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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한국에서의 만남들

2008년 9월 26일

오후 6시 뿌네대학 기숙사에서 뭄바이공항을 향해 kk택시를 타고 출발하다.

햇수로 4년만에 귀국이다.

 

9월 27일 오후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다.

아란도님이 이스크라님과 공항에 마중나와서 아란도님 집에 가서 머물다.

흐름이어라가 와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28일

화계사에서 선일스님을 만나고 화계사에 살고 있는 진만스님,동재스님, 수암스님을 만나다.

저녁을 먹고 같이 삼성암으로 산책을 하다. 톡톡튀는 말 장난이 싱그러운 산책길이다.

어항속의 물고기들 처럼 한마디라도 지지 않으려는 입술들이라니....ㅎㅎ

 

 

29일 

소로님이 와서 점심을 먹고 옥천암에 정범스님을 만나다.

화계사에 짐을 맡기고 길상사에 가서 49재에 참여하고 덕문, 여일,원충,진성스님등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그리고 생명평화결사 순례중인 도법스님일행을 만나고 인사를 드렸다.

스님은 마음이 편하고 건강해 보이셨다.

언제 어디서나 희망이 되어주시는 스님. 존재하는 것으로 희망이 되어주시는 분이다.

 

30일

수덕사에 가서 은사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대중스님들에게도 인사를 드리다.

강사 우궁스님과 강주 선지스님, 유나스님,도감스님,덕원스님과 이야기를 하다.

오랫만에 만나는 경학스님과 선하스님과 이야기를 하고 정혜사에 올라 서등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서등스님은 10여년만에 만나게 되었다.

 

다음날 새로 멋지게 지은  전월사에 가서 원규스님을 만나서 보이차를 얻어마시고 해인사 선원 이야기를 듣다.

전월사는 만공스님이 주석하시던 손바닥 만한 토굴인데 지금은 멋지제 불사를 해 놓았다.

제주 약천사 해인 스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다음날 수덕여관 자리에 들어선 선 미술관 에서 미술전을 관람하고 서산 부석사 제 6회 산사음악회를 관람하다.

무구스님과 서울에서 내려온 부부와 동행하다.

 

부석사 산사음악회는 1000여명이 참석했고 주지스님 주경스님의 포교 원력을 엿볼 수 있었다.

안도현 시인과 성전스님과 도신스님도 참석하여 노래를 불렀다.

술취한체 법당앞에서 응원을 하던 귀여운 두명의 삼식이들...^^

 

수덕사에 돌아와서 김천 직지사를 방문하여 강주 지우스님과 저녁을 먹다.

지우스님의 화상강의에 대한 이야기와 문수행,보현행이 강원살림살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다.

 

10월 9일

영주 성혈사(http://cafe.daum.net/seonghyeol-sa)에서 등현스님과 상전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선일스님과 등현스님은 밤늦도록 치열한 법담을 나누었다.

등현스님이 현재 간화선의 병통과 그 해결책을 제시했고 선일스님의 반박이 이어졌다.

다담과 포행으로 끊임없이 이어진 이야기는 결국 문제의 근원인 불교사상정립으로 모아졌다.

풍기 온천에 목욕을 하고 풍기의 약선정이라는 식당에서 5명이 저녁을 먹다.

이틀 머물다.

 

11일 

성혈사에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봉화 금봉암에 가서 고우스님(http://cafe.daum.net/gousunim)을 뵙다.

각화사 선원장을 그만두시고 이곳에 절을 지어 작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큰개 두마리가 인상적이다.

중국에서 온 차우차우는 보기드문 개이다.

서장을 공부하는 비구니스님들이 방문중이었다.

아침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날 점심공양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왜냐하면 몸이 아파서 병원에 들리기 위함이었다.

 

11일

관음포교원에 현정스님을 만나 저녁을 먹고 주지스님인 일명스님을 만나서

다담을 나누다.

다음날 영화를 한편보고 월요일날 동국대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로  예약하다.

 

12일

거해스님을 찾아 가려는 마음으로 검색을 했는데 개포동 금강선원(http://www.geumgang.org/bubhye01.php)의 혜거스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잘못찾아 간 길이지만 혜거스님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일본 용곡대학의 불교심리학교수와의 대화도 있었다.

오후에는 인도 바라나시에 사는 경서보살과 연락이 되어 인사동 지대방에서 차를 마셨다.

마하리쉬의 사상과 불교사상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나누어 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회자였고 경서보살과 선일스님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지대방 주인장님은 오룡차,단총,꽃차등 4가지 종류의 차를 대접해주었다.

오랫만에 즐기는 차의 향연....

 

13일

오전에 구로동 관음포교원을 출발하여 일산에 있는 동국대 병원에서 진찰을 받다.

엑스레이,혈액,소변 검사와 한방 검사를 받았으나 별이상이 없다는 결가가 나왔다.

작은 결석이 3개 발견되었고 그 결석들이 배의 통증을 유발하는 지 하는 여부는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약만 타가지고 나왔는데 정성스럽지 못하고 ,복잡한 스시템의 종합병원에는 다시 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 5층에 법당이 있어서 그곳에서 중제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은 백석에 있는 송광사 포교당 정혜사에 머물다. 그절에 부전을 �고 있는 도융스님과 범불교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열띠게 하다가

이제 그만 주무셔야죠? 라는 주지스님의 한마디에 잠자러가다.

 

14일

오늘 다시 병원에 오다. 법당에 와서 중제스님과 이야기 하고 김포에 있는 중앙승가대학교에 오다.

총장스님은 못만난고 도서관에 와서 책을 열람하다.

PTS 본 pali 경전이 모두 있고, 날란다 대학에서 펴낸 데워나가리 본도 있어서 반가웠다.

시간이 나면 이곳에서 청강하면서 공부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다.

다시 정혜사 근처에 있는 백석도서관에가서 시설을 두러보았다.

인도와는 비교할 수없는 편리한 시설에 놀라웠다.

저녁에 옥스포드대학에서 pali를 배웠다는 정덕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외국에서 공부를 하였다는 사람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은 화제의 주제였다.

정혜사에 이틀 머물다.

 

15일

강남포교원 성열스님을 만나다. 강남포교원(http://www.buddhaland.org/)은 법당을 교회당처럼 꾸며놓았고 법회도 특별했다.

성열스님이 지은 [고따마붓다]라는 책을 교재로 2시간 강의를 들었고 점심공야 후에 차담을 5층 도서관에서

다담을 나누었다.

성열스님의 20년 포교사를 들을수 있었다.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후에 일지향을 만나서 저녁을 먹다.

일지향보살의 처소로 자리를 옮겨서 밀린 이야기로 셋이서 이야기 꽃을 피우다.   

    

16일 목요일

아침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11시 쯤 수덕사로 떠나다.

오랫만에 총림 수좌스님께 인사를 드리다.

건강이 안좋아 보인신다. 거의 15년 만인가. 

수덕사에는18일날 수덕사대웅전 건립 7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다.

주지스님은 며칠전 차사고를 당해서 차가 폐차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으셨다.

연로하신분이 교통사고를 당하니 후유증이 염려된다.

그러나 놀란 피는 한약이나 웅담으로 풀어야 한다고들 한다.

 

17일 금요일

오늘 전야제 행사로 바쁘다. 마당청소, 무대설치등등...

심운스님을 오랜만에 만나서 티벳카일라스 트레킹 이야기를 듣다.

이 스님은 수미산을 6번이나 순례 했다고 한다.

며칠후에 옥천의 토굴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다.

 

18일

일천승려의 법화경 독경대회가 열렸다.

총무원장스님 , 문화부 장관등등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선운사 강원에 강의하시는 학해스님이 찾아와 우궁스님과 넷이서 목요하고 저녁을 먹다.

밤늦도록 선원지대방에서 다담을 나누다.

 

19일  일요일

아침에 떠나려다가 2시에 박물관 행사가 있다하여 하루 더 머물기로 하다.

강주스님이 특강 부탁을 하여 23~24일 까지 3차례 6시간 동안 [인도불교 사상사]를 강의 하기로 하다.

서울에서 진만스님과 동재스님이 오체투지 하는 수경스님을 찾아 가는 길에 수덕사에 들렸다.

강주스님과 7명이서 서산 바닷가로 마실을 다녀오다.

선운사 강사 학해스님과 강주스님과 더불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비판은 누구나 할수 있다.

그러나 작년이나 올해나 내년이나 우리의 이야기가 비판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비판끝에 대안을 제시하고 희망을 말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20일 월요일

오전에 예산의 고려 한의원에서 침을 맞다.

오후에는 무구스님과 가야산 등산을 하였다.

산속에 홀로 사시는 노보살님에게 단호박을 얻어왔다.

수덕사에서는 찻길 내는 것을 반대 하지만 그 보살님은 간절히 원하셨다.

감나무, 모과나무가 지천인 아름다운 길이었다.

무구스님과의 대화도 정겨웠다. 내려오는 길에 보덕사옆의 관음암에 들렸다.

암주 스님이 흰죽을 끓여주어 맛있게 먹었다. 성격이 쾌활한 비구니 스님이다.

 

 

21일 화요일

선일스님과 서산 운산면의 개심사에 왔다.

주지 동덕스님과 성능스님,혜산스님을 만났다.

저녁에는 혜산스님 토굴에 현판 다는 일을 도왔다.

혜산스님과 늦도록 이어진 대화에서 범불교대회를 보는 시각차를 보이었다.

보수와 진보의 견해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현선원에서 머물다. 

 

 

22일 수요일

 

예산에 있는 [고려 한의원]에 가기위해 개심사에서 아침 일찍 예산에 오다.

무구스님의 친절한 예약 덕분에 오후 1시에 위내시경 검사. 오후 7시에 초음파 검사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저녁 9시에 끝나는 고단한 하루였다. 

무구스님은 병실 밖에서 기다려주었고 늦게 죽집에가서 죽을 사주기도 했다.

위 내시경 검사할 때 구역질과,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사람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살아생전에 처음 당해보는 지독한 고문!  고통에 신음하는 무기력한 나자신을 보다.

6시 30분이 병원 문을 닫는 시간이었는데 나 때문에 9시 까지 진료를 해주는 의사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다.

예산의 [김성진 내과]는 의술도 훌륭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의사 선생님의 자세를 친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명절에는 환자들의 선물로 병원이 가득 찬다고 무구 스님이 알려주었다.

이 의사분은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데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 를 생각하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23일

  

 아침 7시 20분부터 2시간 동안 강의를 하다.

1시간은 불교를 공부할 때 언어의 중요성, 2시간 째는 초전 법륜경을 강의 했다.

강사스님과 강주스님의 반응이 있었는데 학인들은 조용하다.

우궁스님과 목욕을 가서 LNP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LNP 란 서양에서 심리학을 언어치료에 적응시킨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여러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궁스님은 이 수업을 듣기 위해 매주 일요일 서울로 가서 6시간의 강의를 듣고 내려온다.

대단한 정열이다.

오후에 경서보살이 수덕사에 찾아와서 9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24일

 

 아침 강의를 끝냈다.

나의 이야기에 강주스님이 불편한 심기가 엿보여서 일부러 찾아가서 만행을 떠난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나마 특강자리가 주어졌으니까 소신발언을 할 수있었다.

승가집단에서의 위치,경력, 법랍 등의 무게에 의해서,

일상적인 자리에서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것이 요즈음 승가의 현실이다.

10시쯤, 경서보살의 차를 타고 개심사로 와서 선일스님을 태우고 대전으로 오다.

망향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중구 태평동 버들내아파트 2단지 1504번지 에 사는 찻집에 들려 차를 마시다.

다르가 아픈 보살과 경서보살과 선일스님과 나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대화를 끈질기게 이어나갔다. 

3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전의 수덕사 포교당인 정수사에 오다.

주지 영보스님의 안내로 귀빈 돌솥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절에와서 영보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어렵게 불사를 한 이야기와 초기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후배스님이지만

정열적인 질문과 웃음을 앓지 않는 자상함이 매력적인 스님이다.   

오늘 병원에서 진찰결과를 듣기로 했지만 대전으로 나오다보니 그러질 못했다.

선일스님은 일찍 자고 나는 오늘의 일과를 정리하고 있는 지금이다.

내일은 수경스님을 찾아 뵐까한다.

 

25일

대전의 수덕사 포교당 영보스님과 함께 논산에서 계룡산에 다다르고 계신 오체투지순례단 일행을 찾아나섰다.

오전에 동네 목욕탕에서 4500원 주고 목욕도 하였다.

수경스님은 검은 얼굴이셨고 지나가다 들렸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인도에서 왔다고 말씀드리고 선일스님과 영보스님도 각각 자신을 소개 했다.

오체투지 하는 몸놀림이 날래다. 무릎이 아프다지만 수경스님은 점점 힘을 받아가는 모양이다.  

30여분을 따라갔을까 .오늘 순례를 마친다는 안내와 �께 징소리가 울렸다.

 

다시 수정사에 와서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구마라즙 번역)라는 구절과

"相과 非相을 보는 것이 여래를 보는 것이다." 라는 산스크리트 구절에 대한 이야기를 선일스님과 나누었다.

결국 드 본이 같은 의미이지만 산스크리트 본이 더 완벽한 표현이라는 데에 동의 하였다.

그리고 한문 번역 본도 모든(諸) 상(相)과 비상(非相)을 보면 여래를 본다(卽見如來!)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보았다.

저녁에 KTX를 타고 양산에 오다. 덕성스님과 길상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다.

하고 많은 차들을 부어라, 마셔라...밤늦도록 이어지는 차맛의 향연 ...

 

 

26일

 

어제 밤에 늦도록 덕성스님과 차를 마셨는데 오늘 아침 9시에 울산에 황상스님의 표교당을 향해 길을 나섰다.

울산 학산동  대신빌딩 옆에 있는 포교당을 찾으니 30분의 스님들이 49제에 참여하고자 와 있었다.

법어사 유나 인각스님과 태안사 선원장 일호스님 등도 와 계셨다. 일호스님의 법문은 아함경과 최신 교리를 공부한 사람이 할수있는

법문이었다.

황상스님의 모친을 위해서 금강경을 몇년만에 읽으니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저녁때 덕성스님의 아파트 토굴에

심운스님,길상스님이 찾아와 많은 다담을 나누었다. 저녁을 마시고 계속이어진 다담은 12시가 되어 길상스님이 범어사로 돌아간다하여 파하게 되었다.

그래도 길상스님은 인도생활에 대해 공격적으로 물어 주었는데 ...물을 줄아는 자는 행복한 자임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덕성스님의 차강의와 고급차 시음속에서 이어진 따듯한 대화 시간이었다.

 

 

27일 월요일

 

아침에 덕성스님 집에서 나와 선일스님은 광주 증심사로, 심운스님은 서울로, 나는 부산 용호동 미타선원으로 각각 헤어졌다.

이제 혼자만의 여행이 며칠간 이어질것이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생각과 마음가짐이 묘한 힘을 준다.  묘한 이라는 말은 ..참묘하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 있는[미타선원]에 들려서 하림스님과 오경스님을 만나지 못했지만 도원스님을 만나서 녹차를 마셨다.

찻집주인 보살도 함께하는 이야기자리를 마치고 다시 창원에 있는 [팔리문헌연구소]로 마성스님을 뵈러가다.

마성스님과 저녘을 먹고 밤늦게 이야기를 나누다 급기야 새벽5시까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같은 길을 가는 선배스님을 만나니 밤이 짧도다.

 

 

10월 28일 화요일

 

겨우 3시간 자고 마산으로 향했다.

순천에가기 위함이었으나 갑자기 마산의 수련님이 차한잔 하자는  꼬리말이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친구분과 같이 나와서 토방이라는 곳에서 접심을 먹고 [천몽] 찻집에서 보이차를 마시다.

수련보살님은 차를 좋아하고 불법을 좋아하는 선량한 분이었다.    

녹차를 선물로 받고 다시 순천으로 와서 광양으로 왔다.

광양에는 속가 동생집이 있다. 오랫만에 동생과 아이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다.

주식을 해서 손해보았다는 이야기와 요즈음 포스코는 서열파괴, 부서파괴가 이루어지고 개인에 대한 무한 책임과 의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드라망의 불교가르침과 세계정서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만날을 대보다 동생의 사고방식과 안목이 많이 세련되고 자유로워져 있�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형으로서 책임지지 못한 가족을 챙기는 일들도 부담이 되어 왔음을 확인 하면서

고마우면서 부끄러웠다.

철이든다는 것은 참 참회야할 일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이다.

11월 9일날 모친 생신일에 고향집에서 모여 아침을 먹기로 했다.

 

 

29일

동생이 태워다 준 덕택에  남원 귀정사(http://cafe.daum.net/gwijeongsa)에 편하게 도착했다. 주지스님인 중묵스님을 만났는데

회의가 있다고 하여 동생과 절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오후에 돌아온 중묵스님과 11시 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특상과 삼법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나누었는데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어려움 없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중묵스님의 차분한 논조와 상대방을 감싸 안는 분위기에서 나의 공격성은 완화 되었다.

겸손의 힘,

겸손의 파괴력...

 

 

30일

하루더 머물기로 하다.

차분히 읽어야 할 책이 있어서 이기도 하고

귀정사가 편안해서 이기도 하다.

점심먹고 마을로 포행을 갔는데 혜해거사를 만났다. 예전에 출가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건살한 청년이다.

얼마전에 얌전한 아가씨를 만나서 같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일한 만큼 먹고 쓰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사는 일은 숭고하기 까지 한데 물질주의에 빠져든 나는

그렇게 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니 누가 진정한 출가자 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철없는 인간들이 너무 많은 것이 이 세상인가?  

도법스님의 책과 김윤수님의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31일 금요일

아!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밤 일런가?

귀정사에서 중묵스님의 차를 타고 실상사에 도착하였다.

화엄학림 학장 법인스님과 주지 재연스님을 뵙고 인사드렸다.

하루 머물기로하고 학림건물에 방을 하나 잡았다.

점심공양을 하고 주지스님방에서 이야기를나누고 나서 활성스님이 계시는 역경원에 들렸다.

웬 거사가  앉아 잇었는데 정원거사라고 한다.  역경원에 와 있는 비구니 스님(미얀마에 유학중인 스님)과 정원거사와 스리랑카에서 빠알리 공부하다온 김윤미 보살과

활성스님등이 저녁 포행을 나서다. 정원거사와 활성스님이 영주의 등현스님에게 전화연락이 되니

등현스님이 이곳에 오겠다고 하신다.

저녁을 수경스님 시봉인  덕성스님과 종무소 거사와 미얀마와 인도 여행하다온 이야기를 하면서 다리목 식당에서 먹었다.

덕성스님에게 올 겨울 미얀마행을 적극 추천하다.

밤 늦은 10시에 등현스님이 도착하여 새벽 2시 30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활성스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토론에 빠지시다.  

  

 

2008년 11월1일 토요일

아침을 7시에 먹고 점심공양할 때까지 다시 토론이 이어지다. 활성스님이 요가 하시고 사시기도 올리고 내려오실 때까지 열띤 토론이 이어지다.

(토론을 계속하는게 알맞은가? 자신의 일과를 준수하는게 알맞은가? 노스님은 노스님의 생활 방식을 다르는 것이 좋고 아직 젊은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하는게 좋고....)그리하여 등현스님과 정원거사와 나는 아침 먹고 부터 점심 먹을 때까지 계속 토론을 이어가다. 나는 두사람의 대화에 참관인 노릇을 하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승과 소승이 서로 배척하는 이유, 니까야와 아함경의 차이, 삼고의 문제, 삼특상, 신통력과 양자물리학, 철기시대의 쇠퇴와 새로운 문명의 도래,

정원거사와 등현스님의 불꽃튀는 접전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는데, 등현스님이 무리수를 두는 장면이 몇번 포착되었다. 

이 번의 대화자리에서 "경전이 말하게 하라"는 활성스님의 조언은 두고두고 생각해 볼 대목이다.

점심공양 하고도 3시 까지 토론은 이어졌는데  이렇게 남방 초기불교를 공부한 분들과 불교를 토론하는 자리는 나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노스님도 상당히 흡족하셔서 당신의 속내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하시고 여비도 넉넉하게 주셨다.

고요한 소리 역경원을 나와서 등현스님과 인도에 살다가 귀국하여 지리산 자락, 오도재 창원마을에 사는 박경숙님의 집에 찾아가다.

남편은 군산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박경숙님은 두딸과 살며 번역을 하는데  이번 11월 말에 [마하바라타] 한국어 번역 5권이 출판된다고 한다.

등현스님은 다시 영주로 출발하고 나는 실상사에 하루 더 머물기로 하다.

  

11월 2일

오늘은 실상사에 편히 쉬기로 했다. 어제 잠을 못잔 탓에 피곤하기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일스님과는 내일 11시에 동대구에서 만나기로 하였고 미류나무도 같이 만나기로 하였다.

실상사 경내에 있는 책방에 들려 아란도님과 소로님에게 각각 책을 선물하기로 하였다.

책과, 다기와, 차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 더 기쁘니 어인 일인가?

며칠후에 양산의 덕성스님에게 포종차를 사서 선물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일 오후에는 아함경만 40년 동안 연구해 오신 스님을 만나뵈러 김해로 갈것이다.

 

11월 3일 월요일

아침일찍 실상사를 출발하여 대구로오다. 대구에서 선일스님과 미류나무를 만나서 점심을 먹고

혜원스님을 만나서 동화사로 오다. 동화사 교무스님으로 와 있는 학해스님을 만나서 명천님과 훈민정음님이 거주하는

수류화개로 가다.

보이차등의 차를 마시며 지내온 이야기들을 나누다.

인터넷의 중요성과 불교의 미래 등...

저녁을 먹기 전에 임신 8개월의 미류나무는 집으로 가고 나머지는 학해스님의 방에 와서 다시 차를 마시다.

차를 마시고 나서 약사대불까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을 하고 명천님과도 헤어지다.

자다가 밤중에 혜원스님이 보이지 않는다.

밤에 떠나버린 사람의 이유를 알지도 못하지만

밤길을 걷는 나그네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시리다.

 

 

11월 4일 화요일

 

동화사를 나와서 동대구 터미널에서 김해시 장유면 수가리 허정스님을 찾아 뵙다.

이 분은 [가려 뽑은 아함경] [잡아함경]이란 책을 출판하신 분인데 옛날에 활성스님 절에서 뵌적이 있는 분이다.

법명이 나와 같다. 

민가집에서 살고 계셨는데 찾아가자 마자 보이차를 마시며 아함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1969년부터 아함경을 읽어오신 스님은 대승불교권에서 행해지는 보살 신앙과 49재등등의 문화를 일체 거부하시고 오로지

아함경에 나타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실려고 하시는 분이시다.

스님의 어머니에게 위빠사나법을 가르켜 주어 마지막 임종하시기전 까지 수행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는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여러모로 대승불교권에서 독특하게 살아온 분이시고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시는 분이시다.

세수가 72세 인데도 대화를 하는 열린태도를 보여주시고 경청의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 하셨다.

저녁 공양은 스님의 속가동생 처사님이 준비해 주셨고 12시 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5일

아침공양을 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여 거의 점심공양 시간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12연기의 해석에 대한 이야기, 오온에 대한 경전 해석,상카라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삶은 밤을 먹고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일어섰다. 

김해 장유면 대동리에 있는 [반냐라마]에 들려 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비구니스님과 차를 마셨다.

위빠사나 수행처인 이곳은 큰 모과나무가 인상적이다.

차를 타고 양산 범어대동타운 108동에 도착하여 덕성스님과 차를 마셨다.

해운대로 목욕을 갔다가 현소행 보살님 댁에서 저녁을 먹고 현소행보살님을 태우고 양산으로 왓다.

곧이어 지리산 산청 토굴에 사는 무심스님이 당도했다.

무심스님과 우리는 새벽 2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사찰 관람료문제, 선방 청규 문제, 선거제도, 원로의원 스님들,진제스님 등에 대한 이야기 였다.

법랍이 높아갈수록 책임감이 더해가는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종단의 현실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였다.

무심스님의  사회를 보는 안목에 힘입어 이야기는 수행문제로 까지 확대되었다.

선일스님의 발언은 진지함을 더해주었다.   

 

 6일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기 까지 역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고엔카 위빠사나 수행법과 아함경의 중요성, 강원교육문제 등을 이야기 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이 우리의 희망임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결론은 대동소이.

어디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던지간에 결론은 거의 비슷하였다.

대안은 교육 문제, 언어문제, 불교를 제대로 알고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현소행 보살님의 준비로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는 다시

남포동 미타선원(http://www.mitazen.net/)에 당도하다.

주지 하림스님과 3년간에 걸친 절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은 불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포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구니 희상스님이 발효차를 우려 주었고

선원장 오경스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일견사수와 空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空에 대한 이해가 서로 어긋남을 보았다.

대상이 없는 것이아니라 다만 실체가 없다는 것이 공의 의미인데 스님은 대상이 본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함을 유식의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태도로 보였다.

선일스님과 맛있는 보이차를 마시고 인터넷 일기를 쓰다.

이 보이차는 이방을 쓰던 스님이 남겨 놓고 간 것인데 너무 맛이 좋았다.  

이제 동안거 결제가 며칠 남지 않았다.

    

 7일

어디로 갈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연지동에 효산선원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40 여년의 용맹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라는 책의 설명을 읽고 한번 찾아가 보자고 합의를 보았다.

효산스님이 오후에 시간이 된다고 하여서 오후 2시까지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007 에 관한 영화였는데 별 감동이 없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한식뷔페(051-245-0512)집에가서 맛있는 김치찌게와 순두부를 먹고

효산선원에 찾아가다.

고암스님의 시봉이라는 효산스님이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놀란것은 효산선원(부산진구 연지동 322번지 한심타워 101동)은 92평의 아파트라는 것이다.

아파트가 이렇게 크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스님은 100평이 넘는 것도 많다고 설명하셨다.

효산스님과 커피를 마시며 2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화두 드는 법에 대한 효산스님의 설명은 이러했다.

효산스님이 설명하는 3가지 방법

1.간절히 의심하고 있는 경우(의심이 뭉쳤다 라고 표현함)

2.간절히 알아낼려는 의심

3.간절히 찾아 낼려는 의심

 

이 세가지 예를 들면서 3번의 "간절히 찾아 낼려는 의심을 하라"가 제대로 화두를 드는 방법이었는데 

나는 이것들이 모두 동의어라고 반박했다.

간절히 깨칠려는 의심, 간절히 타파할려는 의심, 간절히 통하려는 의심 등등의 예를 들면서

위 3가지 예가 다만 간절한 의심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선일스님은 차이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의 순서를 천태지의의 견해를 따라서 5시팔교의 순서로 설명하는 것과

염화미소라는 화두는 위경일 것이라고 설명드렸는데

효산스님은 동의 하지 않았고 스님과는 더이상 대화를 더 진행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화는 끝이 났고 보살님이 저녁 준비를 하시는데 해인정사에 가기 위해 나왔다.

 

해인정사(http://haeinjungsa.com)의 승운 스님을 만나 적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다담을 나누었다.

주지 스님인 수진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승운스님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승운스님은 불교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불교를 설명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스님이었는데

문제의식이 비슷하여 이야기가 잘 통하였다.

 

 

11월 8일

해인정사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다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8상성도의 출처, 잡아함경의  眼 無相 心緣生 문제를 질문드렸다.

승운스님이 부산역까지 데려다 주어서 우리는 다시 동대구로 왔고 식당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고

각자 헤어 졌다.

선일스님은 축서사로 나는 조치원 어머니집으로,

선일 스님이 2시 50분버스를 타고 떠났는데 무용스님과 연락이 되어 내일 대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대구 [다소원]에 들려서 어너님께 선물할 다상과 다가,차를 사가지고 연기군 서면 고향집에 들렸다.

동생들과 조카들이 와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오랫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5년에서 10년만에 만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녁때 메밀차, 연잎차, 보이차를 맛보여드리며 노후를 차와 함께 보내시길 권해 드렸다.

모두들 차를 좋아해서 다른 분들에게도 다구와 차상을 선물해야 겠다는 생각을 내다.

오랫만에 만나는 가족애 ...

나이를 먹으니 이렇게 전혀다르게 살아왔던 우리들의 만남도 잘 어우러 질 수 있었다.

나이는 역시 제 값어치를 하네...

 

 

11월 9일 일요일

아침에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아쉬운 이별을 하다.

이혼한 작은 누님과 여동생의 어려운 처지가 마음에 걸렸지만 내가 해불수 있는 일이 없어 보여서

그저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이별을 하여야 했다.

"갈때는 손을 흔드는 것이 ...끝 조용한 이별...."

 

조치원에서 다시 대구로 오니 선일스님과 무용스님이 [비지니스cafe]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만에 만나는 무용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이번 만행에서 처음으로 여관에 들어가 숙박을 하게 되었다.

空sunna 과 空性 sunnatta에 관한이야기를 나누고 반야심경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무용스님에게 미국에사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인도에 사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로 늙어 있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열정도 확인 하였다.

 

 

10일

여관에서 나와서 아침을 먹고 버스터미날로 향하였다.

선일스님이 영주로 표를 사서 떠나려는 마음과 차를 마시고 2시간 더 있다가 떠나라는 나의

부탁이 합의 점을 찾지 못하고 말았다.

선일스님은 떠나고 무용스님과 나는 국체보상공원 근처에 있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는 찻집에 왔다.

주인인 수선화 보살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까지 얻어 먹었다.

원로스님들은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중진 스님들은 오빠라고 부르는 수선화 보살의 인맥은 가히 끝이 없었다.

많은 스님들이 이 보살을 좋아하는 까닭, 이유는 편안함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스님들과 말이 통하는 실력을 갖춘 것도 분명히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동화사 선원에 방부드린 지용스님외 2명이 와서 같이 보이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모두 예전에 안면이 있는 분들이다.

지용스님은 예전에 같이 살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가 건강해 보인다고 하였다.

무용스님은 극락암 선원에 들어가고 다른 스님들도 동화사로 떠났다.

나는 다시 홀로가 되었다.

이로서 이번 만행은 이렇게 끝난것이다.

 

pc방에서 일기를 쓰고

빵집에서 빵을 사고나서 동화사에 교무스님방을 찾아 들었다.

어디나 토론은 이어지는가?

포교국장 스님과 이전 총무 승석스님과 학해스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시 이야기가 길어졌다. 한국불교를 걱정하는 심정과 대안까지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 분들에게 초기불교는 아직 약간의 선입견이 작용하는 것 같다.

 

11월 11일 화요일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데 가고 싶은 곳이 없다.

경주에 있는 도현스님을 찾아 갈려다가 내일 가기로 하고 오늘은 학해스님 방에서 쉬기로 했다.

점심공야을 할때 예전에 같이 살던 선방스님들을 만났고 송광사 선주스님과는 교무스님 방에서 차를 마셨다.

선주스님은 차를 이제 마시지 않게 되었는데 오랫만에 만나니 빈 찻잔을 마주하고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사제스님이 미얀마에 다녀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입장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간화선과 위빠사나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했는데 선주스님이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학해스님과 금강경의 4상과 9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반야심경의 해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내일은 도현스님 만나고 기림사에 들릴 예정이다.

어제와 같은 심정이지만, 선일스님 없이 홀로 다니니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순례기도 이제 접어야 할까보다.

 

11월 12일

 

경주 용당1리 원당골 도현스님의 토굴에 왔다.

도현스님은 선방에서 공부하다가 백내장으로  양쪽 시력을 읽은 젊은 수좌스님이다.

마을 끝에 집에서 홀로 지내시는데 시각을 잃은 사람이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교훈을 주고있다.

도현스님의 얼굴은 안정되어 있으며 음성은 부드럽고 힘이 있어 보였다.

둘이서 점심을 먹고 연잎차를 마셨다. 인도에 사는 이야기 ,금강경이야기,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기름값이 비싸서 보일러를 돌리지 않고 아침나절 추운때는 히터를 틀며 지내고 있었다.

오후 5시 30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림사로 왔다.

여비를 서로 줄려고 실랑이를 하다가 눈이 좋은 내가 이기고 말았다.

기림사에 도착해보니 무념스님을 만났다.

이 스님은 미얀마에서 6년동안 사시고 온 분으로 위빠사나 수행에 관한 책을 펴낸 분이다.

지금은 [법구경 이야기] 라는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마무리 교정작업을 하고 있었다.

무념스님의 컴퓨터 화면에는 처참하게 죽은 시체 사진이 번갈아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 사진들은 부정관을 하기 위해서 스님이 모은 것이라고 한다.

스님으로 부터 니까야 영어 자료와 한글자료등을 얻어서 앞으로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하시 센터, 파곡 센터, 쉐우민 센터등의 사정과 미얀마 가는 정보등을 얻을 수 있었다.   

무념스님은 법구경이야기 라는 까페 (http://cafe.daum.net/samatavipassana)도 운영하고 있다.

 

 

11월 13일

 

아침에 기림사 주지스님을 만나서 다담을 나누고 하루 더 머물기로 마음을 정하다.

아침에 다시 무념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공양을 하고 도량을 산책하다.

옛날 기림사에 살때 자주 들리던 옹기종기 라는 찻집은 주인이 떠나서 황량하게 버려져 있었다.

이렇게 황량한 처소, 사람의 온기가 떠나 버린 장소를 서성 거리자니 내 죽은 자리를 내가 서성거리는 기분이 들다.

호진스님의 토굴도 들러 보았다. 주인이 일년이상 자리를 비운 스님의 토굴도 누런 잔디 밭 만이 나그네를  따듯하게 맞아 주었다.

잔디는 언제나 따듯하다.

빨래를 하고 삭발을 하고 쉬다가,  학해스님 컴에서 다운 받아온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11월 14일

무념스님의 전송을 받으며 경주로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햇살이 따사로 웠다.

따스한 햇살....이라고 중얼거려 보다. 

대구에 와서 잠시 어디로 갈까 서성거리다.

그동안 목적지를 잃치 않았는데 지금은 서성거림이 늘었다.

대구 큰누님댁에 들리기로 마음을 정하다.

대구로 이사 한지 10년이 넘었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아 이번이 초행길이다.

대구 반월당에 있는 [다소원(053-225-6179)]에 들려 5인 다기와 차를 사가지고 칠곡에 사는 큰누님 댁에 도착했다.

차 마시는 시범을 보여 드렸는데 알고보니 집안에 이미 다기와 중국차 몇봉지가 있었다.

그런데 차를 자주 마시지 않으니 차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누님의 살아온 내력을 들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11살때 아버지가 뜻밖의 열차사고로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돌이 지난 아들과 5살난 딸을 데리고 재가를 해야 했다.

그렇게 남겨진 딸은 작은 아버지 집에서 자라다가 성남의 봉제 공장에서 미싱일을 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19살이 되어어야 다시 어머니를 만나고 헤어진 동생들을 만난다.

누님의 차분하고 슬픈 이야기는 그러나 평온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듣기에 처럼 어렵지 않았다.

세월이 약이 려니....그렇게 흘러 왔을 뿐인것을....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누님이지만

이러한 삶은 이미 종교가 아닐런가?

고난과 역경에 마모되고 숙련되어서 이제 미소만 남은 얼굴을 가진

그런 그녀다.

 

11월 15일

매형이 동대구역에 태워다 주다.

쉽지 않은 세상살이 현재의 경제상황은 이미 당신의 문제임을 안다.

어제도 새벽 4시에 들어와야 했던 상황이란 것.  

광양에 사는 동생의 이야기 보다 더 실감 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리라.

이런 이야기들 앞에

산다는 것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고  

산다는 것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 공기의 따듯한 밥의 소중함.

동대구역에서 우연히 한형조교수를 만나다. 해인사에서 강의를 하고 나오는 중이라고 한다.

명함을 받고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서울에 6시 30분에 도착하다.

비는 주섬주섬 나리는데 화계사로 갈까 찜질방으로 갈까 서성거리다가 화계사에 오다.

길가에서 파는 만두와 찐빵을 먹고 있는데 진만스님이 떡뽂이와 김밥을 가져왔다.

한겨레 신문 조현 기자의 [하늘이 감춘땅]을 읽으며 잠들다.

 

11월 16일

오늘 우연히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라는 책을 읽다가 전재성박사를 만나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다.

전에부터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책의 서문에 내 이름을 발견하였기에 당장 전화를 하였다.

흔연히 오란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홍제동 성원아파트 102동에 가다.

전재성님은 제주도에서 올라온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손수 만든 빵을 내 놓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가 말을 많이 했지만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다.

생명평화 결사의 수지행보살이 들려서 인사를 나누다.

법구경을 다시 번역하였다고 보여주었는데 예전에 법(dhamma)을 사물로 번역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사실이라고 번역하고 있었다.

법을 사실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알맞지 않아 보였지만 사물보다는 낳아 보였다.

제행개고의 제행과 삼특상의 순서,오온의 색과 12처의 색, 삼계의 색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책을 한 권 사가지고 나오다.

법구경을 가지고 나왔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다.

 

5시에 지대방에서 [차의 세게]발행인 최석환님과 함께 동행한 창원 문화재청의 강순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차에 대한 깊은 지식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다.

22일날 서울 다회때 다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나누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지대방주인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친절하게 주문하지 않은 차를 내왔다.

내가 그곳에 가면 과잉 환대를 받는 느낌이다.

홍은동의 옥천암에 와서 머물다.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 머물며 볼일을 보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

[차맛어때]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배움과 해택을 받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밝혔다.

다선일미와 선다일미의 다른점과 아무래도 다선의미의 자세로 차를 알려야 겠다는 확인을 하다.

이야기를 많이 한 하루 였다.

 

 11월 17일

월요일이다.

아침 공양을하고 종로구청에 가서 여권 재신청 하다.

오는 목요일 오후2시에 찾으러 오란다.

사직동사무소에가서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하다.

12월 10일에 찾으러 오란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이번주에 비자 받고 항공권 구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이 일부터 하는 건데.....

인사동에 있는 [백상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하고 [품앗이]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

날씨가 쌀쌀하고  동가숙 서가식하니 쓸쓸함이 느껴진다.

일찍 옥천암에 돌아와서 쉬다.

 

 

11월 18일

 

조계사에 있는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를 방문하여 정원거사를 만나다.

날씨가 너무 추웠는데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총무원을 방문하기 전에 세원상가에 들려서 외장형 메모리카드(320GB)를 구입했다.

뽕잎차를 마시며 자료를 받고 조계사에서 점심을 먹다.

자료를 받아 나와서  인사동을 걷는데 학담스님을 만나다.

추워서 옥천암에 일찍 들어오다.

 

11월 19일

 

아침에는 여가를 즐기다.

오후에 소로님이 친구분과 같이 오셔서 차를 마시고 인사동에 가서 차를 마시다.

소로님 친구분이 2분 더오셔서 인사동 지대방에서 차를 마시다. 불교와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중간에 현오님이 오셔서 몸살림 체조를 선보여 주시다.

지대방 사장님은 오늘도 열심히 물을 배달해 주시고....

10시쯤 돼서 절에 돌아오다.

 

11월 20일

오늘이 여권 찾는 날이다.

오전 11시에 종로구청에 가서 여권을 찾고 곧바로 미얀마 전문여행사인 [투어 미얀마]에 가다.

요즈음 인도에 관한 비자는 모두 티티서비스코리아(http://www.ttservices.co.kr)라는 회사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주소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36-1번지 여선교회관 2층 티티서비스코리아㈜ , 전화: 02-790-5672, 팩스:02-790-5676.

새로 바뀐 연구비자 신청서류는 아래와 같다.

[연구비자 비자 신청서,무통장입금증 원본,여권,사진2장, 대학원의 입학허가서 원본(Ph.D과정), 영문건강진단서 원본(HIV,VDRL,HBS Ag검사 필수), $5000이상(1인기준,1주일이내 발급) 영문 은행잔고증명서 원본]

결국 영문건강진단서가 없어서  비자신청을 다음으로 미루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데 성남 신흥동에 사는 동생네집에 가다.

유리다관과 2개와 책을 선물하다.

작은 누님과 동생과 저녁을 먹고 금강동의 작은 누님 댁에서 자다.

10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11월 21일

성남에서 다시 경기도 광주로가다.

광주시 법원등기소에 근무무하는 김윤수판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이분은 [불교의 근본원리로 보는 반야심경과 금강경]이라는 책외에 불교서적 5권을 출판한 분이시다.

12연기와 반야심경에 관한이야기를 나누고 점심공양을 하고 헤어졌다.

광주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영화 한편보고 다시 옥천암으로 돌아오다.

내일은 일찍 비자신청에 필요한 건강진단서를 받고 2시에 세미나에 참석하고 4시에 다회에 나갈것이다.

 

11월 22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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