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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원만스님께

원만스님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스님께서 작년 11월 말에 인도에서 돌아오셔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으시고 병원에 입원하시고 다시 언양 정토자재요양병원에 들어가신지 다섯 달이 넘어갑니다. 요즈음에는 고통이 심하셔서 몰핀을 맞으시며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시고 계십니다. 아직 때가 아닌데 그렇게 죽음 쪽으로 가시는 것을 보면서 아무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스님의 네팔인 상좌 보원스님이 스님을 곁에서 간호를 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스님의 하루는 어떠신지요. 두려움에 떨고 계시나요 아니면 고요한 평안속에서 지내시나요. 스님께서 몸으로 무상을 보여주시니 저도 하루하루를 묻게 됩니다. 나의 이 하루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오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돌아보니 흔적도 없는 과거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입니다. 오로지 지금 뿐 인데, 사라져가는 지금 뿐 인데,,,

스님이 보여주시는 무상의 법문 앞에 저는 더 자주 묻게됩니다. 이렇게 자주 묻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답을 얻을 수 없다하더라도 묻는 그 순간들 만은 괜한 욕심으로 들뜨지 않고 무가치가 일들에 휘말리지 않을테니까요. 이 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죽음에 당하여 기분이 어떠셔요. 죽음이 두려우셔요. 라고 스님께 물었을 때 스님은 조금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많이 두려운데 스님은 대단하셔요. 설사 스님이 많이 두렵다고 하셨어도 저는 스님께 실망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다시 스님보다 더 많이 두려우니까요. 스님이 말하지 않은 수행의 경험들, 경지들을 저는 모릅니다. 그래서 묻지도 않았지요. 물어도 대답하지 않은 분이셨으니 묻지 않은 면도 있고요. 그렇치만 저는 속으로 그런거 몰라도 스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제가 스님을 그 누구보다 편하게 상대하고 때론 버릇 없었던 것도 그 때문 일겁니다. 그렇게 서산마애삼존불 가운데 분 같은 미소를 가지신 스님이 이제 메마른 얼굴로 가냘픈 몸으로 저쪽에 계십니다. 다섯달동안 밥 한끼 못드시고 코로 넣어주는 액체만으로 살아 내셨으니 점점 몸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 쪽으로 가시더라도 따듯한 밥 한끼 잘 드시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스님과의 인연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나 스님들에 가장 소탈하시고 순수하신 스님, 스님은 천진하고 따뜻한 스님이셨어요. 스님이 설사 젊은 날에 안 좋은 일을 했다 할지라도 별거 아닐거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스님은 나쁜 일을 할 수 없는 분이니까요.

좋은 스님, 나의 좋은 친구, 안녕 홍성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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