성취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법문은 없습니까?”

벗이여, 있습니다. 고귀한 제자가 갈애를 알고 갈애의 발생을 알고 갈애의 소멸을 알고 갈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잘 알면, 그 만큼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올바르게 되고,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올바른 가르침을 성취합니다.”

 

 

사리뿟따는 정견경에서 16가지 방법으로 정견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이 실현되는 것이다. 도법스님처럼 正見동체대비’, ‘육근육경육식’, ‘본래붓다라고 설명하면 누가 이러한 문장과 내용을 쉽게 이해할까?

 

70p에서 정정진:단단히 마음먹는다. 정념:바짝 정신차린다. 정명: 삶으로 살아야 할 것은 삶으로 산다.”라고 설명하는 것도 쉽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불교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60p~62p “무명행-무명식-무명명색식-무명육입-무명촉-무명수-무명애-무명취-무명유-무명생-무명노사라고 무명에서 노사까지 모두 무명을 붙이는 것은 12연기에서 해탈하는 곳을 막아버리고 사람을 업보중생이라는 무지와 착각의 존재로 가두어 버리고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의 구분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도법스님은 66p에서 “첫번째 화살의 고통인 사고팔고(四苦八苦)다”라고 말한다.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의 고통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오류이다. 사고팔고(四苦八苦) 의 생로병사는 육체적인 고통으로 첫 번째 화살이지만, 헤어지는 고통(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怨憎會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은 두번째 화살이다. 첫번째 화살의 고통은 생로병사이다. 이 것은 전생의 결과로서 태어난 자가 겪어야할 운명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怨憎會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은 지금 여기서 내가 만들어내는 고통이다. 지금 여기서 나의 갈애가 만드는 고통이기에 두번째 화살이다. 이 갈애는 오온을 나라고 착각하는 집착(오취온)에서 비롯된다. 비유하자면 12연기에서 느낌(수) - 갈애(애)의 관계다. 수행은 느낌에서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며, 이것을 사성제에서는 갈애의 소멸(고멸성제)라고 말한다. 도법스님처럼 사고팔고(四苦八苦)  전체가 첫 번째 화살의 고통이라면 사고팔고(四苦八苦)는 금생에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된다. 불교의 수행은 첫번째 화살에 맞은 고통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상윳따의 화살경(S36:6)에서는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괴로운 느낌과 접촉하면 우울해하고 피로해하며 슬퍼하고 통곡하며 미혹에 빠진다. 그는 신체적(kāyikam)이고 정신적(cetasikam)인 두가지 종류의 고통을 느낀다. 그는 감각적 쾌락을 즐거워하며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경향을 잠재시킨다. 그는 그들 느낌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그것에서 벗어남에 관하여 여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그들 느낌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그것에서 벗어남에 관하여 여실하게 알지 못하면,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지의 경향을 잠재시킨다. 그가 괴로운 느낌을 느껴도 속박으로 그것을 느낀다.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껴도 속박으로 그것을 느낀다. 그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껴도 속박으로 그것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이 배우지 못한 범부는 태어남, 늙음,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에 속박된 자, 괴로움에 속박된 자라고 나는 부른다.

.....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괴로운 느낌과 접촉해도 우울해하지 않고 피로해하지 않으며 슬퍼하지 않고 통곡하지 않으며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정신적인 것이 아닌(na cetasikam)신체적인(kāyikam) 단 한가지 종류의 고통만을 느낀다. Soekaṁvedanaṁvedayatikāyikaṁ,nacetasikaṁ.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사람을 화살로 찌르고 또한 그를 두 번째의 화살로 찌르지는 않았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그는 단 한 개의 화살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괴로운 느낌과 접촉해도 우울해하지 않고 피로해하지 않으며 슬퍼하지 않고 통곡하지 않으며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신체적이지만 정신적이지 않은 단 한가지 종류의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괴로운 느낌과 접촉해도 그에게 분노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는 괴로운 느낌에 대한 분노를 느끼지 않으며 괴로운 느낌에 대한 분노의 경향을 잠재시키지 않는다. 또한 즐거운 느낌과 접촉하여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향수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것 말고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알기 때문이다.”

 

 

 

58p “고통의 발생을 부르는 원인과 조건을 설명하는 유전문인 12연기이다.” 윤회 그 자체가 고통이다. 12연기를 윤회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12지중에 식과 명색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

 

아난다여,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ㆍ물질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알음알이가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 정신ㆍ물질이 모태에서 발전하겠는가?”(Viññāṇaṃ ca hi ānanda mātukucchismiṃ na okkamissatha, api nu kho nāmarūpaṃ mātukucchismiṃ samuccissathāti"?)”(D15)

아난다여, 알음알이가 동자나 동녀와 같은 어린아이일 때 잘못되어버렸는데도 정신ㆍ물질이 향상하고 증장하고 번창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대인연경의 설명처럼 12연기는 윤회로 설명해야 하는 근거들이 등장한다. 12연기의 설명에서는 연기의 고리를 끊는 구체적인 수행법이 없고 무명을 4성제를 모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2연기의 무명의 소멸은 사성제에서 갈애를 없애는 것이다. 갈애는 느낌에서 일어난다. 느낌과 갈애 사이의 고리 끊는 것이 불교수행의 요체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첫 번째 화살(느낌)은 누구나 맞지만 성인은 2번째 화살(갈애)을 맞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코끼리 발자국이 모든 생물의 발자국을 포함하듯이 사성제가 12연기등 모든 교법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법스님은 60p에서 무명행-무명식-무명명색식-무명육입-무명촉-무명수-무명애-무명취-무명유-무명생-무명노사로 모든 12지에 무명을 붙여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느낌은 이미 첫 번째 화살이 아니고 두 번째 화살이 된다. 온통 무명에 휩싸여 있고 온통 2번째 화살을 맞고 있는데 어느 곳에서 해탈이 가능할까? 괴로움경(S12:43), 갈애의 멸진경(M38)에서는 느낌에서 갈애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해탈한다고 가르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사라짐인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이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비구 이여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괴로움경(S12:43)

 

?그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색에 혐오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든지[],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을 때 느낌들을 즐거워함이 소멸한다. 그 즐거워함이 소멸하므로 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므로 존재가 소멸한다. 존재가 소멸하므로 태어남이 소멸한다.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갈애의 멸진경(M38)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육육경(Ml48)

 

위와 같이 화살경(S36:6),괴로움경(S12:43), 갈애의 멸진경(M38), 육육경(Ml48)에서는 갈애의 발생과 소멸을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사성제에서 갈애의 발생과 소멸을 고통의 발생과 소멸이라고 설명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12지 연기는 느낌과 갈애에서 그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도법스님은 모든 12지에 무명을 붙여놓고 무명육입, 무명느낌, 무명갈애라고 보고 있는데 어느 고리에서 해탈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12지에 무명을 다 붙여놓고는 어떻게 인간이 업보의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12지를 과거 현재로 나누어 보지 않으면 무명이 소멸하면 6입이 소멸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라는 의문이 일어난다. 이러한 모순에서 이중표교수는 6입을 허망한 마음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위 경에서처럼 현재의 갈애를 소멸하면 현재의 취착,존재가 일어나지 않고 다음생의 태어남,늙음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멸한다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다로 이해해야한다. 이것이 사성제에서 말하는 해탈의 방법이다.

70세가 넘으신 도법스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펴낸 책에 대해서 덕담을 하지 못하고 비판을 하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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