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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적명스님을 추모하며

적명스님을 추모하며

 

스님이 입적하신지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사대(四大)가 꿈속의 일처럼 사라졌으니 스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스님을 더 이상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스님을 뵌 횟수가 4번이 넘지 않는데 저는 누구보다고 스님을 그리워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뵈온 어떤 스님보다 솔직하시고 인자하셨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간화선 수행자이면서도 초기경이나 청정도론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누구와도  토론을 즐기셨습니다. 올해 9월 마지막으로 스님을 뵈었을 때 스님께서 기억하시는 청정도론의 어느부분을 거론 하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게 기억 납니다. 그때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 공부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젊은 시절 공부가 하도 안되어서 죽을 생각까지 하셨다합니다. 그렇게 방황다가 문득 한 생각 돌이켜서 이렇게 생각하시게 되었답니다. ‘내가 금생에 깨닫지는 못한다해도 평생 좌복을 떠나지 않고 산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80살이 된 노승이 누더기를 입고 선방의 좌복에 앉아 있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았답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마음이 평안해지고 조금씩 공부가 되더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는 순간 저도 마음을 턱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다른 모습은 스님의 수행력과 솔직함에서 나오는 용기입니다. 스님은 종단의 잘못된 점을 눈 감으려하고 지적 안하려 하는 것은 해종행위입니다.”라며 끊임없이 승가공동체를 염려하시고 잘못된 점을 비판하셨습니다. 지금처럼 공부인들도 개인화되고 물질화되어 있는 풍토에서 다른 스님에게서도 듣기 힘든 경책이었습니다. 스님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도하는 불교계 언론들은 스님을 평생 좌복을 떠나지 않은 수좌로서의 삶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들에게는 스님의 애정어린 종단에 대한 비판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 신문들은 지금 위례신도시에 천막선원에서 삭발목욕을 안하며 정진하고 있는 자승스님과 그 일행들을 한국불교를 중흥시키는 영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승 총무원장이 가장 잘못한 것은 종회의 기능과 총무원 기능을 둘 다 마비시켰다는 겁니다. 94년 종단 개혁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당시에는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개인비리라고 할 만큼 소수의 문제였는데 지금은 종회 전체와 총무원이 한 덩어리로 묶여서 총체적 부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최고의 참신한 수행자처럼 천막선원에서 안거를 하고 있는 자승스님에 대한 스님의 냉정한 평가입니다. 스님은 지난날 자승스님이 봉암사에 찾아와서 수좌회에 약속한 8개 사항을 헌신짝처럼 져버렸다고 개탄하셨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식은죽 먹듯 약속을 져버린다는 이야기를 얼마전 찾아뵌 수경스님께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성과 쇄신이라는 미명하에 종도들을 속이고 어른스님과 선배스님들을 농락하여 온 사람이 자신의 과오에 대하여 한마디의 참회도 없이 수행이 될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스님의 부재를 더욱 안타까워 합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말을 해야 할 때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스님께서 내려주시는 청량한 죽비소리가 더욱 그리울 것입니다. 조계사앞에서 직선제를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할 때도 봉암사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경책소리는 지치고 힘든 저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9월에 스님을 뵈러 같이 갔던 원만스님은 지금 갑상선앞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고있는 원만스님은 병원에 입원한지 보름만에 몸무게가 20kg이 빠졌다고합니다. 한 분은 입적하시고 한 분은 병실에 계시니 더욱 삶의 무상함을 절감합니다. 이렇게 무상하고 유한한 인생인데 더구나 머리깍은 사문이 되어서 무슨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비겁하게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후학이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여주시고 떠나신 것에 감사합니다. 어제의 말을 오늘 바꾸는 가벼운 입들이 많은 이 때, 스님이 아니었으면 존경을 바칠 곳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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