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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제주도 연수교육을 다녀와서

어쩌다 어른 어쩌다 종사(宗師)

 

하늘은 높고 햇살은 눈 부시다. 10월의 끝자락 바람은 싸늘해졌다.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에  나그네는 떠날 궁리를 한다. 오라는 곳은 없지만 언제나 갈 곳은 많다. 어디를 다녀올까 궁리하다 종단 연수교육을 발견하다. 법랍 30년이상의 비구(宗師) 비구니(明德)스님들을 상대로 주어지는 종단지도자 최고특별 과정이다. 어쩌다 어른이 된 것처럼 어쩌다 종사(宗師)가 되고보니 드디어 최고특별지도자 과정에 참여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육지가 아닌 제주도라는 점도 마음을 이끌었다. 연수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자 백장선원에서는 청규에 따라 연수비를 집급하였다. 대중 누구나가 주인이 되는 도량이라서 가능한 혜택이리라. 교육원에 송금을 했는데도 연수교육에 대한 프로그램 안내가 오지 않는다. 교육원에 전화하여 알아보니 송금을 하고나서 전화로 알려야 완전한 등록이 된 것이라고 한다. 연수교육 사이트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차귀도 전경


연수교육에 등록을 완료하고 나니 마음이 설렌다. 누가 올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백장암에서 광주비행장으로 차를 몰고가서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공항에서 교육원직원들과 연수에 참가한 스님들을 만나 버스를 타고 관음사로 갔다. 관음사에는 이미 도착한 스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구 9명 비구니 21명 총 30, 내가 얼굴을 아는 스님은 3명이다. 그것도 같이 살아 본적은 없고 오다가다 얼굴만 익힌 분들이다. 입재식을 마치고 대웅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대중중에 산악용 스틱을 양손에 잡고 서 있는 노스님이 보인다. 노스님은 대중이 이동할 때 항상 뒤쳐졌다. 올해 85세가 되시는 무구스님이다. 나도 85세때까지 연수교육을 받으러 다니게 될까 저런 나이에 연수교육에 참석했다는 것에 대중스님들이 놀라워 한다이번 연수교육을 다녀와서 굳이 후기를 쓰게된 것은 무구스님을 만난 탓이다. 무구스님을 만나서 할 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구스님이 대중을 깜짝 놀래킨 것은 알뜨르 비행장에서다. 6.25 전쟁이 발발한 뒤 젊은이들을 징발해서 군사훈련을 시켰는데 그곳이 알뜨르(아래벌판) 비행장이다. 가이드가 알뜨르 비행장에 대해서 설명하자 노스님은 "내가 18세때 이 곳에서 92일간 훈련을 받았어" 라고 나의 귀에 속삭였다.

 

           훈련병시절을 증언하는 무구스님


나는 대중스님들이 무구스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이크를 든 가이드에게 노스님의 이야기를 듣자고 제안했다. 이동용 마이크를 건네받은 노스님은 바닥에 앉아서 훈련병으로 생활하며 겪었던 경험을 털어 놓았다. 밥을 자주 굶어서 쓰러졌던 일, 병이들어 누워 있으면 죽은 줄 알고 산방굴사 밑에 있는 화장터로 옮기는데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벌떡 일어나 꼿꼿이 앉아 있던 청년. 훈련받다가 죽은자와 살아남은 자가 반반이라는 노스님의 고백은 그곳에 있던 대중을 눈물짓게 하였다. 아쉽게도 노스님의 사투리와 빠른 말 때문에 감동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일본군 전투기 격납고로 이동하며  누가 차근차근 물었으면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노스님은 어설프게 끝낸 이야기를 아쉬워 하였다. 다행히도 제주도에 사는 도정스님이 노스님의 현장증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놓았다. 노스님의 증언영상 (https://youtu.be/5Hwp2WJic98)

 

서귀포 약천사에 들려 저녁공양을 하고 제주도 사찰의 폐사지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니 주변은 어두워져 있었다. 보안스님은 강의 시간에 무구노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귀뜸해 주었다. 노스님이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는지 1시간 동안 웃느라 배가 아프다고 했다. 호텔숙소로 돌아가서 나는 보안스님과 혜문스님등 다른 방의 스님들을 초대하여 노스님으로부터 이야기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까지 어느 강사에게도 들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었다. 노스님은 이야기로 사람을 사로잡는 재주가 있었다구연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등장인물의 목소리와 행동을 흉내내며 1인 연극을 하듯 이야기 하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이야기주제로 옮겨서 듣는 자를 애타게 했다. 능숙한 피아노 연주자처럼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연주 하였다.

 

              80세의 정도스님과 85세의 무구스님

 

그 재미난 이야기들을 글로 전해 드릴 재간은 없다. 노스님의 목소리와 제스쳐가 아니면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살려는 경향이 있어. 나도 내가 이상해!" 라며 들려주신 몇가지 이야기는 이렇다. 7살때 절에가서 염불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지속해온 염불수행, 14년동안 청송교도소에서 법문다니며 겪었던 이야기, 세계여행한 이야기, 중국의 무술 고수와 맞짱 뜬 이야기, 법당을 짓고나서 대웅전(大雄殿)이라고 현판 대신 소웅전(小雄殿)이라는 현판을 단 이야기, 소웅전 앞에  남근석을 세워 놓았는데 풍기문란죄를 조사하러 나온 호법부스님들을 호통쳐서 돌려보낸 이야기등등...돈키호테처럼 세계를 무대로 살아오신 노스님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하얀 것짓말'(부다가야)과 세계여행기인 '진똥 개똥'(우리출판사)이 노스님이 펴낸 책이라고 한다. 노스님은 생전처음 종단연수교육에 참석하였다. 노스님을 따르는 신도분이 교육비와 항공권등을 준비해놓고 등을 떠밀어서 갑자기 오게 되었다고 한다.

 


 

                                    4.3 평화공원


무인도인 차귀도를 걸으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고 4.3 평화공원, 포로수용소, 일본군 비행장등에서 새삼 제주도의 아픔을 느꼈다. 삼별초가 마지막으로 항쟁한 항몽유적지에서 우리민족의 정의로움을 배웠고 제주도에 산재한 85군데의 폐사지를 공부하며 고려시대 불교가 중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주도에도 '선정의 길'등 불교계가 만들어 놓은 걷기코스가 있으니 육지의 불자들이 자주 걸어보면 좋겠다. 30년 넘게 각자 수행의 길을 걸어온 스님들과 선배스님을 만나서 매우 반가웠다. 마지막 날 우리는 제주도 법화사에서 23일 연수교육동안 느꼈던 소감 나누기를 하였다. 많은 스님들이 처음 만나는 날 차담을 나누며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더 쉽게 친해졌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최고의 법계스님들이 23일 연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조계종의 수준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연수교육은 교육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소통과 교류의 시간이기도 하다. 법랍이 많은 스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교육일 수록 소통과 교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되어야 한다. 종단에서 자칭 최고지도자라는 종사와 명덕스님들을 모아놓고 스님들을 피교육자로만 생각하여 연수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처음 정식승려인 비구는 4급 승가고시를 통과한 자이고 3급은 상좌와 말사주지를 할 수 있고  법랍 20년이상은 2급으로 부실장 자격이 있고 25년 이상은 1급 승가고시를 통과하여 본사주지 호계위원등 자격이 주어진다. 종사명덕은 30년이상 스님들을 대상인데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호계원장등의 자격이 주어지는 종단 최고의 승려들이다. 종사 명덕에 걸맞는 대접을 해줘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종사 명덕은 단순하게 종단이 승려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수단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법화사 누각 아래서 소감나누기


해마다 개최되는 다양한 연수교육시간에 스님들이 종단에 무엇을 원하는지, 스님들이 어떻게 불교현실을 파악하고 있는지, 평생 어떻게 포교하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경청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대중의 의견을 수용하여 집단지성으로 운영되는 종단이 되기를 바란다. 종단 연수교육 덕분에 30년 넘게 같은 종단에 살았지만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스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많은 스님들과 개인과 종단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 대개의 스님들은 현재 종단과 불교현실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어느 스님에게 전해듣기로는 이번 연수교육에 참석한 비구니스님들의 사찰에 공양주를 두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비구스님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종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최고지도자 연수교육은 종단과 불교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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