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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식씨는 잘 웃는다. 포기하면서 시드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가. 어머니랑 더불어 매순간 행복하게 삶의 꽃을 피우며 살고자 하 는 이의 웃음이다. |
ⓒ 김태성 기자 |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 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자국들.// 어머니 신산했던 세월이/ 방바닥 여기저기/ 이불 두 채에/ 고스란히 담겼네…>
뒷밭 언덕에만, 바깥 세상에만 꽃 핀 줄 알았더니 방안에도 꽃이 피었더란다. 진달래꽃과 똥꽃이 다르지 않은 그 마음 혹은 그 경지. 시리고도 평화롭다. “어떤 어미가 제 자식 헛고생시키겠냐?”는 어머니 말씀처럼,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가져다준 선물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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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 “어무이 똥재이” “어무이 똥박사∼” “어무이 똥대장∼” 치매 어머니와 함께 한 자연치유의 기록을 《똥꽃》(그물코)에 담아낸 농부 전희식(50)씨. 혼자 쓰지 않았다 한다. 올해 여든 일곱 살인 어머니 ‘김정임’ 이름도 지은이에 함께 올렸다. 어머니랑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책이라는 의미가 강력하게 깃들었다.
첫 봄꽃에 취해 어머니 새참 드리는 것도 잊고 일하다 어둑발이 질 때야 집에 돌아온 어느 봄날. 마루엔 똥이 묻은 겉옷과 속옷이 쌓여 있었고 방안에도 어머니가 움직이신 길을 따라 똥칠이 되어 있었다 한다. 불도 켜지 않고 방구석에 돌부처처럼 웅크리고 앉은 어머니. 그 날을 그는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어머니 얼굴이 반쪽이었고…어머니 눈은 겁을 머금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겁먹은 눈초리. 그것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어머니 어깨를 감싸고 꼭 안았다. 울컥하고 울음이 솟았다. 어머니가 천천히 돌아앉으며 내 팔을 잡았는데 미끈거리는 똥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어머니 얼굴에 볼을 대고 속삭였다. “어무이 똥재이.”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우스웠다. 그래서 웃었다. 그러자 눈물이 볼을 타고 굴러 내렸다.
“어무이 똥박사∼” 소리를 높여 말하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알아들었나 보다. 어머니 굳어 있던 얼굴이 풀렸다. 어머니도 내 웃음에 감염되었는지 따라 웃었다. “어무이 똥대장∼”다시 소리쳤다. 우리는 서로 똥 묻은 상대를 손가락질해가며 마구 웃었다. 불을 환히 밝히고 보니 여기저기 발린 똥덩이들이 몇 년 잘 묵은 된장 같았다.>
여기저기 똥범벅인 어둔 방 안엔 오로지 어머니와 아들. ‘똥재이’가 이윽고 ‘똥박사’‘똥대장’으로 급수를 더해가며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는 그 장면은 설움에 겨워 흥겨운 진도아리랑같다. 그 깊고도 진한 역설의 긍정이 ‘똥꽃’ 같은 시를 낳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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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시며 웃음도 큰소리도 삶의 존엄도 되찾으신 어머니. |
ⓒ 전라도닷컴 | 어머니를 모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어머니의 ‘존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지보마을. 덕유산 자락 해발 594m. 그 어머니와 아들이 사는 집이 거기 있다. 봄볕이 마당 가득한 날. 지난 겨울이 얼마나 길고 지루했으랴만 어머니는 좋은 봄볕도 마다하고 방에 누워 계셨다. 며칠 함께 지냈던 큰아들이 떠난 날, 이별의 서운함이 어머니를 몸져눕게 했다. 긴 눈물 끝에 기력이 쇠진해서 귀도 입도 마음도 닫았다. “그래도 또 한숨 자고 나시면 언제 그랬냐 싶게 기분이 달라지셔요. 한 번 자고 나면 감정을 싹 비우고 정리하시는 거죠. 아이들이 그렇잖아요.”
그는 그런 어머니를 “존재의 본성에 다가가 계신 소중한 존재”라고 표현한다. “사고의 지배나 물질의 작용을 받지도 않고 시공의 제약에 얽매이지도 않고….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하며 사시는 거죠. 얼마나 ‘후련한 삶’이에요. 쌓이면 병이 되잖아요.” 치매를 ‘병’으로 규정하지 않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그에 따르면 치매란 “굴절된 삶의 현재적 표현”이고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여든 이물질들”일뿐.
“병이 아니죠. 병으로 규정한 순간 어머니는 치료나 관리의 대상이 되고 소외와 배제, 수용과 격리의 대상이 돼버립니다. 온생명적 차원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못 알아챌 뿐이지 노년은 아름답습니다.” 누워 계신 어머니를 두고 방을 나서며 그는 “어머니, 우리 마루에 나가서 이야기할게요”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보고를 한다.
그는 무엇을 하든 어머니께 알리고 한다. 빨래할게요, 밭에 다녀올게요, 화장실 갔다 올게요, 빨래 다 했어요…. 하는 일마다 일일이 알려 드리고 집을 드나들 때마다 큰절을 올린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그의 가슴에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은 것은 어머니의 ‘존엄’. 건강보다도 존엄을 더 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늙고 병드신 부모에게 무슨 일이건 꼭 사전에 ‘알려드린다’는 것은 존엄을 위한 필수사항”이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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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말 그거 벗어 이리 줘라. 누가 보믄 지 에미도 없는 줄 알것다.” 위풍당당. 아들의 구멍난 양말도 찢어진 바지도 기워주는 어머니. |
ⓒ 전라도닷컴 | “어머니 살아계실 때 내 건강한 시절 몇 년을 바치리라” 그가 어머니랑 함께 살기 시작한 건 지난 해 2월부터. “어머니의 말년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우직함이 그를 움직였다. 노동운동을 하다 지난 94년 완주로 귀농해 농사를 중심에 두고 살아온 이래, 그의 생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선택이었다.
“그 많은 자식 키우면서 어머니가 똥오줌 묻은 옷이나 걸레를 빠신 햇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어머니 살아계실 때 내 건강한 시절 몇 년을 바치리라” 다짐했다. 쓰러진 시골집을 구해 일으켜 세운 것이 어머니와 살기 위한 첫 준비였다. 고물이나 폐자재처럼 버려진 것들을 주워모아 집을 되살려냈다. 그 ‘살림’의 집에는 어머니의 부서진 다리, 흩어진 기억, 체념의 일상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를 바라는 아들의 간절함이 바쳐졌다.
문짝 하나 만들고 손잡이 하나 달 때도 어머니의 몸 상태를 심사숙고해 결정했다. 움직임이 불편한 어머니가 똥오줌을 잘 눌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집짓기에서 중심이 되었다. 방문도 이중으로 해서 어머니가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도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혼자 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노라는 선택의 실천과정이 순탄하기만 했겠는가. 처음엔 형제든 아내든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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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 허나,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누워지내며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가둠’에서 벗어난 어머니에게 삶은 새로 열렸다. 서울 큰형님네 집에서 장수로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 해 3월, 펄펄 눈이 오는 날이었다. 창 밖을 내다보던 어머니가 문을 활짝 열고 “저기 먹꼬?” 하시더란다. “아이가! 저기 눈 아이가? 눈이 다 내리네. 이기 몇 년 마이고.…세상 참 좋아졌네. 눈 내리는 것도 다 볼 수 있고.”
어머니는 10년 전 눈길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바스러진 이래 거의 방안에서만 누워지냈다. 그러는 동안 치매까지 진행됐다. 그렇게 수 년을 ‘눈 안오는 세상’을 살아온 어머니에게 ‘눈 오는 세상’이란 개벽이었다. 참 좋아진 세상이었다.
일하시는 어머니 말씀하길, “요즘 나 밥값 하제?” 몸도 마음도 놀랍게 건강해진 어머니를 두고 주변에서 “대체 어떻게 모셨길래?”라는 물음을 많이 던진다. 자연치유의 힘을 믿긴 했지만 그는 “설정된 결과물은 아니다”고 말한다. “자연환경이니 섭생의 효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머니를 대상화하는 느낌이랄까요. 그저 어머니랑 더불어 매순간 행복하게 삶의 꽃을 피우며 살자 생각했을 뿐이죠.”
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하는 게 치매노인의 품위와 존엄을 위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좀 가만히 있으라”든가 “이제 그만해요”라는 말은 자식들이 늙으신 부모에게 흔히 하는 말. 그는 “자기 존재성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린 노인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똥 누는 사람 주저앉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침과 뜸도 원래 익혔던 것이지만 어머니를 위해 다시 배웠어요. 그런데 내가 어머니께 침 놓고 뜸 떠드린 것보다 어머니가 자식인 나를 위해 부황 떠준 것이 당신을 더 낫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용법을 찬찬히 알려드리고 어머니한테 몸을 내맡기며 “어이구, 시원하다. 어머니 의사 다 됐네요. 어이구, 시원해라” 했던 아들. 《똥꽃》 책을 보면 어머니가 아들 등에 부황 떠주는 사진이 나온다. 그렇게 오지고 흐뭇한 웃음이 있을까. 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해줄 수 있는 늙으신 어머니 표정이 그렇다.
어머니 일거리를 찾는 것은 그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숙제. 아는 것도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가면서 하고 물어보면서 하고, 일하는 과정을 늘 어머니가 이끌도록 한다. 바느질하기, 마당 텃밭에 물주기, 챙이질 하기, 가죽자반 만들기, 뽕차 만들기, 고추 상추 모종에 물 뿌리기…. 누워만 살던 어머니에게 ‘일복’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어머니 스스로 감격에 겨워 짐짓 뽐내시는 말씀. “요즘 나 밥값 하제?” “밥값 정도가 아니라 품삯 드려야겠는데요?”는 아들의 넉살. 넉살에 답하는 어머니 유머감각은 한 수 위. “인자 다 키웠네. 옷에 오줌도 안싸고.” 긴긴 겨울, 일거리 없을 땐 애꿎은 양말이라도 부러 구멍내서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시켰다. “아이가! 빵꾸가 났네. 어무이, 이것 좀 집어줘요. 이래서 발꿈치가 시러벗꾸나아” 엄살을 떨면서.
일을 하면서 어머니는 자기 목소리도 찾았다. “어머니가 나랑 사시면서 달라진 여러 모습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맘에 안 들면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것이에요.” 나이들어 노쇠해지신 어머니가 큰소리치고 떵떵거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분 좋은 일이라는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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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과 함께 밭에 나온 어머니. 땅바닥에 내려앉아 엉덩이를 끌 며 쑥 뜯는 일에 빠져들었다. 쑥 주머니가 불룩하게 차오르는 재미 에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
ⓒ 전라도닷컴 | “오줌 누고 똥 누는 거는 잘 못해도 괜찮아요” 돌아보면 힘든 때가, 힘든 날들이 왜 없었을까. “자다가 깨서 어머니가 무작정 가자 가자는 말만 되풀이하며 무지막지하게 떼밀고 나서기라도 하면 당해낼 도리가 없어요. 힘으로도 말로도 논리로도 말릴 수 없지요. 어머니는 지금 나와는 다른 세상에 계신 거니까. 트럭 옆자리에 어머니 태우고 어둔 길, 비 오는 길을 무작정 정처없이 달려가던 그 시간들이 어찌 암담하지 않았겠어요.”
어머니의 이상행동을 그는 ‘질병’이 아니라 ‘치유’의 과정으로 본다. 경남 함양 출신인 어머니는 14살 때 시집왔다. 남편이 43살에 세상을 뜬 뒤에는 홀로 살림을 감당하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사느라 맺힌 것들 오죽 많았을꼬. 어머니가 난데없이 쏟아내는 악담과 저주도 고단했던 생애에서 쌓인 고통과 분노를 풀어내는 한 방식으로 그는 받아들인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밤에 여러 번 옷에 실수를 하고 또 그런 자신 때문에 괴로워했다.
지난 해 4월, 잠든 어머니 곁에서 쓴 9장의 편지도 그런 날 밤에 쓴 것이다. 그 중 한 대목. <…오줌 누고 똥 누는 거는 잘 못해도 괜찮아요. 오줌 한번 누시려고 하면 못 쓰는 다리를 질질 끌고 가서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변기에 올라가시는 어머니를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질끈 눈을 감아요.>
아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면서, 관계를 회복해 나가면서 어머니는 서서히 기저귀를 졸업했다. 글읽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그는 어머니 전용동화도 쓴다. 아니 ‘노화(老話)’. 동화는 있는데 왜 노화는 없단 말인가 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옛 생활도 바탕에 깔고 어머니의 한결같은 소원인 ‘벌떡 일어나 남들처럼 돌아댕기는’ 이야기도 곁들여서. 옷에 똥오줌 싸는 할머니를 등장시켜 그것이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이야기도 만들었다.
말끝에 항상 흔연하게 매다는 웃음 ‘하하하’ 이야기 중간중간 그는 어머니 기척을 살피려 일어난다. “오랫동안 우리끼리만 이야기하면 어머니가 소외감을 느끼셔요. 어머니 간식 좀 드리고요.” 방에 들어간 그가 아직 기분이 찌뿌둥하니 누워 계시는 어머니께 쥐포를 건넨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쥐고기(쥐포)예요. 좀 드셔요. 하하하.”
아무렇지 않은 말끝에도 항상 흔연하게 매다는 웃음 ‘하하하’. 그 웃음 역시 매순간 삶을 꽃피우려 살려 하는 자의 의지가 자연스레 습관이 된 몸짓의 하나일 것이며 그가 일상적으로 생색도 없이 어머니께 드리는 공양일 것. 웃음만 많은가. 그는 자기를 소개하길 “울기도 잘 하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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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거울에 비친 어머니와 아들. "수염 난 사람이 내 아들 아이가." |
ⓒ 전라도닷컴 | “함석헌 선생은 눈물방울을 통해 비치는 세상이 하늘나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눈물을 애써 감출 필요도, 멈출 필요도 없어요. 측은지심, 일치되는 공감의 표현이 눈물이니까요. 개체화된 존재들은 때로 눈물을 통해 하나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 눈물이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고 껴안는 힘이 되기도 했을 것.
어머니 눈과 입을 통하는 순간 경이롭게 다가오는 세상 어머니와 살면서 세상을 다시 산다는 그. 청국장 만들 때 쿰쿰한 냄새 안 나게 숨구멍 내는 법도 깨치고 어머니에게 배우는 것들이 많다. “어머니는 나가면 모든 게 다 감탄거리예요. 아마,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신 뒤 찬탄했다는 것보다 더하실 걸요, 하하하. ‘깨 심었던 데제? 올해도 심을 거제?’ ‘아이고오, 저기요오 보래이. 벌쌔 꽃대가 올라오네?’…. 우리가 심드렁하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어머니 눈과 입을 통하는 순간 경이롭게 다가와요. 나도 덩달아 그 경이로움에 감염돼 버려요.”
보물1호인 ‘두발 리어카’ 휠체어를 타고 골목길을 나서면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이 어머니에게는 환희의 재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온갖 첨단 전기제품으로 둘러싸인 도시 생활과 달리 ‘아는 것 투성이’인 시골에서, 자연 속에서 어머니는 기를 펴기 시작했다. 세상 것들이 하나둘 이른바 어머니 ‘나와바리’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빼뿌재이 나왔네. 저거 생주리 해 묵어도 좋고 삶아서 된장 끓여 묵어도 된다”고 큰소리치며 아들을 가르치고, 멀리서도 녹두잠자리와 물잠자리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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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도 햇볕도 들랑날랑. 덕유산 자락, 전희식씨가 어머니와 둘 이 사는 집. 쓰러져가던 집을 구해 되살려냈다. 그 ‘살림’의 집에는 어머니의 부서진 다리, 흩어진 기억, 체념의 일상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를 바라는 아들의 간절함이 바쳐졌다. |
ⓒ 김태성 기자 | “어머니를 알아가고, 배우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머니와 아들은 한 방에 잔다. 누워서도 서로 손잡고 쓰다듬고…. 어머니가 오줌 마려워 자다가 깨면 그도 덩달아 눈이 떠진다. “돌봐드리려고 일어나려 하면 요새는 어머니가 너는 자라, 따라나오지 마라 하고 화장실 문을 딱 닫아버려요. 배려하는 마음, 배려하는 힘을 가지시게 된 거죠.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건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장 좋은 상태일 때 가능하지요.”
하지만 하루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어머니의 ‘내일’. 그 내일이 금쪽같이 절실한 그의 바람은 “오래오래 어머니를 알아가고, 배우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 그 서원, 마음에 사무친다.
《똥꽃》을 읽은 한 독자는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올 봄엔 벚꽃놀이 가고 싶다”고 하신 지가 벌써 몇 년째이건만 아직도 그 소원을 못 들어 드렸습니다. 이번엔 꼭 휠체어 끌고 가까운 수봉산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경시켜 드려야겠습니다. 《똥꽃》은 내겐 참 고마운 책입니다.> ‘내겐 참 고마운 책’! 그 말은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온마음을 다하며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일러주는 삶. 어머니 김정임과 아들 전희식이 함께 이뤄낸 삶이다.
나이드신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과 보람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가 되고자 그는 ‘부모를 모시(려)는 사람들-자식 키우기 반만이라도’란 카페(cafe.naver.com/moboo)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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