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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미국 UCLA 로버트 버스웰 교수-만해대상 포교부문

한국불교 회통의 힘으로 서양의 편견 넘다
제12회 만해대상 포교부문 수상
미국 UCLA 로버트 버스웰 교수
기사등록일 [2008년 08월 18일 월요일]
 

한국불교학의 세계화 이끈 주역
드라마-깍두기 좋아하는 미국인
구산 스님 아래 5년 수행 못잊어

중국과 일본의 아류로 취급되던 한국불교를 세계 불교학의 중심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로버트 버스웰(55·아시아언어문화학)교수가 제12회 만해대상 포교부분에 선정돼 8월 11일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을 찾았다.
삼계탕과 깍두기를 좋아하고 송광사에서 출가해 5년 동안 구산 스님 밑에서 용맹정진했던 특이한 이력의 버스웰 교수. 그는 매일을 참선으로 시작하고,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영락없는 불자이자 한국인이다. 특히 그가 사랑하는 아내가 한국계 미국인이다.

버스웰 교수의 이런 한국 사랑은 그가 미국에서 이룩한 한국불교학의 성과로 증명된다. 송광사에서의 용맹정진  을 끝으로 승복을 벗은 그는 UCLA에서「금강삼매경론의 한국적 기원」이란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UCLA 한국불교 및 중국불교 정교수로 재직하며 학내에 불교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또 지난 1993년에는 UCLA에 최초로 한국학센터를 개설, UCLA를 미주의 가장 대표적인 한국학 연구소이자 한국불교학의 요람으로 일궈냈다. 그는 지난 2008년 한국학 전공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아시아 학회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중국학과 일본학이 주도하는 미국의 동양학 분야에서 한국학 전공자가 학회장이 된 것은 유래가 없던 일이다. 따라서 이는 버스웰 교수 개인의 명예뿐 아니라 한국학, 특히 한국불교학이 미국 아시아학에서 중요한 분야로 주목받는 계기가 마련된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저작들은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서구 학계에서의 한국불교에 대한 소개나 수준높은 연구가 극히 미미한 서구 불교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지눌 전서』,『중국과 한국에서의 선사상 형성』등 50여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의 이런 연구 업적에 대해 스승 랭카스터 교수는 학문적 업적에서 이미 스승인 자신을 능가했다고 격찬하기도 했다.

8월 11일 만해대상 시상식 직전 속초의 한정식집에서 만난 버스웰 교수의 젓가락 사용법은 한국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지금도 송광사의 공양간에서 내놓았던 이름없는 나물 반찬이 그립다고 했다. 특히 구산 스님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은 불교학을 연구하는 내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만해대상 포교부문 수상자로서 소감은.
“불과 20여년전만 하더라도 미국 대학에서 한국불교학 분야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다. 만해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허허벌판과 같은 그 터전 위에서 지속적으로 한국불교를 연구하고 자료를 만들고 학생들을 꾸준히 지도해 온데 대한 격려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겸허한 마음도 있다.”

▷만해대상은 만해 스님께 헌정된 상이다. 만해 스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만해는 스님으로, 개혁가로, 저명한 시인으로, 위대한 포교사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전법과 포교에 전념했지만 일제 강점의 어려운 시기에 수많은 불서를 집필하는 등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긴 뛰어난 선지식이기도 하다. 만해대상은 불교단체이거나 불자라서 주는 상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불교 학자로서 열심히 연구한 노력들이 만해 스님의 그 큰 뜻에 부합됐기를 바랄 뿐이다.”

▷1986년 UCLA 동아시아 학과에 교수로 부임한 이래 동아시아 불교에서 한국불교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중요한 논문과 저작들을 계속 내 놓았다. 한국불교의 장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불교의 간화선은 일본의 공안, 즉 젠(禪)과는 분명 다르다. ‘포괄한다’ ‘회통한다’는 것, 바로 이런 통불교적 성격이 한국불교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 또한 특징이다. 또 수천명의 스님들이 선방에서 함께 수행정진하는 유서깊은 전통이 묵묵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도 한국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저력이다. 이제 서구에서 동아시아 불교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라도 더 이상 중국과 일본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연구해 나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불교는 매력적이며, 또한 관심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나는 제자들과 연구 뿐 아니라 항상 함께 참선을 하고 있다.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이 한국불교의 살아있는 전통의 맥락 속에서 불교의 명상과 수행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한국불교를 연구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한국불교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도, 중국, 일본 등 한국과 연관된 나라의 불교를 모두 공부해야 한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특정한 한 나라의 불교만을 공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여러 나라의 불교를 함께 공부하면서 비교하고 차이점이 무엇인지 연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함께 공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부인 크리스티나 버스웰) “미국에서의 한국불교가 중국과 일본불교의 아류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으로 자리잡기까지 버스웰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 대한 한국불교의 무관심에는 서운함이 없지 않다. 미국의 한인교회는 5~6년에 불과한 경력의 교수를 도네이션을 통해 석좌 교수(기업이나 개인이 기부한 기금으로 연구 활동을 하도록 대학에서 지정한 교수)로 만들곤 한다. 그러나 버스웰 교수는 한국불교를 위해 20여년을 헌신했지만 한국불교계로부터 이런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버스웰 교수의 부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끔은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때가 있다.”

▷미국에도 이젠 한국불교를 공부하는 인재들이 많이 있는가.
“미래 한국불교학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으며 현재 11명 이상의 박사를 길러냈다. 제자 가운데 몇몇은 미국, 캐나다, 한국에서 명성있는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75년 송광사에서 출가해 5년 간 송광사 방장 구산 스님 밑에서 수행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출가 계기가 무엇인가.
“수행을 제대로 한번 하고 싶었다. 처음엔 태국과 미얀마 등지서 위빠사나 등을 공부했는데 몸이 많이 쇠약해 졌다. 그곳에서 한국 스님들을 만나 무작정 한국으로 와 송광사로 출가하게 됐다. 당시 혜명(慧明)이란 법명을 받았는데, 구산 스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구산 큰스님과의 인연 중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면.
“성도재일 일주일 전에 하던 용맹정진은 정말로 치열했다. 잠도 자지 않고 화두 참구를 했는데, 구산 스님은 노구에도 젊은 스님들과 함께 일주일 용맹정진을 거뜬히 해 내셨다. 구산 스님의 모습에서 수행의 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스님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가 지금도 뇌리에 가득하다. ‘그랬응께’ 이런 말투를 자주 쓰셨는데, 가끔 내 입에서 이런 사투리가 튀어나오곤 한다.”

▷학자들의 경우 학문으로만 불교를 연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수행이 학문(교리)을 공부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됐다고 보는가.
“수행은 불교를 학문적으로 또한 이론적으로 연구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 다른 학자들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특히 스님들의 저작물이 모두 수행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것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수행은 필수적이다. 또한 수행을 하게 되면 붓다와 역대 조사의 가르침이 진실된 바른 가르침이라는 믿음이 더욱 증장되기 때문에 학문적인 성취도도 높다.”

▷미국에서는 교리와 종교의례 보다는 참선이나 명상, 위빠사나 등 수행 위주로 불교를 공부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선(禪)과 교(敎)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 가장 이상적인 길이다. 참선 공부가 중요하지만 기초 교리의 이해없이 수행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다. 물론 참선은 언어의 도움이 크게 필요없지만 교리를 바로 전하기에는 언어의 한계라는 난제가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참선을 먼저 가르치는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참선을 먼저 접한 미국인들도 나중에는 필연적으로 불교 교리를 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지눌 스님의 가르침처럼 정(定)과 혜(慧)는 함께 닦아야 한다. 교리를 모르면 깊은 수행의 경지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앞으로 계획은.
“현재 미시간 대학의 초청으로 백만 단어에 달하는『불교사전』편찬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강원 교재인『사집』도 영역 중에 있다. 또 한국불교를 전공한 많은 석좌 교수들을 길러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계획이다.”

인제=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961호 [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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