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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法에 대한 오해

질문 감사합니다. 그리고 답글이 늦어서 아주 죄송합니다. 간단하게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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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식[비설신식도 동일]과 오온의 식은 동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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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하지 않습니다. 오온의 식은 모든 식 즉 안/이/비/설/신/의 식, 즉 여섯 가지 식을 다 포함한 것이고 안식은 단지 눈의 알음알이만을 ... 신식은 몸의 알음알이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안식이고 이것은 오온의 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혼란하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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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온의 식을 구성하는 식이란 의식과 동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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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씀드리지만 오온의 식은 여섯 가지 식을 다 포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은 오온의 식에 포함되는 것이지 의식이 오온의 식을 뜻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혼동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왜 혼돈을 하시는지 저는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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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식이라고 할 때는 <눈의 알음알이 ~ 결정 혹은 등록>까지 전 과정을 포함하는가? 아니면 <눈의 알음알이>만 해당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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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마적으로 보자면 안식은 단지 눈의 알음알이만을 뜻합니다. 당연히 그래야합니다. 인식과정에서 보자면 바왕가에 해당하는 제6식이 진행되다가 마노[의]에 해당하는 오문전향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안식이 일어나고 마노에 해당하는 받아들이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모두 의식에 해당하는 조사하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 속행의 마음들, 등록의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전오식과 의와 의식은 구분이 됩니다. 아비담마 인식과정의 상식입니다. 그리고 왜 갑자기 오온의 식과 여섯 가지 식과 인식과정을 섞어서 혼란해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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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중표교수님 해석에 따르면, 색도 결국은 의식과 관련된다고 보여지는데, 식이 색.수.상.행 및 식에 의지하여 증장하고 색.수.상.행은 식에 의지하여 증장한다. 결국 상호의지하는 중충구조를 가진다고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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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표교수님의 글을 제대로 안읽어보아서 무슨 부분을 가지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식과 의식을 동일시하면 곤란합니다. 의식은 식가운데 하나일뿐이지 의식이 곧 식은 절대 아닙니다. 정확한 정의가 없는 글에는 제가 뭐라 답글을 달기가 곤란합니다.
그리고 <식이 색.수.상.행 및 식에 의지하여 증장하고>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실례를 봐야 제가 뭐라 제소견을 적을 수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색.수.상.행은 식에 의지하여 증장한다.>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증장이 무슨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경우에 색을 자신의 몸 즉 안의 색이라 한다면 이것은 타당한 말일 것입니다. 수상행은 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 당연한 말이고 자신의 몸도 업에서 생긴 물질과 마음에서 생긴 물질은 분명히 식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깥의 색이 나의 수상행식에 의해서 증장한다는 것은 아주 비상식적인 태도라 여겨집니다. ... 이것도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는 제가 뭐라고 왈가왈부할 성질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구체적인 분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하는 질문은 자칫 하면 그분을 사람을 비방하는 꼴이 되니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옛날에 저도 초기불교를 잘 모를 때 한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중표교수님의 아함의 중도체계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몇 십 년 전에 발표한 박사학위 청구 논문이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빠알리 원전에 대한 인용이나 이해는 전혀 없고 초기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인 주석서의 인용도 전혀 없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는 있겠지만 이것을 초기불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기본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른 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견해입니다. 물론 어떻게 보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절대로 이중표 교수님을 비방하기 위함이 아님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다만 이 책이 초기불교를 대변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따른 다는 것이 초기불교를 전공하는 여러 젊은 분들의 의견이라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자칫 남을 비방하는 글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할 수 없이 이런 글을 적고 있음을 잘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 조심스럽습니다. ...

그리고 <그런데 내가 깨닫고 보니 물질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이입처라고 하는 허망한 마음에서 생긴 무상한 것이다.>라고 인용하셨는데 저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육처 상윳따(S35) 등의 어떤 초기경에도 12처가 허망한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12처 자체가 그대로 무상한 것이지 허망한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서 무상한 것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주석서나 다른 근거가 없이 자신의 주관을 너무 넣은 경해석은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요약되어 있거나 함축적이거나 어려운 경은 주석서를 참조하여 전통적인 견해를 먼저 섭렵하는 것이 상식중의 상식이겠지요 ...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은 그 자체가 무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상한 12처가 서로 접촉하여 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의 온갖 사단이 벌어지는 것이 중생의 삶의 현주소입니다. 아시겠지만 초기경의 도처에서 세존께서 고구정녕히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적 지식과 우리의 체험으로 충분히 인정되고 공감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지 12처 자체가 허망한 마음에서 생겼기 때문에 무상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초기경의 어디에도 이런 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일체유심조의 절대적인 마음입니까? 그리고 허망한 마음이란 또 무엇입니까? 또 허망한 마음에서 생긴 무상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상당히 혼란스럽고 무책임한 말이라고 밖에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거사님이 인용하신 책에 정말로 이렇게 적혀있는지 아니면 거사님이 각색해서 적은 말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법수에 대한 정확은 정의 없이 자기식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큰 혼란을 자초하고 불교를 정말 이상한 오리무중의 가르침으로 만들게 되겠지요. 마음은 식일 뿐이고 식 그 자체는 또 무상한 것입니다. 자칫 초기불교를 정말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정말 두렵습니다. ...

거사님이 인용해주신 잡아함의 원전은 제가 CBETA로 검색해서 잘 살펴봤습니다. 왜 거사님이 혼란이 오셨는지 대충은 짐작이 가고 또 이 경을 통해서 저도 할 말은 엄청 많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 말을 줄입니다. 부디 법수를 정확히 이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거사님 스스로가 법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계시면 남이 근거 없이하는 주장이나 논리나 말에 무슨 잘못이 포함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는 초기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체계로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길라잡이(아비담맛타 상가하)를 따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불교를 두고 진지한 고뇌를 하는 여러 분들이 이 책들을 통해서 분명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지속적인 관심과 문제의식으로 읽고 이해하시면 정확한 불교이해에 가장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물론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는 전적으로 거사님의 문제겠지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초기불교를 접할 때는 정설부터 먼저 접해야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초기불교가 처음 소개될 때는 이런 정설을 알지 못했고 지금도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12처를 일체라고 합니다. 빠알리 니까야에도 그렇게 나오고 아함경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12처가 이 세상의 전부라면 그처럼 중요한 여러 가지 식은 도대체 어디에 들어갑니까?

 

12처는 식을 언급하지 않는 법수라고요? 그러면 어떻게 12처가 일체가 됩니까? 주석서와 아비담마에서는 12처의 의(마노)에 모든 식은 다 포함된다고 설명합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촉 작의 수 상 사 등의 심소법은 어디에 포함됩니까? 당연히 법에 포함됩니다. 열반은 어디에 포함됩니까? 당연히 법에 포함됩니다. 이렇게 이해해야합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7장 일체의 길라잡이에 잘 설명되어 있고 도표로도 잘 나타나있습니다. 12처의 의에서 6식을 따로 언급한 것을 18계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먼저 정설부터 이해하시면 다른 어떤 분분한 설명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고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사님의 혼란은 정설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상윳따 니까야 일차번역을 마치고 시간을 내어서 미처 답글을 달지 못한 질문에 대해서 답글을 한 번 적어봤습니다. 답글이 늦은 점 깊이 이해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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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수님 서신 [1]

 

 

http://cafe.daum.net/mobuddhism/ICuS/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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