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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조계사앞으로 두달째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내가 조계사 일주문으로 출근하는 신세가 되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시작은 사부대중백인대중공사에 참여하면서부터입니다. 사부대중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듣고 말하는 분위기속에서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다보니 어느덧 바른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설문조사결과 직선제를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중이 지지하는 것을 종회와 집행부가 노련하게 비껴가는 것에 분노하면서 나의 길은 예정되었던 듯 합니다. 대중의 뜻을 받들지 않는 종단을 향해 비판하는 글을 쓰다보니 주지재임도 안되게 되었고 사찰을 떠나니 더욱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습니다. 종권을 쥔자들이 어떻게 교묘하게 직선제를 폐기시켜 버리는지를 알게 되었고 자승...종권 8년간 벌어진 적폐도 낱낱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적광스님폭행사건도 만났습니다. 사실 적광스님의 폭행 동영상을 몇년전에 보았는데 그때는 분노하며 나서지 못했습니다. 게으름과 이기심 그리고 공감능력의 부족이었을 겁니다. 거기다가 ‘내가 나선다고 변화가 되겠어?’라는 패배의식과 비겁함도 저의 발목을 잡았을 겁니다.

사실 처음 1인시위에 나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 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하는 1인시위 이기도 했고 사람들앞에서 노래한곡 하는 것도 얼굴을 붉히는 성격이라서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 서는 일은 나의 일이 아닌듯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건 아닙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온 한마리 짐승이었다"라는 외침과 호법부스님들에게 적광스님이 끌려가는 장면이 인쇄된 피켓을 들고 서있습니다. 자승퇴진과 심지어 자승구속이라는 구호도 거침없이 나옵니다. 적광스님을 한번도 만난적이 없지만 나는 매일 스님의 외로운 "이건 아닙니다"라는 외침을 듣습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욕한번 안하는 스님의 젊잖은 품성이 느껴져 더욱 안타깝습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으면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햇볕이 내려찌는 무더운 날씨에 길가에 서있노라면 사막에 홀로서 있는 느낌입니다. 비가오는 날에 우비를 입고 서있으면 풍랑이 치는 난파선에 서있는 착각도 듭니다. 나와 인연이 있는 스님들조차 빚쟁이를 만난 듯 나를 외면하는걸 보거나 신도님들이 싸늘한 눈빛으로 지나갈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또 어떤 날은 지리산천왕봉에 올라와있는 것처럼
천하가 내발밑에 있구나하는 느낌도 듭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도 가야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더 굳건해질 때, 그리고 스님들이 고생한다면서 손을 잡아주고 따듯한 눈길을 보낼 때는 햇살같은 희망이 생깁니다.

거리의 정진은 선방의 좌복에서 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해줍니다.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좌선을 하기도하고 일어나 피켓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오기도합니다. 가끔 새로 참여하는 분들과 참새처럼 수다를 떨고 정식직원처럼 매일매일 출근하는 불자님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따듯한 위로를 받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진 분들은 승속을 떠나서 깊은 신뢰를 갖게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조계사앞을 지나신다면 이들에게 시원한 음료한잔이라도 건네 주시길 바랍니다.

적폐청산의 구호를 힘차게 외치지만 적폐청산만 되면 승가가 한순간에 청정해지고 승단이 일시에 화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요구가 분출되어 더 시끄럽고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눈치보지 않고 말할 수 있고 '아닌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세상사 다 버리고 삭발염의한 수행자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할 말을 못하고 산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스님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눈치보고 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진솔한 대화가 가능하며 제적을 각오해야만 시위에 동참할수 있다면 어떻게 승가의 화합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물에가서 숭늉을 찾는 격이지요.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는 승가가 되면 또 누군가 적광스님처럼 기자회견을 하다가 끌려가서 폭행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집단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폭행하는 스님을 두둔하는 맹목적인 신도들도 없을 겁니다. 그거면 된 것이지요. 너무나 소박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다른 것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다시 절박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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