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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스크랩] 4.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때 최후의 유훈은 무엇이었을까?-370-

 

 

4.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때 최후의 유훈은 무엇이었을까?-370-

Gilānasuttaṃ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베쌀리의 벨루가마에 계셨다.

2.그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베쌀리 부근에서 친구나 친지나 식구(지원자)를 따라 안거를 보내라 . 나는 이곳 벨루가마까(벨루가마)에서 안거에 들것이다.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들 수행승들은 대답하고 베쌀리 부근에서 친구나 친지나 식구를 따라 안거를 보냈다.

세존께서도 벨루가마까에서 안거에 드셨다.

 

3.그후 세존께서 안거에 드셨을 때 심한 질병이 생겼다.

고통스러운 느낌 때문에 사경에 들 정도였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곳에서 깊이 새기고 올바로 앎으로서 고난을 겪지 않고 참아 내셨다.

 

4.그때에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내가 만약 시자(신도)에게 알리지 않고 수행승의 승단을 보살피지 않고 완전한 열반에 들면 옳지 않은 일이다. 지금 내가 이 질병을 정진력으로 이겨내어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정진력으로 질병을 이겨내고 생명(생명의 상카라)을 유지 하셨다.

 

5.그래서 세존께서는 질병에서 일어나셨다. 질병에서 일어나신지 얼마되지 않아 정사(간병실)에서 나와 승원 뒤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6.그러자 존자 아난다는 세존이 계신곳을 찾았다. 한쪽으로 물러않은 다음 이렇게 말햇다.

[아난다]“세존이시여, 참아내셨으니 더없이 기쁩니다.(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인내하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세존이시여, 견디어 냈으니 더없이 기쁩니다.(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삶을 지탱하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병이 드셨기 때문에 저의 몸은 마비 되고 앞은 캄캄하고 가르침도 제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어떤 법들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 께서는 승단을 위해 무엇인가 말씀하시기 전에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어느정도 안심을 얻었습니다.

 

7.[세존]그런데 아난다여,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기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나는 안팎없이 가르침을 설하였다.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스승의 주먹ācariyamuṭṭhi)은 없다. (아난다여, ‘내가 승단을 이끌어 간다’ 라든가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 다’ 라고 생각하는 자는 비구승가에 대해 무엇인가 당부 할 것이다.

그러나 여래에게는 ‘내가 승단을 이끌어 간다’ 라든가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 다’ 라는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가 승단에 관하여 무엇을 당부 한단 말인가?)

 

8.아난다여, 나는 지금 늙고 노쇄하고 연로하고 만년에 이르렀으며 내나이 80이 되었다. 아난다여 예를 들어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의지하여 가듯이 아난다여, 여래의 몸도 가죽 끈에 의지하여 가는것과 같다.

 

9.여래가 일체의 그림을 마음으로 짓지 않고(모든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 하지 않고) 가지가지 느낌을 소멸하고 그림을 뛰어 넘는 마음의 삼매를 성취하면(표상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무는 때에는), 아난다여, 그때 여래의 몸은 지극히 안온하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아난다여, 어떻게 수행승이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처로 하지 않고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가?

 

10. 아난다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알고 깊이 새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며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알고 깊이 새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감수에 대하여 감수를 관찰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알고 깊이 새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관찰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알고 깊이 새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고 사물(법)에 대하여 사물(법)을 관찰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수행승은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처로 하지 말고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다.

 

11.아난다여, 이제 내가 멸도한 뒤에 아난다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처로 하지 않고.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다면 , 아난다여, 그들은 배우고자 열망하는 나의 수행승들 ,어둠의 빛이 될것이다.(최고중의 최고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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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전재성님의 번역에 더하여 ()안에 각묵스님의 번역을 넣었습니다. 비교하며 이해하면 이해가 더 쉬울 것입니다.

 

이 경전은 니가니까야의 열반경(한글 2권 201p)에 그대로 나오는 경전입니다.

이전 단원에서도 자귀의 법귀의를 이야기 했었습니다만, 오늘 이 경전은 붓다의 최후 유언이 자귀의 법귀의이며 자귀의란 4념처 즉,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마음챙김을 놓치지 말라는 것을 붓다는 죽는 순간에 다시 한번 강조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성취하라”

 

마음챙기며 사는 일은 불교의 핵심입니다.

 법구경 21번 게송에서 붓다는 게으르게 사는 자는 이미 죽은 자 라고 단언 하기도 합니다.

 

21. 게으르지 않음은 죽음을 벗어나는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

게으르지 않은 이는 죽지 않겠지만, 게으른 이는 이미 죽은 자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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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차맛어때
글쓴이 : 후박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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