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의 주장 경(A3:61) Tittha-sutta(일체개고에 대한 대답)
앙굿따라니까야 1권(대림스님, 2006년) p.433-442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 등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 지음 없음에 도달하고 만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ㆍ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ㆍ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ㆍ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2. “비구들이여, 나는 이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이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파괴하더라도 그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헐뜯는 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욕설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잡담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마음이 악의로 가득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3.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파괴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헐뜨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욕설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잡담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마음이 악의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햐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4.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파괴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헐뜯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욕설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잡담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탐욕스럽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악의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에도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세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들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지음 업음에 도달하고 만다.”
5.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 내가 설한 법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虛空界], 알음알이의 요소[識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7.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 눈의 감각 접촉의 장소, 귀의 감각 접촉의 장소, 코의 감각 접촉의 장소, 혀의 감각 접촉의 장소, 몸의 감각 접촉의 장소, 마노의 감각 접촉의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8.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눈으로 형상을 볼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온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 … 코로 냄새를 맡을 때 … 혀로 맛을 볼 때 … 몸으로 감촉을 촉감할 때 … 마노로 법을 알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온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9.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Channaṃ,bhikkhave, dhātūnaṃ upādāya gabbhassāvakkanti hoti;
듦이 있을 때 정신ㆍ물질[名色]이 있다. 정신ㆍ물질을 조건하여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가 있다.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조건하여 감각접촉[觸]이 있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느낌[受]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느낌을 느끼는 자에게(Vediyamānassa,현재분사,여격)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천명한다.”
주석서: vediyamānassāti ettha vedanaṃ anubhavantopi vediyamānoti vuccati jānantopi. “vediyāmahaṃ, bhante, vediyatīti maṃ saṅgho dhāretū”ti (cūḷava. aṭṭha. 102) ettha hi anubhavanto vediyamāno nāma, “sukhaṃ vedanaṃ vediyamāno sukhaṃ vedanaṃ vediyāmīti pajānātī”ti (ma. ni. 1.113; dī. ni. 2.380; vibha. 363) ettha jānanto. idhāpi jānantova adhippeto. P.2.282
“sukhāpi kho, ānand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dukkhāpi kho, ānand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P.2.67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adukkhamasukhāpi kho, ānand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tassa sukhaṃ vedanaṃ vediyamānassa ‘eso me attā’ti hoti. tassāyeva sukhāya vedanāya nirodhā ‘byagā VAR me attā’ti hoti. dukkhaṃ vedanaṃ vediyamānassa ‘eso me attā’ti hoti. tassāyeva dukkhāya vedanāya nirodhā ‘byagā me attā’ti hoti. adukkhamasukhaṃ vedanaṃ vediyamānassa ‘eso me attā’ti hoti. tassāyeva adukkhamasukhāya vedanāya nirodhā ‘byagā me attā’ti hoti. iti so diṭṭheva dhamme aniccasukhadukkhavokiṇṇaṃ uppādavayadhammaṃ attānaṃ samanupassamāno samanupassati, yo so evamāha — ‘vedanā me attā’ti. tasmātihānanda, etena petaṃ nakkhamati — ‘vedanā me attā’ti samanupassituṃ.
mahānidānasuttaṃ
그러므로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하면 ‘나의 자아는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한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괴로운 느낌이 소멸하면 ‘나의 자아는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하면 ‘나의 자아는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느낌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결국 ‘자아는 현생에서 무상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여있고, 일어나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관찰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느낌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DN15)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천명하노라"’(A4:46)
cāhaṃ, āvuso, imasmiṃ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ā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n”ti.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나는이러한 네 가지 진리를 풀이나 나무등걸 등에서 천명하지 않는다.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바로 이 몸에서 천명한다.’(AA.iii,88-89)
10.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나’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1.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인가?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行]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ㆍ물질이,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ㆍ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2.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行]들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ㆍ물질이 소멸하고, 정신ㆍ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ㆍ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3.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덝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초기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 앞에 불이 꺼진다면 어느 방향으로 간 것인가? (M72) (0) | 2019.11.28 |
---|---|
왜 물질이라고 하는가? (S22:79) (0) | 2019.11.28 |
볼 때는 보여질 뿐이며 ....말룽꺄뿟따(S35.95) (0) | 2019.11.26 |
갈애를 떠났다면 그 지각이 변괴해도 우울, 고통이 생겨나는가?"(S22:84) (0) | 2019.11.25 |
지금 여기에서도 여래는 진실로 파악될 수 없습니다.(S22:85) (0) | 2019.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