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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불교

‘體/用’,‘能/所’라는 개념의 시작

[re]체/용, 능/소 개념의 유래에 대해 2009-02-03 [23:08] 
글쓴이: 김성철    조회수: 35   

[질문]

김성철 선생님 안녕하세요.
┃10여 년 전부터 선생님을 사숙하고 있는 학인입니다.
┃선생님께 여쭈고 싶은 점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중국 문명권, 즉 한자 문화권에서 쓰여진
┃한문 고전에 등장하는  ‘개념’으로서 ‘體/用’,‘能/所’라는 논리적 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能/所’, ‘體/用’이라는 범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만약 본래적인 중국적 사유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개념들을 인도-유러피안적 문화권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요.
┃그리고 각각 ‘能/所’,‘體/用’ 에 대응하는 개념이 ‘범어’에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요?
┃또한 한역 불전 중에서  ‘體/用’,‘能/所’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는 경전이 어느 경인지요.
┃그리고 그 개념들이 중국 불교사에서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선생님께서 강의시간 중에도 몇 번 중요하게 언급하셨었고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도 다루셨었는데요.

┃선생님께서 대략적 지형도를 보여주시면 저같은 후학은
┃그것을 보고 구체적으로 길을 밟아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

1. 체-용 개념의 기원에 대해

'체-용'이란 용어가 지금과 같이 '본체-작용'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습니다만

'본체-작용', '본체-현상'의 의미로 '체-용' 개념을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불교의 공 사상을 해석한 최초의 인물은

바로 고구려 요동 출신의 승랑 스님입니다.(이에 대해서는 현재 논문 준비 중입니다.)

물론 승랑 스님 직전의 중국불교 문헌 가운데 양무제의 '신명성불의기(神明成佛義記)'와 그에 대한 심적(沈績)의 주석이

현존하는 문헌 가운데 체-용 개념을 '후대의 의미(주자학 등)'로 사용하는 최초의 문헌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로 보면 하안, 왕필, 곽상 등의 현학가들이 창출한 위진현학에서 사용하는 '本-末' 개념이

'체-용' 개념에 그대로 대응됩니다.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하안과 왕필 시대에 위나라 황실 도서관에 불경이 비치되어 있었기에

하안과 왕필의 현학이 불교의 본체론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하안과 왕필이 활동하던 魏의 正始년(240년대)에 중국에 들어온 불전은 초기불전 계통 또는 반야경 계통입니다.

하안이나 왕필 시대에 중국에 전해져 있던 불교는 본체론적 불교가 아닙니다.

불전 가운데 본체론적 교리를 설하는 것은 '열반경'이나 '여래장경' 계통인데, 이는 한참 후대에 중국에 들어옵니다.

따라서 하안이나 왕필의 체용론적 '본말론'이 불교(= 인도-유러피언적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에 대해서도 현재 논문 준비 중입니다.)


또, 노자 <도덕경>의 무를 '본체', 유를 '현상이나 작용'이라고 해석하면서

체용론이 노장에서 유래한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었지만

노자 <도덕경>의 무는 오히려 작용을 의미한다고 반론하는 학자가 많으며 후자가 더 설득력을 갖습니다.

<도덕경>에서 사용하는 무와 유의 의미는 일관적이지 않으며, 본체-현상으로 해석 가능한 용례도 있습니다.

무에서 유가 나오고 유에서 만물이 나왔다는 얘기 등 ...


요컨대, 체용론은 위진 시대의 현학가들이 노장이나 주역 등의 의 용례 중에서 채취한

본말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체-용 개념의 중국불교적 전개에 대한 얘기는 '책 한 권' 분량이며

그 내용 역시 기존 불교학계에서 다루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에 본 게시판에서 가볍게 다루기는 힘듭니다.
(체-용 개념의 발생과 전개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얘기가 많습니다. 나중에 제 논문이나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체용이나 능소에 대응하는 범어에 대해


* 예를 들어, 인식의 세계에서 '인식수단'이 能에 해당하고, '인식대상'이 所에 해당하는데

범어로 인식수단은 Pram-an.a 인식대상은 Prameya입니다.

전자는 能量이라고 번역되고 후자는 所量이라고 번역됩니다.

한 가지 예이긴 하지만, 여기서 보듯이 능과 소 낱자에 대응하는 범어는 없습니다.

범어 단어의 문법적 역할을 한문으로 나타내기 위해 能, 所라는 글자를 도입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능, 소라는 용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불전을 물으셨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 체용의 경우도 그대로 대응하는 범어는 없겠지만

勝論(Vais.e.sika)의 6범주 가운데 실(實: dravya - 실체), 덕(德: gun.a - 성질), 업(業: karma - 작용)을

<대승기신론>의 體, 相, 用 3大에 대응시킬 수는 있습니다. 물론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대응시킬 경우 體는 dravya 用은 karma 에 대응됩니다.


서양불교학자 중에는 자성(自性: svabh-ava)을 본체(noumenon),

자상(自相: svalaks.an.a)을 현상(phenomena)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중국철학의 체/용, 능/소 개념에 해당하는 용어를 인도사상에서 찾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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