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단개혁

어른 스님들께 큰 실망감을 느끼고 떠나갑니다

어른 스님들께 큰 실망감을 느끼고 떠나갑니다.

 

[기고] 전 천장사주지 허정스님
승인 2016.10.19  (수)  16:34:33
허정스님_ 전 천장사 주지

   
 
저는 천장사를 떠나 머물 곳 없는 유랑자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거를 들어 갈까 생각을 하다가 잠시 한국을 떠나 있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제가 천장사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까닭에 제가 선방에서 견뎌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머물 곳 없는 처지가 되어 인연처를 찾아 떠돌다보니 가슴에 슬픔이 자라나기도 합니다. 저를 믿고 동안거 방부를 들이신 선방스님들께 미안해서인지,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함께 했던 일요법회 식구들에게 미안해서인지, 공양주보살님과 진월거사와 태진이에게 미안해서인지, 자라나는 슬픔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도 이번에 새삼스럽게 제가 이렇게 천장사에 애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찾아오는 신도님들이 거의 없는 사찰이고 살림살이가 어려운 절이었음에도 나는 무얼 그리 애착하고 있는 것인지...그만큼 고생스러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슬픔의 정확한 근원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승가가 상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 스님들이 공심으로 판단하고 살지 않는다는 것, 그것입니다. 나의 슬픔은.

말사의 주지를 임명할 때 그 지역을 위해서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지역의 특성을 살려서 불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앞으로 종단이 살아남기 위해 처방한 주지평가제를 적용하지 않고, 당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종단의 고질적인 병폐가 슬픔의 근원지입니다. 불교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큰 틀에서 고민하지 않고, 스님들이 공심으로 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내 슬픔의 주소였습니다.

은사스님이 직접 재산관리인을 맡으셔서 재임을 못한 저에게 살림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재임이 안 되는 이유를 제가 언론에 발표하자 곧 재산관리인을 포기하셨고 수덕사에서는 본사 포교국장스님을 천장사주지에 임명하였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며 저는 본사주지스님과 은사스님, 그리고 방장스님이 모두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셨다고 봅니다.

 본사주지 스님은 ‘개인자격으로는 어떤 발언을 해도 좋지만 천장사주지 자격으로 종단에 쓴 소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승가의 일원으로서 승가운영에 대해 가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용납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재임서류를 본사에 제출한지 한 달이 지나도록 총무원에 서류를 올리지 않았고, 그 이유를 묻기 위해 수차례 면담요청을 했음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함으로서 본사가 말사와 소통하고 고민을 해결해 주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총무원 호법부의 전화를 받고 다시 본사 호법국장을 말사에 보내어 글을 쓰지 말라고 압력을 넣는 것으로 독자적으로 운영되어 온 덕숭총림의 위의를 크게 손상시켰습니다. 이것은 현주지스님이 본사주지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의 은사스님도 저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너의 종단에 대한 문제제기가 타당한 것임을 인정한다”면서도 끝내 저를 지켜주지 않음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압력에 굴복하는 보습을 보이셨습니다. 당신 맏상좌의 발언이 잘못된 것이 없다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변호하고 보호해 주시지 못한 것에 대해 저는 실망감과 슬픔을 느낍니다. 

제가 제일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분은 방장스님입니다. 방장스님은 총림의 규율을 세우고 승가를 지도해야 하는 위치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에서 부당하게 압력을 받고 있는 후학을 지켜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출가해서 처음으로 만난 스님이 당시 주지스님이셨던 방장스님이셨고, 저를 당신의 사제에게 상좌를 삼으라고 보내신 분도 방장스님이십니다. 

방장스님은 방장에 취임하실 때에도 ‘행자방장으로 살겠다’고 공언하시고 법상위에서 법문하실 때마다 공심으로 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공심으로 살아가는 말사주지이자 당신의 후배인 저를 지켜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방장스님이 본사주지를 지명하는 막중한 권력을 갖고 계시기에 본사주지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방장스님께 있습니다. 스님은 또 화계사 회주로 계시기에 현각스님이 제기한 문제의 책임 또한 방장스님께 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덕숭총림이 외부의 압력을 받는 비굴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결과적으로 방장스님도 덕숭총림의 위의를 훼손시키셨습니다. 들리는 소문처럼 방장스님이 종정에 나오시기 위해 종단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계신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저는 어른 스님들께 큰 실망감을 느끼고 떠나갑니다. 당신들이 생각하시기에 “저놈은 싸가지가 없으니 다시 수덕사에 발 못 붙이게 하라”고 하셔도 총무원에서 저에게 어떤 징계를 내려도 저는 저의 생각을 되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부처님은 “나의 제자들은 바르게 상황을 판단하라(지혜)” “공심으로 살아라(자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부처님을 따르기 위하여 어른 스님들께 고언을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버릇없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종단에서 주는 어떤 불이익을 무릅쓰고 상식이 통하는 종단,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승가를 위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삼보에 귀의 합니다.

2016년 10월 19일

허정 합장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