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김순희(47·묘각심) 보살은 이혼을 결심했다. 서울 성보고등학교 교사로 22년 간 재직했던 남편 김희종(48·하심장자) 거사가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남은 생을 하심정(下心亭)에서 수행과 봉사에 전념하며 부처님을 시봉하려고 부처님 앞에 약속했소.”
남편의 확고한 말이었다. 정년퇴임을 17년이나 남겨두고 한 말이었다. 하심정은 참회도량이자 금강경 수행도량인 바른법연구원이 운영하는 망원동 무료급식소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겠단 결심을 전했을 땐 하심정은 전문식당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었다. 김 보살도 하심정 무료급식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4년 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차였다. 애초에 남편과 같은 길을 가고자 시작한 봉사였다. 그러나 남편의 결심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출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겠다니….
직장 관둔 남편 이해 못하기도
연애결혼은 아니었지만 1989년 결혼 후 김 보살은 김 거사와 알콩달콩 단란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허나 김 거사는 그리 가정적이지 못했다. 금강경 독송 수행을 한다며 한밤중에도 불쑥 집을 나서기 일쑤였다. 고양시 원당에 위치한 바른법연구원을 제집 드나들 듯 찾아가 새벽 정진을 하고 돌아와 옷만 갈아입고 출근했던 남편. 퇴근 후 얼굴 좀 마주하고 나면 어김없이 새벽에 집을 나서는 남편. 견디기 힘들었다. 깨가 쏟아진다던 신혼의 재미는 먼 나라 얘기인 것 같았다. 주위 어른들은 “저러다 김 거사가 출가라도 하면 어린 자식 데리고 혼자 어떻게 살거냐”며 김 보살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늘 걱정과 근심에 김 보살의 신경은 곤두서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앓아누워야 했던 김 보살은 수행으로 집을 비운 남편을 원망하곤 했다.
10년이 지나면서 도대체 남편이 왜 그렇게 부처님 가르침만 바라보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김 보살은 다섯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바른법연구원의 새벽 공부에 동참했다. 금강경을 독송하고 바른법연구원 김원수 법사의 금강경 해설 법문을 들으며 김 보살의 닫힌 마음이 서서히 열렸다. 망원동 무료급식소에서 마음을 다해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툭하면 몸져눕던 약한 몸이 점차 건강해졌고, 마음도 훨씬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부부가 함께 매일 새벽 공부하고 정진하며 도반으로서 새로운 삶에 첫 걸음마를 뗄 무렵이었다. 이제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작은 행복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작은 행복은 꽉 쥔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새 나가는 모래였다. 남편이 직장까지 그만두고 하심정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여 년을 살을 부비며 지내왔기에 부처님을 향한 남편의 공경심과 깨달음을 향한 구도정신이 남다르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허나 현실적인 문제는 그리 녹록치 않았다. 내년이면 고3인 아들, 대학이라도 진학하면 등록금과 앞으로의 생활비 등등. 생각할수록 막막하고 답답했다.
남편의 마음을 바꾸려 무던히도 설득해봤다. 그럼에도 그 결심은 마치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김 보살의 생각은 극으로 치달아 이혼 결심에 이르렀다. 이혼에 앞서 바른법연구원장 김원수 법사를 찾아 상담을 청했다. 부부가 오랜 시간 수행 스승으로, 삶의 조언자로 의지해 온 김 법사의 답은 간단했다. “부처님에 온전히 마음을 맡기고 기도 정진 해보라”는 것.
철야 기도하며 마음 열어
철야 정진기도를 시작했다. 온 마음을 온전히 부처님 전에 낮추고 마음 속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3일 째 되는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집착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낱 현실에 이렇게 괴로워하고 집착하는 내 모습을 깨닫게 된 거죠.”
김 보살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던 모든 집착의 끈을 놓았다. 그리고 올해 2월, 남편과 함께 하심정으로 거처를 옮기고 함께 수행하며 정진하는 삶을 시작했다.
가만히 김 보살의 말을 경청하던 김 거사가 “뭘 믿고 그리도 확고 했었냐”는 물음에 입을 뗐다.
“하심정은 수행과 공부, 봉사를 통한 실참까지 부처님 가르침을 체득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오래도록 꿈꿔왔던 도량인 셈이죠. 남은 인생만큼은 ‘최고의 가치’를 얻기 위해 살리라고 굳게 마음을 다졌던 겁니다. 아내에겐 미안해요.”
김 거사는 “가장 가까운 인연을 비롯해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는데 왜 힘들지 않았겠냐”고 회상하며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내와 함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고 봉사하고, 마음 닦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며 미소 지었다. 김 거사는 입을 열자 부처님 얘기 뿐이다.
“금강경에 보면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알만큼의 목숨을 보시에 바치며 쌓은 공덕도 크지만 금강경 독송의 공덕은 무량공덕’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의 행복은 20여 년 간 금강경 독송으로 마음을 닦으며 지은 공덕과 복 덕분인 것 같아요.”
아픈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한층 더 공고한 이해와 사랑으로 연결된 부부는 이제 나란히 앉아 “우리는 부부이기 이전에 금강경 수행으로 맺어진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도반”이라고 서로를 칭한다.
‘수행도량인 동시에 복 짓는 봉사도량’인 하심정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후 부부는 하루 종일 찰싹 달라붙어있다. 매일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금강경을 독송, 정진의 시간을 갖는다. 그 후 김 거사는 하심정을 깨끗이 청소하고 김 보살은 손님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한다. 무료급식을 시작하는 11시가 되면 1, 2층으로 이뤄진 작은 식당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그득하다. 1시간 정도 무료급식 시간 동안 하심정을 찾는 손님만 300여 명. 종교를 초월해 일손을 거들러 오는 자원봉사자들과 하심정을 사랑하는 수행 도반들이 아니었다면 무료급식은 불가능했다.
무료급식 시간이 지나면 하심정은 식당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담백하고 맛깔스러운, 정성이 가득 담긴 하심정의 음식은 입소문이 제법 퍼져 식사시간마다 분주하다. 부부는 하심정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 모시듯 섬기고 공양한다. 손님에게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는 부처님께 올리는 말처럼 공손하고, 테이블에 접시를 올려놓는 손길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국수 하나에도 마음을 다한다. 저녁 9시부터 끌어올린 지하수에 질 좋은 멸치를 가득 넣고 밤 새 우려 육수를 낸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정성을 쏟는 이유를 묻지만 이유는 하나. ‘오시는 모든 분이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하심정 손님 부처님 모시듯 깍듯
“금강경 독송 수행으로 체득한 마음을 오롯이 실참하며 탐진치를 없애는 수행을 하는 곳이 하심정입니다. 손님을 대할 때나, 음식을 만들 때나, 서빙을 하고 청소를 할 때나, 잠시도 마음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죠. 바로 식당 하심정이 수행도량인 이유입니다.”
부부라는 고리에 묶여 집착이 가득했던 김 보살과 김 거사의 사이엔 이제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고, 바라는 마음이 있던 자리엔 배려하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965호 [2008-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