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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선정의 요소들


선정을 닦는데 알아야할 지식들이 잘 소개도고 있어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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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애


'장애'를 뜻하는 빠알리어 용어는 니와라나(nirvarana)이다.

이것은 마음이 조화로운 상태,즉 청정한 마음상태(統一性)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장애의 각 요소는 청정한 마음의 특정한 하나의 요소를 파괴한다.

이러한 각각의 장애들을 그와 반대되는 청정한 마음상태(統一性)의 각 특성과 짝을 지어

대비시키면서 살펴보자.


 1)감각적 욕망


욕망의 포기, 즉 출리(出離,nekkhamma)와 정반대의 장애요소이다.

감각적 욕망은 즐거운 것에 대한 만족감 ,몰두,기뻐함을 뜻한다.

그것은 마음을 들뜨게 하여 미혹하고 또 마음의 밝은 상태를 오염시킨다.

감각적 욕망은 붉은 염료와도 같아서,맑은 물에 염료가 섞이면 그 물을 더 이상 맑지 않게

만들고 물 밑에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요소인 놓아버린,출리(出離)는 감각적인 욕망에  의해 미혹되거나 어지럽혀

지거나 흐려지지 않는 청정한 마음상태의 첫번째 요소이다.


2)악의(惡意 vyapade)

이것은 선의와 정반대되는 장애요소이다.

악의가 있는 마음은 분노에 의해 오염되는데,분노는 반감,불만족,성냄 또는 그와 유사한,바람직

하지 못하고 해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악의에 찬 상태에서 마음은 부글부글 끌어오르기 때문에 그 상태는 청명하지 않다.

이것은 마치 끓는 물이 더 이상 청명하지 않아서 물 밑바닥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반면 선의는 어떤 식으로든 동요되지 않는 차분하고 평화로우며 불쾌한 특성이 없는 마음을

의미한다.선의는 청정한 마음상태의 두번째 요소이다.


3)무기력 - 혼침(thina-middha)

이것은 빛의 인식과 정반대되는 장애요소이다.

'무기력,혼침'이란 여기서 둔감함,졸림,지루함 등을 의미한다.

무기력과 혼침으로 인해 장애에 빠진 마음은 밝음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마치 원래의 맑던 물이 조류와 해초에 의해 맑음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무기력과 혼침은 장애이며,마음을 해치고 쓸 수 없게 만든다.


반면에,빛의 인식은 햇빛과 같이 변함없이 이어지는 밝은 빛을 일으키는 수행의 한 형태이다.

빛과 이 빛이 나타나는 시간은 그 특성과 수련에 의해 조건지어진다.

빛의 인식을 계발하면,즉 마치 햇빛을 인식하듯이 마음을 밝게 만들면 수행자는 졸림과

둔감함과 늘어짐을 극복할 수 있다.

빛의 인식은 잠을 잘 때는 깊이 잠들 수 있게 하고,깨어있을 때는 완전히 깨어있게 한다.

이와같이 빛의 인식은 청정한 마음상태의 세번째 요소로 무기력과 혼침의 해독제로 마음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4)들뜸 -불안 (uddhacca-kukkucca)

이것은 확고부동함(avikkhepa)과 정반대되는 장애요소이다.

문자적 그 의미를 고찰하면 웃다짜(uddhacca) 와 쿡꾸짜(kukkucca) 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다.

웃다짜는 파열, 퍼짐, 흩어짐 등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나친 애착과 호감, 흥미 탓으로 사념이 확산하거나 흩어지는 것이다.

쿡꾸짜는 어떤 일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알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즐겁지

않아서 생겨나는 불안과 걱정이다.


이것은 자신의 기질 또는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과도하고 지나친 노력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것에 의해 흔들릴 때 생겨난다.

이러한 두 자지 장애요소에 의해 압도당한 마음은 청정을 빼앗긴다.

맑은 물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때 물결이 일고 더이상 맑지 않게 되어 물밑의 것이 보이지

않듯이,마음은 이러한 장애에 의해 휘저어지고 흔들린다.


반면에, 아윅케빠(avikkhepa)'는 '흔들림 없음',즉 어떤 식으로도 흔들림이 없음을 의미한다.

마음에 적용될 때, 그것은 마음이 그 자체로 확고하고 굳건하여 장애에 흔들리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때 마음은 '본래의'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요소는 청정한 마음상태의 또 하나의 요소로 간주한다.

이 덕목은 가변적이고 흔들리기 쉬운 마음의 성격 안에 있기 때문에 성실하게 수행해야만

계발될 수 있다.



5)회의적 의심(vichkiccha)

이것은 법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정반대되는 장애요소이다.

'위찌끼짜(vichikiccha)는 회의 또는 의심,즉 수행방법에 대한 확신의 결여를 뜻한다.

이러한 장애가 있는 수행자는 불법승에 대한 확신이 없고,부처님 법과 부처민이 규정하신

수행방법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것들을 건성으로 믿는다.

중요한 것은 의심의 측면이 수행자 자신의 수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심에 압도되어,그의 미음은 청정함을 잃고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보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맑은 물이 어둠 속에 놓여 있어서 물밑의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의심과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의심은 마음을 크게 훼방하고 괴롭힌다.

법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회의적 의심의 정반대이고,따라서 청정한 마음 상태의 또 하나의

요소이다.


경의 원전에서는 위와 같이 다섯가지의 장애 요소만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이를테면 [무애해도(Patisambhida-Magga)]와 같은 후대의 경전에서는 또 다른

세가지의 장애들이 열거되어 있다.이 세가지 추가적인 장애들은 나머지 세가지의 청정한

마음의 상태들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1)무명 또는 무지:이는 지혜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2)혐오:이것은 기쁨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3)모든 불선법:이것은 모든 유익하고 선한 상태에 반대되는 것이다.


선정수행의 당면 목표는 마음에서 장애를 걷어내는 것이다.

마음에 장애가 없는 상태와 마음이 선정에 들어간 상태는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마음이 장애에서 벗어났을 때마다 자연스러운 선정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고찰하는 선정은 적극적인 수행에 의해 장애가 부수어진 선정이다.


자연스런 선정이 이루어져 마음에서 장애가 사라지는 경우는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따땅가위뭇띠(tadanga-vimutti)'인 '장애의 반대요소에 의한 해탈',즉 장애들을

중화시켜 없애주는 유익한 요소들이 마음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장애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해탈한 마음상태이다.

이와 달리,적극적 수행에 의해 계발된 마음의 힘으로 장애가 사라지는 선정이 있다.

이러한 선정 수행의 결과로 나타나는 해탈의 상태는 '위깜반나위뭇띠(vikkhambhana-vimutti)'로

'장애을 일시적으로 억누른 해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마음이 선정에서 나오면 곧바로 장애가 다시 일어나는데,이는 그 뿌리가 아직 완전히

뽑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려면 더욱 높은 수준의 수행,즉 통찰수행(vipassana)이 필요하다,

마음이 장애에 의해 두번 다시 흔들리지 않는 해탈의 상태는 '사뭇째다위뭇다(samuccheda-vimutti)즉 '장애를 근절한 해탈'로 불린다.

이는 모든 장애들을 분쇄한 완전한 해탈을 뜻한다.


그래서 해탈이 자연스런 선정으로 저절로 일어난 우연에 의한 것인지, 적극적으로 선정수행

으로 나타난 사마타 수행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지혜수행인 위파사나 수행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해탈의 상태도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해탈의 상태는 일시적임에 반해, 세번째의 해탈의 상태는 영원하다.

수행자는 장애에 대한 문제들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기억만 해서는 안된다.


수행자는 그 장애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고 알아야 하며, 지금 마음에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차림해야 한다.

또한 장애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방해하는지를 알아차림해야 한다.

이것은 수행자로 하여금 장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아 장애를

없애고자 하는 수행자의 시도를 더욱 단호하고 흔들림 없도록 만들어 준다.

설령 수행자가 장애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수행자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왜냐하면 그는 장애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기 때문이며 결국에 가서는 장애를

완전히 근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로부터의 자유는 분명히 그 자체가 행복이다.


이것이 첫번째 단계로,향후 더욱 향상된 수행의 기초가 되며 그것은 마침내 장애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낼 것이다.

장애는 완전히 제거되며 이것은 고통의 영원한 종식을 의미한다








2.선정의 요소들


 선정의 상태를 성취하기 위한 중요한 수행법은 '호흡을 통한 마음챙김'이다.

이것은 모든 유익한 요소들이 일어날 때까지 마음을 '호흡에 꽉 붙들어 매 놓는 것'이다.

각각의 유익한 요소들이 독특하게 드러나서 각각의 장애들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마음챙김이

지속되는 동안 장애는 마음을 지배할 기회를 다시 얻지 못한다.

마음이 호흡이나 다른 명상주제에 고정되었을 때,장애는 없어지고 유익한 요소들만 남는다.


명상수행자는 이러한 청정한 상태의 요소들을 어떻게 계발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이해

하여야 한다.예를 들면 '보내버림'인 출리(出離)는 수행하려고 은거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생겨나고,그때부터 계속 증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출리는 수식 또는 호흡 자체에 집중하는 단계에서부터 계발되고 확립하기 시작하여,닮은

표상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계발된다.

선의(善意) 등의 다른 특정한 유익한 요소들도 같은 방법으로 계발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각각의 선정요소와 그것에 일치하는 청정한 본성의 요소를 주제로 고찰

해보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선정의 요소' 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위따까(vitakka)

일반적으로 생각 또는 사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행의 전문용어로 쓰이는 위따까는 어떤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에 대한 '마음의 밀착된 주시'를 뜻한다.

위따까라는 요소는 수식과 상수 단계에서는 잘 계발되지 않고 접촉과 고정의 단계에서

완전히 계발된다.

위따까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위짜라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2)위짜라(vicara)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조사를 의미한다.

그러나 수행에 관련된 전문 용어로 쓰이는 위짜라는

'마음이 집중대상인 호흡을 철저히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위짜라는 상수 단계에서 처음 나타난다.

위따까와 위짜라는 어떤 대상에 대한 '실험과 검사'의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다.

위따까는 대상을 바라보고 거기에 눈을 고정시키는 것과 같다.

반면에 위짜라는 그 대상을 철저히 보고 알아차림 하는 것과 같다.


또는 '물 뿌리기' 에 비유할 수도 있다.

물이 뿌려져서 땅에 닿을 때,그것이 위따까이다.

물이 땅에 흡수될 때,그것이 위짜라이다.

위따까와 위짜라는 두개의 동시적이면서 서로 관련된 마음의 특성들로서,

위따까는 표상에 대한 바른 겨냥이고,위짜라는 표상에 대한 지속적인 밀착이다.


3)삐띠(piti 희열)

이것은 일반적으로 희열 또는 기쁨을 뜻하며 수행 전문 용어 또한 같다.

삐띠는 '감각적 용망에서 벗어난 희열'로 정의된다.

감각적 욕망에서 해방된 기쁨은 다음과 같은 느낌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즉,' 나는 해야 할 것을 이루었다.나는 확실히 성공할 것이다.'등등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희열은 감각적 욕망이 아닌 출리와 연관된다.

그렇다면 삐띠는 감각적 욕망의 극복에서 오는 희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희열은 건정한 마음 부수의 하나로 간주된다.

삐띠(기쁨)와 수카(행복)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즉, 희열은 행온( sunkhara 行蘊)에 속하고,행복은 수온(vedana 受蘊)에 속한다.

희열은 행복의 원천이다.



4)수카(sukha,행복)

이것은 마음이 장애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희열로 충만할 때 일어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희열을 느낄 때,우리는 행복 또한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일상의 행복은 잠시만 지속될 뿐이다.

보다 더 지속적인 행복은 마음이 장애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을 때 일어난다.

행복의 성격이 이해되면 희열과 행복은 위따까와 위짜라처럼,비록 동시에 존재할 수는

있을지라도 서로 다른 상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5) 에까가따(ekaggata 心一 鏡性)

이것은 찟떼까가따 또는 찟따에까다따의 준말로(cittekaggata/citta-ekaggata)마음이 한

대상에 집중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마음은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가지고 있으며,거기에 마음이 집중된다.

한 대상에만 마음이 고정되고 확립된 상태이다.

보통 마음은 여러 대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고 경거망동하며 쉽게

영향을 받는다.

올바로 수련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은 안정되고 하나의 대상에 원하는 대로 머물수 있다.


사마타 집중 수행에서 에까가따는 닮은 표상에 대한 고정 수행을 한 후 마음이 안정되며

확고한 상태를 말한다.

고정 이전의 단계에서 마음은 단지 단속적으로 하나에 집중한다,.

에까가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집중,즉 사마디(samadhi)이다.

일부 경전들에서는 에까가따를 확고히 머묾(adhitthana)이라고도 한다.


이제 이러한 선정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마음에 머물고,그 기능들이 초선정에서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 살펴보자.

초선정에서는 위의 다섯가지 구성요소들이 모두 모여,하나의 전체를 이루도록 함께 연결

되어 있다.그러면 이제 마음이 단 하나의 대상에 초점이 맞춰진 일념의 상태에서 어떻게

이러한 다섯 요소가 동시에 있을 수 있는가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사람은 '초선정 단계에서 선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이해할

없다.


이른바 선정의 구성요소들이란 단지 구성요소들 또는 구성성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구성요소들은 마치 다섯 가닥으로 구성된 밧줄이 하나의 밧줄로 간주되는 것처럼,함께

결합하여 전체를 구성한다. 초선정에서 다섯 가지의 구성요소들은 마음 안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각각의 요소는 그 자체로 확고하며,동시에 그 각각의 구성요소는 서로 지지한다.

이것은 마치 땅에 굳게 고정된 다섯 기둥의 꼭대기들이 서로 연결될 때 더욱 더 튼튼해지는

것과 같다.


굳게 확립된 닮은 표상과 함께 마음은 완전한 집중,즉 본삼매(appana)에 들어간다.

본 삼매는 확고하게 모여진 상태이며,이는 하나의 총체에 다섯 요소가 함께 결합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상태는 선정,즉 확고한 집중이라고 불린다.

닮은 표상이 나타남과 함께,위따까는 '공기가 접촉하는 지점'에 대한 집중으로 옮겨와서 더

이상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지 않는다.

위따까는 수식, 상수, 접촉이라는 초기 단계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다.

위따까는 점점 더 미묘하고 고요해지며 고정 또는 닮은 표상의 단계까지 계속 그러한

상태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위짜라도 수행의 시작에서부터 있어 왔으며,고정의 단계에 이르러 더욱 더 섬

세해진다.그 고정의 단계에서 위짜라는 마음이 닮은 표상을 인식하고 철처히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위따까와 위짜라는 처음부터 협력한다.

그래서 위짜라는 닮은 표상의 단계에서 완전히 현전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삐띠가 위따까와 위짜라를 자연스럽게 계승하여 처음에는 약하게 나타난다.

사실 삐띠 역시 첫단계에서부터 있어 왔으며,비록 짧게 이어지고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상수와 접촉의 수행 중에도 존재한다.

위따까와 위짜라가 점점 더 확고해지고 미묘해짐에 따라 고정 또는 닮은 표상이 일어나는

단계에서 삐띠 또한 존재한다.

삐띠가 있을 때 항상 수반하는 수카(행복)도 이 단계에서 나타난다.

마음이 흔들림없이 닮은 표상에 확고히 고정되는 상태는 심일경성( 心一鏡性 )즉 '에까가따'

라고 불린다.이처럼 닮은 표상이 일어남과 함께 선정의 다섯 구성요소가 모두 완전히 확립된다.


마음이 닮은 표상으로 초선정의 본 삼매를 성취했을 때,선정의 다섯 요소는 동시에 확립되어

선정의 구성요소 로서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며 확립된다.

이러한 단계에서는 심상,즉 닮은 표상을 주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선정의 구성요소들은 그 자리에 스스로 확립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화롭게 결합한 다섯 요소의 힘으로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감독만이 남게 된다.

그것은 마치 순한 말이 매끄러운 길 위에서 마차를 끄는 동안,마부가 말고삐를 잡고 마차에

앉아있는 것과 같다.

다섯 요소가 각각 하나씩 의도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섯 요소의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통일성은 올바른 수행의 결과로 나온다.

그것은 마치 마차에 앉은 마부가 말고삐를 태연하게 잡고 너무 긴장하지 않을 때 마차가 길

위를 순조롭게 잘 달리게 되는 것과 같다.

또한,각각의 선정요소들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는 다르게 보이는 하나의 대상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각 요소의 특성들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그리고 높은 단계로 나아감에 따라 변한다.


이제 선정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가 다섯가지 장애들에 하나씩 대응하여 각각의 장애를

제거하는 과정을 그것의 효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이것을 이해하려면 어떤 선정의 요소가 어떤 장애와 반대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위따까는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고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따까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초조함과 걱정 같은 위따까의 성격과 반대되는 장애들은 일

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집중대상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도 일어날 수 없다.

위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위짜라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망설임이나 중단이 없는 활동이 있으므로 회의적 의심은

바로 줄어든다.

희열과 행복은 악의와 무기력의 천적이다.

희열과 행복은 또한 감각적 욕망도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희열과 행복은 욕망과 닮은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목적이 육체적인 욕망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감각적 욕망은 감각의 대상들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감각적 욕망은 대상에 강하게 의존하는 반면,희열과 행복은 감각 대상들의 포기에 의존한다.

심일경성(心一鏡性)의 경우는 다섯 장애를 모두 감소시킨다.


이처럼 선정요소는 특정한 장애와 반대되고 또한 어느 정도는 나머지 모든 장애의 천적이 된다.

마치 어둠과 밝음이 함깨 공존할 수 없듯이 선정의 요소들과 장애들은 동시에 함께 존재할 수

없다.


근접 삼매(upacara) 상태일 때,즉 선정이 일어나기 전에 장애들은 감소하기 시작한다.

선정, 즉 본 삼매(appana-samadhi)가 성취되면 다섯 가지 선정의 요소들은 완전히 계발된다.

이때 어떤 특정한 선정의 요소가 그와 정반대로 짝지어진 장애만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모든 선정의 요소들이 본 삼매에서 모두 함께 모여져야만 장애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즉 이러한 장애 제거의 과정은 근접 삼매 때부터 진행되는 것이다.


사실 장애들은 준비표상에 마음을 고정시키는 단계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익힌 표상의

단계부터는 장애들이 완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닮은 표상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비록 선정의 요소들이 완전히 일어나지 않고 집중이

단지 근접 삼매의 수준에 있더라도 장애들이 이미 완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요소들이 완전한 집중,즉 본 삼매의 단계에서 분명하고 확고하게 나타날 때도

장애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선정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장애들은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선정의 흔적, 즉 집중에서 생겨난 행복감(수카)만이 남아있을 때도 장애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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