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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조계종 새로운 청규 제정에 대한 소감

 

 

새로운 청규 제정 어떻게 할 것인가?

 

6월 26일 조계종 교육원은 <종단 청규제정을 위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시대 한국불교 청규제정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자현 스님이 발제했고 20여명의 참여자들이 3시간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 청규를 제정하자는 것에는 합의를 했지만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느꼈던 몇가지 소감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청규의 문제는 수행자들의 불교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계종의 종헌 “제 2 조 本宗은 釋迦世尊의 自覺覺他 覺行圓滿한 根本敎理를 奉體하며 直指人心 見性成佛 傳法度生함을 宗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根本敎理란 초기불교이며, 나아가서는 아비달마, 중관, 유식, 화엄경등의 대승불교라고 볼수 있고 直指人心 見性成佛 은 선종에서 말하는 최상승 선법이다. 이러한 종지를 볼때 한국불교를 회통불교인데  현재의 문제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그리고 초기율과 대승율이 회통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청규의 제정은 단순히 몇가지 규칙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2600년 불교사상과 역사를 회통하는 일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이다.

 

2. 조계종은 상이한 2가지 율장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율장과 청규와 종헌종법이 서로 상이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조계종의 종헌에는 승려와 신도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제 9 조 僧侶는 具足戒와 菩薩戒를 受持하고 修道 또는 敎化에 全力하는 出家 獨身者라야 한다.”

“제 10 조 信徒는 三歸依戒, 在家5계 및 菩薩戒를 受持하고 三寶를 護持하며 本宗의 宗旨를 信受奉行하는 者라야 한다.”

조계종 스님들은 사분율로 구족계를 받고 보살계로 포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육식의 경우만을 보더라도 사분율등에는 3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육식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범망경 에서는 육식을 하면 한량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고기를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 범망경 에서는 손가락이나 팔을 태우고 심지어 온 몸을 태우는 소신공양이 장려되고 찬양되지만 사분율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 좌담회에서 “대승불교에 맞는 청규 제정이 돼야 한다”는 주장과 “기존의 율장이 무슨 문제가 있는가 따져보아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종단 내의 잣대가 율장 청규 종헌종법의 세 가지가 있다. 이를 하나의 잣대로 만들면 좋겠다”는 주장들이 이미 새로운 청규제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3. 그러므로 청규제정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2600년 불교와 불교 역사를 모두 배워야 하는 한국의 불자들은 상당한 무게감을 느끼고 있다. 사상의 문제와 계율의 문제가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텍스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다른 것은 율장과 청규와 종헌이 만들어지게 되는 장소와 시기와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텍스트를 가지고 다시 현재 우리의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 새로운 청규제정을 하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숙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청규문제를 이야기 할 때 다양한 입장과 견해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현전승가와 사방승가라는 기준으로 승가가 운영되었다면 지금은 사찰승가와 교구승가와 종단승가라는 새로운 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급승용차의 문제만 하더라도 천주교처럼 소나타급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품위유지를 위해서나 안전을 위해서 비싸더라도 튼튼한 차를 타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의견도 있다. 조계종에서는 2010년에 <선원청규>를 편찬하였다. 그 청규에는 현대사회에서 수행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 객비, 공양금, 문화활동, 개인토굴등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의 경우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급승용차와 외제 승용차의 사용을 금하고 수행자의 격에 맞는 차량을 사용한다.”라는 규정 되어 있다. 이렇게 각자의 양심에 맡기는 청규는  ‘지대방 한담’ 수준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각자의 불교관과 의지하는 규칙이 다른 상황에서, 통일 된 청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되는 종법수준의 청규는 반발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청규라고 해도 종단이 구성원들이 자신의 불교관이나 계율관에 의해서 동의하지 않거나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청규를 새로만드는 노력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지키지 않는 율장과 청규를 다시 하나 더 갖게 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토론회와 설명회를 해나가야 한다. 새로운 청규의 제정에서 결과 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며 이러한 논의과정을 2600년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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